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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너무 허무맹랑한 기사를 보면 "소설 쓰고 있다"라면서 폄하하곤 한다. 그만큼 기자에게 '소설을 쓴다'고 하는 건 자존심을 상하는 일이다. 하지만 정말 기자가 소설을 썼다. 그것도 장편소설. 이 소설을 쓴 기자는 바로 지난 2008년 낙하산 사장에 반대해 해직됐다가 지난해 대법원에서 복직판결을 받은 우장균 YTN 기자다.

우 기자가 지난 7월 말 출간한 장편소설 <회중시계>는 백범 김구 선생 암살 5일간의 이야기를 담았다. 경교장 개가 죽으며 이야기가 시작되는 이 소설은 정현우라는 가상인물을 주인공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소설 출간 뒷이야기가 궁금해 지난 18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YTN 사옥에서 우 기자를 만나봤다. 다음은 우 기자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이야기는 김구 암살 5일 전부터 시작된다

우장균 TYN 기자
 우장균 TYN 기자
ⓒ 이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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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7월 31일 <회중시계>란 장편소설을 출간하셨잖아요. 보름이 지났습니다. 반응이 어떤가요?
"출판사에서 구체적인 판매 부수를 알고 있을 텐데, 물어보지 않아서 반응은 잘 모르겠어요. 왜냐면 저는 판매 부수에 연연하기보다 소설이 출간된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하거든요."

- 주위에서는 뭐라고 하나요?
"가족들이 아주 좋아해요. 특히 소설 속 주인공의 아내인 한태경은 제 딸의 이름과 같아요. 제가 이 소설을 쓸 때 최인호 작가가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그 날은 책 쓰는 걸 접고 최 작가를 기리는 마음에서 <겨울 나그네>를 읽었어요. 주인공 이름이 최 작가 딸과 같아요. 저도 최 작가와 똑같이 딸의 이름을 쓴 거죠. 어느 날 딸이 자기는 이제 한태경이라면서 만족해하더라고요. 그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았어요."

- 소설이 아주 흡입력 있고 스토리가 긴박하게 전개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어떻게 해서 이 소설을 쓰게 된 건가요?
"저는 소설가 지망생이 아닙니다. 태어나서 한번도 소설을 쓰겠다는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6년 2개월 해직기간 전반부 3년은 공정방송투쟁·복직투쟁을 노조와 함께했어요. 후반부 3년은 노조 동력도 떨어지고 저도 매일 같이 노조사무실에 출근하는 것이 좀 그래서 집 근처 도서관에서 책을 보면서 지냈습니다.

물론 책을 쓰겠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1년 동안 뚜렷한 목적 없이 책을 읽었는데 8할이 우리나라 역사와 관련된 책이었습니다. 특히 조선 시대와 근현대사를 다룬 책을 많이 읽었어요. 책을 많이 보다가 책 한번 써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는데, 처음에는 역사책을 써보려 했으나 역사학자도 아닌 제가 역사책을 쓰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역사소설을 한번 써볼까 하는 생각에 평소에 존경하는 김구 선생을 다룬 소설을 써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책을 쓰게 된 직접적인 동기는 두 장의 사진이 큰 인상을 줬기 때문입니다. 1932년 훙커우 공원 의거 전 김구 선생과 윤봉길 의사가 회중시계를 서로 바꿨는데, 영원히 제 주인을 찾지 못했어요. 그게 가끔 함께 전시되는데 그 사진이 첫 번째 인상 깊은 사진이었고요. 두 번째는 칼 마이던스 기자가 찍은 사진인데, 총탄을 맞은 유리창 너머에서 국민들이 경교장을 향해 절을 하던 모습이 담겨 있었어요. 이 두 사진을 보고 소설을 쓸 결심을 하게 됐어요."

- 집필에 얼마나 걸렸나요?
"실질적으로 제가 책을 쓰기 전에 관련 서적을 100권 가까이 읽었어요. 김구 선생 책만 수십 권을 읽었습니다. 당시 살아있던 사람들이 쓴 책은 거의 읽었어요. 왜냐면 1949년이 어떤 상황인지 궁금했거든요. 그래서 1945~1949년에 나온 신문도 살펴봤어요. 자료조사는 6개월 정도 하고 소설을 쓰는 건 1년 정도, 총 1년 반 걸린 것 같아요."

- 이 소설의 주된 이야기는 백범 김구 선생 암살 5일 전 이야기입니다. 아무래도 실존인물과 허구인물이 공존해서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아요.
"제게 소설적 상상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허구인물을 만드는 과정이 어려웠어요. 근데 더 어려웠던 건 실존인물이었어요. 그들은 당시 우리나라 역사를 이끌었던 분들입니다. 지금 대부분 돌아가셨지만, 후손들이 있으므로 행여 명예훼손이라든지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죠.

그래서 책에 나온 역사적 사실들을 일일이 메모하면서 그 사실에 근거해 책을 쓰려고 노력했어요. 그러나 보니 허구인물과 실존인물이 한 공간에서 만나는 부분에서 제 부족함이 많이 드러났던 것 같아요. 제 한계였죠. 그래서 미진하지만, 어여삐 봐주시길 부탁드려요."

<회중시계>와 <암살>의 비슷한 점

<회중시계> 표지
 <회중시계> 표지
ⓒ 트로이목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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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가 가장 아쉬운가요?
"주변에서 기대 이상으로 잘 썼다고 했지만, 쓰고 나서 가장 아쉬웠던 건 제가 소설가가 아니라서 문장에 기사적인 딱딱함이 있다는 것이죠. 쓰고 몇 번 읽었지만 아쉬웠죠. 그러나 그건 고쳐지지 못했죠.

두 번째는 박진감이었어요. 소설 속에는 실존인물이 있고 1949년 6월 21일부터 26일까지 5일의 기록은 99% 사실입니다. 거기에 맞춰 쓰다 보니 제가 생각하는 소설적 상상력을 영화 대본처럼 만들어보려고 했는데 만만치 않았어요. 아쉬웠죠. 영화 <암살>을 보면서 '저렇게 박진감 있게 해보고 싶었는데'라고 생각했어요. 실존인물과 실제 사건을 다루다 보니까 어려움이 있었어요."

- 허구인물을 탄생시킨다는 게 쉽진 않을 것 같아요.
"인물을 입체화시키는 게 쉬운 건 아니죠. 에필로그에 주인공인 정현우와 권종호 이름에 대한 이야기를 썼는데요. 정현우는 개성이 고향이잖아요. 원래 개성은 38선 이남이었어요. 그러나 휴전선으로 북한 땅이 됐어요.

사실 돌아가신 제 아버지 고향이 개성이에요. 그래서 제 원적이 개성시 선죽동으로 나와 있어요. 아버지에게 개성 이야기를 들었죠. 저는 선죽교를 보지 못했지만, 소설에는 담았습니다. 어떻게 보면 정현우가 해직기자일 수도 있지만 제 아버지일 수도 있어요. 저는 아버지를 기리는 마음으로 책을 썼고, 다시 읽을 때 아버지와 관련된 대목에서는 눈물이 나기도 했어요."

- 생각해보니 아버님 연령대가 정현우와 비슷하네요.
"아버지가 1925년생이라 1949년이면 25살 정도죠. 당시 경전을 다니셨고 할아버지 할머니는 개성에 계셔서 자전거로 오가셨어요. 개성은 광화문을 기준으로 봤을 때 수원보다 더 가깝거든요. 아버지가 자전거를 타고 개성에 가셨다는 말에 착안해서 아버지를 생각하며 쓴 것 같아요."

- 올해가 광복 70주년이죠. <회중시계>와 어울리는 듯한 느낌입니다.
"광복 70주년을 염두에 두고 소설을 쓴 건 아니었어요. 저는 이 소설을 2013년 여름에서 2014년 여름 사이에 썼습니다. 그러나 책의 출간이 우여곡절 끝에 광복 70주년과 맞춰져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광복 70주년 기념우표가 김구 선생이더라고요. 저는 그런데 '광복 70주년'이라는 화두보다 올해 개봉한 영화 <암살>과 제 소설 <회중시계> 사이에 유사점이 많아 조금 놀랐습니다.

우선 제 소설은 1949년의 일을 그리고 있지만, 김구와 윤봉길·이봉창 의사가 만나는 1930년대 초 이야기를 싣고 있어요. 영화 <암살>은 1930년대 초 서울에서 벌어진 가상의 사건과 1949년 반민특위 재판까지 담고 있죠.

그리고 <암설>에서 전지현씨가 연기한 안윤옥이라는 독립군이 저격수로 나오는데 <회중시계>의 주인공 정현우의 형 정민우도 만주 독립군 저격수였습니다. 영화에서 이정재가 연기한 염동진이 반민특위재판에서 무죄 석방되는데, 소설에서도 노덕술이 반민특위 재판에서 무죄 석방되지요. 우연한 일치긴 하지만 묘하고 재밌었죠."

- <암살>이 광복절에 1000만 관객을 돌파했습니다. 앞서 판매 부수를 모른다고 하셨는데 내심 기대도 하실 것 같아요.
"<암살>처럼 제 책도 인기가 있길 바라지만 아직 그런 건 아닌 것 같아요. 다만, 다른 사람을 통해 최동훈 감독에게 책을 보내드렸어요. 왜냐면 2년 후쯤 김구 선생을 주인공으로 <암살2>를 제작할 때 제 소설을 모티프로 하면 어떻겠냐는 의미였어요. 저는 <회중시계>가 단순히 소설로 끝나는 게 아니라 영화로 만들어지길 기대해요. 이번에 출판사와 의논해서 부산국제영화제 콘텐츠 부분에 응모해 1차 예선을 통과했어요. 본선에서 뽑히면 영화화 가능성이 크죠. 거기 선정되길 바라요."

"후대가 김구·노덕술 등 찾아볼 수 있다면..."

- 소설을 읽으면서 '김구 선생은 죽음을 예감했다'고 느꼈어요.
"네.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소설을 썼습니다. 소설에도 나오지만, 김구 선생은 노량해전에서 죽은 이순신 장군처럼 자신의 죽음을 예감했다고 생각합니다. 이순신 장군은 구차하게 살아서 선조에게 죽임을 당하는 것보다는 명예롭게 전쟁터에서 숨을 거둬 역사에 남는 위인이 됐어요. 김구 선생도 암살 위협에 끊임없이 시달렸지만 경교장을 피해 다른 곳으로 숨지 않았고 방문객을 맞다가 안두희에게 암살을 당했어요.

독립운동에 모든 것을 바친 김구 선생은 독립 이후에는 통일운동에 모든 것을 바쳤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그의 소원은 이뤄지지 않았고, 남북이 따로 정부를 세웠잖아요. 참 슬픈 일입니다. 김구 선생은 1949년 6월 26일 일요일 돌아가셨어요. 정확히 1년 뒤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한국전쟁이 발발했습니다.

김구 선생은 동족상잔의 비극이 일어날지 알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힘으로는 그 비극을 막을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죠. 그래서 동족상잔을 보기 전에 자신이 암살 당할 것을 알면서도 그 길을 갔던 게 아닌가 생각해요."

- 소설을 읽으면서 안타까웠던 게 주인공인 정현우의 죽음입니다. 정현우의 죽음이 의미하는 게 있을 것 같아요.
"정현우의 죽음은 김구 선생의 죽음이고, 그것은 현재도 완성되지 못한 통일 그리고 남한과 북한의 민주주의입니다. 물론 정현우가 살아 그 꿈을 위해 애쓸 수도 있지만 저는 권종호도 살아있고, 유복자지만 정현우의 아이도 남았기 때문에 그들이 정현우나 김구 선생이 못 이룬 꿈을 이룰 것이라고 봤습니다. 정현우의 죽음은 당시 민족주의의 죽음이라 생각합니다.

광복 70년, 경제는 비약적으로 성장했지만 남북은 아직 대치 상태에서 긴장이 지속되고 있어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남한과 북한 모두 자유와 평등의 가치를 구현하는 민주주의를 완성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영화 <암살>에서 안윤옥에게 하와이 피스톨(하정우 분)이 매국노 몇 명 죽인다고 독립이 되느냐고 말하자 안윤옥은 '그래도 우리가 싸우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알려줘야 한다'고 답합니다. 김구 선생을 구하려고 했던 정현우처럼 해직기자들도 공정방송과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고 있다는 것을 21세기에 살고 있는 노덕술 같은 떡봉이들에게 알려줘야 하지 않을까요?

저희가 투쟁한다고 공정방송과 민주주의가 이뤄질까요? 근데 안윤옥처럼 우리가 싸우고 있다는 걸 알리 듯 정현우도 죽음을 불사하고 자기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 끝까지 싸우는 거죠."

- <회중시계>로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김구 선생은 민주주의고 공정방송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21세기 이명박, 박근혜 정권에서도 상황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바람이 있다면, 이 책이 훗날에도 남아 어떤 후배나 후손이 읽은 뒤 김구, 장택상, 노덕술 등 인물들을 검색해보고, 반민특위 같은 사건들을 알게 되면 좋겠다는 거예요. 이렇게만 된다면 제 소설은 존재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차기작에 대한 계획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지난해 소설 탈고한 후 대법원 판결이 있었어요. 제가 복직된 후 나머지 해직기자들이 복직되는 게 지상목표예요. 그래서 당분간 소설 집필은 쉽지 않을 수도 있어요. 그들이 복직된 후에 마음에 여유가 생긴다면 쓰고 싶은데 이미 구상은 마쳤어요. 국민들이 정치에 대해 애정과 관심이 있어야 국가와 민주주의가 발전한다는 생각을 해요. 그래서 정치 소설을 쓰고 싶어요. 실존인물과 허구인물을 공존시켜 다산 정약용이 강진으로 유배 간 이야기를 만들고 싶어요."

- 마지막으로 <오마이뉴스>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려요.
"<오마이뉴스> 독자분들은 2008년 10월 6일 저를 포함한 6명의 해직기자가 발생했을 때부터 많은 관심과 사랑을 보여주셨어요. 제가 소설을 쓰기에는 재능과 역량이 부족한 사람이지만, 해직됐을 때 어쩌다 보니 장편 소설을 쓰게 됐어요.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시민들과 함께 호흡하기 위해 소설을 썼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소설에도 애정과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 편집ㅣ김지현 기자



태그:#우장균, #회중시계, #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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