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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과 대전사회적기업협의회 회장을 맡고 있는 조세종 기자는 지난 5월 15일부터 23일까지 7박9일 동안 프랑스 파리와 스위스 제네바를 방문했다.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에서 주관하는 사회적기업 정책연구연수에 선발되어 유럽의 사회적기업을 탐방하게 된 것. 민들레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발기인으로 참여하여 13년 동안 사회적협동조합과 인연을 맺어온 조 기자가 바라본 프랑스와 스위스의 사회적기업 탐방기를 <오마이뉴스>는 4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말]
아베 피에르 재단의 제네바 지부인 엠마우스 센터 입구.
 아베 피에르 재단의 제네바 지부인 엠마우스 센터 입구.
ⓒ 조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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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마우스 제네바 지부 콤파니(동반자) 남자 숙소.
 엠마우스 제네바 지부 콤파니(동반자) 남자 숙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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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기업 정책연수단은 이제 두 번째 탐방국가인 스위스로 이동한다. 파리에 있는 리옹역에서 3시간 동안 테제베를 타고 제네바로 국경을 넘었다. 스위스는 영세중립국이기 때문에 유럽연합에 가입하지 않았고 화폐도 유로가 아닌 스위스 프랑을 독자적으로 쓰고 있다.

스위스는 불어권, 독어권, 이탈리아어 권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언어권에 따라 지역적인 특색이 다르고 이에 따른 사회적 경제의 성격도 다르다. 인구의 65%를 차지한 독어권은 자율적 행위가 우선으로 하는 사회적 경제 조직이 대다수이며, 인구 22%인 불어권은 프랑스의 영향으로 사회연대경제와 사회서비스 조직이 우세하다. 그리고 이탈리아권은 이탈리아 협동조합의 영향으로 노동통합형이 강한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정작 스위스 정부 차원의 사회적 경제에 대한 정의는 없으며, 인증제도나 공식적 지원제도도 찾아볼 수 없다. 스위스는 노동통합 사회적기업이 1000개, 비영리 사단(association)이 7000개, 재단이 2만 개, 그리고 협동조합이 1만 개이며 협동조합에서만 13만3000명을 고용하고 있다.

제네바로 넘어가 제일 먼저 방문한 곳은 '아베 피에르 재단'의 제네바 지부인 '엠마우스 센터'다. 엠마우스 센터는 처음에 운동의 차원으로 자리를 잡았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7년에 빈곤자들에게 가장 기본적인 필요한 식량과 물품들을 공급하기 위해 설립하였으나 센터의 건립은 1954년 한 노숙자가 길에서 동사하는 사고 이후 본격적인 성금운동 끝에 설립되었다.

이곳 엠마우스 제네바센터의 관장인 '마리 에스피노자'는 아베 피에르 신부님과 함께 엠마우스 활동을 이끈 1세대로, 우리에게 아베 피에르 신부님과의 활동을 이야기할 때면 감회에 젖어 눈시울을 붉혔다.

엠마우스의 사명은 '어려운 이가 요청하기 전에 도움을 실천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어려운 이가 무엇으로 곤란을 겪는지 눈여겨 살펴보아야 하며, 궁극적으로 가난을 구제하는 일은 돈을 통해서는 쉽지만, 근본적인 해결이 되지 않고 일을 통해서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옷장 속에 있는 필요하지 않은 옷은 타인의 옷이다'라는 피에르 신부님의 캠페인은 우리나라에도 널리 알려져 가난한 이들에 대한 관심과 활동을 촉구하였다.

마리 에스피노자 관장은 엠마우스에서 함께 지내는 사람들은 가난을 잠시 피하러 온 사람들이 아니라 일을 해서 새로운 힘을 얻어가려는 사람이라고 강조하였고, 이들을 '콤파니(compagnie, 동반자)'라고 부른다. 넝마를 줍던 과거와는 달리 옷, 가구, 가전제품을 수리해 판매하는 방식으로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아베 피에르 신부님의 가난 구제의 정신을 각 시대에 맞게, 그리고 각 지역 센터에 맞게 자율적으로 공유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99년 동안 무상으로 빌린 건물에 무슨 일이?

재활용 수거, 수리, 판매 공간인 엠마우스 2층 건물.
 재활용 수거, 수리, 판매 공간인 엠마우스 2층 건물.
ⓒ 조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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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마우스 건물 2층에 마련된 전시 판매 공간에 전시된 물품들.
 엠마우스 건물 2층에 마련된 전시 판매 공간에 전시된 물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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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네바 센터의 정문을 통과하면서 왼쪽 아래에는 재활용품을 수거, 수리, 판매하는 커다란 2층 건물이 있고, 오른쪽 위로는 방이 30개 있는 남자숙소가 눈에 들어왔다. 전체 일하는 사람은 80명으로 직원이 16명, 양심적 병역거부 봉사자 3명을 포함한 7명의 봉사자가 있고, 숙소생활을 하는 콤파니가 전체 65명이다. 이들 중에는 무등록자, 불법체류자도 포함되어 있는데 숙소 사용이 가능한 석 달 동안 이들은 법적인 보호를 받는다.

헌 옷 수거함은 제네바에 289개가 있는데 트럭 3대를 이용하여 아침, 저녁으로 하루 12톤의 옷을 거둬들여 엠마우스와 함께 구세군, 적십자와 같은 협력기관들과 분배한다. 마리 에스피노자 관장의 설명을 들은 후 관장의 안내에 따라 센터에 갔을 때도 각 파트별로 의류나 가전제품들의 분류와 수리작업으로 바쁜 작업자들이 있었다. 의류와 컴퓨터, 가전제품, 도서류와 액세서리, 장난감과 가구, 식기류 등 다양한 품목의 재활용품을 볼 수 있었고, 일하는 분들의 손길을 거치면서 새것처럼 재생되었다.

2층에는 이를 판매하기 위한 전시판매 공간이 넓게 마련되어 있었다. 아베 피에르 재단에서 먼저 확인한 대로, 여기 엠마우스 제네바 지부도 스위스 정부나 주 정부의 지원 없이 개인 기부금과 판매 수익으로 운영하고 있다. 마리 에스피노자 관장도 자신들의 이상대로 자유롭게 활동하기 위해 정부지원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밝혔다. 다만 재활용 수집과 판매를 위해 사용되는 이 넓은 2층 건물은 제네바시에서 99년 동안 무상으로 임대한 것이라고 했다. 이러한 무상 임대는 엠마우스의 재정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엠마우스 센터 매장에서 마리 에스피노자 관장과 함께 한 연수단
 엠마우스 센터 매장에서 마리 에스피노자 관장과 함께 한 연수단
ⓒ 조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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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정부는 장애인과 같은 취약계층 지원제도를 잘 운용하고 있다. 방법도 다르고 비율도 다르지만 주마다 일정한 지원 비율을 정해 혜택이 돌아가도록 하는데 부유한 지역일수록 그 비율이 높다고 한다. 소득이 많은 사람이 사회적 의무도 많이 부담하는 것은 유럽에서는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일이라 하겠다. 아베 피에르 재단의 파리 본부와 지부와의 재정 네트워크는 일단 지부에서 파리로 분담 금액을 보낸 다음에 다시 본부에서 지부로 분배하는 방식이라고 소개했다.

엠마우스 센터에 머무를 수 있는 기간은 나라마다 다르다. 스위스 안에 있는 엠마우스 센터는  다섯 곳이 있는데, 여기 제네바 엠마우스를 제외하고는 3개월까지만 체류할 수 있다. 제네바 엠마우스 센터도 원칙은 3개월 체류지만 그 이상 체류도 가능하며 이곳에서 일하며 살다가 생을 마감한 사람도 있다고 한다.

이는 제네바 센터가 동네에서 환영을 받는 모범적인 역할을 하므로 가능한 일이다. 마리 관장은 20여 개 나라와 15개의 종교를 가진 콤파니들이 함께 어울려 서로 다양한 일들을 소화하며 평등하게 살아가고 있다고 했다. 이들 대부분은 인간의 존엄성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미래 불안한 청년들에게 희망을"

유포리아에 대해 설명하는 부매니저 알렉시아(왼쪽)와 인턴 알렉스
 유포리아에 대해 설명하는 부매니저 알렉시아(왼쪽)와 인턴 알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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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도 한국처럼 희망 없는 미래에 대한 청년들의 두려움과 불안함이 사회문제로 대두하고 있다. '사회적기업 유포리아(euforia)'는 프로그램을 통해서 많은 청년에게 삶의 활력을 주고 있다. 스위스 제네바에 본부를 두고 있는 유포리아는 미래에 대한 희망이 사라진 시대에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모르는 젊은이들을 위해 삶의 동기를 제공하여 세계를 이끌어 갈 수 있도록 희망을 견인하는 것이 설립 이유다. 실제로 스위스 청년들의 70%가 미래를 도전할 의지를 갖고 있으나 도전을 시도하는 청년들은 15%에 불과하다고 유포리아 부매니저인 알렉시아가 우리 연수단에 알려주었다.

유포리아의 사명은 젊은 세대가 처한 문제를 직접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에 대한 해결방법을 젊은 세대 스스로가 찾아보게 하는 것이다. 청년들의 사회적기업답게 재미와 흥미를 유발하여 젊은이들의 참여를 유도하고, 청년들 각자의 능력이 계발되도록 변화 촉진자로서의 역할을 유포리아에서 맡고자 하는 것이다. 대담하게도 이들은 2020년에 1천만 명의 유럽의 젊은이들이 유포리아에 매료되리라는 목표를 세우고 있었다.

이러한 야심 찬 계획이 어떤 프로그램으로 이루어지는가? 유포리아가 자랑하는 임팩트(Impact) 프로그램은 18세에서 30세까지의 청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활동이다. 50명의 청년이 3일간의 시간을 통해 아이디어를 창출하고 심사과정을 통해 아이디어를 선발하는 프로그램이다. 선발된 아이디어는 사회적기업으로 연계시켜 비즈니스 모델로 키우고, 선발되지 않은 아이디어라도 참가자 모두 자기계발에 도움이 되고 자신을 재발견하는 경험을 갖도록 한다.

그 외 대학생을 위한 아카데미 트레이닝과 15세 이상 18세 이하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스태프 프로그램을 진행하여 환경문제나 빈곤, 인종차별 등의 사회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지 학생들의 눈높이에서 길을 찾는 프로그램이다. 프로그램의 모든 과정은 음악과 율동 속에서 진행되며 자신을 쉽게 열고 상황을 주도할 수 있게 배려하고 있다고 한다.

청년 프로그램만 있는 게 아니다

유포리아는 청년들의 프로그램이 주류를 이루고 있지만 30대에서 50대에 이르는 기업의 중견간부를 대상으로 하는 리딩 임팩트(Leading Impact) 프로그램도 있다. 이 프로그램 역시 기성세대의 리더십 개발을 목적으로 많은 직장인이 참여하고 있다. 그리고 중년과 청년이 만나 세대 차이를 극복하고 서로를 이해하는 체인징 프로그램은 기성세대가 청년들의 아이디어를 수용하는 자리로 알려졌다.

유포리아의 성과라고 할 수 있는 것은 교육 프로그램 참여자들의 변화일 것이다. 부매니저 알렉시스에 따르면, 유포리아는 참여자들의 변화를 관리하는 일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데, 프로그램의 참여 전과 후, 그리고 6개월이 지난 후 어떤 변화를 하였는지를 확인한다. 그 결과 참여자들의 70%는 원하는 일을 하면서 이전보다 더 많이 사회참여를 하기 시작하였으며 35%는 적십자와 같은 비영리 재단에 들어갔고 18%는 직접 사회적기업을 설립했다고 한다.

유포리아의 예산은 60%가 중견간부 프로그램 비용으로 기업에서 받는 돈으로 충당하고 나머지 40%는 정부지원과 민간 기부금으로 운영한다. 중견간부 프로그램 이외의 청년프로그램들은 전부 무상으로 운영하고 있어 젊은 층의 호응도를 쉽게 끌어낸다. 정부 지원금은 청년들의 프로그램 운영을 위해 사용되는 비용에 대해 지원받는 것이지, 사회적기업이라는 이유만으로 지원받는 것은 없다고 했다.

유포리아 직원들과 함께 촬영한 연수단
 유포리아 직원들과 함께 촬영한 연수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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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연수단이 유포리아를 찾았을 때 제네바에 있는 사무실이 연수단을 수용하기에는 좁으므로 제네바 대학의 한 강의실에서 유포리아에 관한 안내를 받았다. 유포리아는 처음 제네바 대학에서 프로그램을 시작했고 학생들과 관계가 많아 대학시설도 언제나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청년 실업이 사회문제화되기 시작했던 2007년에 시작한 유포리아는 그동안의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결과, 2011년에 현재와 같은 프로그램을 정착시켰고 2012년부터 유럽 각국에서 각종 수상을 하면서 프로그램 확대에 성과를 거두고 있으며, 최근에는 유엔의 지원을 받아 아프리카로 확대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여러 유럽 국가도 한국과 비슷한 희망이 없고 구직이 어려운 청년 세대에 스스로 비전을 찾아주기 위해 설립된 유포리아의 프로그램들이 한국에서도 함께 하게 되기를 바란다. 실제 유포리아에 대한 설명이 끝나고 부매니저 알렉시스와 인턴 알렉스의 진행으로 간단한 프로그램을 직접 체험하면서 연수단은 그룹으로 동작하고 아이디어를 내어 과제를 수행하는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 편집ㅣ곽우신 기자



태그:#사회적기업, #사회적협동조합, #유포리아, #엠마우스, #사회적기업정책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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