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웰컴 투 동막골>의 포스터

영화 <웰컴 투 동막골>의 포스터 ⓒ 필름있수다


'물고기는 내가 원하는 것이다. 곰 발바닥도 내가 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를 한꺼번에 얻을 수 없다면 물고기를 버리고 곰 발바닥을 얻을 것이다. 목숨은 내가 바라는 바이고 의 또한 내가 바라는 바이다. 두 가지를 한꺼번에 얻을 수 없다면 목숨을 버리고 의리를 취할 것이다.' (<맹자> '고자 편')

사생취의. 목숨을 버리고 의를 취한다는 뜻이다. 이 문장을 읽을 때마다 나는 의라는 것이 대체 무엇인지 궁금했었다.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지켜내야 하는 게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어째서 사람들은 위험한 줄 알면서도 독립운동에,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는가. 어째서 가라앉는 배 안으로, 불길 속으로, 지하철 선로로 뛰어드는가. 어째서 스스로를 괴롭히면서까지 단식을 하고, 크레인에 오르고, 삼보일배하는가. 이러한 궁금증의 끝엔 언제나 의가 있었다. 의는 때론 사랑이었고, 연민이기도 했으며, 우정이나 의리, 의무나 약속의 얼굴을 하기도 했다. 그것이 어떤 모양이든 사람들은 그것을 위해 기꺼이 위험을 무릅썼다.

하지만 복잡다단한 세상사에서 기꺼이 목숨을 던질 만한 일을 발견한다는 건 쉽지 않다. 운이 좋아 목숨을 바쳐 이룰 만한 일을 발견한다 해도 실제로 스스로를 내던지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살고자 하는 본능을 이겨내고 잘 죽기 위해 나선 이들의 이야기가 영화로 자주 다뤄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사생취의, 목숨을 버리고 의를 취하다

 <웰컴 투 동막골>의 하이라이트로 손꼽히는 팝콘 내리는 장면

<웰컴 투 동막골>의 하이라이트로 손꼽히는 팝콘 내리는 장면 ⓒ 필름있수다


지난달 개봉한 조지 밀러의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에도 이 같은 이야기가 등장한다. 강력한 악당 임모탄 일당에게 쫓기는 퓨리오사를 주인공인 맥스가 돕는 게 바로 그것이다. 자유의 몸이 된 맥스는 홀로 떠나는 대신 퓨리오사와 함께 목숨을 건 싸움을 시작한다.

2013년 말 개봉해 천만 명이 훌쩍 넘는 관객을 모은 <변호인> 역시 마찬가지다. 주인공 송우석은 돈 잘 버는 변호사의 삶을 내팽개치고 간첩 혐의를 뒤집어쓴 대학생의 변호인을 자처하며 어려움과 맞닥뜨린다. 만약 그가 공안사건 피의자의 변호를 맡는 대신 돈과 성공을 좇는 삶을 살았다면 관객은 그의 이야기에 감동하지 않았을 것이다.

샘 페킨파가 남긴 불후의 명작 <와일드 번치>에 등장하는 총잡이들 역시 마찬가지다. 악당 두목 아파치에게 붙잡힌 동료를 구하기 위해 네 명의 총잡이는 기꺼이 죽음의 위험을 불사한다. "Let's go"라는 말에 "Why not?"이라 답하던 사내. 이 장면만큼 가슴 뜨거워지는 명장면도 흔치 않을 것이다.

장진이 원작을 쓰고 박광현 감독이 연출한 <웰컴 투 동막골>도 그런 영화 가운데 하나다. 단지 다른 편이라는 이유로 원한 없는 이들을 죽여야 하는 참혹한 현실에 내던져진 이들이 전쟁과 전혀 상관없이 평화로운 마을에서 어떻게 변화하는지가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동막골의 연합군, 그들이 지키고자 한 건 무엇이었을까?

 포탄이 터지는 장면을 낭만적으로 묘사한 영화의 엔딩신

포탄이 터지는 장면을 낭만적으로 묘사한 영화의 엔딩신 ⓒ 필름있수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시절, 동막골에 외지인이 찾아든다. 각기 다른 이유로 무리에게서 떨어진 국군과 인민군, 미군이 바로 그들이다. 영화는 좀처럼 서로를 믿지 못하고 경계하던 이들이 총구를 들이대도 무서운 줄 모르는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조금씩 변화하는 모습을 그려낸다.

얼핏 작위적으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잘 먹고 잘 웃고 잘 나누며 잘 행복해하는 동막골 사람들을 보고 있자면 이유도 없이 서로 총을 겨누는 자신들의 모습이 부끄럽게 여겨질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스미스 대위의 말을 빌려 정말이지 "사람이란 이렇게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시대는 전쟁 중. 평화로운 마을의 찬란한 순간도 이내 위험에 휩싸인다. 동막골에 추락한 미군 비행기가 격추된 것이라 오인한 국군이 마을을 폭격하기로 계획한 것. 소식을 입수한 동막골 군인들은 작은 연합군을 결성하고 마을을 지키고자 결의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마지막 장면을 기억한다. 적의 포격을 자신들에게 유도하고 장렬히 산화하던 연합군의 죽음을 영화는 더없이 아름답고 낭만적으로 그려냈더랬다. 사생취의, 목숨을 버리고 이들이 취한 의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영화를 보는 우리는 과연 어떤 의를 향해 살아가고 있는가?

 동막골의 마스코트 여일(강혜정 분)

동막골의 마스코트 여일(강혜정 분) ⓒ 필름있수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성호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goldstarsky.blog.me)와 빅이슈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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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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