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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전통술 연구단체를 운영하면서, 전통주 허가와 유통문제로 자문을 구할 일이 생겼다. 관련 기관에서 상담을 받던 중 "그런데 전통술이 뭡니까?"라는 질문을 받고 다소 당황한 일이 있다. 질문을 한 사람은 우리 전통술 관련 일로 30년 넘게 공무원 생활을 했다는 분이기 때문이었다. 설마 몰라서 물었을 리는 없을 테고 질문하는 의도가 있을텐데 하고 잠자코 그 다음 말을 기다렸다.

"전통술 하는 사람들이 입국법을 쓰는 술을 두고 '일본식'이라는 말을 쓰던데 그 '일본식'이라는 그게 뭡니까? '일본식'이라고 하면 우리 국민들은 부정적인 감정을 갖습니다. 입국법은 일본에서만 쓰는 것도 아니고 우리나라에도 다른 말로 '산국' 또는 '흩임누룩'이 존재하지 않습니까?"라는 덧붙인 질문이 이어졌다. 질문이기보다는 내가 우리 전통술과 문화를 보급하는 일을 한다고 하니 그동안 하고 싶었던 말을 이참에 단단히 해두겠다는 느낌을 받았다.

입국이니 산국이니 하는 말은 일반 소비자들은 도통 알 수 없는 용어들이다. 입국(粒麴)은 쌀을 쪄낸 후 우수한 균류 하나를 골라 인공적으로 접종 배양한 방식으로 만든 누룩이다. 일본 사케는 이 입국법을 이용하여 빚은 술이다. 술맛이 깨끗하고 일정한 맛을 유지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산국(散麴) 또는 흩임누룩은 쌀 등 곡류를 빻은 생(生) 전분에다 공기 중에 떠도는 야생효모 등이 자연스럽게 내려 앉도록 하는 자연접종 방식 누룩이다. 일본누룩도 쌀을 쪄서 흩어 놓은 후에 하니 산국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인공접종을 하는 면에서는 우리와는 태생이 전혀 다르다.

우리 누룩 중 연화주국이라는 흩임누룩은 드물게 찐 쌀을 이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역시 인공접종 방식이 아닌 자연접종법을 이용한 누룩이다. 우리 누룩처럼 자연접종법을 이용한 누룩은 술맛이 풍부하고 감칠맛이 돈다. 또한 그 맛이 손맛에 따라 변화무쌍하다. 반면 일정한 맛을 유지하기 힘든 단점이 있다.

관련 공무원의 질문 의도를 어느 정도 파악할 수가 있겠기에 "우리 전통술은 '아무런 첨가물 없이 곡식과 누룩, 물' 이 세 가지만을 기본으로 빚은 것입니다. 아직까지 우리 전통술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없어 보이지만, 무엇보다 누룩은 생전분에 자연접종법을 이용한 우리 전통 누룩이어야 우리 전통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이어 "물만 국산인 일부 상업용 막걸리나 청주는 엄밀히 말해 우리 전통술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수입쌀 문제는 놔두더라도, 가장 중요한 재료인 누룩이 '일본식' 입국법을 쓰고 있는데다가, 그마저 로열티를 주고 수입하는 데가 많고, 게다가 각종 인공 감미료로 맛을 낸 것은 우리 전통방법이 아닙니다"라고 덧붙였다.

이 분은 말씨는 조용조용했지만 전혀 물러설 기세가 보이지 않았다.

"자동차가 발명되어 일본에 기술이 전해졌고, 일본은 그 기술을 바탕으로 뛰어난 자동차를 만들었습니다. 그 일본 자동차 기술이 우리나라에 전해져 우리나라 자동차산업이 발전했습니다. 그것을 두고 일본식 자동차라고 말합니까?"

"또 일본에 누룩을 전한 사람은 백제 때 사람이라는 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일본에서도 백제 이전에 자체적으로 술 만드는 기술이 있었고, 누룩의 원류는 중국이라는 것이 정설입니다. 그렇다면 중국식이지 일본식은 아니지 않습니까? 제가 몇 년 전에 모 방송국에서 다큐멘터리 제작을 할 때 자문을 해준 적도 있습니다. 그 때 우리나라 여러 대형 양조장을 취재한 것이 있으니 한 번 참고해보세요. 제가 유럽도 가봤고 일본에도 출장을 많이 나가 봤지만, 입국법을 통해 우리 양조기술이 근대화된 것이 사실입니다. 저는 이 대표 같은 분들이 만드는 술도 전통주라고 생각하지만, 입국법을 쓰는 ㅇㅇ막걸리도 우리 전통주라고 생각합니다. "

하 그러나, 그 대형 양조장이란는게 어떤 곳인가? 우리 민족이 토지를 수탈당해 유랑을 떠나던 때 그야말로 일본식으로 만들어졌던 곳이 안니가? 그날 울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참느라 머리가 띵하기도 했지만, 우리나라 전통주의 산증인이라고 가끔씩 매체에 등장하는 분의 말이라,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생각하고, 후일에 반드시 보여주리라 마음을 먹고 조용히 나왔다.

술은 자동차나, 전자전기산업과는 다르다. 술은 국세청 관료의 말처럼 주세법 상 '알코올 1도 이상이 함유된 음료'라고 단순히 정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술에는 풍류와 멋, 문화, 무엇보다 생명이 살아 숨쉬는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음료이다. 한 민족의 역사와 토양에 뿌리를 둔 정령이 살아 있는 음료이다.

일제가 세금수탈을 목적으로 우리 가양주문화를 말살시켰듯이, 만약 어떤 이유로 우리 된장간장 문화를 우리 민족의 선택과는 무관하게 없애버려, 할 수 없이 일본 미소된장을 1세기 가까이 먹게 되었다고 가정해보자.

그래서 현재 미소된장을 우리 전통된장이라고 세계인에게 내놓는다면 생각하기도 아찔한 일이다. 이는 제대로 밝혀내고, 바로 세워야 할 그러한 역사적 배경은 외면하고 미래를 위해 경제적으로 보아야 한다는 윽박지름에 다름 아니다. 우리는 일본식은 무조건 나쁘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다만 아무리 쌀, 누룩, 물로 빚었다 하더라도 일본식으로 만든 술을 우리 전통술이라고 주장하는 것에는 동의하지 못한다.

간혹 우리 술이 빚는 사람의 손에 따라 천차만별의 맛이 나는 것을 단점으로 들며 제조와 유통상 관점에서 일본식 양조법을 접목해야 한다는 분도 있다. 그러나 우리 술은 단절되어서 그렇지 뛰어난 전통발효과학이 숨어있다. 단절된 전통과학과 문화유산을 이어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경제적으로 볼 때도 지금은 획일화된 대량생산시대는 아니다. 지금 시장에서 고부가가치를 올리려면 다양성과 특화된 차별성을 부각해야 한다. 와인 중에는 대량생산되는 저렴한 것도 있지만 명품을 지향하며 한정 소량 생산으로도 고부가가치를 올리는 것이 얼마든지 있다.

우리 전통술이 갖는 특성을 잘 찾아낸다면 동양 술이 서양 와인을 극복할 수 있는 일은 시간 문제일 뿐이다. 다만 각종 규제와 폐습, 뿌리박힌 왜곡된 인식 등이 가장 큰 걸림돌이다.

덧붙이는 글 | 광복 70년이라고 하나 식민지배 논리를 그대로 답습하며 제 나라 술 하나도 제대로 지켜내지를 못하고 있는 현실이 아타깝습니다.



태그:#향음, #전통주, #전통과학, #이화선, #송현경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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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전통술과 천연식초 등 발효식품을 교육연구, 제조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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