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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그해는 나의 인생에서 많은 중요한 일들이 있었던 해였다. 7년 동안 함께 지냈던 동네의 친구들과 떨어져 새로운 학교의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고, 기아 팬인 내가 최초로 기아의 우승을 봤다. 지금 그때를 기억해보면 추억해볼 만한 것이 많았다.

하지만 5월 23일 그날의 기억에 남아있는 것은 없다. 그날 무엇을 했는지 그날 어디에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 때문이 아니다. 그냥 기억에 없다. 나는 그날 누가 돌아가셨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김대중 대통령이 돌아가신 8월 18일은 처음으로 워터파크를 간 날이라서 기억이 나지만 5월 23일 그날의 기억은 없다.

그렇게 아무것도 모르고 4년이 지났다. 중학교 2학년이었던 나는 <이작가와 이박사의 이이제이>라는 팟캐스트를 통해 '노무현'이라는 사람을 처음으로 접했다. 노약자, 임산부, 청소년은 청취를 삼가라는 '19금' 방송이지만 그래도 들었다. 그리고 미안함을 느꼈다. 그날에 있던 일을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다는 것, 그리고 그때 노무현이 누구였는지도 몰랐다는 것 등 모두 미안했다. 그래서 '노빠'라고 하는 이박사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너무 큰 슬픔이 몰려왔다.

'노무현의 죽음', 아픈 기억을 기억하다

<만화 노무현> 겉표지
 <만화 노무현> 겉표지
ⓒ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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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는 누구나 기억하기 힘든 것, '아픈 기억'들이 있다. 사람과의 헤어짐, 친구와의 결별,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것 등이 그것이다. 노무현의 죽음은 '아픈 기억'이다. 나는 그날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날을 기억하고 있는 많은 사람에게는 '아픈 기억'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아픈 기억'은 시간이 지날수록 잊히고 그날의 분노역시 사그라지고 있다.

'이이제이 - 노무현 특집'에서 이작가는 국민들의 그런 모습을 보며 실망감을 토로했고, 저자인 백무현 화백은 오마이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미국만 해도 케네디의 죽음에 관해 수십 년 동안 수많은 이야기와 분석이 제기되고 있잖아요. 하지만 한국에서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망각되고 있죠. 망각의 힘이 무서워요. 탐욕에서 배제되지 않으려다보니 다들 외면하고, 애써 잊는 거죠."라며 '망각'을 언급하고 있다(관련기사: "박근혜 이명박은 안 그릴 거예요, 하지만 이승만은...").

<만화 노무현>은 우리에게 '노무현의 죽음'을 잊어서는 안 되는 이유를 말해주고 있다. 그리고 잊을 수 없게 해준다. 또 '노무현의 죽음'의 기억이 없는 나에게 '노무현의 죽음'을 생각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렇기에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이이제이'를 들으며 느꼈던 슬픔의 기억과 '분노'의 감정이 함께 생겼다.

노무현 대통령이 돌아가신 이후 그분을 추억하고, 그분의 업적과 과오를 살펴보며, 그분의 삶을 조명하는 책은 많이 나왔다. 책 검색창에 노무현을 검색하면 나오는 것만 해도 (네이버에서만) 2천 권 이상이다.

하지만 그 책 중 '노무현의 죽음'을 디테일하게 다룬 책은 얼마나 있을까? 잘 찾기 힘들다. 있다면 노무현 대통령의 자서전인 <운명이다>등 포함해 몇 권 없을 것이다. 저자가 말한 것처럼 애써 잊거나 '망각'하는 것일까?

나는 저자가 '노무현의 죽음'에 접근하는 시각을 굉장히 흥미롭게 봤다. 백무현 화백이 '노무현의 죽음'에 접근하는 시작은 '광우병 쇠고기 문제'였다. 저자는 거기서 '당시 정부'와 '노무현'을 대비시키고, 정부가 노무현을 모든 문제의 '시작'으로 지목하고, 그 '시작'을 죽음으로 모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당시 권력이 왜 노무현을 몰아갔는지 독자에게 판단할 수 있게 한다. 이런 점을 볼 때 <만화 노무현>은 굉장히 값진 책이라고 느꼈다.

2008년에서 2009년까지 정권과 검찰이 노무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아갔을 때, 노무현의 측근들은 모두 검찰로 향했고 세무조사를 당해야 했다. 검찰은 '빨대놀이'를 즐겼고, 대표적인 작품이 '노무현 논두렁 피아제 시계'였다. 노무현 대통령은 검찰에 불려갔고 그 과정에서 언론은 '노무현 망신주기를 했다.

"소환 이후 3주가 지나도록 노 대통령은 여전히 '피의자'였어. 그동안 아무도 진실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지. 노무현은 600만 달러 뇌물을 받은 사람으로 돼 있었어. 자기 잘못을 아내한테 떠넘긴 못난 남편으로..." -<만화노무현>233쪽

당시의 '노무현 잔혹사'는 '아픈 기억'이다. 하지만 곧 더 '아픈 기억'이 오게 되니, 그것이 바로 '노무현의 죽음'이다. 잊고 싶어도 잊어서는 안 되는 '아픈 기억'이다. 저자는 당시의 노무현 잔혹사와 노무현의 죽음을 그 어떤 책보다 잘 나타냄으로써 이 책을 읽은 모두에게 아픈 기억을 기억해낼 수 있게 만들었다.

노무현의 죽음이 자결인 이유

이 책은 첫 장부터 나에게 굉장히 신선한 충격을 안겨다 주었다. 저자가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을 '자결'이라고 표현했기 때문이다. ("정작 내가 궁금한 것은 노무현의 삶이 아니라 그를 자결로 몰고 간 공모자들의 얼굴이었다."-<만화노무현>7쪽). 그동안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을 규정하는 표현은 '정치적 타살' 혹은 '사회적 타살' 등 이었다.

나도 그동안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을 그렇게 알아왔기 때문에 저자가 '자결'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나는 백무현 화백이 왜 이런 표현을 썼는지 궁금했다. 그리고 오마이뉴스에서 인터뷰한 내용을 찾았다.

-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자결'로 규정했던데….
"숭고한 자결이죠. 왜 자결이냐 하면, 자신의 목숨을 던지는 데는 속죄와 자존 두 가지가 있는 거 같아요. 노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 중에서 가장 도덕적으로 우위에 있던 분이잖아요. '도덕'이라는 무기와 함께 역사를 살아온 분이니까요. 그런데 '노무현 죽이기'를 통해 집요하게 털다 보니 주변에서 돈을 받은 정황이 드러났거든요. 죽기 살기로 터는데 먼지가 안 나겠습니까? 이 부분에서 노무현은 너무 괴로워했고 이것은 국민에게 사죄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죠.

그리고 또 하나는 자존이죠. 자신을 지키려는 자존. 인권변호사 출신으로서 독재정권에 저항했던 자신의 역사, 그리고 정의로운 가치를 지키려 했던 정치인 노무현으로서의 역사 등 등이죠. 생각해 보세요. 부도덕한 정권으로부터 도덕성을 심판받는 게 얼마나 괴로웠겠습니까? 그래서 죽음으로서 자존을 지키려 했던 것이죠. 자신의 역사를 지키려 했던 것이죠."
(관련기사: "'나를 버리라'던 노무현, 이젠 안아줍시다")

이것을 보니 저자의 표현에 공감하게 되고, 노무현 대통령 자서전의 한 부분이 떠올랐다. 나는 이 내용이 노무현 대통령이 돌아가시기 전의 모든 마음을 표현하고 있고, 저자가 노무현의 죽음을 '자결'로 규정한 이유를 모두 설명해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버렸다. 노무현 때문에 도매금으로 피해를 보았다는 분노, 노무현이 진보의 미래를 망쳤다는 원망을 쏟아냈다. 노무현이 죽어야 진보가 산다고 했다. 누구를 원망할 것인가 그런 말을 들으니 더 미안했다. 내가 그분들을 그렇게까지 아프게 한 줄은 몰랐다. 그런데도 어떤 사람들은 끝까지 나를 버리지 않았다. 그들은 나의 잘못, 나의 실패, 나의 좌절까지도 이해하며 변함없이 사랑한다고 말했다. 고마웠지만 그럴수록 더 그런 분들을 볼 면목이 없었다." - <운명이다> 331쪽

저자가 말했던 것처럼 노무현 대통령은 국민에게 사죄하고 자신의 역사를 지키기 위해 '숭고한 자결'을 하였다. 그의 '사죄'가 받아들여지고, 그가 지키고자 했던 역사가 계승되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저자가 이 책을 내게된 이유를 소개하고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 나는 저자의 이 말이 오늘날 왜 노무현이 잊혀지면 안되는지 말끔히 설명해준다고 생각한다.

"노무현과 관련한 책은 앞으로도 계속 나와야 한다. 역사적 판결의 완결성을 위해서 더욱 그렇다. 한국 지성사회에 지우는 임무이기도 하다. 이번에 책을 내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만화 노무현>을 통해 그의 진심이 정직하게 읽히길 기원한다." -<만화노무현>9쪽


만화 노무현 - 그의 마지막 하루

백무현 지음, 이상(2015)


태그:#만화노무현, #노무현의'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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