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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7일(금) 낮 12시, 충남 부여군 홍산면 홍산농협 대회의실에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회원과 언니네텃밭 생산자회원 40여 명이 손에 빈 생수통을 하나씩 들고 모여들었다.

선애진 언니네텃밭 생태농업보급단장의 '돼지감자 생즙 천연농약 만들기'를 배우고 따라 해보기 위해 모인 것. 이 날 올해 두 번째로 열린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생태농업 교육'에 참여하기 위해 전국에서 모인 여성농민들은 천연농약 만들기도 배우고, 안철환 텃밭보급소장의 '땅심 살리는 퇴비 만들기' 강의도 들으며 생태농업에 대한 열정을 불태웠다.

8월 7일 전여농 생태농업 교육 마지막 시간으로 부여군 홍산면에 위치한 전여농 농생태학 실습소를 방문하였습니다.
▲ 전여농 생태농업 실습소를 방문한 생태농업 교육생 8월 7일 전여농 생태농업 교육 마지막 시간으로 부여군 홍산면에 위치한 전여농 농생태학 실습소를 방문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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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혁명, 그리고 여전히 경제논리에 갇힌 친환경

현재 많은 농민들이 밭에 제초제를 써서 풀하나 없이 키워야 농사를 잘 짓는다고 생각한다. 밭뿐 아니라, 밭둑, 논, 논둑, 길가, 마당까지 풀이 자라는 족족 제초제를 뿌려댄다. 그런데 그 제초제가 베트남전 때 동남아의 아열대 밀림을 전멸시킨 고엽제에서 만들어진다는 것을 아는 사람(농민을 포함하여)은 많지 않다.

우연이든 교육을 통해서든 이런 사실을 알게 된 농민들은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장마철 풀과의 싸움을 하다보면 제초제의 유혹을 떨치기는 쉽지 않다. 특히 이제는 나이 많은 노인들이 주를 이루는 농촌의 현실에서 그 분들에게 제초제를 써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는 돌아서면 잊어버리고 싶은 몹쓸 이야기이다.

1960년대부터 시작된 녹색혁명은 농약과 비료를 써서 농산물의 수확량을 획기적으로 늘린 공로를 인정받아 '혁명'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로 인한 환경파괴, 인체의 피해가 밝혀지면서 농업방식은 친환경 농업으로의 새로운 전환을 강력하게 요구받게 된다. 그러나 농사의 편리성, 농약과 비료를 생산하는 농기업들을 살려야 하는 산업적 요구로 인해 친환경 농사는 험난한 길을 걸어오고 있다. 심지어 친환경 농사마저도 기업화(친환경 자재 산업, 대규모 단작화된 친환경 농사)로 인해 본래의 친환경, 유기농의 의미는 퇴색되어 버렸다.

이미 죽어버린 땅을 살리고 원래 자연이 생명을 키우던 방식으로 바꾸는 데는 무조건 시간이 필요하다. 하루 이틀이 아니라 몇 년, 몇 십 년이 걸린다. 친환경 농사로 바꾸는 농민들에게 친환경 퇴비를 지원하는 등의 정책이 있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친환경 농사의 비율은 2009년 12.2%(전체 생산량 대비 친환경인증 생산량)에서 2013년 7.5%로 오히려 하락하고 있다.(농림축산식품부, 2014 주요통계) 이는 친환경 농사의 기본 개념을 바꾸지 않고 화학농약과 비료를 친환경 농약과 비료로 바꾸기만 하면 된다고 하는 정책과 인식이 갖는 한계라고 할 것이다.

또한 끊임없이 돈이 되는 농사를 추구하도록 부추기는 농업정책과 그렇게 하지 않으면 생계를 유지하기 어렵게 만들어진 농업구조, 농산물 수입개방 등으로 인한 농촌 경제의 상황은 '실천해야 하는 줄은 알지만 실천하기는 어려운 친환경 농사'를 농민들 개인의 판단과 결단에 맡기고 있다. 농민이 농사를 통해 많은 돈을 벌어야만 먹고 사는 구조, 종자까지도 포함하는 농자재산업을 보호하고 유지하는 정책 하에서 친환경 농사는 끊임없이 편리한 농약과 비료가 유혹하는 불안정한 '친환경'이 될 수밖에 없다.

산업구조의 농업을 탈피하기 시작한 여성농민의 생태농업

"우리는 다 친환경인디, 콩에 노린재는 어쩔 수가 없어."
"오메, 그란다고 농약을 치믄 안되지라. 노린재는 병에다 멸치랑 콩 넣어서 놔두믄 많이 잡힌당께."
"마늘 심을 때 토양 살충제 안 하고는 해먹기 힘들어."
"토양살충제 쓰면 흙에 사는 좋은 미생물과 지렁이 같은 벌레들도 다 죽어서 쓰면 안된다카이."

언니네텃밭을 처음 시작한 2009년, 농사의 가장 첫 번째 원칙은 제초제를 하지 않는 것부터 시작해 친환경 농사로 바꿔가는 것이었다. 모든 농약 중에서 가장 오랫동안 잔류하고 토양과 사람을 죽이는 것이 제초제였기 때문이다.

꾸러미 공동체라는 '한 배를 탄' 관계를 만들면서 무제초제의 방식은 더 강하게 요구하고 실천을 강제할 수 있었다. 이제는 밭에 풀이 좀 있어도 잘 크니 같이 키우고, 바닥에 매트를 깔거나, 짚이나 풀로 덮어주거나, 소금과 자닮유황을 섞어서 만든 친환경약재를 써서 풀을 잡기도 하면서 풀과의 전쟁이 달라지고 있다.

상추와 비름이 같이 자라고 있다.
▲ 횡성 오산 박은자 생산자의 텃밭 상추와 비름이 같이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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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네텃밭에 참여하는 여성농민 생산자들이 이렇게 농사를 바꿔올 수 있었던 것은 소비자와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으면서 농사의 규모를 줄이더라도 어느 정도 소득이 보장되는 구조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와 함께 농업이 기반하고 있는 자연생태와 사회적 문제까지 이야기하면서 친환경 농사는 단순히 천연농약과 친환경 퇴비의 문제가 아님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농업을 산업으로 만들고자 하는 구조를 벗어나면서 농민에게서 농민에게로 전해지던 생태적 원칙과 영양순환, 종(種)다양성과 에너지 보전의 역동적 관리를 실천하게 되었다. 또한 이에 기초해 농사를 짓게 되면서 산업계로부터 구입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던 농약 등 외적투입요소의 사용량을 전폭적으로 줄이게 되었다.

박미정 전여농 식량주권위원장은 식량주권 실현에 있어 가장 실천적인 방안은 '농생태학'이며, 단순한 유기농업의 개념을 넘어 '다국적 농기업의 화학비료와 농약 등에 의존하는 농업'을 '소농과 지역에 기반한 농업'으로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즉, 농생태학은 근본적으로 세상을 바꾸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물론 세계적으로 소농들의 활동과 농생태학의 개념 확산을 막고, 농생태학을 유기단작농업으로 한정시킨 협소한 개념으로 만들고자 하는 시도들이 있지만, 여성농민들은 세상을 바꾸는 농생태학의 본래 의미를 정확히 실천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여성농민이 꿈꾸는 진정한 유기농과 친환경 농사는 농민과 소비자가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사회의 변화가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그리고 우리는 언니네텃밭을 통해 진정한 유기농과 친환경 농사가 실천되고 점차 확산되는 것을 확인해가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지속가능한 생태농업, 농생태학! 이다.

충남 부여군 홍산면에 있는 전여농 농생태학 실습소에서는 여러가지 토종농산물이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
▲ 전여농 농생태학 실습소 충남 부여군 홍산면에 있는 전여농 농생태학 실습소에서는 여러가지 토종농산물이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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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2015년 2월 27일, 아프리카 말리의 작은 도시 닐레니(Nyeleni)에서 중요한 국제 선언문이 채택되었습니다. 80여개 나라 500 여명의 농민, 가족농민, 어민, 사냥-채집인을 포함한 원주민 공동체,농촌 노동자 그리고 도시민이 모여서 ‘국제농생태학포럼’을 개최하고 그 결과를 선언으로 발표했습니다. 제2의 ‘닐레니 선언’입니다. 이번 선언은 '생명보다 이윤을 우선하는 경제체제에 저항한다'는 제목으로 발표되었으며, 첫번째 닐레니선언이 선포된 이후 식량주권은 국제적으로 중요한 의제가 되었습니다. 이번 선언은 식량주권실현의 중요한 과제인 농생태학 실현을 구체적으로 밝힌 선언입니다.



태그:#농생태학, #생태농업, #닐레니선언, #언니네텃밭, #꾸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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