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페디의 아트 디렉터 박상우씨와 성원모씨가 4일 오후 서울 신사동의 사무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디지페디의 아트 디렉터 박상우(오로시)씨와 성원모(원모어타임)씨가 4일 오후 서울 신사동의 사무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디지페디(Digipedi)는 요즘 가요계에서 가장 핫한 뮤직비디오 팀이다. 흔히 가로로만 생각하는 화면을 과감히 세로 프레임으로 전환한 에픽하이의 'Born Hater(본 헤이터)', "약 빨고 만들었다"는 평을 듣는 노라조의 '니팔자야', 360VR(Vritual Reality, 가상현실) 기술을 접목한 인피니트의 'Bad(배드)' 뮤직비디오가 이들의 손을 거쳐 나온 결과물 중 일부다.

지난 4일 오후 서울 강남에 있는 디지페디의 스튜디오를 찾았다. 디지페디는 친구 사이였던 성원모 감독과 박상우 감독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팀이다. '원모어타임'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성원모 감독, '오로시'라는 이름의 박상우 감독은 "비슷한 것을 재미없어하는 성향"을 바탕으로 비교적 정형화되어 있던 뮤직비디오에 조금씩 변화의 바람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세로로 옮기고, 360도로 돌리고... 게임까지 접목

 세로 프레임으로 제작된 에픽하이의 '본 헤이터' 뮤직비디오 중

세로 프레임으로 제작된 에픽하이의 '본 헤이터' 뮤직비디오 중 ⓒ YG엔터테인먼트

앞서 시도했던 세로 프레임, 360VR 기술로 만든 뮤직비디오는 어떻게 시작됐을까. 원모어타임은 "VR도 그렇고 세로 프레임도 그렇고, 형태적으로 독특해 보이는 것들이나 내러티브적인 아이디어를 항상 쌓아두는 편이다"면서 "두서없이 나열한 아이디어를 기록해 뒀다가, 적절한 타이밍과 곡에 하나씩 더한다"고 밝혔다. 원모어타임은 전체적인 구성과 콘셉트, 오로시는 후반 작업과 디자인, 대인 관계 등을 담당한다.

"두 가지 모두 '한 번 쯤은 이런 식으로 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가능성을 보고 있었다. 처음에는 '배드'의 메인 뮤직비디오를 360VR로만 만들려고 했다. 그러다가 아무래도 가요계나 주류에서 뮤직비디오가 소비되는 방식이 있다 보니까 일반 뮤직비디오와 360VR 버전을 따로 만드는 쪽으로 막판에 바뀌었다. 360도를 다 볼 수 있다는 건 감독이 어떤 부분도 선택하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처음 찍어보는 거였기 때문에 우리 또한 결과물을 보고 나서 알게 된 부분도 있다."

일상적이지 않은 시도이기에 모험도 필요했다. 세로 프레임의 경우, 모든 경로에서 원 형태로 재생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남아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시도가 가져올 효과를 설명하고 의뢰한 측의 동의를 받는 단계가 필요했다. 원모어타임은 "기획사에서도 기술적인 문제의 발생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OK를 해야 계속 진행할 수 있다"면서 "다행히 YG엔터테인먼트에서는 이를 받아들였고, 그 결과 '본 헤이터' 뮤직비디오가 나올 수 있었다"고 전했다.

   디지페디의 아트 디렉터 박상우씨와 성원모씨가 4일 오후 서울 신사동의 사무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본 헤이터'는 "눈만 높아지고"(오로시), "마음에 드는 결과물이 항상 안 나오는"(원모어타임) 이들에게도 뿌듯함을 안겼다. 원모어타임은 "세로 프레임이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이 봤을 때 '신선하다'고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오렌지캬라멜의 '까탈레나' '나처럼 해봐요'도 기억에 남는 작품이다. 원모어타임은 "개인적으로 '나처럼 해봐요'가 많이 알려지지 않아서 아쉽다"면서 "뮤직비디오라는 매체 자체를 다른 형태로 보여주고 싶어서 다른그림찾기를 한다는 설정을 더했다"고 말했다.

"'예쁘다' 반응은 우리가 잘한 게 아냐...'재밌다' 말 들을래"

 최면 콘셉트를 더한 노라조의 '니 팔자야' 뮤직비디오 중

최면 콘셉트를 더한 노라조의 '니 팔자야' 뮤직비디오 중 ⓒ 노라조프로덕션


디지페디가 뮤직비디오에 구축한 '디지페디 월드'는 한정된 공간을 뒤틀어 깊이감을 나타내기도 하고, 사람의 얼굴에 꽃 등 다른 오브제를 더해 색다른 느낌을 선사하기도 한다. 또 거울 등을 통해 내면을 표현하기도 한다. "사실 나만 해도 춤추는 것만 나오는 뮤직비디오를 거의 끝까지 본 적이 없다"고 털어놓은 원모어타임은 "3분 30초 동안 집중해서 보게 하려면 연출적인 콘셉트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표현하는 방식을 통해 '예쁘다' '잘 나왔다'보다는 '뮤직비디오 재밌다'는 이야기를 들으려고 한다"고 했다.

최면 콘셉트를 더한 '니팔자야'의 뮤직비디오를 찍으면서 오히려 '너무 약하지 않나?' 생각했다는 디지페디. 촬영에 들어가기 전, 음악을 듣고 마디별로 정리해 구상을 시작한다는 이들은 "확실히 곡이 좋아야 비디오가 잘 나온다"고 입을 모았다. 뻔한 노래보다는 자신들이 추구하는 색깔처럼 콘셉트가 명확한 노래를 들었을 때 한층 신이 난다고. 원모어타임은 "특히 신인 가수들과 꾸준히 함께할 때 재밌다"면서 "예술성을 고집하는 편은 아닌데, 상상의 범위가 넓은 게 좋긴 하다"고 덧붙였다.

  디지페디의 아트 디렉터 박상우씨가 4일 오후 서울 신사동의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디지페디의 아트 디렉터 박상우(오로시)씨가 4일 오후 서울 신사동의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이정민


 디지페디의 아트 디렉터 성원모씨가 4일 오후 서울 신사동의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디지페디의 아트 디렉터 성원모(원모어타임)씨가 4일 오후 서울 신사동의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이정민


뮤직비디오는 음악을 시각화하는 작업이다. 꼬박 한 달은 소요된다. "하는 이야기와 보여주고 싶은 정서 자체가 비슷비슷하기에 표현의 범위가 넓진 않지만, 앞으로 좋은 음악이 들어와서 좋은 뮤직비디오를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지극히 교과서적인(?) 대답을 내놓은 디지페디는 "남들과 다르게 하려고 노력하고, 무조건 다르게 하자는 신념을 고수하면 누군가는 찾아주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지금까지도 '이걸 해야지' 생각해서 온 것이 아니라, '이거 해볼래?'라는 제안에 움직였다. 그래서인지 앞으로도 뭔가를 꼭 해야 한다고 기획하기보다는 기회가 있으면 할 것 같다. 누군가 거액을 들고 와서 '영화를 만들어 달라'고 하면 만들 것 같긴 한데. (웃음) 우리가 직접 뭔가를 찾아다닐 것 같진 않다. 우리끼리는 한 번씩 '우리에게 시나리오가 와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지만. (웃음) 다만 새로운 매체에 대한 관심은 늘 갖고 있다."

   디지페디의 아트 디렉터 박상우씨와 성원모씨가 4일 오후 서울 신사동의 사무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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