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인근 학교들보다 일주일 정도 방학이 짧아 우리 학교는 이번 주 초에 개학했다. 개학 첫날, 1교시부터 에어컨을 가동하고 별관 공사 마무리 관련 출입금지 안내 방송까지 오전부터 학교가 들썩여 정신없던 터였다. 점심시간, 체육관을 지나치다가 한순간에 웃음이 터졌다. 건물 뒤 켠 그늘진 곳에서 껑충한 모습으로 코스모스가 활짝 핀 것. 연일 30도를 오르내리는 무더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혼자서만 가을인 양 위풍도 당당하다. 코스모스 덕분에 여름이란 것도 잊고, 순간 가을인 듯 착각했으니 감사인사라도 해야 할까.  

기후 변화가 이제 꽃들의 개화 시점에까지 영향을 미치는구나 싶다가, 한여름에도 내내 그늘이 져 선선했던 주변 환경이 눈에 들어오자, 우리 학교 코스모스의 개화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상이 같다면 그 이유와 원인도 언제나 동일할까.  

방학 중에 충남 계룡시에 연수가 있어서 찾았다가 현장에서 마주한 구체성에 놀랐다. 그동안 정차역으로 잠깐 스치듯 계룡시를 지나쳤기에 낯선 도시는 아니었지만, 직접 기차에서 내려 연수 장소로 가면서 만난 도시의 민낯은 상상과는 전혀 달랐다.

높은 건물보다 푸른 논이 눈앞에 펼쳐져 신기해하는 내게, 기사님은 계룡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작은 도시이고 1989년 육·해·공 3군 본부가 들어오면서 도시로 승격되었다며, 그 유래를 차근차근 설명해주셨다. 돌아와 자료를 더 찾아보니 원주민과 군 관련 유입 인구가 주로 사는 지역이 구분되어 있는 특성도 눈에 띄었다. 현장에 오지 않았더라면, 도시에 대한 보편적 인식에만 사로잡혀 도·농복합도시의 구체적인 모습은 제대로 그려내지 못했을 것이다. 

대학원 수업의 일환으로, 몇 해 전 춘천 근교의 마을에서 1주일 여를 숙식하며 건강 현황을 직접 탐색한 적이 있다. 우리가 선정한 주제는 노인의 근골격계 건강 문제와 의료기관 이용 현황이었는데, 조사를 위해 어르신들을 인터뷰하면서, 우리나라 노인의 생애주기 구분이 얼마나 현장성이 떨어지는지 한 몸에 느꼈다. 

보통 65세 이상의 경우에는 모두 같은 노인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는데, 인터뷰를 하다 보니 어르신들의 세대별 문화가 청장년의 그것과 비슷하게 연령층에 따라 다르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마을회관에 운동 기구가 있어도 60대 어르신은 80대 어르신들이 쉬시는 곳인데 어떻게 가느냐며 손사래를 쳤고, 어느 70대 어르신은 60대 어르신들이 젊은이 흉내를 낸다며 못마땅해 하셨다. 같은 노인이어도 연령층에 따라 다른 문화, 다른 신념이 작동하고 있는데도 이에 대한 진지한 고려가 없이 뭉뚱그려 노인에 대한 단견이 형성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됐다.

방학 중에, 인근 혁신학교에서 1학기 동안 진행된 방과 후 보건 수업이 마무리되어 학생들에게 배운 내용 중 어느 부분이 재미가 있었는지 간단하게 조사를 했다. 내 예상과는 달리 건강에 대한 다양한 관점, 신체 각 기관의 특성과 질병 발생의 기전, 흡연권과 혐연권에 대한 토론, 사랑의 유형과 특성 등 다소 딱딱하고 이론적인 내용을 꼽았다. 평소 보건 교육과 관련해 전문가라는 분들께 가장 많이 들었던 조언이 '이론 중심이어서는 안 된다' '이해하기 쉬운 내용이 주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오히려 학생들은 보건 수업을 통해 이루어지는 이론적 탐구, 원리의 이해 등 지적 사유에 관심을 보였다. 도대체 나는 언제부터 아이들이 지적인 성취를 재미없어한다고 편견을 갖게 된 걸까.  

강신주 박사는 <철학 vs 철학>에서 마투라나를 인용해 객관적 세계는 생명체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존재할 수 있으므로, 하나의 생명체가 죽으면 하나의 세계가 사라진다고 선언했다. 속도로 치닫는 사회 속에서 현상을 관통하는 몇 가지의 보편적 원리나 특성에 천착하다보니, 현장에서 확인되는 구체성과의 조우가 퇴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모든 것이 같아 보이지만, 때로는 모든 것은 다 다른데 말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김지학 시민기자는 중흥고 보건교사입니다. 이 기사는 부천자치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보건교육, #계룡시, #노인, #코스모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