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바람이 멈추지 않네> 책표지.
 <바람이 멈추지 않네> 책표지.
ⓒ 쎔앤파커스

관련사진보기

"내발을 누가 씻겨준 것은 생전 처음이다."

몇 년 전부터 우리 7남매는 해마다 친정에 모여 김장을 해오고 있다. 2년 전 김장 때 퉁퉁 불은 친정엄마의 발을 우연히 씻겨드리게 됐다.

'얼마나 피곤하시면 내가 씻고 있는데 씻으러 들어오셨을까', 김장을 앞두고 며칠 전부터 자식들과는 또 다른 신경을 쓰셨을 엄마가 무척 피곤해 보여 조금이라도 빨리 쉬게 해드리고 싶어 별생각 없이 발을 씻겨드렸던 것인데, 이런 말을 하는 엄마의 목이 젖어 있었다.

엄마의 모습이 그 해 겨룰 내내 떠오르곤 했다. '내가 너무 무심했구나. 엄마의 손 한 번 살갑게 잡아본 적이 없구나' 하는 생각들로 부끄럽고, 후회됐다. 그 겨울부터 엄마와 자주, 좀 더 많은 날들을 함께 하고 싶단 바람을 품게 되었다.

이후 공중사우나나 시장 등에서, 그리고 드라마를 통해 친정엄마와 딸이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는 모습을 보면, 쉽게 눈이 떠나지 않았다. 친정이 가까워 엄마에게 자주 오가는 여자들이 부러워졌다. 

어머니는 그런 걱정도 잠시, 눕자마자 코를 골며 주무셨다. 집에서는 서로 다른 방에서 자기 때문에 살필 수 없지만 이렇게 밖에 나와서 함께하면 한 번씩 어머니 얼굴을 바라본다. 객지여서일까? 민얼굴과 손발을 보니 유난히 주름이 깊고 쪼글쪼글해 보였다. 내 나이 먹는 것은 생각지 않고, 늘 엄마였던 여인이 언제 이렇게 할머니가 됐나 싶었다. 반쯤 입을 벌리고 거친 숨을 몰아쉬는데 이는 대부분 빠져 있고 머리맡에는 틀니 통이 놓여 있다. 바느질하랴 연밥으로 염주 만들랴 거죽만 남은 손은 상처투성이고, 주방 일을 하면서 간혹 물건을 떨어뜨리기도 한 흔적이 발등에 멍으로 남아 있다. 관심 갖고 살피지 않으면 그냥 지나칠 삶의 흔적들이 몸 곳곳에 있었다. 언젠가 저녁 반찬으로 데친 오징어가 나왔는데 채를 썬 듯 아주 얇고 잘았다. 몇 개씩 집어 떨어뜨리지 않고 먹으려니 아주 번거로웠다.

"아니, 오징어를 왜 이렇게 잘게 썰었어?" 투정을 부렸더니, "너는 이가 튼튼해서 괜찮겠지만 우리는 이가 부실해서 이렇게 해야 먹는다."-<바람이 멈추지 않네>에서.

<바람이 멈추지 않네>(쌤앤파커스 펴냄)는 70대 노모와 40대 아들이 10년째 함께 해온 여행, 그 기록이다.

'어쩌다 몇 번, 책 한권 쓸 정도의 여행'이 아니란다. 2003년부터 10년을 함께 해온 길은 자동차로만 자그마치 20만km. 서울에서 부산을 200번 왕복한 거리요, 지구를 다섯 바퀴나 돈 거리라나.

친정엄마와 가급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은 바람이 간절함에도 해가 바뀌도록 단 한 번도 엄마와 해보고 싶은 것들을 해보지 못했다. 그리고 다시 여름이 가고 있다. 그래서 부러움과 죄송스러움, 자책, 아쉬움, 이미 80세가 되어버린 엄마에 대한 애잔함 이런 것들을 유독 많이 느끼며 책을 읽었다. 

우리 집 욕실에는 언제나 수건이 두 개 걸려 있다. 하나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함께 쓰는 것이고 한쪽 곁에 걸려 있는 수건은 내 것이다. (…) 수건을 따로 쓰게 된 계기는 지난 2000년에 내가 혹독한 피부병을 앓고 난 뒤부터다. 병이 다 나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수건을 따로 쓰고 있다. 그러나 위생적이기는 하지만 왠지 서글퍼진다. 부모님은 내 병이 당신들께 옮는 것을 걱정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나이 먹어 가는 당신들을 통해 내게 나쁜 병을 옮기지 않을까 싶어 그리하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 어렸을 적에는 뜨거운 것을 먹고 입을 데지 않을까 하는 걱정과 체하지 않게 하려는 보살핌으로 밥을 씹어 넣어 주는 것이고, 커서는 당신으로 인해 행여나 나쁜 병에 걸리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니 어찌 어머니가 변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바람이 멈추지 않네>에서.

어머니와 함께 갔던 절들만 400여 곳. 강이나 산, 어떤 마을 등까지 합하면 천 곳이 넘는단다. 저자는 그 수많은 곳, 그 길에서 엄마와 함께 봤던 풍경들과, 함께 먹었던 것들과, 느낀 것들을 시시콜콜하게 풀어놨다.

이런지라 여행지에 대한 인문학적인 어떤 지식들은 많지 않다. 그보다는 한방에서 함께 잔 덕분에 비로소 보이고 살피게 된 것들,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며 새삼 생각하며 돌아보고 느끼게 된 것, 70대 노모의 40대 아들에 대한 애잔함과 염려, 어머니를 향한 아들의 지극함이 녹아있는 부분들이 많다. 뭉클한 감동과 먹먹한 아픔을 동시에 느끼며 읽을 수밖에 없다.

 엄마가 있는 풍경 #1.
 엄마가 있는 풍경 #1.
ⓒ 안재인

관련사진보기


 엄마가 있는 풍경 #2.
 엄마가 있는 풍경 #2.
ⓒ 안재인

관련사진보기


 엄마가 있는 풍경 #3.
 엄마가 있는 풍경 #3.
ⓒ 안재인

관련사진보기


"엄마, 좀 웃어봐라"
"웃음도 웃어본 사람들이 잘 웃지. 내가 언제 웃을 일이 있었냐? 앞으론 니가 잘 돼서 웃을 일 좀 만들어라"
(…)
한쪽에서 진달래를 열심히 찍는 나를 보고 어머니가 한마디 한다.

"이 먼데까지 왔으면 저기 마을도 집어넣고 바다도 보이게 그렇게 함께 찍어야지 여기서 찍은 게 표시나지. 꽃만 가까이서 찍으면 되겠나? 남들처럼 사진기가 커다랗지도 않은데 그래 찍어서 돈이나 벌지 걱정이다."-<바람이 멈추지 않네> 사진 설명 중에서.

사진들도 이 책을 특별하게 느끼게 하는 그 무언가. 어느 날 아들이 쥐어준 카메라로 어머니 정영자씨가 찍은 풍경 사진들과, 아들이 어머니를 찍은 사진, 어머니의 잔소리로 찍은 사진, 어머니가 처음으로 찍은 사진, 아들을 찍어준다며 귀퉁이에 잘린 채로 나오게 찍은 사진 등 특별한 사연을 담고 있는 사진들이 많다.

이 특별한 사연과 사진들이 녹아있어 이 책은 뭉클하다. 그리고 가슴 먹먹해지는 감동을 준다. 엄마와 나누지 못한 것들이 많기 때문인지 실은 부끄럽게 읽은 책이기도. 뭉클한 감동이든, 부끄러움이든 생각하는 날보다 잊고 살 때가 더 많은 엄마를 많이 생각하게 한 책의 존재가 고맙기만 하다.

덧붙이는 글 | <바람이 멈추지 않네> | 안재인(글) | 안재인 . 정영자 (사진) | 쌤앤파커스 | 2015-05-08 | 14,000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