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아의 4번째 미니앨범 트레일러를 본 어느 유튜버의 감상과 댓글들.

현아의 4번째 미니앨범 트레일러를 본 어느 유튜버의 감상과 댓글들. ⓒ 유튜브 캡처


"오 마이 갓"과 "왓 더 X"이 난무한다. 얼굴이 화끈 거리는 건 예사다. 몸 둘 바를 몰라 전전긍긍하고, 몸을 배배 꼰다. 지난 10일 가수 현아(포미닛)의 소속사가 공개한 네 번째 미니앨범 'A+'의 트레일러 영상을 접한 외국 '유튜버'들의 반응 중 일부다.

현아의 이 영상은 공개 이틀 만에 200만 뷰를 돌파하며 순항 중이다. 전 세계 팬들의 반응도 뜨겁다. 이미 인기 척도로 자리 잡은 '반응 영상'도 벌써 여럿이다.

그 중, 눈길을 잡아끄는 반응은 이거다(차마 직접 옮기진 못하겠다). 한 외국 사용자는 트레일러 영상 속 특정 장면이 유사 성행위(blow job)를 연상시킨다는 점을 지적하며, 이게 정말 과하지 않느냐고 묻는다.

이에 대한 반응은 제 각각이다. '당신 안경 먼저 닦아라'부터 '현아는 원래 섹시 큐트 이미지'라는 옹호가 있는가 하면, '성행위에 대한 함의는 인정해야 할 듯'과 같은 인정까지 제각각이다.

트레일러를 보면, 알게 된다. 소속사 큐브엔터테인먼트가 밝힌 대로 '19금' 딱지를 붙여놓은 이 영상이 어떤 상황을 꽤나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는지.

일단 실제 영상을 좀 더 들여다보자.



유사성행위를 연상하게 만드는 교묘한 편집

감각적으로 편집된 1분 46초의 영상을 하나의 내러티브로 정리해 보면 대략 이렇다. 야밤의 도로 위에 (아마도 술에 취해) 누워 잠들고, 차가 멈춰 도로에서 히치하이킹을 시도하던 현아가 백인 청춘남녀들이 득시글한 어느 저택에 당도해 그들과 함께 광란의 파티를 벌인다. 그 사이사이 각종 유흥의 도구들과 유희의 향연들이 펼쳐지고, 그 중간에 몽롱한 듯 적극적인 현아가 그 파티를 즐기고 있다.

자, '19금'이 붙는 영화, 방송, 뮤직비디오 등 그 어느 텍스트들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풍경인 건 맞다. 흔히 <아메리칸 파이>류의 영화에 자주 출몰하는 그 '파티'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라 할 수 있을텐데, 하드코어하게 발전하면 단연 술과 마약, 섹스로 점철되기 마련이다. 보이는 것을 보이지 않는다고 말할 순 없다. 현아의 트레일러는 명백히 그 현장을 영상으로 옮겨 놓은 것이다.

앞서 예로 든 저 외국 유튜버는 그저 자신이 본 걸 말한 것 뿐이다. 소속사나 감독은 유사 성행위를 떠올렸다는 그 유튜버의 반응은 변기를 부여잡고 구토를 하는 장면을 오해한 것이라고 해명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야말로 구차하다. 그들은 구토 장면과 남성과 같이 있는 장면을 교묘하게 빠른 템포로 교차 편집해서 유사 성행위 장면으로 승화(?)시켰다. 그리고 이는 다분히 의도적이라고 해석할 수 밖에 없다.

에둘러 가지 말자. '섹시'와 '섹스'는 천지차이다. '한끝 차이' 아니냐고 강변하고 싶은 건 아마도 현아의 소속사나 뮤직비디오를 찍은 감독일지 모른다. 영어로 설명해도, 형용사인 'sexy'가 무궁무진한 상상력과 표현법을 드리우고 있다면, 이와 연계해 해석해야 할 명사이자 동사인 'sex'는 행위를 포함하면서 훨씬 더 명시적이고 직접적이다. 상반신 누드의 뒤태를 노출한 건 예사로 보일 지경이다.

다시 한 번, 직접적인 행위(를 연상시키는 장면)를 그대로 노출시키는 것과 암시는 다르다. 그런데 이번 트레일러에서 '패왕색'이라 불리는 업계 넘버원 현아는 이제 성과 관련된 행위를 연상시키는 동작을 '연기'하고 있다. 아무리 '19금'을 표방했다고 해도, 정말 이렇게까지 심각하게 망가져도 되는 걸까.

업계 1위 수성해야 한다는, 훨씬 더 자극적인 걸 내놓아야 한다는

이 트레일러는 분명 실제 곡의 완성도와 가사 내용, 퍼포먼스와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무대 위 퍼포먼스의 수위와 확장성이 무한대인 동영상의 수위는 근본적으로 다르게 취급돼야 한다. 더불어 '원소스'는 '원소스'다. 폐기하지 않는 이상 증발될 수 없다. 이를 바탕으로 공개될 뮤직비디오의 수위? 상상만 해도 아찔하다. 또는, 잘 해봐야 'slut(헤픈 여자)'으로 밖에 비춰지지 않을 트레일러 속 여성이, 소속사가 전체 뮤직비디오를 공개한다면 "방황하는 젊은 여성의 아픔"을 승화시킨 드라마로 변모할 수 있을 것 같진 않다.

최소한 '행위'를 연출해도 담아야할 정수들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예술성은 차치하더라도 트렌드를 이끄는 힘이나 독창성만큼은 지켜내려는 것이 업계를 선도하는 엔터테이너와 그 주변인들의 마인드라 할 수 있다. 과연 이번 트레일러 영상을 찍으며 현아는, 그리고 그 주변인들은 그런 자부심을 챙기고는 있었을까.

불행하게도, 이 천박한 영상은 업계 1위를 수성해야 한다는, 그래서 훨씬 더 자극적인 그 무엇을 내놓아야 한다는 상업적인 마인드의 발로라 밖에 보이지 않는다. 엄숙주의나 도덕주의의 잣대를 끌어들이려는 게 아니다. 그러니 부디, 이 사안에마저 '표현의 자유'라는 전가의 보도를 사용하는 우를 범하는 이는 없기를.

현아는 컴백 후 인터뷰에서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즐겁게 찍었다"고 해도 기이하고, "내 의도와는 달랐다"고 하면 문제시될 수 있다.

이제 후발주자들은 또 어떤 상상력을 발휘해야 하는가

 현아의 컴백 홍보 이미지.

현아의 컴백 홍보 이미지. ⓒ 큐브엔터테인먼트


많은 걸그룹들이 '섹시' 경쟁 중이다. 아니, 이제 거의 끝이 보이는 지경이다. 지난 스텔라 컴백 당시에도 언급했듯이, 그들의 뮤직비디오는 일본 그라비아 아이돌들의 영상화보를 연상시킬 정도다. 그리고, 이 장르에서 자타공인 최고인 현아는 서구(정확히는 미국)의 포르노그라피에도 종종 등장하는 '섹스파티'를 연상하게 만드는 트레일러를 내놨다.

이제 여타 후발주자들은 또 어떤 상상력(?)을 발휘해야 하는가. 그 현아가 미칠 영향을 떠올리면 아찔하기까지 하다. 최근 컴백한 걸그룹 스텔라의 소속사 대표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섹시 걸그룹의 대명사"로 만들 것이라고 공언했다. 반면, 또 다른 인터뷰에서 멤버들은 "청순한 컨셉트도 해 보고 싶다"면서도 "이미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넌 것 같다"고 말했다.

현아의 이번 트레일러는 섹시 경쟁의 블랙홀 속에 빠진 걸그룹과 여성 아이돌 시장의 일면을 단적으로 증명한다. 점입가경을 넘어 지옥도에 가깝다. 창작자들은 수용자를 탓한다. (매체를 포함한) 수용자들은 즐기거나 방관하는 중이다. 그 중 일부만이 거부감을 표현(현아의 트레일러를 본 유튜브 사용자의 8분의 1이 '싫어요'를 눌렀다)할 뿐이다. 다수의, 그리고 무형의 수용자들의 의견을 반영한다는 논리로, 이 무한경쟁이 반복되고 있다.  

과연, 누가 현아에게 '포르노그라피' 연기를 강요하는가. 

현아 포미닛 A+ 큐브 스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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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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