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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고재갤러리 이동엽 전시장 내부 모습
 학고재갤러리 이동엽 전시장 내부 모습
ⓒ 학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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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삼청로 학고재에서는 단색화 작가 이동엽(1946~2013)전이 오는 23일까지 열린다. 1980년대, 90년대, 2000년대 각각 6점, 5점, 4점을 선보인다. 단색화는 최근 국내미술시장에서 작품가가 5~10배로 뛸 정도로 열풍이고, 2015년 베니스비엔날레에서도 특별전으로 소개되고 있다. 이번 전시는 단색화를 촉발시킨 원류가 뭔지를 가늠하게 해 준다.

한국을 오가며 한국고미술에 정통했으며 당시 서구미술계까지 큰 영향력을 미친 동경화랑 대표 야마모토씨는 명동화랑에 전시된 이동엽 작품을 보고 반해 그를 일본 자기 집에 2년간 머물게도 했다.

그래서 1975년 일본 동경화랑에서 열린, 한국 작가 5명을 소개하는 '5가지 흰색전'에 이동엽 작가도 허황, 서승원, 권영우, 박서보 등과 함께 참가했다. 다음해 그는 28세로 제6회 '카뉴국제회화제'에 한국대표로 참가해 '삼인(三人)공동국가상'을 수상한다. 요즘 그의 단색화도 가격이 3배 이상 오르는 기세를 타고 있으나 안타깝게 2013년에 타계했다.

이우환, 해외평론가로부터 높은 평가

이동엽 I '컵' 캔버스에 유채 162.2×130.3cm 1972
 이동엽 I '컵' 캔버스에 유채 162.2×130.3cm 1972
ⓒ 국립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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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작 '컵'은 지금 국립현대미술관(과천)에 소장돼 있다. 2012년 3월 과천국립미술관에서 열린 '단색화전'에서 이 작품을 봤는데 눈에 잡히지 않았다. 작가는 사물의 포장성 빼고 사물의 본 모습을 그리려 한 것인데 관객이 그런 점을 쉽게 알아채지 못한다.

여기서 '컵'은 우주를 담는 그릇으로 존재의 무상성을 상징하기도 한다. 또한 컵 속에 담긴 얼음이 녹고 증발하고 사라지는 현상을 보여준다는 면에서는 회화의 공간성뿐만 아니라 회화의 시간성도 같이 언급하고 있다. 그의 작품은 이밖에 일본 국립근대미술관(동경)과 호암미술관(용인)에도 소장되어 있다.

이동엽의 작품은 일반인에게는 많이 낯설지만 외국의 저명건축가나 평론가로부터는 주목을 많이 받았다. 프랑스 건축가 빌모트(J. P. Willmotte)나 인천공항 설계자 펜트레스(C. Fentress)도 그를 극찬했다. 작년엔 라일즈(R. Liles)의 미술평론이 <아트아시아퍼시픽>지에도 소개됐고 이번 도록에도 프랑스 평론가 로랑 헤기(L. Hegyi)의 글이 실렸다.

요즘 한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작가인 이우환도 10년 아래인 이 작가를 가장 아끼는 후배작가라고 치켜세웠고 또한 그의 작품에서도 아이디어를 얻은 바 있다고 말했다.

'무념무상'의 세계를 그리다

이동엽 I '사이3' 캔버스에 유채 130×162cm 2000-2008
 이동엽 I '사이3' 캔버스에 유채 130×162cm 2000-2008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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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 대면한 적이 없어 잘 모르나, 들리는 말로는 남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고지식한 성격에다가 국내 화단에 대한 불신과 피해의식이 커서 은둔자처럼 살아온 모양이다. 미술관 측에서 작업실을 방문했을 때, 그곳이 하도 습하고 어둡고 입구도 불쾌해 지원을 전제로 이주를 독려했으나 자신은 열 체질이라 상관없다고 거절했단다.

이런 성격의 이동엽 작가는 유를 그렸다기보다는 무를 그렸다는 것이 옳을 것이다. 아니, 그런 '유무'를 넘어설 뿐만 아니라 생사와 희비, 시공간, 채움과 비움 그런 개념조차 없는 '무념무상'의 세계를 그렸는지 모른다. 다만 서양 추상화는 리듬과 선율이 흐리는 음악의 요소가 있다면 그의 단색화는 울림과 떨림을 작용하는 공명의 세계가 보인다.

여백 있는 단색화에 한국미를 담다

이동엽 I '사이-명상2000#17' 캔버스에 유채 160×260cm 2000. 정갈한 이런 그림은 현대인의 조바심을 달래주는 힘을 발휘한다
 이동엽 I '사이-명상2000#17' 캔버스에 유채 160×260cm 2000. 정갈한 이런 그림은 현대인의 조바심을 달래주는 힘을 발휘한다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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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어느 날 흑백으로 차려입은 여인을 보고 "색채 중 흑백을 능가하는 게 뭐 없을까"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또 서울 상도동에 살 때 "비가 갠 산허리에 하얀 두루마기를 입고 가는 사람에게 마음의 감흥이 왔다"라고 한 말을 들어보면 그가 우리 일상에서 보게 되는 한국적 정감이 풍부한 작가임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차를 살 때 흰색이나 회색을 가장 선호한다는데 그의 작품도 거의가 회백색 계통이다. 물론 어쩌다 엷은 노랑, 파랑이 쓰이기도 한다. 그의 색채는 그냥 단색이 아니라 많은 색과 레이어가 합쳐진 후에 나온 통합적 색채다. 그런 면에서 그의 색채는 서양화의 칼로 그은 듯한 모노크롬에서 풍기는 분위기와는 전혀 다르다.

그의 작품은 어쨌든 여백이 많아 좋다. 이것이 주는 효과 중 하나는 관객에게 사유를 유도한다는 점이다. 이런 고요함 속에는 소리 없는 아우성 같은, '생사화복·생로병사' 등의 애환이 이 다 함축된 것 같다. 더 들여다보면 우리 역사의 상처와 아픔까지도 보인다.

겹침과 스밈 속 조용한 변주

이동엽 I '사이7' 캔버스에 유채 116×91cm 1981
 이동엽 I '사이7' 캔버스에 유채 116×91cm 1981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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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작품을 보면 단순한 구조에다 절제된 색채만을 썼음에도 관객에게 지루함을 주지는 않는다. 그만큼 매너리즘에 빠져 있지 않고 보이는 않는 변형의 요소가 많다는 소리다. 한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때로 2~3년도 걸린다고 하니 작품에 대한 정성은 극진해 보인다.

그의 작품은 어떤 대상을 보고 그리는 방식이 아니라 뭔가 흔적은 남기는 방식이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아버지와 지리산에 가서 본 개울물의 투명성이나 부산에 피난 가서 살 때 본 바닷물이 미묘하게 겹치고 스미는 현상이 그의 작품에서 잘 반영되어 있다.

물질시대에 '정신주의'을 추구하다

이동엽 I '사이33' 캔버스에 유채 80×180cm 2000-2002
 이동엽 I '사이33' 캔버스에 유채 80×180cm 2000-2002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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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도 창작은 일종의 저항정신이라 했지만 그가 데뷔하던 1960~70년대는 산업화고도성장을 추구하는 물질만능시대였다. 하지만 그는 물질적 풍요가 낳은 정신적 빈곤을 경계하며 시대의 유행과 거리를 둔 차원 높은 정신주의를 작품의 근간으로 삼는다.

그렇다고 그의 정신주의가 경직된 관념주의로 흐르지는 않았다. 미를 탐구하는 작가로서 창작활동에서 예술의 본질을 잃지 않겠다는 하나의 신조 또는 작가 내면에 도사리는 삶의 불안과 고뇌를 떨어내고 덧없음을 지워가는 수행으로 보인다.

'사이'에 흐르는 '순환'을 원리로 삼다

학고재갤러리 입구 건너편에서 찍은 이동엽 개인전 전시장 내부모습
 학고재갤러리 입구 건너편에서 찍은 이동엽 개인전 전시장 내부모습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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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그의 연작 제목 '사이'와 '순환'는 그의 작품 세계의 키워드라 할 만하다. 작가는 '인간·시간·공간' 그 '사이'에 틈을 내고 여백을 만들어 생명이 다시 숨 쉬고 만물이 원활하게 '순환'하도록 하는 것이 그가 생각하는 예술의 원리이자 창조의 본질이 아닌가 싶다.

어쨌든 그는 대중의 몰이해와 무관심, 저평가 속 경제난 등 여러 악조건 속에서도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잃지 않고 회화의 원류가 뭔지를 진지하게 탐구했다. 그리하여 중국이나 일본과도 차별되는 한국적 여백미를 앞서 발굴한 단색화의 시발자로 평가해도 좋으리라.

덧붙이는 글 | 학고재 110-200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청로 50 info@hakgojae.com 02) 720 1524-6 전시무료 월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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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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