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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에는 '글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여기곤 하지만, 참말 '글을 모르는 사람'은 꽤 많습니다. 글을 몇 줄 적어 보라고 하면 아예 못 쓰는 사람이 젊은이 가운데에도 제법 있습니다.

왜 글을 모르는 사람이 꽤 많을까요? 글을 모르는 사람을 가리켜 '글장님(문맹)'이라고도 하는데, 글을 모른다고 해서 삶을 누리지 못하지는 않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말을 모른다'고 하면 살지 못할 테지만, '글을 모른다'고 하더라도 얼마든지 즐겁게 삽니다.

한문 원문은 <한문본>과 <해례본>에서 "國之語音, 異乎中國, 與文字, 不相流通 우리나라의 발음이 중국과 달라서 문자가 서로 통하지 않는다"라 하여 한자에 대한 우리의 발음과 중국의 차이를 지적한 것이다. (16쪽)

고려대 명예교수 정광님이 쓴 <한글의 발명>(김영사, 2015)을 읽습니다. 500쪽 남짓 되는 도톰한 책입니다. 정광 님은 '교과서에 나오는 지식'하고는 다른 이야기를 이 책을 빌어서 들려주고자 합니다. 다만, 교과서에 안 나오는 지식일 뿐, 사람들이 '모두 몰랐다'고 할 수는 없는 이야기입니다.

겉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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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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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교과서 지식'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한쪽 정당 사람들로만 정치권력이 이어지는 동안 '교과서 지식'으로는 1961년에 있던 어떤 일을 '혁명'이라 했습니다. 이제 1961년 5월에 있던 어떤 일을 '혁명'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드뭅니다. 학교에서도 어엿하게 '쿠데타'라고 말하면서 가르칩니다. 1980년 광주에서 있던 일도 그리 오래지 않은 지난날까지 교과서에서는 한 줄로도 안 다루었을 뿐 아니라 '사태'나 '소요' 같은 이름을 붙이곤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민주화운동'이나 '민중운동'이나 '항쟁' 같은 이름을 널리 씁니다.

그러면, <한글의 발명>을 쓴 정광님은 어떤 '교과서 지식'하고 맞서 싸우려고 할까요? 교과서에서는 '훈민정음 창제'를 "세종대왕이 사상 유례없는 독창적 글자를 만들었다"나 "위대한 세종대왕이 백성을 위해 완벽한 글자를 만들었다"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바로 이 대목을 뒤집으려는 이야기를 펼치려고 <한글의 발명>을 선보입니다.

한자는 고립어를 표기하도록 고안된 문자이다. 그러기 때문에 교착어를 사용하는 북방민족들 사이에는 한자가 아닌 자신들의 언어를 기록할 문자의 필요성을 오래전부터 절실하게 느꼈다. (28쪽)

교과서에 나오는 지식은 '기존 정설'이 아니라 '교과서 지식'입니다. 이 대목을 잘 살펴야 합니다. 그리고, 역사를 더 찬찬히 헤아려야 합니다. 세종 임금이 훈민정음을 지어서 내놓았다고 하더라도, 이 글(훈민정음)은 '조선 사회를 이루던 99퍼센트에 이르던 백성(시골 농사꾼)'이 쓰도록 하려는 글이 아닙니다. 시골 농사꾼이 배워서 쓰라고 하는 훈민정음이 아닌, 1퍼센트 권력자와 지식인이 '중국글과 중국말'을 제대로 배워서 쓰도록 도우려고 하던 훈민정음입니다.

그러면, 훈민정음은 어떤 구실을 할까요? 훈민정음은 '소릿값을 적는 글'입니다. 한자말을 빌어서 말한다면 '발음기호'입니다.

'정음'이란 명칭은 원래 한자음의 표준 발음이란 뜻으로 '속음'과 대조되는 말이다 … 한자의 정음을 정하는 것은 조선에서도 중요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한반도에서도 고려시대부터 중국의 과거제도를 수입하여 정착시켰으며 이를 통하여 관리임용의 기준이 되었다 … 세종은 중국의 한어음을 고칠 수는 없으니 우리 한자음을 고치려고 한 것이다. (38, 39, 53쪽)

훈민정음이 '발음기호'라고 하는 대목을 잘 살필 수 있어야 합니다. "훈민정음 = 발음기호"라고 해서 훈민정음을 깎아내리는 말이 될 수 없습니다. 참이 그러할 뿐입니다. 발음기호를 세종 임금이 지었다고 해서 아쉽다거나 안타까울 일이 없습니다. 조선 사회 권력자와 지식인이 중국글하고 중국말을 제대로 익혀서 '외교'를 잘 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을 테니, 중국을 둘러싼 여러 겨레 가운데 조선이라는 나라는 무척 뜻있고 훌륭한 '발명'을 한 셈입니다.

한글이 과학적인 것은 15세기에 제정된 훈민정음이 조음음성학의 이론에 입각하여 음운을 분석하고 문자를 제정한 때문이다. (24쪽)

'글'은 '말'을 담는 그릇입니다. 말이 있어야 비로소 글이 있습니다. 글만 있다고 하면 아무 이야기를 못 나눕니다. 말이 있어서 이야기를 나누기에, 비로소 이 말을 '글이라는 그릇'에 담아서 서로 나눕니다.

영어를 담는 그릇인 알파벳도 그릇입니다. 알파벳을 안다고 해서 영어를 알지 않습니다. 알파벳을 달달 외워서 잘 안다고 하더라도 영어뿐 아니라 프랑스말이나 독일말이나 덴마크말이나 핀란드말이나 네덜란드말을 할 수 있지 않아요. '말'을 익히거나 배워야 '말'을 합니다. 글만 배워서는 '글자(알파벳)만 알' 뿐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세종 임금은 '말을 담는 그릇인 글'을 새롭게 지었습니다. 이 대목에서 궁금해 할 수 있는데, "'발음기호'가 어떻게 글이냐?" 하고 물을 만합니다. 그런데, 발음기호가 바로 글입니다. 글은 여러 갈래가 있어서, 그림이나 무늬를 고스란히 옮기는 글이 있고, 소리를 고스란히 옮기는 글이 있습니다. 훈민정음은 여러 가지 글 가운데 '온갖 소리를 골고루 받아들여서 기쁘게 담는 멋진 글'입니다.

직접적인 파스파 문자의 제정 동기는 몽고 위구르자가 한자의 발음을 전사하기가 적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 파스파 문자의 한자음 표음은 고려 후기와 조선 초기의 한자 교육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 즉, 한자음 학습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발음을 분명하게 이해하는 것이므로 표음문자인 파스파자는 한자의 발음을 표음하는 데 더할 나위가 없는 좋은 발음기호였다. (121, 313쪽)

세종 임금은 '조선 사회 권력자와 지식인'이 '중국말하고 중국글'을 잘 익히도록 이끌려는 뜻에서 '훈민정음이라고 하는 글'을 짓습니다. 다만, 혼자 짓지는 않아요. <한글의 발명>이라는 책에서도 밝히듯이, 둘째 딸도 돕고 여러 스님(학승)도 돕습니다. 세종 임금이 '새로운 글'을 지은 까닭은 중국말하고 중국글을 잘 배우도록 도우려는 뜻이 있을 뿐 아니라, 이 새로운 글을 지어서 '조선 사회 다른 권력자와 지식인'이 익히도록 하면, 다른 권력자와 지식인은 세종 임금이 시키는 대로 따르기만 하는 셈입니다. 그야말로 가장 힘센 우두머리(권력자)가 되는 셈입니다.

이 대목에서도 잘 살펴야 합니다만, '가장 힘센 우두머리'가 되려는 일은 나쁘게 깎아내리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모든 통치자는 새로운 정치권력을 세우면서 '말과 잣대(도량형)'를 바꿉니다. 새로운 정치권력 통치자가 시키는 뜻대로 사람들이 따르기(복종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앞선 다른 임금처럼 '한자'만 쓰지 않고 '훈민정음'을 새로 지은 뜻은, 세종 임금이 부리는 힘이 다른 어느 임금보다 크고 세며 대단하다는 이야기입니다. 나라 안팎으로 당차면서 훌륭하고 멋진 힘을 떨치기에 '새로운 글'을 지을 수 있습니다.

훈민정음의 자형은 초성의 경우 발음기관을 상형하여 제자하였고 중성의 경우 천지인 삼재를 상형한 것이어서 티베트 문자를 토대로 한 파스파자와는 다르며 그런 의미에서 독창적이다. (356쪽)

<한글의 발명>에서 말하는 '파스파 문자'는 오른쪽 그림.
 <한글의 발명>에서 말하는 '파스파 문자'는 오른쪽 그림.
ⓒ 네이버 지식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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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의 발명>을 읽어 보면, 훈민정음을 세종 임금이 새로 지을 적에 '파스파 글'을 많이 살폈다고 합니다. 파스파 글이 먼저 있었기에 이를 잘 살피면서 '훌륭한 대목'을 받아들이고 '덜 훌륭한 대목'은 둘째 딸이나 여러 스님하고 함께 머리를 맞대면서 새롭게 수수께끼를 풀 뿐 아니라, 닿소리와 홀소리를 단출하면서 깔끔하고 멋지게 갈무리했다고 합니다.

일제강점기에 이 땅에서 '국어'는 일본어가 되었고, '국문' 즉 나라의 글자는 일본의 가나 글자를 말하게 되었다. 그래서 조선어학회가 억지로 만든 이름이 한글이다. 따라서 한글이란 명칭은 역사적으로 보면 슬픈 이름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22쪽)

그런데 <한글의 발명>을 쓴 정광님은 이 책을 좀 어설피 엮었습니다. 500쪽을 웃도는 책이지만, '제1장 들어가기(13∼42쪽)'에서 이녁이 새롭게 밝히고 싶은 이야기를 모두 털어놓았고, 이 다음부터는 '13∼42쪽'에서 적은 이야기를 다시 되풀이합니다. 이러면서 정광님이 쓴 다른 논문이나 책에 실린 이야기를 그대로 옮깁니다. '동아시아 여러 문자'를 살핀 글이나 '한글 발명과 보급에 이바지한 사람'을 다루는 글은 이 책에서 좀 군더더기 같습니다. '언어학 이론으로 살핀 한글'이라는 글도 '다른 기존 연구에서 다 드러난 이야기'이기 때문에 굳이 이 책에 실을 만한 까닭은 없어 보입니다. 정광 님이 새로운 학문 이론을 펼치려고 한다면, '교과서 지식'으로도 다루는 '과학 원리로 지은 한글 이야기'까지 굳이 이 책에서 똑같이 되풀이하지 않아도 되리라 느낍니다.

그리고, '한글'이라는 이름이 "슬픈 이름"이라고 이야기합니다만, '한글'이라는 이름은 세종 임금이 하지 않거나 못한 일을 주시경님이 새롭게 일군 "기쁜 이름"이라고 보아야 하지 않느냐 하고 생각합니다.

왜 그러한가 하면, '훈민정음'이라는 이름으로 이 글(말을 담는 그릇+발음기호)이 조선 사회에 있을 적에는 몇몇 권력자하고 지식인만 이 글을 배워서 썼습니다. 99퍼센트에 이르는 사람들은 훈민정음을 모를 뿐 아니라, 알 까닭도 없습니다. 양반 사회는 사람을 계급으로 갈랐고, 양반에 들지 못하는 사람은 훈민정음이든 한자이든 알 수 없고 배울 수 없었지요. 양반에 드는 이들은 한자(한문)만 배우면 되지, 구태여 훈민정음을 배우려 하지 않기 마련입니다. 과거제도에서는 한문으로 시험을 치르지, 훈민정음으로 시험을 치르지 않았으니까요.

그런데, 개화기와 일제강점기 언저리에 '한글'이라는 이름이 처음으로 태어납니다. "한겨레가 늘 나누는 말을 담는 그릇인 글"로 처음으로 빛을 봅니다. 주시경님을 비롯한 뜻있는 학자와 독립운동가는 '한글'이라는 새 숨결을 처음으로 알아보면서 떨치고 펼치면서 '한글 가르치기'에 소매를 걷어붙이고 나섰습니다.

한자음 표기의 수단으로 제정된 훈민정음은 고유어의 표기에도 이용되기 시작하였다. (182쪽)

'훈민정음'이라는 이름으로만 있을 적에 이 글은 그냥 '중국말 받아적는 발음기호'였습니다. 그러나, 이 글이 '한글'로 새 옷을 입은 때부터는 '한겨레가 제 말을 담는 그릇'으로 거듭났습니다.

세종 임금이 훈민정음을 지은 까닭이 어떠하든, 1900년대로 접어드는 무렵부터 '한글'은 한겨레와 한국사람 모두한테 기쁨과 웃음을 베푸는 사랑스러운 노래가 되었습니다.

그러니, '한글 발명'이라고 한다면, 주시경님부터 그 뒤에 이 땅에서 태어나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한글을 발명했다고 해야 올바르고, '훈민정음 창제'라고 한다면, 세종 임금이 조선 사회에서 새로운 글을 처음으로 지었다고 해야 올바르리라 느낍니다.

이제 간추려 본다면, 세종 임금은 "한글 발명을 하지 않았"습니다. 세종 임금은 "훌륭한 발음기호를 창제"했습니다. "'한글 발명'은 뜻있고 슬기로운 분이 앞장서서 했을 뿐 아니라, 온 나라 모든 수수한 사람이 오늘도 한결같이 다 함께 하는 일"입니다.

한글을 옮겨쓰면서 글을 익히는 아이. 훈민정음을 '한자음 발음기호'로 지었다고 하더라도, 오늘날 한국사람은 이 글을 즐겁고 아름답게 잘 살려서 씁니다.
 한글을 옮겨쓰면서 글을 익히는 아이. 훈민정음을 '한자음 발음기호'로 지었다고 하더라도, 오늘날 한국사람은 이 글을 즐겁고 아름답게 잘 살려서 씁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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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도 그런 역할을 기대하면서 만들어졌다. 즉, 처음에는 당연히 올바른 한자의 한어음, 즉 당시 중국의 표준음인 정음을 표음하는 기호로 만들어진 것이다. (52쪽)

말은 언제나 우리 가슴에서 살아서 움직입니다. 글을 몰라도 우리는 늘 말로 이야기를 주고받습니다. 아이들은 글을 몰라도 사랑스레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오늘날 시골 농사꾼도 글을 거의 모르시지만, 말로 구수하면서 살가운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우리는 '말'을 보아야 합니다. '글에 담는 말'을 보아야 합니다. 말이 있기에 글을 쓸 수 있다는 대목을 보아야 합니다. 말을 살리면서 글이 살아나는 대목을 찬찬히 보아야 하고, 말을 사랑하고 가꾸는 동안 글도 사랑스레 거듭나면서 아름답게 피어난다는 대목을 보아야 합니다.

"말이 오르면 나라도 오르고 말이 내리면 나라도 내리나니라. 이러하므로 나라마다 그 말을 힘쓰지 아니할 수 없는 바니라. 글은 말을 담는 그릇이니 이지러짐이 없고 자리를 반듯하게 잡아 굳게 선 뒤에야 그 말을 잘 지키나니라(주시경-한나라말)." 같은 이야기를 가만히 되새겨 봅니다. 글만 있어서는 나라가 오르지 않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글이 있어도 '훌륭한 말'이 없다면 그릇은 쓸모가 없습니다. 아무리 값진 밥그릇이 있어도, 맛나게 지은 밥이 없으면 밥그릇은 쓸 데가 없어요.

우리가 여느 자리에서 늘 쓰는 수수한 말이 바로 '훌륭한 말'이고, 이 훌륭한 말이 있어서 서로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기에 '훌륭한 글'을 정갈하고 아름답게 가꿀 수 있습니다. '한글'이 아니어도 '말'은 살아서 숨쉬는데, 한글을 더욱 알뜰히 갈고닦으면 말은 더욱 기쁘고 힘차게 살아서 숨쉴 수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글쓴이 누리사랑방(http://blog.naver.com/hbooklove)에도 함께 올립니다.

책이름 : 한글의 발명
정광 글
김영사 펴냄, 2015.7.10.
19800원



한글의 발명

정광 지음, 김영사(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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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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