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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일본 niconico를 통해 방영된 박근령씨 인터뷰 모습.
 4일 일본 niconico를 통해 방영된 박근령씨 인터뷰 모습.
ⓒ niconico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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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밤 일본 동영상 니코니코와의 인터뷰에서 박근령 전 육영재단 이사장은 '위안부(군대 성노예) 문제에 대한 한국 언론의 보도는 한국인들의 일반적 정서와는 무관하다'는 식으로 발언했다. 그는 또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에 대해 한국이 왈가왈부하는 것은 내정간섭이라고 비판했다.

언니인 박근혜 대통령이 아베 신조 총리에게 식민지배 사과를 촉구하는 상황에서 동생이 전혀 엉뚱한 일을 벌인 것이다. 대통령의 동생이 외국, 그것도 일본에 가서 나라 망신을 시켰으니, 참 어이없는 일이다.

일본의 식민지배 문제를 둘러싼 박근혜·박근령 자매의 행보를 보면서, 400년 전 효종 임금과 송시열의 독대 장면이 떠올랐다. 효종(봉림대군)은 아버지 인조와 갈등을 빚다가 독살로 추정되는 의문의 죽음을 당한 소현세자의 동생이다.

소현세자에게는 아들들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소현세자가 죽은 뒤에는 그 아들이 후계자가 되어야 했지만, 인조는 조정의 중론을 무시하고 봉림대군을 후계자로 내세웠다. 이런 배경 때문에, 효종은 인조가 죽은 뒤에 정통성이 약한 임금으로 등극해야 했다. 

그렇게 출발한지라, 효종은 정통성 강화를 위해 보통 이상의 열정을 바쳤다. 그가 추진한 것 중 하나는 중앙군 증강 정책이었다. 요즘으로 치면 수도방위사령부 증강을 추진한 것이다. 하지만, 집권당인 서인당을 비롯한 기득권층이 반발하고 나섰다. 중앙군 증강이 조세 증가는 물론이고 왕권 강화를 초래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반대가 너무 심해 어쩔 도리가 없게 되자, 효종은 서인당 영수인 송시열과의 단독 회동을 성사 시켰다. 송시열을 설득해서 국면을 돌파할 목적이었던 것이다. 효종 10년 3월 11일(양력 1659년 4월 2일)에 창덕궁 희정당에서 열린 회동의 내용은, 송시열의 글을 모은 <송서습유>의 악대설화 편에 실려 있다.

송시열, 효종에 '격물치지' 말한 까닭은

송시열 영정.
 송시열 영정.
ⓒ 장서각 디지털 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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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시열과의 회동에서, 효종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북벌론을 입에 담았다. 평소에도 북벌론을 언급했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기록상으로는 이때가 최초이자 최후였다. 그는 중앙군을 확충하려 하는 것은 다른 뜻이 있어서가 아니라 청나라에 대한 복수를 위한 북벌전쟁을 위해서라고 강조했다. 10년만 두고 보면 내 뜻을 알게 될 거라고 그는 말했다. 그러자 송시열은 "그러셨습니까?"라는 식으로 응대하면서 중앙군 확충에 반대했다.

대화가 평행선을 달리고 감정 섞인 말들이 오고간 끝에 효종이 내뱉은 한마디.

"그렇다면 내가 지금 해야 할 일 중에서 무엇이 가장 급선무인지 말해주시오."

나더러 뭘 하라는 말이냐고 물은 것이다. 그러자 송시열은 사서삼경 중 하나인 <대학>에 나오는 '격물치지·성의정심'이 시급하다고 답했다.

<대학>에 대한 송나라 주자의 해설에 따르면 격물(格物)은 사물의 이치를 탐구하는 것, 치지(致知)는 무궁한 단계까지 지식을 확장하는 것, 성의(誠意)는 마음을 성실히 하는 것, 정심(正心)은 마음을 바르게 하는 것이다. 중앙군 증강에 신경 쓰지 말고 이런 마음공부에나 신경 쓰라는 게 송시열의 뜻이었다.

'격물치지·성의정심'은 <대학>에서 강조한 인격수양 단계 중에서 '수신제가 치국평천하'의 전 단계다. 격물치지를 한 다음에 성의정심을 하고 성의정심을 한 다음에 수신제가를 하고 그런 다음에 치국평천하를 해야 한다고 <대학>에서는 강조한다.

효종은 치국평천하를 하는 사람이었다. 인격적으로도 그런 단계에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객관적·직업적으로는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여당 대표인 송시열은 그런 효종에게, 치국평천하의 이전 단계인 수신제가도 아니고 수신제가의 이전 단계인 격물치지·성의정심에나 신경을 쓰라고 말했다. 임금에게 해서는 안 될 모욕적인 언사였던 것이다. 이것은 송시열이 과거에 효종의 스승이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송시열은 효종이 중앙군 확충을 추진하는 동기가 북벌이 아니라 왕권 강화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마음공부나 하시라고 핀잔을 준 것이다. 송시열의 말 가운데는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조용히 자기 자신을 돌아보라'는 식의 과격한 표현도 있었다.

송시열의 인식에 따르면, 효종은 '치국평천하'는커녕 수신제가도 못하는 사람이었다. 수신제가의 이전 단계인 마음공부에나 신경을 써야 할 사람이었던 것이다. 물론 이것은 송시열의 개인적인 판단이었다. 이런 모욕적 언사를 듣고 회동을 끝낸 지 2개월이 좀 지난 효종 10년 5월 4일(1659년 6월 23일), 효종은 마흔한 살 나이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박정희 전 대통령, 한일협정 체결로 일본에 면죄부 줘

고 박정희 대통령 가족 사진. 왼쪽부터 박근령씨, 박정희 대통령, 박근혜 현 대통령, 육영수씨, 박지만씨.
 고 박정희 대통령 가족 사진. 왼쪽부터 박근령씨, 박정희 대통령, 박근혜 현 대통령, 육영수씨, 박지만씨.
ⓒ 대한민국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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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박근혜 대통령은 효종보다는 좀 나은 입장에 있다. 효종은 마음공부에나 신경 쓰라는 말을 들었지만, 박 대통령은 집안 좀 잘 다스리라는 말을 들을 처지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그가 다스려야 할 집안 문제는 여동생과의 분쟁만이 아니다. 우선적으로 처리해야 할 문제는 일본의 식민지배에 대한 자기 집안의 입장을 명확히 정리하는 것이다.

박 대통령 집안은 식민지배 문제와 관련해 일반 국민의 열망과 동떨어진 입장이다. 일본군 장교 출신인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은 국민의 의사를 무시하고 1965년 한일협정을 체결함으로써 일본에 대해 사과와 배상을 요구할 수 있는 기회를 상당 부분 차단해 버렸다. 지금 일본이 뻣뻣한 태도를 취하는 이유 중 하나도 박정희 대통령이 한일협정을 계기로 일본에게 상당 부분의 면죄부를 주었기 때문이다.

이런 집안 사정을 감안하면, 이번에 망언을 한 박근령 전 이사장은 집안의 이단아가 아니다. 박 전 이사장은 이 집안에서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여겨지는 사고방식의 소유자다. 이 집안에서 이단아는 오히려 박근혜 대통령이다. 일본의 사과 및 배상을 요구하는 것은 집안과는 거리가 먼 일인데도 박 대통령이 그렇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65년 한일협정에 서명하는 모습(가운데).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65년 한일협정에 서명하는 모습(가운데).

만약 박 대통령이 진정으로 일본의 사과와 배상을 받아낼 각오가 있다면, 그는 동작동 국립묘지에 있는 아버지의 무덤에 가서 "아버지, 왜 그러셨느냐"며 따지기부터 해야 한다. 여동생인 박근령 전 이사장의 사고방식은 아버지 박 대통령과 별반 다를 바 없어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에게 먼저 따져야 한다.

박 대통령이 이런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것은, 그가 이제껏 아버지의 노선을 맹목적으로 추구해왔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노선을 무조건 따라온 박 대통령이 식민지배 문제와 관련해서만 아버지와 다른 뜻을 가졌을 가능성은 낮지 않은가?

그래서 박 대통령은 아버지와 뜻이 다르다는 점을 아버지에 대한 비판을 통해 공개적으로 보여줄 필요가 있다. 아버지의 국정수행을 사실상 보좌한 경험이 있는 박 대통령이 아버지의 입장도 정리하지 않은 채 아버지와 배치되는 행보를 걷는다면, 세상이 박 대통령의 진정성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집안의 입장을 정리한 다음에 대통령으로서의 입장을 정리하는 게 격물치지·성의정심·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는 단계적 인격수양론에 부합할 것이다. 만약 여동생의 입장과 별반 다를 것 없는 아버지의 입장을 비판하지 않고 일본을 상대한다면, 그것은 수신제가도 못하고 치국평천하에 나서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번에 여동생이 일본에 가서 나라 망신을 시킨 것은 박 대통령이 이 문제에 관한 수신제가를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수신제가도 못한 상태에서 치국평천하를 한다면, 결과가 어떨지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박 대통령은 일본이 사과 및 배상을 하지 않는 것은 일본뿐 아니라 자기 집안 때문이기도 하다는 점을 직시하고, 이런 집안 분위기부터 먼저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

○ 편집ㅣ장지혜 기자



태그:#박근령, #박근혜, #송시열, #효종, #수신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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