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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해서 미역국을 끓이던 어느 저녁, 나는 그만 부엌에 주저앉아 엉엉 울고 말았다. 생전 처음 소고기 미역국을 끓여보았는데, 생각보다 국 끓이기가 너무 쉬웠다. 이렇게 쉽게 끓일 수 있는데, 왜 결혼하기 전까지 부모님께 미역국 한번 끓여드리지 못했을까?

못난 딸은 생일 아침에 미역국이 올라오지 않으면 심통을 부리기 일쑤였다. 그러면서도 매번 돌아오는 부모님 생신날 미역국 끓여볼 생각은 단 한번도 하지 못했다.

생애 처음으로 미역국을 끓였던 그날, 결심했다. 매년 부모님 생신 때마다 꼭 내 손으로 미역국을 끓여 드리겠다고 말이다. 그런데 하다 보니 일이 커졌다. 명색이 생신인데 미역국만 단출하게 끓여드리기가 죄송했다.

이제까지 어머니께 얻어먹은 밥이 몇 끼인데, 그깟 밥 한 끼 내 손으로 못 차릴까? 이왕 미역국을 끓여드리는 김에 집으로 부모님을 초대해 직접 생신상을 차려드리기로 했다.

처음 생신상을 차리던 날

40살이고 싶다는 어머니 말에 초는 4개만 꽂았다.
▲ 2015년 친정어머니의 생신상 사진 40살이고 싶다는 어머니 말에 초는 4개만 꽂았다.
ⓒ 송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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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어머니께 생신상을 차려드렸던 날은 지금도 생생하다. 맛있으면서도 내가 따라 하기 쉽고, 이제까지 부모님께서 드시지 못했을 법한 음식! 이 삼박자를 고루 갖춘 메뉴를 선정하느라 요리 블로그를 뒤지고 또 뒤졌다. 다행히 다양한 생신상 메뉴와 요리과정을 올려준 친절한 블로거들 덕분에 한시름 덜었다. 결전의 날을 준비하며 요리과정을 몇 번이고 머리로 그리며 열심히 메모했다.

아주 무더웠던 여름날, 생애 첫 생신상을 앞두고 어머니는 뭘 이렇게 많이 준비했느냐며 많이 감동하신 듯 보였다. 그런데 어머니께서 감격의 첫 마디를 떼기도 전에, 처음 본 케이크 촛불이 무서웠는지 당시 4개월이던 첫째가 자지러지게 울어버리고 말았다. 너무나 서럽게 악을 쓰며 울던 아이 때문에 다들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그렇게 첫 생신상의 추억은 가슴에 꾹꾹 눌러 담을 새도 없이 순식간에 지나가 버렸다. 하지만 지금도 우리 가족은 케이크에 촛불을 붙일 때면 다시 그날의 추억을 떠올리고는 한다. 첫째가 촛불을 보고 또 울지는 않을까 눈치를 보면서.

어머니 생신상을 차렸는데, 아버지 생신을 그냥 지나가기가 뭣했다. 아버지 생신상도 차리겠다고 큰소리쳤다. 그러다가 이왕 친정 부모님 생신상 차리는 김에, 시부모님 생신상도 차려 보겠다고 '선언'하고 말았다. 그렇게 매년 양가 부모님의 생신상을 4번씩 차리게 되었고, 올해가 생신상을 차린 지 3년째다.

지난 월요일은 바로 친정어머니의 생신이었다. 전날 어머니께서 전화로 "날도 더운데 조금만 차리라"고 당부에 또 당부했다. 지난해만 해도 어머니는 "한 번 했으면 됐지, 그냥 편하게 밖에서 사 먹자"고 나를 설득하셨다. 하지만 '일 년에 한 번이고 이것은 매년 내가 꼭 이루어야 하는 버킷리스트'라는 내 고집에 어머니는 두 손을 다 드시고 말았다.

사실 생신상을 차리는 날은 나도 모르게 긴장하게 된다. 행여 시간이 부족해 음식을 다 못 할까 봐 나도 모르게 아침 일찍 일어나게 된다. 평소에는 계량을 정확히 안 하고 대충 요리하는 편인데, 이날만큼은 자꾸 요리법을 확인하고 계속 간을 보게 된다.

그런데 평소와 달리 한꺼번에 많은 요리를 하다 보면 꼭 실수하게 된다. 이번에도 새로 산 압력밥솥에 너무 밥을 많이 해서 밥은 덜 익고, 닭봉 구이는 오븐 시간 조절을 잘하지 못해서 살짝 덜 익은 것이 하나둘 있었다. 닭이 안 익었다고 매정하게 맛을 평가하는 여동생과는 달리, 친정어머니는 다 맛있다며 애썼다고 계속 칭찬해 주셨다.

그날 밤, 또 어머니께서 전화를 하셨다. 더운 여름에 고생했다며 자신은 너무나 행복하다는 어머니의 목소리에 눈물이 찔끔 나올 뻔했다. 그렇게 어머니와 나 사이의 행복한 생신상 추억은 한 겹이 더 쌓이게 되었다.

'시집간 딸은 칼 안 든 도둑'이라는 말이 있다. 매주 꼬박꼬박 찾아와서 밥도 얻어먹고 김치와 밑반찬에서부터 채소까지 이것저것 싸들고 가는 나를 보면, 도둑도 이런 도둑이 없지 싶다.

'덜' 후회하고 싶어 차리게 된 생신상

여름 생신상에는 늘 오이미역냉국을 올리는데, 사진에는 냉국이 빠져있다.
▲ 작년 친정어머니의 생신상 여름 생신상에는 늘 오이미역냉국을 올리는데, 사진에는 냉국이 빠져있다.
ⓒ 송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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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언컨대 나는 효녀도, 효부도 아니다. 다만 나중에 조금이라도 '덜' 후회하고 싶을 뿐이다. 먼 훗날 부모님께서 이 세상에 안 계실 때 상다리 휘어지도록 제사상을 차린들, 그 음식을 부모님이 맛볼 수 있다는 보장이 있을까? 그저 부모님께서 내 곁에 계실 때, 미역국 한 그릇이라도 더 직접 끓여서 대접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생신상 몇 번 차리고 알량한 용돈을 드리는 것만으로는, 앞으로도 영원히 내가 부모님께 진 빚을 갚을 수 없을 것이다. 두 아이를 키우면서 나는 그것을 더욱 절실히 느낀다. 내가 아주 어린 아기였을 때부터 시집을 간 지금까지 내가 부모님께 저지르고 있는 만행은 책 스무 권으로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다만 내가 살아 있는 동안은 해마다 부모님과 시부모님의 생신을 축하해 드리고 싶다. 맛있는 음식을 정성껏 차려드리며, 그분들에게 진 빚을 조금이라도 갚을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그렇게 매년 생신상을 차려드리게 되면서 옆에서 거들어주기만 하던 내 남편도 변했다. 지난해 생애 처음으로 미역국을 끓여 부모님께 손수 대접한 것이다.

거한 생신상이나 직접 끓인 미역국이 아니라도 괜찮다. 즉석 식품 '3분 미역국'이라도 좋다. 나를 이 세상에 출산하시며 고통과 환희의 순간을 겪어내셨던 소중한 부모님을 위해 꼭 한 번 미역국을 끓여 대접하는 게 어떨까?

그분들이 이미 이 세상을 떠나셨더라도, 나의 손으로 꼭 한 번 미역국을 요리해보자. 끓이면서 이 세상에 나를 낳아주시고 찬란한 것들과 연을 맺게 해준 그분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면 그 마음이 하늘에 닿으리라.

'다음 번에'라고 미루기에는 우리에게 시간이 없다. 고마움을 표현할 사이도 없이 언제 야속한 운명이 우리를 끝없는 후회의 구렁텅이로 빠뜨려 버릴지 모른다. 그러니 꼭 생신이 아니더라도, 덧없는 시간이 가버리기 전에 시도해 보자. 미역국 한 그릇을 통해 부모님께 감사와 사랑의 인사를 전할 수 있었으면 한다.

딸을 잡던 손으로 이제는 손자의 손을 잡아주시는 어머니의 뒷모습
▲ 3대의 뒷모습 딸을 잡던 손으로 이제는 손자의 손을 잡아주시는 어머니의 뒷모습
ⓒ 송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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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ㅣ김준수 기자

덧붙이는 글 | 제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가 되고 생애 처음으로 받은 독자원고료는 바로 우리 어머니께서 주신 것이었습니다. 이 기사를 통해 늘 저를 응원해주는 부모님께 감사 인사를 전해 봅니다.



태그:#생신상, #효도, #미역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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