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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위기를 기회로 여기는 사람에게는 즐거움이 함께합니다. 그가 품는 희망은 현실로 이루어집니다. 그동안 너무나 아파서 가슴이 막막했던 문제들을 해결해 오며, 작기만 했던 가능성은 어느덧 기대 이상으로 실현됐습니다. 그리고 삶의 희망을 갖게 해주었습니다. 그 과정들을 잘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던 중심에는 '사람은 상처 받고 고통만 당하기엔 정말 소중한 존재'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약 24년(1991~2014년) 동안 조카와 함께 울고, 웃던 나날들의 경험이, 어떻게 풍성한 열매로 자리하게 되었는지 하나하나 기록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 기자 말

덕이가 초등학교 2학년이 되고 2학기부터는 주말에 자유롭게 시간을 보낸다. 토요일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온 이후부터 일요일 오후 4시까지, 자유 아닌 자유시간이었다. 일 년 중에 약 30주, 당일이든 1박2일이든 주말에는 할머니나 다른 가족과 함께 여행을 다니곤 했다. 무엇보다도 많이 다양하게 체험을 하게 되면 적응력이 좋아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크게 작용을 했다.

만약 여행을 가지 않는다면, 주말에는 토요일 학교 끝나고 일요일 오후 4시까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시간에는 덕이가 밤새 게임을 하든, 식사하든, 안 하든 선택권을 주었다. 단 일요일 오후 4시면 집에서 새로운 한 주를 위하여 숙제한다거나 일주일의 학교생활, 학원 등에 대하여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래서일까? 덕이는 한 번도 "게임 시간을 더 주세요"라고 나에게 요구한 적이 없었다. 덕이에게 게임 시간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지 물어보니 "충분히 하고 있다"고 했다. 아마도 게임할 때는 충분히 하고도 남을 시간을 허용해 주어서 그런 것 같다.

덕이에게 '거짓말쟁이'가 된 나를 덕이는 전보다 훨씬 자유롭게(다소 부정적인 말과 태도로) 대하고 있다(관련 기사 : 덕이에게 요리사 권했다가... "고모는 거짓말쟁이"). 싫다는 표현을 직접 하지 않던 덕이가 이제는 무슨 이야기를 하면 "싫어"라고 한다. 아마도 태권도 관장님에서 다른 직업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유도했던 점이 고모에게 반항하는 큰 계기가 된 듯하다.

한편으로 이유야 어찌 되었든 간에 반항하는 듯한 모습이 오히려 다행이다 싶었다. 일반 아이들의 성장 과정에 맞게 반항이 찾아온 것에 대한 일종의 안도감이 든다.

아픈 자녀를 둔 부모들의 심정이 아마도 나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아이로 인하여 신경 쓰이더라도 그저 아이가 일반 아이들과 비슷한 성장기를 맞이하기를 바란다. 또 다른 아이들 처럼 행동하는 모습을 기다릴 것이다.

부모 입장에서는 더 신경쓸 일이 많다고 해도 아이는 건강하다는 입증일 수 있으므로 그럴 것이다. 덕이에 대한 나의 바람 또한 예외는 아니다. 그래서 나에게 "싫어"라고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덕이가 나의 말을 듣지 않아 답답하고 화나기보다는 '다행이다' 싶다. 그런 모습이 아직은 귀엽다.

고모 : "덕아, 이번 주는 어디를 가 볼까?"
(우리 집 거실에는 세계지도와 한국지도를 붙여 놓고 다니는 곳마다 표시를 해두었다.)
덕 : "안 가."
고모 : "안~ 간다고?"
덕 : "안 가."
고모 : "덕이는 여행 보다는 다른 것을 하고 싶어서 여행가기 싫다는 거니?"
: "안 가."

덕이가 한번 고집을 부리면 쉽게 풀지 않고 오~래 간다는 것을 안다. 어떤 현상이나 사람에 대한 이미지가 생기면 그것을 머리에서 굳힌다는 점도 안다. 그래서 이런 반응을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다.

사랑하는 덕이, 얼마나 더 아파야 할까

나는 직접 "너는 태권도 관장님이 될 수 없어"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지금처럼 덕이가 점차 알아가길 바랐다.
 나는 직접 "너는 태권도 관장님이 될 수 없어"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지금처럼 덕이가 점차 알아가길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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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이 입장에서는 요즘에 이런 생각을 지닐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엇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뭔지 모를 '태권도 관장'님이 될 수 없을 것 같은 분위기가 불안'하게 여겨졌을 것이다. 사람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정확한 원인을 모른채 느끼게 되는 소위 '막연한 불안'이라고 한다.

태권도 관장님의 탁월한 운영원칙과 운영방법으로 태권도관에 아이들이 점점 늘어났다(덕이 관장님은 점차 태권도관 여섯 곳을 운영). 똑똑한 또래들 그리고 머리 좋고 눈치 빠른 동생들이 무더기로 들어왔다. 그래서 덕이도 말로 정확히 표현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태권도관 동생들이 유치원을 넘어 초등학교에 입학하기만 하면 덕이의 지도를 싫어하고 무시한다는 것을. 태권도관을 가끔 방문했던 고모인 나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나는 직접 "너는 태권도 관장님이 될 수 없어"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지금처럼 덕이가 점차 알아가길 바랐다. 특히 갑작스럽게 놀라거나 불편한 상황은 회복된 덕이의 건강을 해칠 수도 있었다. 그러므로 더욱 조심스러웠다. 고등학교 입학을 앞둔 덕이가 어린아이처럼 "나는 태권도 관장님이 될 거예요"라고 주위 사람들에게 말할 때, 그들의 시선은 덕이를 있는 그대로 보았다. 사람들의 태도가 아이를 존중해 주는 쪽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덕이가 놀림의 대상이 되는 것을 막아주고 싶었다.

고모 : "사랑하는 덕아, 고모가 요즘 덕이에게 다른 직업도 생각해 보자고 권해서 화가 난 거니?"
덕 : "..."
고모 : "고모가 이런 말을 하면 덕이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어. 그렇지만 덕이가 충분히 혼란스러울 수 있을 것 같아. 혹시 그런 거니?"
덕 : "..."
고모 : "다른 친구들이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 다닐 때의 꿈이 바뀌었다고 하면 덕이도 바꾸어야 할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지금 덕이도 여러 가지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할 수도 있을 것 같아."
덕 : (나를 빤~히 바라본다)
고모 : "직업에 대하여 이런저런 생각을 한다는 것은 건강하고 훌륭한 어른이 되기 위한 과정이야. 그래서 많은 사람이 덕이와 같은 사춘기에는 주로 '무엇을 하면서 살아야 할까' 하고 직업에 대하여 생각을 한단다. 할머니, 태권도 관장님, 그리고 고모도 그랬고..."

이쯤 이야기하고 덕이를 살펴보았다. 어느 정도 덕이의 굳었던 표정이 풀리는 듯했다.

고모 : "그러니까 덕아. 덕이가 지금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면서 고모에 대하여 불편한 감정이 오래가도 괜찮아. 덕이가 나에 대하여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느낌이 들든지 네가 그렇다면 그럴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을 거로 생각해. 고모는 덕이를 사랑하니까 네 모습 그대로 존중해주고, 지켜주고, 함께 할 거야."

덕이가 자신(어쩌면 많은 도움이 필요하고, 남을 지도하기 보다는 지도를 받아야 한다는 것)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일 때 가장 건강하게 생활할 수 있을 텐데... 덕이 스스로 남들과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기까지, 덕이는 얼마나 아파야 할까. 눈물이 난다.


태그:#청소년, #반항, #대화, #있는 그대로 인정, #존중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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