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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성교육진흥법'과 인성 교육의 관계

지난 7월 21일 '인성교육진흥법'의 시행과 함께 드디어 학생들의 인성 교육이 관 주도의 정책사업화가 되는 실정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앞으로 교육부와 각 교육청, 그리고 학교는 인성과 관련된 사회적 덕목을 교육체계 안에서 키우기 위한 계획을 수립해 실천하고 또 해마다 그 실적을 평가받아야 하도록 법으로 정해진 것입니다.

벌써부터 지역 교육청에서는 2016년도 '법제화된 인성 교육' 계획을 세우고 실적을 만들어내기 위한 궁리에 머리를 싸매고 있습니다. 학교 현장에는 '덕목 선정을 위한 설문 조사' 등의 교육청 공문이 새롭게 생산되어 날아들면서 과연 법으로 강화된 인성 교육이 어떤 후폭풍을 몰고 올지에 대해 긴장하고 있습니다. 오랜 교직 생활 동안 학생들의 인성 교육을 고민해 온 한 교사로서 착잡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인성 교육, 이 정도면 정말 절박한 국가적 문제입니다. 그런데 법이 아니라도 인성 교육, 학교에서 당연히 이루어져야 하는 것 아닌가요? 지금까지 국가적 법률이 없어서 학교에서 인성 교육 제대로 되지 않았던 것인가요? 결코 법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 청소년들의 인성 교육, 이거 결코 '법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근본적으로 현재의 극심한 물질만능주의, 학벌주의, 교육의 입시 블랙홀 현상과 지독한 경쟁주의 등이 꿈쩍도 하지 않는다면 과연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의 진정한 인성 교육이 법으로 강제한다고 해서 가능하기나 한 걸까요?

함께 고민해야 할 절박한 국가적 문제

인성은 사회적 환경, 가정, 제도 교육이 모두 영향을 미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사회, 가정, 제도 교육 모두 인성 교육을 위한 여건을 전혀 갖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승자 독식'이 키워드인 우리 사회는 언제부턴가 정의와 배려는 찾아보기 어렵고 이기와 부패, 거짓이 오히려 인간다움을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오늘도 언론을 통해 청소년들이 보고 배우게 되는 우리 사회의  모습, 과연 어떻습니까?

1등만 기억하는 세상 속에서 입시 경쟁의 늪에 빠져 있는 우리들 가정의 모습은 또 어떻습니까? 성적 상위 1%에 속한 고3 수험생이 "왜 1등을 못하느냐, 명문대에 들어가라"며 자주 체벌을 가하고 폭언하는 친어머니를 살해한 충격적인 사건은 교육적 혁신을 서둘러야 하는 우리 현실을 비극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전문가들은 "범행을 저지른 아들과 좋은 성적을 강요한 어머니 모두 성적 지상주의 풍조의 희생양"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진학 실적으로 학교와 교사의 능력이 평가되고 그래서 모든 과정이 입시에 맞춰진 제도 교육 현장에서 생각해 보면, 우리 청소년들, 교육을 통해 올바른 가치관을 형성해 가는 일 어림도 없습니다. 지금의 교육 현실대로라면 우리나라 청소년들은 사교육과 학업 경쟁에 내몰려 진정한 인간적 가치와 삶에 대해 생각할 겨를도 없이 어른이 되어버립니다. 그리고 그들이 권력층이 되고, 서민층이 되고, 낙오자가 되기도 합니다.

필연적으로 우리 정치에 진정한 덕치(德治)가 존재하지 못하고, 우리 사회에 배려와 나눔이 있지 못하고, 우리 경제가 불공정하게 돌아가는 악순환이 연속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인성 교육, 정말 절박한 국가적 문제입니다. 어떻게든 제대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인성 교육은 학교뿐만이 아니라 가정과 사회에서도 이러한 구조적 문제들을 조금씩이나마 변화시키려 노력하면서 전면적으로 함께 이루어져야 가능합니다. 그렇지만 그런 구조적 변화는 좀처럼 희망이 보이지 않고, 학생들은 지금도 인성 생각할 시간과 여유를 갖지 못하고 있는데, 또 그렇다고 사람을 키워야 할 교육자로서 참으로 중요한 인성 교육에 대해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는 현실이 학교 현장 교사로서의 크나큰 고뇌가 아닐 수 없습니다.

나무를 살리는 인성 교육을 위한 몇 가지 당부

현행 입시 제도를 그대로 둔 채 교육부에서 법적으로 강행하는 방식의 인성 교육이 과연 진정한 인성 교육이 될 수 있을지, 또 다른 생활기록부 항목만 늘어나 입시를 위한 '봉사활동', '창체활동'의 재판이 되는 건 아닌지에 대해서 여러 가지 문제가 제기되고 있습니다. 진흥법 공포와 관련된 교육부의 보도 자료를 보면 교육부에서도 이런 민감한 부분에 대해서는 조심하고 경계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법은 '교육부장관 및 교육감은 종합계획 및 시행계획에 따른 인성교육의 추진성과 및 활동에 관한 평가를 1년마다 실시하여야 한다'(「인성교육진흥법」 제16조(인성교육의 평가 등) ①)고 명시되어 있는 점 등에서 인성 교육의 본질을 벗어난 실적 위주의 파행이 야기될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게 합니다. 또한 특정 덕목을 지정하여 국가적 차원의 교육이 이루어지는 데 대한 학생의 기본권 침해 문제 등도 야기될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교육 주체들이 우려하고 있습니다.

현장 교사로서의 여러 가지 우려와 고뇌 속에서 메말라가는 가지만 어루만지는 인성 교육이 아니라 죽어가고 있는 나무를 살려낼 수 있는 진정성 있는 인성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절박감으로 감히 인성 교육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관계자분들께 몇 가지 당부 드리고 싶습니다.

먼저 기왕에 정부 차원에서 인성 교육의 절실함을 인식하게 되었으니 진정으로 인성이 바로 서게 하기 위해서라면 좀 더 진지한 철학적, 교육적 고민을 바탕으로 한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방안들이 모색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학교 울타리 안에만 강요하지 않고 이번 기회에 반드시 전 국가 차원의 실제적인 공동 노력이 될 수 있도록 힘써주기를 바랍니다.

또한 인성 교육이 학교 현장에서 결코 또 하나의 불가피한 업무나 공부, 또는 입시 준비가 되어서는 안 되고 어디까지나 요란하지 않게 지속적인 관심과 노력에 의해 열매가 맺어질 수 있도록 신중하게 접근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인성 교육에 대해 교육청이나 학교 현장에 업무적 부담을 추가하는 강제적 행사 요구나 공식적 실적 요구가 있어서도 안 될 것입니다. 또한 인성 교육 프로그램이나 그 이수 여부에 대한 '인증'이나 '평가' 도 없어야 할 것입니다.

인성은 성장기의 다양한 체험과 인식의 자극을 통해 사람과 자연과 세상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사유하고 공감하면서 자연스럽게 내면에 채워져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삶의 바탕이 되어 공동체 속에서의 의미 있는 인간적 삶으로 실천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이러한 인성의 본질을 결코 잊지 말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청소년의 인성 교육을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법 제정이나 재정 확보, 또 다른 교육 과정이나 프로그램의 생성이 아니라, 그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사람과 자연과 세상과 소통하며 내면을 채워갈 수 있는 최소한의 여유와 시간부터 돌려주기 위해 노력하는 일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태그:#인성 교육, #인성교육진흥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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