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숙적'인 한국과 일본의 라이벌전은 축구 역사에 있어서도 빼놓을 수 없는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5일 중국 우한 스포츠센터 스타디움에서 77번째 한일전이 열린다. 2013년 한국에서 열린 동아시안컵 이후 2년 만의 재대결이자 울리 슈틸리케 감독 부임 이후 첫 한일전이기도 하다.

한국은 일본을 상대로 역대 한일전 전적에서 40승 22무 14패로 확고한 우위를 점하고 있다.

역대 전적 우세하지만... 최근 흐름 좋지 않은 한일전

 지난 2013년 7월 28일 서울 잠실종합운동장에서 열린 2013 동아시안컵축구대회 남자축구 한국과 일본의 경기에서 승리한 일본 선수들이 환호하고 있다.

지난 2013년 7월 28일 서울 잠실종합운동장에서 열린 2013 동아시안컵축구대회 남자축구 한국과 일본의 경기에서 승리한 일본 선수들이 환호하고 있다. ⓒ 연합뉴스


그러나 최근의 흐름은 다소 좋지 못했다. 일본을 상대로 한 마지막 승리는 2010년 5월 24일 사이타마에서 열린 원정 평가전이다. 한국은 2-0 쾌승을 일군 뒤 무려 5년째 일본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4차례 격돌했지만 2무 2패다.

2011년 아시안컵 준결승에서는 승부차기 접전 끝에 분패하여 한국의 우승과 캡틴 박지성의 마지막 A매치를 망쳤다(그해 일본은 아시안컵 우승). 같은 해 8월 평가전은 한국에 0-3의 완패를 안긴 속칭 '삿포로 참사'로, 당시 순항하던 조광래호의 몰락에 실마리를 제공하기도 했다.

가장 최근의 대결이었던 2년 전 2013 동아시안컵에서도 한국은 한국축구의 중심인 잠실벌에서 1-2로 패하며 홍명보호의 어두운 미래를 예고하기도 했다. 한국은 동아시안컵 전적만 놓고 따져도 일본에 1승 2무 2패로 열세다. 적어도 최근의 한일전 전적을 놓고 보면 한국이 오히려 일본에 도전하는 입장에 가까운 상황이다.

더구나 지금의 일본에는 한국축구와 악연의 연결고리가 하나 더 생겼다. 바로 일본대표팀의 사령탑을 맡은 바히드 할리호지치 감독의 존재다. 할리호지치 감독은 지난해 브라질월드컵에서 알제리 대표팀을 이끌고 한국을 4-2로 완파하며 홍명보호를 끝장낸 주역이기도 하다.

할리호지치 감독은 월드컵 이후 터키 트라브존스포르의 사령탑을 거쳐 3월부터 하비에르 아기레 감독의 후임으로 일본대표팀의 지휘봉을 잡게 됐다. 한국축구로서는 일본과의 이번 재대결에서 다시 한 번 필승의 전의를 불태울 수밖에 없다. 동기부여가 더 늘어난 셈이다.

2014 브라질 월드컵 국가대표팀 감독 2014 브라질 월드컵 당시 알제리 국가대표팀 감독이었던 바히드 할리호지치의 사진. 그는 2015년 현재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다. 사진은 2009년 11월 17일 기자회견 당시의 모습.

▲ 2014 브라질 월드컵 국가대표팀 감독 2014 브라질 월드컵 당시 알제리 국가대표팀 감독이었던 바히드 할리호지치의 사진. 그는 2015년 현재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다. 사진은 2009년 11월 17일 기자회견 당시의 모습. ⓒ 연합뉴스/EPA


공교롭게도 양 팀의 현재 상황은 매우 대조적이다. 슈틸리케 감독이 이끄는 한국은 1차전에서 예상을 깨고 홈팀 중국을 2-0으로 완파하며 쾌조의 스타트를 끊었다. 슈틸리케 감독이 과감하게 발탁한 이종호-김승대 등 신예들이 A매치 데뷔전부터 골을 기록하는 등, 내용과 결과 모두 최상의 평가를 받고 있어서 분위기도 매우 좋다. 대회 초반 조심스럽던 슈틸리케 감독도 이제는 '우승도 가능하다'며 숨겨놓았던 자신감을 조금씩 드러내고 있다.

반면 일본대표팀의 분위기는 초상집이다. 할리호지치 감독이 이끄는 일본은 1차전에서 만만하게 여겼던 북한에 1-2의 충격패를 당했다. 북한 특유의 투박하지만 거친 축구에 제대로 당했다. 기술적인 플레이에 능하지만 강한 압박과 피지컬에 취약한 모습을 보이던 일본 축구의 고질병을 드러냈다는 평가다.

할리호지치 감독은 부임 후 평가전에서 3연승의 순항을 거듭했으나, 지난 6월 브라질월드컵 2차 예선에서 최약체 싱가포르에 충격의 0-0 무승부를 기록하는 수모를 겪었다. 이어 또 한 번의 졸전을 펼치며, 최근 일본 축구계 내부에서 비판 여론이 급격하게 높아진 상황이다. 이번 한일전이 할리호지치 감독의 입지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승부가 중요하지 않은 한일전? 그런 건 없다

붉은 악마와 하나 된 대표팀 28일 오후 인천 문학경기장에서 열린 제 17회 인천아시안게임 축구 남자 8강 한국-일본 경기에서 1:0으로 승리한 한국 선수들이 관중들의 응원에 맞춰 함께 기뻐하고 있다.

▲ 붉은 악마와 하나 된 대표팀 지난 2014년 9월 28일 오후 인천 문학경기장에서 열린 제 17회 인천아시안게임 축구 남자 8강 한국-일본 경기에서 1:0으로 승리한 한국 선수들이 관중들의 응원에 맞춰 함께 기뻐하고 있다. ⓒ 이희훈


이번 한일전은 양국 모두 주력 해외파 없이 자국 리그와 아시아 무대에서 활약 중인 선수들 위주로 치르는 경기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의미가 퇴색되진 않는다. 승패가 중요하지 않은 한일전은 없다. 그만큼 국민적 기대와 관심이 높은 경기가 바로 한일전이다.

타이틀이 걸린 메이저대회는 물론이고 단순한 친선경기라도 한일전 결과에 따라 양국 대표팀의 방향이나 감독들의 운명까지 좌우된 경우가 적지 않다. 일본의 경우 1997년 프랑스월드컵 예선 당시 가모 슈 감독이 홈에서 차범근 감독이 이끌던 한국에 1-2로 역전패당한 도쿄 대첩 이후 경질당했다. 가모 슈 감독의 경질은 올해 아기레 감독 전까지 일본 대표팀 감독이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중도에 경질된 마지막 사례이자, 한일전 결과로 경질된 유일한 사례로 남아있다.

한국도 이듬해 차범근 감독이 일본과의 3.1절 평가전에서 패한 이후 국민적 비난에 시달리며, 그해 열리는 월드컵 본선준비에 차질을 빚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당시 일본의 오카다 다케시 감독은 1997년 프랑스월드컵 최종예선 6차전과 1998년 3월 1일 친선경기에서 한국에 '한일전 사상 첫 2연패'를 안겼다.

하지만 한국은 12년 뒤 오카다 감독이 두 번째로 지휘봉을 잡은 일본대표팀을 상대로 허정무호가 2013년 2월 동아시안컵과 5월 사이타마 평가전(일본의 월드컵 출정식)에서 2연승을 거두며 완벽한 복수에 성공했다.

역대 양국 사령탑 중 한일전 A매치 무패 기록을 보유한 사령탑은 허정무와 알베르토 자케로니 전 감독이다. 허정무 감독은 2007년 두 번째로 한국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이후 일본을 상대로는 2승 1무로 강한 모습을 보였다. 이탈리아 출신의 알베르토 자케로니 전 감독은 2010년부터 2014년까지 일본의 지휘봉을 잡으며 2승 2무로 한국전에 강한 면모를 드러냈다. 오카다 감독 이후 한국에 2연패를 안긴 유일한 외국인 지도자이기도 하다.

한국이 일본을 상대로 한 A매치에서 2연패를 당한 건 두 차례지만, 3연패 이상을 당한 경우는 아직 한 번도 없다. 한국대표팀 사령탑으로서 첫 한일전을 치르게 된 슈틸리케 감독의 어깨가 무거운 이유다. 슈틸리케 감독은 한일전이라는 라이벌전의 분위기나 과거의 복수심에 휩쓸리기보다 일단 현재의 목표와 구상에 충실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그라운드에 들어서는 이상은 철저히 이기기 위한 경기를 펼쳐야 한다. 바로 열흘 뒤가 광복절인 데다 각종 역사적-정치적 이해관계로 한일관계가 민감한 상황에서 한일전을 바라보는 국민적 정서는 단순히 축구 경기를 뛰어넘기 때문이다.

중국전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준 젊은 선수들이 쾌조의 컨디션을 유지하고 있다. 일본을 효과적으로 공략한 북한의 모습은 슈틸리케호에도 좋은 힌트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일본전에 최대의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이는 장신 공격수 김신욱의 활용법도 주목된다. 양국축구의 자존심과 이해관계가 걸려있는 77번째 한일전, 그 총성 없는 전쟁은 이미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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