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경남의 진주 – 진주(晉州)
목포 – 광주송정(호남선) – 순천 – 진주(경전선)

집에서 나와 목포역까지 택시를 탔다. 군대에서 휴가를 나온 아들의 귀대를 아내가 자가용으로 목포역까지 배웅하였다. 시간은 촉박한데 길을 잘못 들어섰고 차가 정체되어 기차를 놓칠 뻔했던 초조함을 이야기하였다.

"급하면 택시를 타야해. 택시는 어떻게 하든지 시간에 늦지 않게 대주니까."

목포-광주송정-순천-진주 철길(이 자료는 KTX Magazine 한국철도노선도에서 부분을 인용하였다. - 편집자)
▲ 철길 목포-광주송정-순천-진주 철길(이 자료는 KTX Magazine 한국철도노선도에서 부분을 인용하였다. - 편집자)
ⓒ 코레일

관련사진보기


목포역 전경
▲ 기차역 목포역 전경
ⓒ 최성

관련사진보기


목포역 안에서 본 철길과 기차
▲ 철길과 기차 목포역 안에서 본 철길과 기차
ⓒ 최성

관련사진보기


목포는 항구다. 바다를 통해 들어온 모든 문물의 관문이다. 목포역은 목포항과 바로 이웃하고 있고, 항구까지 연결된 철길 하나가 최근에 폐쇄되었다. 서울과 부산을 가는 기차도 목포에서 시작한다. 기차여행의 첫 목적지를 진주로 정했다. 목포역에서 진주역로 가는 기차는 9:20에 출발하여 부전역까지 가는 무궁화호 하나뿐이다.

대단히 더운 날씨이나 기차 안은 긴팔 옷을 걸쳐야할 정도로 냉방이 잘 되었다. 벼가 자라는 벌판과 나무와 풀이 우거진 산은 녹음으로 통일되어 있다. 기차는 햇볕의 산물인 녹음을 칼로 자르듯이 달리고 있다. 차장으로 스치는 풍경은 언제나 한 번도 같은 모습이 아니다. 자가용을 운전하면 절대 보지 못할 여유이다.

함평역과 철길
▲ 기차역 함평역과 철길
ⓒ 최성

관련사진보기


함평역은 학교면 사거리에 있다. 호남선 복선화 공사를 하면서 기존에 있던 학교역(학다리역)을 옮기면서 2001년에 함평역으로 이름을 바꿨다. 학교역은 일제 강점기인 1913년 호남선 개통과 함께 개업하여 증기기관차에 물을 공급하기 위한 급수탑이 있을 정도로 규모가 크고 사람들의 왕래가 많았다. 일제 식량수탈의 근거지였던 호남에서 학교역은 중간지점의 구실을 했을 것이다.

학교면 사거리에 있는 집에 지금도 어머님이 살아 계시고 내 유년의 꿈이 묻어있는 곳이다. 어렸을 때, 기적소리를 듣고 기찻길이 보이는 높은 곳에서 일하다 오가는 기차를 보며 하염없이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을 다졌다.

기차는 나주에서 영산강 옆을 지난다. 산은 강을 만든다. 그러나 영산강은 강이 산을 만들었다고 할 만큼 강과 바다가 넓은 면적에서 만나고 있었다. 영산강하굿둑이 만들어지고 나서 많은 곳이 간척되어 논으로 변한 오늘, 물이 중심이던 나주의 옛 모습을 생각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영산강에 있었던 영산포항의 옛 모습(이 자료는 나주역에 전시된 사진을 2014. 11. 18. 촬영한 것이다.)
▲ 영산포항 영산강에 있었던 영산포항의 옛 모습(이 자료는 나주역에 전시된 사진을 2014. 11. 18. 촬영한 것이다.)
ⓒ 최성

관련사진보기


영산포항 등대가 있는 맞은편에 영산포역이 있었다. 일제 강점기에 나주평야에서 생산된 물산을 배와 기차로 목포까지 운반하며 흥청거렸던 곳이다. 1929년 광주로 통학하던 한국과 일본학생들이 충돌하여 광주학생독립운동이 시발되었던 나주역과 통합되어 나주역으로 다시 태어났다.

목포에서 광주송정까지 호남선(목포-대전조차장)을 달리던 기차는 경전선(광주송정-삼량진)으로 철길을 바꾼다. 경전선 효천역부터 진주역까지 구간은 건설 당시 초기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서 철길에 경사와 굽이가 좀 있다. 그만큼 다양하고 여유 있는 풍경을 보여준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새마을호가 달려본 적이 없는 구간이다.

남평역을 지난 기차는 달리는 상태에서 뛰어 내려도 괜찮겠다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천천히 움직이고 3호차에서 기차 머리가 보일만큼 굽어진 철길이다. 금방 떨어질 것처럼 차창에 바싹 붙어 보이는 바위를 보면서 철길을 만들었던 노동자들의 애처로운 수고가 느껴진다. 빨라질수록 더 많은 것을 놓칠 수 있다.

기차를 타면 삶은 달걀에 깡통맥주를 마시는 것이 또 다른 재미인데 점심시간이 되도록 이동판매장이 보이지 않았다. 대신 무인판매기가 설치된 공간이 있었다. 음료뿐 식사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승객 중 우리만 집에서 준비해온 밥과 반찬을 먹었다.

"기차에 가면 다 있다며. 하여튼 남자들은 여자가 아니면 다 굶어죽을 거야."

정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뱉은 말은 언제나 공격의 여지를 남긴다.

섬진강에서 광양-진주간 노선을 직선화하기 위한 철교이다.
▲ 섬진강 섬진강에서 광양-진주간 노선을 직선화하기 위한 철교이다.
ⓒ 최성

관련사진보기


경상도와 전라도를 가르는 섬진강을 지났다. 하동에서 진주까지의 철길은 그림처럼 예쁜 길이다. 철길은 기차가 오르내리는 게 느껴지고 2차선 좁은 길과 함께 달린다. 철길이 개량되면 사라질 이 풍경에 연민이 있다.

경전선 복선화 공사를 하면서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
▲ 진주역 경전선 복선화 공사를 하면서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
ⓒ 최성

관련사진보기


진주역 소인
▲ 소인 진주역 소인
ⓒ 최성

관련사진보기

9:20에 목포역에서 출발한 기차는 14:18에 진주역에 도착했다. 진주역은 한옥 양식으로 지어졌다. 역에서 여학생에게 진주성에 가는 방법을 물었다.

"걸어가기엔 꽤 거리가 되니 여기서 아무 버스나 타고 가서 버스환승승강장에서 134번으로 갈아타세요."

친절함이 고마웠다. 택시로 진주성까지 갔다.

"진주 사람들이 너무 보수적이라 진주가 발전이 없다."

택시운전사는 경남의 교육과 문화의 중심이었던 진주가 자꾸 왜소해지는 느낌을 진주의 보수화에서 찾았다. 우리나라에서 서울과 수도권을 뺀 나머지 지역은 계속 왜소해지고 있다.

남강이 북쪽에서 남쪽으로 흐르다 진양호에서 잠시 머물고, 동쪽으로 물길의 방향을 바꾸는 지점에 진주가 있다. 전체적으로 동고서저 지형인 우리나라에서 대부분의 강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르지만 남강은 진주에서 낙동강을 만나기까지 동쪽으로 흐른다. 진주성은 남강을 낀 절벽에 돌을 쌓아서 만들었다.

진주성 촉석문. 이 곳 앞에 매표소가 있다.
▲ 촉석문 진주성 촉석문. 이 곳 앞에 매표소가 있다.
ⓒ 최성

관련사진보기


촉석루에서 본 남강. 진주는 남강으로 인해 더 아름다운 삶터이다.
▲ 진주 남강 촉석루에서 본 남강. 진주는 남강으로 인해 더 아름다운 삶터이다.
ⓒ 최성

관련사진보기


매표소에 배낭을 맡기고 촉석문을 지나 촉석루에 올랐다. 촉석루에서는 남강이 잘 보이고 강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아주 시원하다. 진주성에 들고 나는 것이 무료인 진주시민들이 더위를 피해 촉석루에 많았다. 진주성 안은 성벽을 따라 도는 산책로와 유물들의 주변이 아주 잘 꾸며져 있다.

의암이 있는 곳에서 본 촉석문
▲ 촉석문 의암이 있는 곳에서 본 촉석문
ⓒ 최성

관련사진보기


촉석루가 있는 절벽 아래에 있는 의암
▲ 의암 촉석루가 있는 절벽 아래에 있는 의암
ⓒ 최성

관련사진보기


충무공 김시민 장군 동상과 공복문
▲ 동상과 공복문 충무공 김시민 장군 동상과 공복문
ⓒ 최성

관련사진보기


촉석루 바로 밑에 있는 의암으로 갔다. 임진왜란 때 왜장을 유인한 논개가 투신하여 순국한 곳이다.

"여자들은 왜장을 껴안고 죽어갈 때, 남자들은 뭘 했을까?"

아내의 말에 할 말이 없다.

건축가 이수근이 우리나라 목탑 모형을 형상화한 건물이다.
▲ 국립진주박물관 건축가 이수근이 우리나라 목탑 모형을 형상화한 건물이다.
ⓒ 최성

관련사진보기


국립진주박물관에 들렸다. 건축가 김수근이 우리나라 목탑 모형을 형상화한 건물이다. 박물관 옆에 딸린 찻집 '民'에서 커피와 키위주스를 마셨다. 더위에 퍼진 몸에 활력을 주었다. 휴식은 여행을 지속할 수 있는 체력을 충전하는 구실을 한다. 중요한 일이다.

"국립진주박물관은 개관 당시 가야문화를 소개하고, 경남 지역의 고고학적 연구, 조사를 담당하는 기관이었으나, 1998년 1월부터는 임진왜란사를 전시주제로 하는 역사박물관으로 전환하였습니다." - 국립진주박물관 소책자

2층 임진왜란실과 1층 역사문화실, 두암실을 돌아보았다. 두암실에서 지역특별전으로 '사천'을 개최하고 있다.

촉석루와 남강, 진주교
▲ 진주성 풍경 촉석루와 남강, 진주교
ⓒ 최성

관련사진보기


전쟁 시에는 지휘본부로, 평상시에는 향시를 치르는 고시장으로 활용되었다.
▲ 촉석루 전쟁 시에는 지휘본부로, 평상시에는 향시를 치르는 고시장으로 활용되었다.
ⓒ 최성

관련사진보기


촉석문 앞에 있는 십이지상의 모형
▲ 십이지신상과 촉석문 촉석문 앞에 있는 십이지상의 모형
ⓒ 최성

관련사진보기


진주에서 권하는 먹거리로 진주냉면과 진주비빔밥이 있다. 저녁으로 비빔밥을 먹기 위해 진주성 가까이 중앙시장에 있는 식당을 찾았다. 자리에 앉자 선택의 여지없이 바로 비빔밥이 나왔다. 쌀밥에 애호박과 콩나물, 나물을 섞어 솥에서 비벼 약간의 육회를 얹어 주었다. 콩나물과 무에 작은 무 깍두기만한 선지가 들어 있는 국이 같이 나왔다. 반찬은 오징어무침과 배추김치로 단출하다.

진주 중앙시장에 있는 제일식당 비빔밥과 선지국, 반찬
▲ 비빔밥 진주 중앙시장에 있는 제일식당 비빔밥과 선지국, 반찬
ⓒ 최성

관련사진보기


진주 중앙시장
▲ 중앙시장 진주 중앙시장
ⓒ 최성

관련사진보기


전라도에서 비빔밥은 각종 재료와 밥이 한 그릇에 나오지만 먹는 사람이 직접 비벼야한다. 굳이 차이를 따진다면 전라도는 '이제 비빌 밥'이고 경상도는 '이미 비빈 밥'이다. 아내는 앞으로 유명한 식당에서 먹는 것을 삼가자고 한다. 우리가 손님이 아니라 돈을 주는 기계로만 취급받는, 영혼이 없는 가계라는 것이다.

남강과 진주문화예술회관
▲ 남강 남강과 진주문화예술회관
ⓒ 최성

관련사진보기


진주교와 남강이 잘 보이는 곳에 숙소를 잡았다. 남강이 보이는 곳에 창문이 있는 방은 다른 방에 비해 만 원이 더 비쌌다. 5만 원 방을 현금으로 계산하여 5천 원을 덜어냈다.

보름달이 뜬 남강 야경
▲ 남강 보름달이 뜬 남강 야경
ⓒ 최성

관련사진보기


진주교 야경
▲ 진주교 진주교 야경
ⓒ 최성

관련사진보기


촉석문 앞에 있는 십이지신상 야경
▲ 십이지신상 촉석문 앞에 있는 십이지신상 야경
ⓒ 최성

관련사진보기


촉석문 앞의 십이지신상 야경
▲ 십이시신상 촉석문 앞의 십이지신상 야경
ⓒ 최성

관련사진보기


촉석루 야경
▲ 촉석루 촉석루 야경
ⓒ 최성

관련사진보기


촉석루에서 본 의암 야경
▲ 의암 촉석루에서 본 의암 야경
ⓒ 최성

관련사진보기


남강 산책로에서 본 진주교
▲ 진주교 남강 산책로에서 본 진주교
ⓒ 최성

관련사진보기


진주성까지 이어진 남강 산책로는 아주 시원하고 야경이 꿈처럼 아름다웠다. 기차여행의 첫날이 잘 마무리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태그:#기차여행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아이들을 놀게하게 하고, 상식이 통하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는 초등학교교사. 여행을 좋아하고,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빚어지는 파행적인 현상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