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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그룹 신격호 총괄회장이 7월 28일 오후 서울 김포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롯데그룹 신격호 총괄회장이 7월 28일 오후 서울 김포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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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격호 회장이 일본 A급 전범 조카와 결혼했다?'

롯데그룹 경영권 다툼을 계기로 신격호 총괄회장 일가의 복잡한 가족사가 입방아에 올랐다.

'시게미쓰(重光)'란 일본 성이 화근이었다. 일제시대 '시게미쓰 다케오'로 창씨개명한 신격호(94) 총괄회장의 일본인 아내 시게미쓰 하츠코의 외삼촌이 바로 2차 대전 종전 당시 일본 외무상이었던 '시게미쓰 마모루(重光葵)'라는 설이 다시 불거진 것이다(관련기사: 누가 하든 '시게미쓰'인 롯데, 소프트뱅크 손정의에게 배워라).

때마침 국내 개봉한 영화 <암살>에서 시게미쓰 마모루가 미주리호 함상에서 의족을 짚고 나와 항복 문서에 서명하는 장면이 나오면서 시게미쓰 마모루와 신격호 처가 관련설은 극대화됐다. 그는 윤봉길 의사의 중국 상하이 홍코우 공원 폭탄 투척 당시 한쪽 다리를 잃었다.  

책 <신격호의 비밀> "신격호 아내 외삼촌이 일본 A급 전범"

언론인 정순태씨는 지난 1998년 <신격호의 비밀>이란 책에서 시게미쓰 하츠코의 외삼촌이 시게미쓰 마모루고, 유력 가문인 처가의 도움으로 일본에서 롯데를 키울 수 있었다고 밝혔다. 신 회장이 '시게미쓰'란 성을 쓴 것도 이 때문이란 것이다. 

이에 롯데그룹은 지난달 31일 '때늦은' 반론 자료를 냈다. 하츠코씨의 결혼 전 성은 '다케모리'로, 결혼 후 남편 신격호의 일본 성을 따랐을 뿐, 일본 외상 시게미쓰 마모루 집안과는 무관하다는 것이다.

롯데그룹 홍보담당자는 4일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 통화에서도 "하츠코씨 쪽에 직접 확인했더니 시게미쓰 가문과 아무 관련이 없다고 했고 일본 현지 시게미쓰 가문 관련 단체에도 확인했다"고 주장했다. 또 신격호 회장이 '시게미쓰'란 성을 쓴 것도 일제 시대 창씨개명 당시 본관인 '영산 신(辛)'씨가 '시게미쓰'로 바꿨던 것과 관련 있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신 회장 처가인 '다케모리' 가문이 유력 집안이어서 사업에 큰 도움을 줬다는 책 내용에 대해서도 "하츠코씨는 자기 집안이 평범한 가문이라고 전했다"고 밝혔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모친인 시게미쓰 하쓰코씨가 지난 1일 오후 서울 강서구 김포공항을 통해 출국하고 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모친인 시게미쓰 하쓰코씨가 지난 1일 오후 서울 강서구 김포공항을 통해 출국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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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 신씨 '시게미쓰'로 창씨개명... 일본 외무상 관련설은 '수수께끼'

<오마이뉴스>에서 확인 결과, 한자로 '매울 신(辛)'자를 쓰는 '영산 신(靈山 辛)씨' 가문이 '시게미쓰'로 창씨개명을 한 것은 사실이다. 정운현 전 오마이뉴스 편집국장이 편역한 <창씨개명>(학민사, 1994)에 실린 김동호 전 <월간 중앙> 국장이 쓴 '일제하의 창씨개명'(<월간중앙> 1976년 6월호)에는 주요 성씨의 창씨개명 사례를 담았다. 여기에 "영월 신(寧越辛)씨는 중광(重光; 시게미쓰), 신도(辛島; 가라시마)'로 기록돼 있다. '영월 신씨'는 영산 신씨에서 분관한 것으로, 영산 신씨 역시 '시게미쓰'로 창씨 개명했을 가능성이 높다.

박광종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원은 5일 "당시 신(辛씨) 성을 가진 사회 지도층 인사들 가운데 '시게미쓰'로 창씨개명한 사례가 많다"면서 "당시 문중이나 종친에서 바꿀 성씨를 정하는 사례도 많았다"고 밝혔다.

일제는 1940년 2월부터 창씨개명을 강행했고 그해 8월까지 6개월을 신고기간으로 정했다. 당시 일본 총독부 자료에 따르면 그해 9월까지 창씨개명한 호수는 전국 427만 호 가운데 320만 호로 80%에 육박했고, 인구수 기준으로는 2209만 명 가운데 1706만 명에 달했다.(김동호, '일제하의 창씨개명')

<월간중앙> 1976년 6월호에 실린 일제시대 창씨개명 기사에는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본관인 '영산 신씨'와 뿌리가 같은 '영월 신(寧越 辛)'씨는 중광(重光; 시게미쓰), 신도(辛島; 가라시마)'로 창씨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월간중앙> 1976년 6월호에 실린 일제시대 창씨개명 기사에는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본관인 '영산 신씨'와 뿌리가 같은 '영월 신(寧越 辛)'씨는 중광(重光; 시게미쓰), 신도(辛島; 가라시마)'로 창씨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 김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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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경남 울주군 삼남면 영산 신씨 집성촌에서 태어나 1941년 일본으로 건너간 신격호 회장도 당시 일가를 따라 '시게미쓰'로 창씨개명했을 가능성이 높다. 신 회장은 이미 1940년 고향에서 노순화씨와 결혼해 장녀 신영자 롯데재단 이사장을 낳았지만, 일본에서 두 번째 아내인 하츠코씨와 결혼해 신동주-동빈 형제를 낳았다. 이들 모두 '시게미쓰'란 성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이후 장남 신동주 전 부회장은 재미동포 사업가 딸인 조은주씨와 결혼했고 차남 신동빈 회장은 일본 다이세이건설 부회장 딸인 오고 미나미씨와 결혼했다. 두 사람 모두 성장기를 일본에서 보냈기 때문에 한국어가 서툴다. 신동주 전 부회장이 국내 방송 인터뷰에서 일본어로 이야기해 지탄을 받은 이유다. 그나마 신동빈 회장은 한국 롯데 경영을 맡으면서 한국어를 어느 정도 구사할 수 있었다.

다만 하츠코씨가 실제 시게미쓰 마모루 가문과 무관한지는 여전히 수수께끼다. 그동안 국내 각종 언론 보도에서 하츠코씨는 시게미쓰 마모루의 조카나 외손녀, 심지어 딸로 지목되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로선 이를 입증할 증거도, 부인할 증거도 확인할 수 없다.

또 <신격호의 비밀>이란 책이 나온 지 20년 가까이 됐는데 이제야 롯데가 반론을 낸 것도 석연치 않다. 정순태씨는 최근 한 언론 인터뷰에서 지금껏 해당 내용 관련해 롯데쪽에서 반론이나 정정 요구를 받은 적이 없다고 밝혔다.

이에 롯데 관계자는 "지금까지 책 내용까지 일일이 반박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결국 최근 롯데가 '일본 기업' 아니냐는 논란이 불거지자 뒤늦게 진화에 나선 셈이다.

하지만 지난 10여 년 사이 신격호 처가의 일본 전범 관련설은 정설처럼 굳어졌고 롯데는 '친일 기업'이란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이 역시 신격호 일가와 관련해선 논란이 커지는 것 자체를 경계하는, 재벌 총수 지배 체제의 대표적인 폐단인 셈이다.

○ 편집ㅣ최은경 기자



태그:#시게마쓰 마모루, #신격호, #롯데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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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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