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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서 주최한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독후감대회 수상자들이 8월 1, 2일 1박2일간 꿈틀리 인생학교에 참석한 모습
 오마이뉴스에서 주최한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독후감대회 수상자들이 8월 1, 2일 1박2일간 꿈틀리 인생학교에 참석한 모습
ⓒ 최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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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은 참 어색했다. 지난 8월 1일 오후, 마포구 상암동에 위치한 <오마이뉴스> 사무실 대강당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오마이뉴스>와 오마이북이 주최한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독후감 대회 시상식. 저자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와 26명의 수상자들이 처음으로 만나는 자리였다.

수상자 중 한 명이었던 나는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그 공간에서 어색하게 얼어붙어 있었다. 모인 이들은 중학교 1학년부터 60대 아저씨까지 참 다양했다. 시상식이 끝나면 이 낯선 이들과 함께 이른바 '꿈틀리인생학교'라는 이름으로 1박2일을 지내야 했다. 과연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

'꿈틀리 인생학교'는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를 읽고 꿈틀대고 있는, 혹은 꿈틀대고자 하는 독자들을 위해 마련한 학교다.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는 덴마크가 왜 행복지수 1위의 나라가 되었는지를 밝히고 우리의 길을 모색한 책이다.

이것이 매개자가 되어 '우리사회를 행복사회로 만들기 위해 나부터 꿈틀대자'고 모인 사람들의 가상마을이 '꿈틀리'이고, 그 이름을 따서 이번에 제1회 '꿈틀리 인생학교' 프로그램이 만들어진 것이다.

인생학교는 시상식을 마치고 강화도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짝꿍인터뷰! 추첨으로 뽑아서 나온 번호 대로 자리에 앉아 옆 사람과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다. 내 짝꿍은 순천에서 올라온 18살의 청년 강현이었다.

"전 컴퓨터를 정말 좋아해요. 그래서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되는 것이 꿈이에요. 그리고 대학생이 되면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모아 성능 좋은 컴퓨터를 사고 싶어요.(웃음)"

컴퓨터와 사랑에 빠진 강현이는 중학교 1학년 동생을 끔찍하게 아끼는 형이자, 부모님께 효도하고 싶어 하는 아들이었다. 또래의 남자 고등학생답지 않게 이상형을 꼽을 때 성격을 가장 중요시한다고 했다. 정말 '애어른'이라는 말이 딱 어울렸다. 학교이야기부터 생활이야기까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우리의 베이스캠프에 금방 도착하였다.

14세부터 60대 아저씨까지 모인 꿈틀리 인생학교

오마이뉴스에서 주최한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독후감대회 수상자들이 8월 1, 2일 1박2일간 꿈틀리 인생학교에 참석한 모습
 오마이뉴스에서 주최한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독후감대회 수상자들이 8월 1, 2일 1박2일간 꿈틀리 인생학교에 참석한 모습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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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 불은면에 자리 잡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학교는 폐교를 리모델링하여 만들었는데 예전에 영월에서 살았을 때 다녔던 작은 초등학교가 생각났다. 우리는 짐을 풀고 바로 대강당에 모여 자기소개 시간을 가졌다.

나이도, 사는 곳도 다른, 오늘 처음 만난 사람들이 이렇게 한 데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니! 조금 놀랐던 것은 대안학교에 다니고 있는 친구, 홈스쿨링을 하는 친구, 자퇴를 고민 중인 친구 등 색다른 환경의 아이들이 많았다는 점이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나 자신이 원해서'라고 말했다.

내가 고등학생이었을 때만해도 대안학교는 학교에 적응 못하는 문제아들만 가는 학교라는 인식이 있었다. 그리고 학교를 자퇴하고 집에서 혼자 공부한다는 생각은 아예 해본 적도 없었다. 당연히 중학교를 마쳤으면 고등학교에, 그것도 인문계 고등학교나 특목고에 가는 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기서 만난 아이들은 어린 나이에도 벌써 자신이 원하고 자신에게 맞는 삶을 찾아 움직이고 있는 것 같아 대견하다 못해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그 외에도 꿈을 찾고 싶어 왔다는 동생, 꿈을 지키고 싶다는 오빠, 아이들에게 참교육을 해주고 싶다는 선생님 등 그들만의 스토리를 들으며 공감하고 박수를 쳤다. 그렇게 우리는 한 발짝 서로에게 다가갔다.

맛있는 저녁을 먹은 후에는 다시 둘러 앉아 노래를 배우는 시간을 가졌다. '꿈틀리'의 주민이기도 한 민경찬씨가 진행을 맡았다. 노래를 배우면서 나는 자꾸 그의 얼굴을 주목하였다. 함께 온 3명의 초등학생 딸들과 기타를 치고 노래를 하는 얼굴에서 '행복'이 보였기 때문이다. 저 나이의 남자어른 얼굴에서 행복한 표정을 본 적이 언제였던가.

민경찬씨 가족을 보며 미래의 내 가족의 모습을 그려보며 설레기도 하였다. 이어진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독후감 나누기 시간'은 조금 진지한 분위기에서 시작되었다. 사실 이 시간은 캠프에 오기 전부터 가장 궁금했고 기다렸던 활동 중 하나였다.

최우수부터 가작까지는 <오마이뉴스>에 독후감 전문이 올라왔지만 입선과 장려는 공개되지 않기도 했고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이 책을 만나게 되었고, 무슨 생각을 하면서 읽었는지 궁금했다. 우리는 약 1시간동안 서로의 독후감을 읽으며 토론했다.

고등학교 2학년 세진이는 자기가 다니는 학교가 혁신학교 전환을 둘러싸고 갈등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이렇게 물었다.

"당당히 변화의 선두에 설 수 있으세요?"

순간 정적이 흘렀다. 우린 변화해야한다고 말하고 있지만 쉽게 'YES'라고 말하지 못했다. 이 문제에 대해 토론한 끝에 역시 고등학교 2학년인 강현이가 쓴 독후감 제목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떠나던가, 그냥 살던가, 아니면 바꿔버리던가'. 그렇다, 답은 저 3가지 선택지 안에 있다.

'OO대학교 12학번'이 꿈이었던 학창 시절

오마이뉴스에서 주최한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독후감대회 수상자들이 8월 1, 2일 1박2일간 꿈틀리 인생학교에 참석한 모습
 오마이뉴스에서 주최한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독후감대회 수상자들이 8월 1, 2일 1박2일간 꿈틀리 인생학교에 참석한 모습
ⓒ 신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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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나누기를 마치고 우리는 '사람책'을 만났다. 참석자들 한 명 한 명이 모두 사람책이었다. 많은 이야기를 들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책은 협동조합을 운영하고 있다는 김이준수씨였다.

"수익이 많지 않아도 나는 많이 쓰지 않으니까 괜찮고, 내 마음대로 원하는 시간에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어 행복합니다!"

아주 명쾌했다. 그리고 진심으로 행복해보였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과거의 내 모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나는 7살 때부터 16살 때까지 강원도 영월이라는 곳에서 자랐다. 영화관, 편의점, 심지어 그 흔한 패스트푸드점 하나 없는 아주 작은 동네였다. 여름에는 학교 앞 강에서 다슬기를 잡으며 놀았고, 겨울에는 이웃들과 함께 농사지은 고구마를 구워 먹었다. 경제적으로 풍족하지도 않았고 놀거리, 볼거리 하나 없었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10년이었다.

내가 읽은 책들의 대부분을 그때 읽었고, 큰 꿈을 품었으며, 경쟁하지 않고 더불어 사는 법을 배웠다. 그런데 중학교 3학년 말 무렵, 서울로 오게 되면서 많은 것이 바뀌었다. 서울의 친구들은 이미 고등학교 과정까지 예습이 끝나 있었고 특목고 준비로 열을 올렸다. 선생님들은 아이들에게 애정이 없었고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에게 맞춰 진도를 나갔다. 다른 세상에 혼자 떨어진 느낌을 받았고 학교에 적응하기 힘들었다.

월요일 아침에 눈을 뜨면 다시 학교에 가야한다는 생각에 우울했고 눈물이 많아졌다. 그러나 고등학생이 되고 점차 서울생활에 적응하면서 이런 환경에 무뎌지기 시작했고 내 꿈은 'OO대학교 12학번'이 되었다.

왜 그 대학에 가고 싶은지도, 그리고 무엇이 되고 싶은지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냥 남들이 좋다고 하니까, 누구나 원하는 대학이니까 그 대학에 가면 성공할 거라고 확신했다. 인생의 첫 관문이라는 수능을 보고 대학에 들어가면서 '고생 끝, 행복 시작!'일 줄로만 알았다. 선생님들께선 항상 그렇게 말씀하셨으니까.

"대학에만 들어가면 멋진 남자친구도 사귈 수 있고, 하고 싶은 것도 마음껏 할 수 있어! 그러니깐 일단 좋은 대학에 가렴! 그러면 좋은 직장을 얻고 좋은 남편을 만나겠지. 그럼 넌 행복하게 살 수 있어!"

왜 그때는 이 말이 인생의 진리인줄 알았을까. 막상 부딪힌 현실은 너무도 달랐다. 목표 없이 성적에 맞춰 온 대학 전공과목은 아무런 비전을 제시해주지 못했다. 서울로 처음 전학을 갔던 때처럼 다시 학교가 가기 싫었다. 누가 전공을 물어보면 돌아오는 대답은 "역사전공으로 뭐 먹고 살려고 하느냐, 무조건 복수전공을 해라"는 말이었다.

나는 또 그게 좋은 건가보다 생각하고 경영을 복수전공하기 시작했지만 역시나 답이 아니었다. 휴학기간 동안 나에 대해 돌아보면서 아동, 청소년 교육 관련 일을 하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정했지만 지금 와서 어떻게 방향을 잡고 나아가야할지 막막했다. 그동안 나는 내가 원하는 일을 찾기보다는 부모님이 자랑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는 번듯한 직업,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직업을 좇았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일을 하면 행복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런데 나 자신을 외면하면서까지 남에게 인정받는 삶이 과연 성공한 삶일까에 대해 생각해보니 그건 정답이 아니었다. 김이준수씨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가 했던 고민들과 결론이 결코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어 감사했다. 인생나누기는 이어진 술자리 시간에서도 계속 되었고,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더 깊고 많은 이야기를 밤새 꽃피웠다.

"지금, 이미 꿈틀거리고 있다"

오마이뉴스에서 주최한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독후감대회 수상자들이 8월 1, 2일 1박2일간 꿈틀리 인생학교에 참석한 모습
 오마이뉴스에서 주최한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독후감대회 수상자들이 8월 1, 2일 1박2일간 꿈틀리 인생학교에 참석한 모습
ⓒ 류하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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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날은 '10년 후의 나'를 서로 나누면서 시작됐다. 이어서 '행복 명랑운동회'가 열렸다.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에서 행복사회를 만드는 6개의 가치로 제시한 것 중에서 뽑은, '자유', '신뢰', '평등' 3개의 조로 나뉘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다 같이 동심으로 돌아가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내가 속했던 평등조는 800점이라는 놀라운(?) 점수로 1등을 차지했다. 1등 상품은? 모두 함께 나눠먹을 수 있는 과자선물세트! 역시 꿈틀리 인생학교다웠다. 마지막 소감 나누기시간에는 명랑운동회 조원들끼리 모여 앉아 돌아가며 '시 이어쓰기'를 했다. 자신이 첫 문장을 쓰면 다음 사람들이 돌아가며 그 문장에 이어지게끔 시를 완성하는 활동이었다.

나는 첫 문장을 '난 꿈틀거렸는가?'로 시작했다. 1박 2일 동안 과연 내가 꿈틀거리는 시도를 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고, 확인받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조원들에 의해 한 줄 한 줄 보태져 나에게 돌아온 시는 이에 대한 답을 해주고 있었다.

"지금, 이미 꿈틀거리고 있다."

다시 일상생활로 돌아온 지금, 꿈틀리 인생학교에서의 1박 2일이 한 여름밤의 꿈처럼 아득하게만 느껴진다. 그만큼 온전히 행복사회를 만들기 위해, 그리고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서 고민했던 시간이 없었던 터라 그 시간이 벌써부터 그립다. 인연을 맺은 많은 사람들도. 그러나 인생학교를 졸업했다고 끝이 아니다.

이르면 내년쯤, 강화도 <오마이뉴스> 시민기자학교 터에 덴마크의 '애프터 스콜레'와 비슷한 인생학교가 세워진다고 한다. 앞만 보고 뛰기보단 옆을 돌아보며 찬찬히 걸어갈 수 있는 자유를 느끼게 해주는 학교라고 했다.

'옆을 볼 자유'를 권장하는 학교, 대한민국에 이런 학교가 세워질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이 얼마나 가슴 벅찬 첫 걸음인가. 앞으로 이곳에서 시작될 무궁무진한 변화의 가능성을 기대하고 응원한다. 나 또한 꿈틀거리면서.

○ 편집ㅣ최은경 기자



태그:#꿈틀리 인생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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