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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서른넷 어느덧 벌써 30대 중반 나에겐 절대로 오지 않을 것 같았던 30대 중반 미친 듯이 일만 하며 살아온 10년이 넘는 시간 남은 것 고작 500만 원 가치의 중고차 한 대 사자마자 폭락 중인 주식계좌에 500 아니 휴짓조각 될지도 모르지 대박 or 쪽박

2년 전 남들따라 가입한 비과세 통장 하나 넘쳐나서 별 의미도 없다는 1순위 청약통장 복리 좋대서 주워 듣고 복리적금통장 몇% 더 벌려고 다 넣어둬 CMA통장 손가락 빨고 한 달 냅둬도 고작 담배 한 갑 살까 말까 한 CMA통장 이자 외국에 이민 가서 살고 있는 고등학교 동창 친구놈 가끔 연락이 와 자기는 노가다 한대 노가다해도 한국 대기업 댕기는 나보다 낫대 이런 우라질레이션 평생 일해도 못 사 내 집 한 채 - 자작곡 '응답하라! 30대여~' 가사 中

열아홉 내 첫 직장에서의 담당 업무는 '라디얼(RADIAL)' 공정의 오퍼레이터였다. 생산하는 모델에 따라 마지막 공정이 될 수도 있고 마지막 앞 공정이 될 수도 있다. 라디얼은 수직 부품을 PCB에 자동으로 삽입하는 공정이다.

PCB 기판에는 각 부품이 삽입되어야 하는 위치가 알파벳과 숫자로 표시되어 있다. 알파벳은 부품의 종류에 대한 약자이고 숫자가 위치라고 보면 된다. 해당 위치에 어떤 부품이 삽입되어야 하는지 입력된 프로그램을 장비에 입력한다. 그리고 자재를 장비에 투입하면 자동화 장비가 PCB에 부품을 삽입한다. 이것이 'PCB자삽'이라고 불리는 일이다.

오퍼레이터(장비를 운용하는 사람)는 장비에 자재가 떨어지면 보충해주고 모델이 변경되면 그에 맞게 장비를 세팅해 주는 일이 주 업무이다. 베테랑들은 평소에 장비를 잘 정비해서 많은 양의 제품이 생산되도록 한다. 뿐만 아니라 모델 변경도 익숙해서 장비의 '손실시간'(정비로 인한 비가동 시간)을 최소화한다.

나는 자삽 업체의 라디얼 8호기 오퍼레이터

저항등과 같이 몸통의 양옆으로 다리가 만들어진 부품이 수평부품이다.
▲ 수평부품 저항등과 같이 몸통의 양옆으로 다리가 만들어진 부품이 수평부품이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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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B자삽을 통해 부품을 삽입하는 순서는, 먼저 수평부품을 삽입한 뒤 수직부품을 삽입한다. 수평부품은 점프선, 저항, 코일과 같은 부품들처럼 부품의 몸통의 양옆으로 다리가 있는 부품이다. 수직부품은 콘덴서, TR 등과 같이 몸통의 아래쪽으로 다리가 있는 부품이다.

나는 PCB에 수평부품까지 삽입하는 작업이 완료된 제품을 가져와 내 장비에 투입하고 수직부품을 삽입하는 일을 했다. 당시 나는 라디얼 8호기를 담당했는데 다른 조에서 근무하는 8호기 담당자도 나와 함께 실습 나온 친구였다. 실습생 둘이서 관리하는 장비라 그런지 우리 장비의 생산성은 엄청 떨어졌다.

회사에는 공정마다 반장이 있었다. 그리고 교대근무를 하는 2개 조에는 각 조장이 있었으며 그 위로는 일반 관리직 사원들이 있었다. 우리 조 라디얼 공정의 반장이 관리하는 장비는 워낙 관리와 정비를 잘한 상태였다. 모델이 변경되지 않으면 12시간을 돌려도 한두 번 고장이 날까 말까 할 정도로 좋았다. 그러다 보니 같은 시간을 작업해도 생산량이 많은 건 당연했다.

반면에 친구와 내가 관리하는 우리 8호기는 '수삽'이라고 불릴 만큼 자주 고장이 나서 멈추는 장비였다. 장비관리를 잘해놓은 선배들은 야간 근무를 할 때 장비에 기대서 졸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계속해서 고장난 장비를 다시 가동해야 하니 조금도 쉴 시간이 없었다.

일과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은 당연히 퇴근 시간이다. 퇴근 시간이 돼서 교대 근무자가 오면 인수인계를 하고 장비 옆에 있는 쓰레기통을 소각장으로 비우러 간다. 소각장에 쓰레기를 버리고 잠시 같은 조원들과 수다 떠는 그 시간이 제일 좋았다.

그렇게 조금씩 사회생활에 적응해 갔다

콘덴서와 같이 몸통의 아래쪽으로 다리가 만들어진 수직부품이다.
▲ 수직부품 콘덴서와 같이 몸통의 아래쪽으로 다리가 만들어진 수직부품이다.
ⓒ pixab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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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근무를 하는 화요일은 기숙사 대청소를 하는 날이다. 화요일 아침에 퇴근하고 전체 기숙사 인원들이 복도며 화장실이며 기숙사를 깨끗하게 청소를 한다. 엄연히 청소에서도 서열이라는게 존재하기 때문에 실습생들의 담당 구역은 항상 사람들이 제일 많이 사용하는 화장실이었다.

기숙사 대청소를 하다보면 빨래해서 널어놨다가 어디로 간 것인지 찾지 못했던 내 양말이 다른 방에서 나오곤 했다. 남자들만 득실거리는 기숙사 생활을 하다 보면 빨래 한번 할 때마다 양말이든 팬티든 하나씩 없어지는 일은 일상다반사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다른 사람의 빨랫감이 나한테 섞여 오는 일은 없는데 내 빨래는 꼭 다른 사람들에게 섞여 들어간다.

가끔 청소가 끝나고 나면 기숙사에 살고 있는 우리 조원들은 회사 마당에서 야구를 했다. 정식 장비를 착용하고 하는 진짜 야구는 아니었고 종이로 만든 공에 빗자루를 배트 삼아 하는 야구였다. 형들은 우리도 당연히 끼워준다며 공격은 시키지 않고 외야에 수비만 시켰다. 말이 함께 하는 야구였지 볼 보이를 시킨 거였다. 그래도 그 무리에 함께 섞여서 웃고 있는 나를 보며 어느새 사회생활에 적응한 나를 발견했다.

한창 야구를 하고 있으면 10시 종이 울리고 다른 조원들이 쉬는 시간이라 마당으로 나왔다. 야구 경기를 하는 우리를 보며 같이 농담 따먹기를 하다가 들어가곤 했다. 주·야간 교대근무를 하다 보면 형들은 아침부터 술을 마시는 일도 있었다. 야간근무를 하면 아침이 주간 근무할때 밤이랑 똑같다며 아침부터 구멍가게표 라면을 안주 삼아 소주를 마시고 잠들곤 했다.

주간 근무를 하면 수시로 현장을 어슬렁거리는 관리자들 눈치가 보여 진짜 지겹게 일만 해야 한다. 그런데 야간 근무를 하면 조장만 있으므로 조금은 자유롭게 일을 할 수 있다. 사무실 방송장비에 신나는 음악 테이프를 틀어 온 현장에 음악이 꿍꿍 울리게 해놓고 일을 할 수도 있었고 당시 유행하던 이동용 카세트 플레이어를 주머니에 넣어 이어폰을 꽂고 일을 할 수도 있었다. 장비가 멈춰있지만 않으면 장비에 기대어 잠을 자도 조장이 특별히 뭐라고 하지 않았다.

나는 야간 근무 때만 되면 카세트 플레이어에 DJ DOC의 명반으로 꼽히는 5집 앨범을 담아 들었다. 듣고 또 들어서 테이프가 늘어날 정도로 들어서 모든 노래를 달달 외우기까지 했을 정도다. 야간근무를 하면 귀에 이어폰을 꽂고 일을 하면서 신나게 노래를 크게 따라 불러도 됐었다. 어차피 장비 소리가 커서 그 소음이 그 소음이라 아무도 꾸중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 재미에 하루하루 버텨내며 사회생활에 적응해 나가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자작곡 '응답하라! 30대여~' 듣는 곳
http://www.bainil.com/album/365



태그:#PCB자삽, #전자부품, #RADIAL, #교대근무, #기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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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콘텐츠 대표 문화기획과 콘텐츠 제작을 주로 하고 있는 롯데자이언츠의 팬이자 히어로 영화 매니아, 자유로운 여행자입니다. <언제나 너일께> <보태준거 있어?> '힙합' 싱글앨범 발매 <오늘 창업했습니다> <나는 고졸사원이다> <갑상선암 투병일기> 저서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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