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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가 되면 학교에 나타나는 선생님이 있습니다. 부모들이 마음 놓고 직장에 다닐 수 있도록 우쿨렐레, 바이올린, 바둑, 연극, 축구 등 수십 가지의 방과후학교 프로그램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 바로 '방과후학교강사'입니다. 본 시리즈에서는 우리 방과후강사들의 비정상적인 삶, 비정상적인 방과후학교에 대해 다룰 예정입니다. - 기자 말

"정부가 청년 일자리 대책으로 '방과후강사'를 내놓았다고요? 글쎄요. 별로 권하고 싶지 않네요."

지난 7월 27일 오후, 정부가 '청년 고용절벽 해소 종합대책'을 내놓았다는 발표를 듣고 우리끼리 나눈 대화다. 갑작스럽게 들은 소식이라 정확한 정보는 알지 못한 터였다.

뉴스를 보기 위해 얼른 컴퓨터를 켜는 시간 동안에 잠깐 기대했다. 안 그래도 누구네 아들, 딸이 취업에 곤란을 겪고 있다는 소문을 들은 터라 어떤 희망을 주는 소식이면 참 좋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궁금했다. 앞날이 창창한 청년들에게 소개하는 방과후강사가 대체 어떤 장점이 있을지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아서였다.

"당연히 청년 일자리는 늘어야죠"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가운데)이 지난 7월 27일 서울 중구 세종대로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청년 고용절벽 해소를 위한 민관합동 대책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 청년 고용절벽 해소를 위한 민관합동 대책회의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가운데)이 지난 7월 27일 서울 중구 세종대로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청년 고용절벽 해소를 위한 민관합동 대책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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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이야기지만 청년들의 일자리는 늘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그게 어떤 일자리냐는 것이다. 대다수가 꺼리는 일자리, 잠깐 만들어졌다 사라질 일자리, 부모세대의 살을 깎아 먹는 일자리, 그런 것은 청년들도 바라지 않는다. '평생직장의 시대'는 이미 끝났다고 말은 하지만, 그래도 그 헛된 희망을 부여잡고 사는 이 또한 '고용절벽' 앞에 놓인 오늘날의 청년들이다.

실망스럽다. 공공기관 중 하나인 학교도 모범적으로 청년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한다. "농어촌 및 저소득층·다문화가정 밀집지역 학교에서 청년에게 SW·기초학력·논술·예체능 등 분야의 방과후학교 프로그램 위탁을 확대"한다는 계획을 밝히고 있다. 2016년 2000명, 2017년 2000명, 총 4000명의 청년 방과후강사를 뽑겠다는 말이다. 이건 모범이 아니라 시늉이다.

"당연히 청년 일자리는 늘어야죠. 근데, 교육부가 질러놓고 왜 예산은 시도교육청에 떠넘기는 거죠?"

우선 실효성부터 의심된다. 2년간 4000개의 청년 일자리를 만들 계획이라면 재정이 뒤받쳐줘야 현실성 있는 정책이라 할 수 있다.

교육부가 밝힌 바에 따르면 계약 기간 10개월짜리 방과후강사에게 고정강사료를 지급한다. 시간당 3만 원씩, 주당 12시간 일하여 한 달간 144만 원의 월급을 받게 된다.(현재 방과후강사의 평균 월 소득은 100만 원 전후로 추정된다.) 2년간 적어도 576억 원이 소요되는 대규모 사업이다. 거기다 농어촌 지역임을 고려해 교통비까지 지급하겠다고 한다. 정부에 그만큼의 교육예산이 있나?

그걸 "교육교부금 예정교부안 반영"하겠다고 한다. 즉, "우리 대신에 시도교육청에서 책임질 것입니다"라고 바꿔 말할 수 있다. 누리예산 논란 과정에서 드러났듯이 안 그래도 열악한 시도교육청의 분위기는 난리다.

무상급식, 배치기준에 따른 인력배치 등 돈 쓸 데는 많은데 쓸 돈이 없다. 정부가 밀어붙인 각종 교육정책을 예산 지원 없이 시도교육청으로 떠넘겨왔기 때문이다. 이제 시도교육청은 없는 예산을 쪼개고 또 쪼개어 청년 일자리를 만들어야 할 판이다.

전시행정, 방과후학교와 청년 모두에게 도움이 안 된다

정부는 '청년에게 내일을, 미래 세대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추진하는 것이 '청년 고용절벽 해소 종합대책'이라고 소개한다. 그런데 청년 방과후강사 일자리의 내일이 과연 희망적일까? 그건 오늘의 현실을 보면 알 수 있다. 요새 만나는 초면의 방과후강사마다 하소연을 한다.

"그 사람들 어쩌면 이럴 수가 있어요?"
"원래 이런 거예요? 해도 해도 너무하네요."
"잠깐 이렇게 하는 거지, 나이 마흔 넘어서는 하기 힘들 것 같아요."

이처럼 방과후강사의 삶은 참 고단하다. 매년 학교를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계약해야 하고, 경력이 쌓이고 실력이 뛰어나도 처우는 제자리걸음이기 때문이다. 합당한 이유가 없어도 교장이나 학부모의 마음에 안 들면 그대로 잘려나가는 파리 목숨이기도 하다. 학원, 지역아동센터 등 다른 교육기관보다 방과후학교가 더 끔찍할 정도라 말하는 선생님들도 많다. 그러다 보니 이런 '알바' 같은 일자리를 청년들에게 권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정부는 2년간 고용률 수치를 반짝 높이는 데만 혈안이 된 듯하다. 박근혜 대통령은 '고용률 70%' 공약에 대한 미망이 아직 남아있는 것인가? 이쯤 되면 청년의 고용절벽 해소를 위한 일자리인지, 청와대와 여당의 2017년 재집권을 위한 일자리인지 의심마저 든다. 만약 정부의 바람대로 4000명의 청년들에게 약간의 특혜를 얹어준 일자리를 만들었다고 치자.

하지만 이들이 언제까지 계속 방과후강사를 하게 될까? 10개월의 계약 기간이 끝나고도 방과후강사에서 미래의 희망을 찾는 청년들이 몇이나 될 것인가? '아르바이트'로 잠깐 하다가 다른, 더 좋은 일자리를 찾아 떠나게 되지 않을까?

지금 방과후강사들은 '전국방과후학교강사연합회'라는 강사들의 단체를 결성해,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방과후강사의 상시적인 고용불안을 해소하고, 방과후학교 교육환경도 개선해야 한다. 누구나 자부심과 보람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방과후학교를 만들자고 제안한다. 이것이 당장 우리 처우를 개선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장기적인 '좋은 일자리' 창출 전략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성급히 일자리 창출하기에 앞서, 현재 있는 방과후강사의 처우개선과 방과후학교 교육환경 개선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 편집ㅣ곽우신 기자

덧붙이는 글 | 배일훈 시민기자는 현 방과후학교 강사이며, 방과후강사연합회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태그:#방과 후 학교, #방과 후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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