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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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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세가 넘으면 업무능력이 떨어진다."

맞는 말일까? 열심히 일하고 능력이 출중한 젊은이들 중에는 "우린 죽어라 일하는데, 나이 든 상사는 뭘 하는지 모르겠다"는 불만이 없지 않다.

50세가 넘으면 업무 능력 떨어진다는 노동부 장관

그러나 업무 성격이나 사람에 따라선 50세가 '능력 저하'의 시점일 수 있지만, 반대로 뛰어난 '연륜'이나 '노련함'을 발휘하는 시기일 수도 있다. 때문에 50세가 넘으면 무능하다는 말은 함부로 해선 안 된다. 그런데 노동부 장관이란 분이 기자간담회(지난 5월 31일)를 열어 이런 차별적 인식을 드러냈는 데도 세상은 조용하다. 

과거 17대 총선에서 정동영은 투표 날 노인분들은 "집에서 쉬셔도 된다"는 말을 했다가 노인 비하라며 대선 때까지 치도곤 당했다. 이에 비해 "50세가 넘으면 업무능력이 떨어진다"는 말은 괜찮을까? 다른 사람도 아니고 노동자와 그 가족들 수천만 명의 생존권을 책임지는 장관이 특정 세대를 비하하고, 그에 따라 임금을 깎고(임금피크제) 해고를 쉽게 하는 제도(일반해고)까지 강제로 도입하는 마당에 어떤 이들은 여전히 정부를 떠받들고 있다. 정동영을 잡아먹을 듯하던 어르신들은 다 어디 갔을까?

지난달 15일에도 이기권 노동부 장관은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당시 장관의 말은 무척이나 '회장님'스러웠다.

"노동권이 존중되듯, 인사경영권도 존중돼야 한다."

얼핏 공정한 말로 들린다. 하지만 노동권은 과연 존중받고 있는가? 노조가 있어야 찍소리라도 하는데 조직률은 10%에 막혀 있고 노조를 하려면 해고를 각오해야 할 판이다. 반면 인사경영권은 무슨 대단한 위협을 받는다고 단단히 보호하겠다는 건가. 노동부는 노동개악 정책의 사전 조치로 인사경영권과 관련된 단체협약을 모조리 뜯어고치겠다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해고 등 인력조정에 노조가 저항할 근거를 없애겠다는 의도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저임금 비중이 높은 나라, 한국

장관은 또 "세계 어디를 가나, 공장의 생산량과 가동률을 결정하는데 합의가 안 됐다고 연장근로를 방해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외국에선 노동자의 경영참여는 권리다. 굳이 이런 사실로 반박하지 않더라도 장관의 주장이야말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생산량과 가동률을 일방적으로 높이는 등 과중한 업무의 문제에 왜 노동자가 항의하면 안 되는 것이고, 연장근로는 법에서도 강제의무가 아닌데 거부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니 기가 차다.

최저임금 문제에 대한 장관의 인식도 가관이다. "앞으로 최저임금은 잘 지켜지도록 하는 부분이 중요하다"는 그의 말부터가 의미심장하다. 앞으로 최저임금은 현 수준(6천원대 초반)을 유지하며, 인상보다는 지켜지는 데 역점을 두겠다는 말로 들린다. 아니나 다를까. 장관은 "근로자들(알바 직원)이 불성실하다는 논쟁도 현장에 있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열악한 일자리에서 파생된 문제임은 보지 않고, '무슨 염치로 올려 달라는 거냐!'며 마치 노동자들만 탓하는 말로 들린다.

한국은 월 200만 원 미만 저임금노동자가 전체 노동자의 절반에 육박하여, 세계에서 두 번째로 저임금 비중이 높다. 첫 번째로 높은 나라는 미국이다. 때문에 미국은 올해 대통령까지 나서서 최저임금 거의 두 배 인상을 추진했으며, 최근 뉴욕주 등에서 최저임금 1만7천원은 현실이 되고 있다.

이를 본 한국정부의 고위관료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우리는 영세자영업자가 많아서 안 된다"고 생각할까? 그러면 다시 묻자. 도대체 그 많은 자영업자들은 누가 만든 것일까? 정부는 뜨끔하지 않나? 고용불안이 심각하고 어딜 가나 저임금 비정규직 일자리뿐이니 마지못해 자영업으로 내몰리고, 포화 상태인 자영업시장은 다시 저임금 조장의 핑계가 되는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다.

결국 노동자 서민들은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지만, 그 아수라장 경쟁에서 재벌대기업은 손쉽게 이윤을 챙기고, 보수정치는 '자영업자와 노동자', '정규직과 비정규직', '고령노동자와 청년세대' 간의 미움을 부추기며 표를 챙기고 있다.

그가 꾸미고 있는 '노동개혁'이 걱정이다

아마도 한국의 높으신 분들은 노동자들을 제 능력은 돌아보지 않고 떼만 쓰는 집단으로 보는 것 같다. 그 탐욕적 편견 때문에 간간이 들리는 해외 경영자들의 미담은 이 땅에서 살아가는 일을 더 한숨 짓게 한다.

미국 그래비티페이먼트의 최고경영자 댄 프라이스는 직원 최저임금을 2017년까지 연 7만 달러(7674만 원)로 인상하겠다고 발표하며, 자신의 연봉도 100만 달러에서 7만 달러로 삭감했다. 그러면서 "내 스스로가 해결책의 일부가 되고 싶었다. 중요한 것은 (생계비에 못 미치는 최저임금)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터키의 기업 예멕세페티의 CEO 나브자트 에이딘도 회사를 매각하면서도 그 수익금 2700만 달러(312억 원)를 114명 직원에게 분배해 돌려줬다. 1인당 받은 성과급은 2억7400만 원에 달한다. 에이딘은 "우리 기업이 성공한 건 직원 모두가 함께 누리고 나눠가져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당장 이렇게 하자는 말이 아니다. 최소한 장관 정도면 '모든 건 노동자들 때문'이라며 거짓된 모함만은 하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닌가. 그가 꾸미고 있는 '노동개혁'이 걱정이다.

○ 편집ㅣ박순옥 기자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박성식님은 민주노총 대변인입니다.



태그:#민주노총, #노동개혁, #노동개악, #고용노동부장관, #노동시장구조개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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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조합 안의 낮은 목소리, 조력자. 자유로운 공동체를 생각하는 사람. 금지가 없는 사유의 항해. 소속되지 않으려는 집단주의자. 부의 근본은 노동이며, 인류의 시작도 노동하는 손에서 시작됐다는 믿음. 그러나 신념을 회의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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