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장 바라보는 슈틸리케 감독 지난 2일 중국 후베이성 우한스포츠센터에서 열린 동아시안컵 축구대회 한국과 중국의 경기에서 한국 슈틸리케 감독이 경기장을 바라보고 있다.

▲ 경기장 바라보는 슈틸리케 감독 지난 2일 중국 후베이성 우한스포츠센터에서 열린 동아시안컵 축구대회 한국과 중국의 경기에서 한국 슈틸리케 감독이 경기장을 바라보고 있다. ⓒ 연합뉴스


울리 슈틸리케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은 한국축구를 맡은 이후 몇 가지 주목할만한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소속팀에서의 활약 중시, 젊은 선수들에 대한 과감한 실험 그리고 실용성을 중시하는 유연한 축구철학이다.

물론 슈틸리케 감독의 운영은 이전의 대표팀 감독들도 이구동성으로 표방했던 대목이지만 정작 실제로 지켜진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언제나 당장의 성적에 목을 매달 수밖에 없는 대표팀의 특성상, 감독들은 자신이 잘 아는 선수들만을 기용하거나 자신이 생각하는 전술에 선수들을 끼워 맞추기에 급급했다. 대표팀 운영의 원칙과 일관성, 비전은 사라진 채 하루살이처럼 표류할 수밖에 없었다.

슈틸리케 감독은 부임과 동시에 한국축구의 낡은 관행에 과감하게 메스를 댔다. 아시안컵 준우승이라는 호성적 이후, 슈틸리케의 개혁은 더욱 속도를 내고 있다. 당장의 성적만이 아니라 2018년 러시아월드컵까지 대비한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한국축구에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진단 때문이었다.

예상 깬 완승, 슈카우터의 성공적 실험은 계속된다

추가골 넣는 이종호 지난 2일 중국 후베이성 우한스포츠센터에서 열린 동아시안컵 축구대회 한국과 중국의 경기에서 한국 이종호가 팀 두번째 골을 넣고 있다.

▲ 추가골 넣는 이종호 지난 2일 중국 후베이성 우한스포츠센터에서 열린 동아시안컵 축구대회 한국과 중국의 경기에서 한국 이종호가 팀 두번째 골을 넣고 있다. ⓒ 연합뉴스


2015 EAFF(동아시아축구연맹) 중국 동아시안컵에서도 슈틸리케의 원칙과 비전은 여전하다. 해외파 선수들이 결장하며 K리그와 아시아 무대에서 활약 중인 선수들로 구성된 대표팀이자, 평균연령 24.3세로 올림픽팀 수준에 가까운 어린 선수들이 주축을 이뤘음에도 첫 경기부터 영롱한 빛을 뽐내며 슈틸리케호에 새로운 희망을 선사했다.

지난 2일 중국 우한에서 벌어진 개최국 중국과의 동아시안컵 남자부 1차전은 K리그(한국)와 슈퍼리그(중국)의 대리전이자, 한국축구의 '미래'와 중국축구의 '현재'가 격돌한 대결로 요약된다. 결과는 예상을 깨고 한국의 2-0 완승이었다. 한국은 이날 승리로 중국에 17승 12무 1패의 우위를 이어갔다.

한국은 그동안 중국축구와의 A매치 전적에서 압도적인 우세를 지켜왔지만, 이번 동아시안컵은 분위기가 조금 달랐다. 한국이 A매치 경험이 부족한 젊은 선수들로 구성된 팀이었다면, 대부분 자국 리그 선수가 주축인 중국은 몇몇 선수들의 공백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최정예선수인 데다 홈 어드밴티지까지 있었다. 특히 최근 중국축구는 공격적인 선수영입, 세계적인 외국인 선수와 감독들을 잇달아 영입했다. 이런 중국축구의 움직임이 K리그 엑소더스(대규모 선수 이탈) 현상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진 중국축구의 성장세는 부담스러운 대목이었다.

하지만 뚜껑을 열자 슈틸리케호의 젊은 전사들은 중국의 홈에서 상대를 압도했다. 경기 내용을 보면 그야말로 공한증의 재림이라는 표현밖에 쓸 수 없을 정도로 한국은 이날 사실상 새롭게 구성된 대표팀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눈부신 경기를 펼쳤다.

특히 '슈카우터'(슈틸리케+스카우터)로 불릴 만큼 발굴하는 선수마다 진가를 발휘하는 슈틸리케의 안목은 이번에도 빛을 발했다. 이날 득점의 주인공인 김승대(포항)와 이종호(전남)는 모두 A매치 데뷔전에서 공격 포인트를 기록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지난 아시안컵에서 이정협(상주)이라는 신데렐라를 발굴한 바 있으며 올해 1월 사우디와의 평가전에서 A매치 데뷔골을 터뜨렸다. 6월 UAE와의 평가전에서는 이용재(나카사키)가 데뷔골을 터뜨렸다. 올해에만 슈틸리케 감독의 손에 의하여 A매치에 데뷔하자마자 골을 터뜨린 선수가 무려 4명이다. 이쯤 되면 슈틸리케 매직이라고 하기에 손색이 없다.

슈틸리케 감독은 이 밖에도 이재성(전북)과 정우영(고베), 권창훈(수원) 같은 선수들을 기용하여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슈틸리케 감독이 소속팀 경기를 오랜 시간 꼼꼼히 관찰한 끝에 대표팀 발탁을 결정한 선수들이다. 국내파 감독들처럼 기존의 이름값이나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K리그나 심지어 2부 리그 선수라도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면 과감히 기회를 주는 슈틸리케 감독의 뚝심이 있었기에 이들의 재능도 빛을 발할 수 있었다.

'실험과 성과' 동시에 낳은 '원칙과 비전'

슈틸리케 감독은 이번 대회에서 최대한 많은 선수에게 기회를 주겠다고 약속했고. 그 원칙에 따라 팀을 이끌고 있다. 그렇다고 실험만 하는 것은 아니다. 중국전을 지켜보면 한국은 최전방에서부터 활발한 전방위 압박과 몸싸움으로 중원을 장악했고, 빠른 역습과 세밀한 2대 1 플레이 등을 통하여 공간을 침투하는 경기운영이 두드러졌다.

한마디로 선수점검만 한 것이 아니라 이기기 위한 경기운영을 펼쳤고, 짧은 시간이었음에도 선수들이 빠르게 슈틸리케호의 전술에 녹아들게 했다는 것이 고무적이다. 왜 슈틸리케 감독이 체력과 전술 소화력이 빼어난 젊은 선수들을 더 중용하려고 하는지도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중국전은 비록 한 경기였지만 슈틸리케 감독이 한국축구 대표팀 부임 1년이 되어가는 동안 지켜온 '원칙과 비전'의 초심이 옳은 방향으로 유지되고 있음을 증명한 경기였다. 한국은 이 승리를 통하여 공한증이라는 '과거'의 역사를 지켜냈고, '현재'의 대표팀도 충분히 경쟁력 있다는 것을 증명했으며, 아울러 '미래'가 더 기대되는 팀을 만들 수 있다는 희망까지 제시했다. 올바른 철학과 소신을 지닌 한 명의 리더가 대표팀을 단시간에 얼마나 바꿔놓을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 편집ㅣ곽우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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