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삼성전자 백혈병 문제 해결을 위한 조정위원회가 지난달 23일 발표한 권고안의 이의 제기를 받기로 한 날(3일)이 왔습니다. '삼성바로잡기운동본부'의 공동대표를 맡고있는 권영국 변호사가 이와 관련된 기고문을 보내와 게재합니다. [편집자말]
삼성전자 백혈병 등 직업병 문제를 놓고 협상 중인 삼성전자와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반올림), 삼성직업병가족대책위원회(가족대책위)가 1월 16일 오후 한자리에 모였다. 지난해 5월 14일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이 공식 사과를 한 지 8개월만의 일이다.
 삼성전자 백혈병 등 직업병 문제를 놓고 협상 중인 삼성전자와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반올림), 삼성직업병가족대책위원회(가족대책위)가 1월 16일 오후 한자리에 모였다. 지난해 5월 14일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이 공식 사과를 한 지 8개월만의 일이다.
ⓒ 유성애

관련사진보기


지난 23일 '삼성전자 반도체 등 사업장에서의 백혈병 등 질환 발병과 관련한 문제해결을 위한 조정위원회'(위원장 김지형 전 대법관)는 9개월간의 조정과 검토를 거쳐 삼성전자 반도체와 LCD 사업장에서 발생한 직업병에 대한 '보상'의 원칙과 기준, 재발방지'대책','사과'의 내용과 방식, 그리고 이를 수행할 기부에 의한 공익기금의 조성과 공익법인의 설립을 핵심 내용으로 하는 조정권고안을 내놨다.

조정권고안 발표 후 조정당사자인 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반올림), 삼성직업병가족대책위(가족대책위), 삼성전자가 권고안을 수용할지 여부에 많은 이들이 주목하고 있다.

반올림은 24일 성명을 통해 조정권고안이 여러 아쉬움은 있지만 피해 노동자와 가족들의 고통을 하루속히 해결해야 한다는 대의에 따라 큰 틀에서 수용한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런데 정작 백혈병 등 직업병에 대해 책임을 져야하는 삼성전자는 아직까지도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대신 재계와 일부 언론들이 조정권고안에 대해 시비를 거는 말과 보도들을 쏟아내고 있다.

예컨대, 조정권고안에서 정한 보상대상 질환의 범위가 삼성전자에서 애초 제시한 것보다 확대된 것을 두고 "엉터리"라고 하거나 그 보상의 범위와 기준이 "산재보험법의 근간을 흔든다"고 했다. 또 재발방지대책과 관련하여 반올림에서 강조한 외부 감사의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나, 삼성전자 내부의 재해관리 시스템 운영 상황 및 산업안전보건 현황 등을 검증할 수 있는 전문가 3인 이상의'옴부즈만 제도'의 시행 권고를 두고 회사 경영 전반에 대한 간섭 우려가 있는'경영권 침해'라며 딴지를 걸고 나섰다. 

삼성전자의 언론플레이로 보이는 이런 반응들은 조정권고안의 사회적 해결 노력을 무로 돌리려는 매우 악의적인 것으로 그 천박함에 숨이 막힌다. 8년이나 해결을 미뤄온 삼성전자가 이번에도 또다시 이런저런 핑계와 변명으로 책임을 회피하고 넘어가려고 하는 건 아닌지 우려가 앞선다.

직업병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삼성전자의 책임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

권고안을 살펴보면, 조정위원회가 이번 조정의 사회적 함의에 대해 얼마나 신중하게 고민했는지 그 흔적의 일단을 엿볼 수 있다. 권고안은 "이번 조정 사안은 '개인적 사안'을 뛰어넘어 '사회적 사안'입니다. 우리 사회 공동체에 주어진, 커다란 숙제 가운데 하나를 풀어보자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논쟁적'이기보다는'치유적'·'회복적'으로 문제에 다가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갈등'을 걷어내고 '호혜'와 '화합'을 채워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라고 적었다. 삼성전자의 직업병 문제를 단지 개별 기업의 개별적 피해 보상 차원이 아니라 우리 사회 공동체에 주어진 사회적 과제로 접근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진정성의 일단을 읽을 수 있다.

조정권고안의 핵심요지는 삼성전자 및 한국반도체산업협회의 기부를 통해 공익법인 설립하고 그 공익법인이 '사회적 부조'와 '제3자의 검증' 방식으로 보상과 예방대책을 실현하자는 것이다. 이 방식은 삼성전자의 직접 책임과 삼성전자에 대한 직접 검증을 면하게 하는 아쉬움은 있지만 직업병 피해보상과 예방대책의 실현이 삼성전자에 의해 좌지우지 될 우려를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조정권고안에서 제시한 보상은 개인에 대해 협소하게 입증된 보상이 아닌 '사회적 부조'의 정신에 따라 사회적 보상과 책임이라는 공익적 목적 아래서 우리 사회의 공동선을 실현하는 하나의 과정으로 제시되었다는 측면에서 입증책임을 노동자 개인에게 지우고 있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보험법)과 애초부터 비교할 대상이 아니다. 따라서 보상의 범위와 기준이 산재보험법과 맞지 않다는 주장은 다분히 악의적이다. 산재보험법의 근간을 흔드는 진짜 원인은 노동자에게 지워진 입증책 임을 악용하여 기업의 영업비밀을 내세운 비밀주의의 남용과 산재인정 방해에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의 '경영권 침해' 우려는 자가당착

삼성전자는 조정권고안이 제시한 재발방지 대책에 경영권 침해의 소지가 있다는 우려를 표한다. 자가당착적인 행위다. 조정권고안 내용 중 '삼성전자 내부 재해관리 시스템의 강화'부분은 삼성전자가 조정위에 제안한 내용을 거의 원안 그대로 수용한 것일 뿐이다. 또한 일부 언론이 문제 삼는 "화학제품에 대한 무작위 샘플링 조사 후, 유해요인 발견 시 사용정지 조치"부분도 삼성전자의 제안서에 포함되어 있던 내용이다. 경영권 침해 소지가 가장 크다고 주장하는 '옴부즈만 시스템'도 삼성전자가 '2014년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서 과시하듯이 강조한 '제3자 외부기관 진단 실시'의 취지와 크게 다르지 않다. 오히려 조정권고안에는 옴부즈만의 시정권고에 강제력을 부여하고 있지 않은데, 이 제도의 성격에 비추어 시정권고의 실효성을 어떻게 담보할 것인지를 걱정하는 것이 더 필요해 보인다.

수많은 직업병 피해자 규모(이미 반올림에 직업병 피해자라고 제보해온 숫자만 200여 명)를 고려할 때, 조정위원회가 권고한 기부금 액수(삼성전자 1000억원, 기타 한국반도체산업협회의 기부)가 과거 및 장래 치료비와 생활보전액 등의 보상금을 감당할 만큼 충분한 것인지, 재발방지대책이 얼마나 실효성을 확보할 것인지 보다 세심하게 점검되어야 할 부분들이 있어 보이지만, 반도체 직업병 문제의 단추를 풀기 위해서는 삼성전자가 더 이상 지체 없이 조정권고안에 대해 수용의 자세를 보이는 것부터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반올림과의 직접교섭을 피하기 위해 제3자 조정위원회를 선택한 쪽은 삼성전자 자신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삼성전자가 지난해 반올림을 비판하며 공식 블로그를 통해 밝혔던 것처럼 "대화 상대방 간 이견이 있는 경우 제3자의 적절한 조언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사회에서 폭넓게 적용되는 문제 해결의 방식이다"고 한 스스로의 말을 또다시 번복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삼성전자는 8년 동안 외면하고 3년 동안 협상만 질질 끈 끝에 제3자 조정위원회를 끌어들인 장본인으로서 권고안을 신속히 수락하고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많은 이들이 삼성전자의 선택을 주목하고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과연 삼성이 사회적 책임을 수행할 의사가 있는지 지켜보고 있다.


태그:#삼성, #백혈병, #삼성전자, #반올림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모든 시민은 기자다!" 오마이뉴스 편집부의 뉴스 아이디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