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금토미니시리즈 <사랑하는 은동아>에서 서정은 역의 배우 김사랑이 31일 오후 서울 신사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JTBC금토미니시리즈 <사랑하는 은동아>에서 서정은 역의 배우 김사랑이 31일 오후 서울 신사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은동아!' 남자가 여자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주부들이 활동하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탄식이 터졌다. 남자 주인공은 17살에 만난 첫사랑을 20년 동안 찾아 헤맸다. 게다가 조각처럼 생긴 톱배우다. 비록 현실에서 옆에 앉아 있는 건 오징어(남편)일지라도, 이 믿지 못할 순정의 시간 동안 여자들은 각자 '은동이'가 됐다.

최근 종영한 JTBC 드라마 <사랑하는 은동아>의 장르는 어쩌면 멜로보다 판타지일지도 모른다. 멸종한 줄 알았던 순정남과 기억을 잃은 여자, 10년 만에 재회하고 다시 만나기까지 또 10년을 기다린 두 사람의 골동품 같은 이야기에 '썸 타는' 시대의 사람들이 반응한 것도 기적에 가까운 사랑에 대한 환상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는 "제목이 너무 촌스럽지 않냐"고 했지만, 정작 '은동이' 김사랑은 "그래서 더 좋았다"고 했다.

지은동 역을 맡은 김사랑을 지난달 31일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딱 붙는 옷을 입은 건 오랜만에 본다. 다이어터들에게 '세끼 다 먹으면 살쪄요'라는 만고의 진리를 깨우쳐 줬던, 예의 그 '몸매 갑' 언니로 돌아와 있었다. 사실 그는 '김사랑' 하면 떠올리곤 했던 이미지들과 한동안 멀어졌었다. <사랑하는 은동아> 제작발표회 당시 "화려하고 섹시한 캐릭터를 많이 맡았는데, 지쳐 있었다"고 고백했던 것처럼, 은동이는 줄곧 몸매를 드러내지 않는 셔츠와 플레어스커트 차림이었다.

5년의 공백..."지쳐 있을 때 만난 '은동이'"

2011년 <시크릿 가든> 이후 5년. 휴식이라고 하기엔 너무 길었다. 김사랑은 "공백기를 가지려고 가진 게 아니라, 생각을 하다 보니 시간이 많이 흘러 있더라"라며 "중간에 내가 원하지만 못했던 작품도 있었고, 나를 원하는 작품은 100% 하고 싶은 열정이 들 만한 게 없었다"고 지난 시간을 회고했다.

"배우생활을 하면서 지쳐 있었다.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어느 순간, 이 일을 안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중에 <사랑하는 은동아> 대본을 받아보게 된 거다."

섭외 전, 연출자 이태곤 감독을 만난 자리에서 김사랑은 '뭐하며 지냈냐'는 질문에 "기도"라고 답했다. 뭔가 의미심장한 간절함이 느껴지지만, "특별히 할 말이 없었"기에 "커피숍 가듯 교회에 갔던 일상을 얘기한 것"이라고 솔직하게 설명했다. "어차피 배우는 제작진이 원해야 출연할 수 있는 거니까, 구걸하고 싶진 않았다"는 말에서 '지쳐 있었다'는 고백이 빈말이 아니었음을 느꼈다.

김사랑의 필모그래피에서 몇 번의 공백은 새로운 역할에 대한 갈증으로 읽힌다. 2000년 미스코리아로 데뷔, 외모만 부각되거나 철없는 이미지를 벗기 위해 2005년 <이 죽일 놈의 사랑>에서 거칠고 드센 한다정 역을 맡았고, 화제작 <시크릿 가든>에서는 완벽해 보이지만 실은 허당인 윤슬로 새로운 모습을 보여줬다. 

그리고 가장 긴 쉼표를 찍었다. 쉽지 않은 복귀작이었다. 무려 10살 아이의 엄마였고, 남편 최재호(김태훈 분)의 거짓말이 밝혀지기 전까지 '사랑과 불륜' 사이의 경계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었으며, 심지어 잃어버린 기억까지 찾아야 하는 큰 숙제를 안고 있었다.

"편지 읽으며 돌아온 기억...나도 모르게 손이 떨렸다"

  JTBC금토미니시리즈 <사랑하는 은동아>에서 서정은 역의 배우 김사랑이 31일 오후 서울 신사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대필작가 서정은이 톱스타 지은호(주진모 분)의 자서전을 쓰며 그의 첫사랑 지은동이 자신이라는 것을 기억해 내는 이야기. 김사랑은 "대본을 받았을 때 너무 어려워서 못할 것 같다고, 누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며 "감독님이 '부담 갖지 말라'고 하시더라. 그 말이 굉장히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기억이 조금씩 돌아온다는 설정이 정말 어려웠다. 지은호는 직진만 하면 되는 캐릭터다. 계속 열정적으로 은동이를 찾았고, 돌진하면 된다. 그런데 은동이의 기억은 30%, 50%, 90% 돌아온다. 대필작가를 하면서 내면에 무언가가 깨어나는 거지. 그 감정선을 놓치지 않으려고 대본을 1부부터 다시 읽는 일을 반복했다."

어려운 만큼 성취감도 컸다. 서정은이 과거 현수(지은호)가 썼던 편지를 읽고 모든 기억을 되찾은 뒤 쓰러졌던 때를 "가장 몰입했던 장면"으로 꼽은 김사랑은 "편지를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손이 떨렸다"고 했다.

"기억이 돌아오고, 남편의 거짓 결혼으로 10년을 잃어버렸다는 걸 알았을 때 사실 더 분노할 수 있었다. <사랑과 전쟁>이었다면 바로 법정으로 갔겠지. 하지만 은동이었기 때문에 담담하게 견뎌낼 수 있고, 현명하게 풀어나갔다고 생각한다. 남편에게 '우리에게 진짜는 남아있지 않아'라고 이별을 고했던 것처럼, 분명히 말하면서도 다그치거나 원망하지 않는 캐릭터로 잡았다."

경험해 보지 못한 엄마 역할도 쉽지만은 않았다. "처음에 굉장히 걱정했다"는 김사랑은 "라일이(아들) 역을 맡은 아역배우의 어머니에게 '이 장면에서는 어떤 감정인지' 계속 여쭤봤다"고 말했다. 이어 "아이가 있는 제 동생과 엄마한테 모성에 대해 물어보니까 '내가 자식 대신 죽을 수 있다면 1초도 고민하지 않고 죽는 것'이라고 답하더라. 그 말이 확 와 닿았다"고 전했다.

"처음으로 쉬지 않고 일하고 싶어"

  JTBC금토미니시리즈 <사랑하는 은동아>에서 서정은 역의 배우 김사랑이 31일 오후 서울 신사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동생이 활동하는 주부들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사랑하는 은동아>에 대한 반응이 폭발적이라더라. 이 드라마를 좋아하는 분들은 순수한 사랑을 보고 싶어할 것 같았다. 다들 그런 사랑을 거쳐 결혼했지만, 살다 보면 가족이 되고 편해지지 않나. 댓글에 '저 남자(지은호)는 20년 동안 한 여자를 좋아하는데, 내 남편은 쓰레기 버려달라는 것도 안 해준다'고 올라온단다. (웃음)"

"은동이를 연기하면서 가장 중요시했던 게 순수함이었다"는 김사랑의 생각은 키스신에도 담겨 있다. 저돌적인(?) 지은호에 비해 기술점수 0점으로 여성 시청자들을 개탄하게 만들었던 것도 다 '연기'라고. "남자 경험은 현수밖에 없었는데 바로 교통사고 나서 헤어졌고, 몸이 불편한 남편과 먹고 살기 급급했으니 자기의 즐거움에 집중할 여유가 없었던 여자다. 프로처럼 보이고 싶지 않았다"는 해명(?)을 듣고 보니 일리 있다. 

"화려한 캐릭터를 많이 했지만, 지금 내 얼굴을 보면 딱 은동이 같다. 정말 동그랗지 않냐"고 김사랑이 웃었다. 은동이를 만나 "힘을 받았다"는 그는 "예전엔 작품 끝나면 바로 차기작을 하고 싶지 않았는데, 처음으로 쉬지 않고 일하고 싶다"고 했다. "멘탈이 강하지 않아서 댓글도 안 읽는다"는데, 이번에는 지인들이 보내주는 시청자들의 반응에 "기대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사랑을 받아 좋다"고 기뻐했다.

"조바심을 내거나 깊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 10년 전쯤 우울증 때문에 굉장히 고생했기 때문이다. 그때는 벽에서 누군가 나와 '죽어'라고 할 정도였으니까. 동생이 교회에 나가 보라고 해서 그때부터 다녔는데, 진짜 우울증이 없어지더라. 성격이 느긋한 편은 아니지만, 고민해서 바뀌지 않는 문제라면 긍정적으로 사는 게 낫지 않나."

김사랑 사랑하는 은동아 주진모 시크릿 가든 이 죽일 놈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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