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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노무현>이 지난 6월 출간됐다. 정치인 노무현, 대통령 노무현이 아니라 퇴임 후의, 전직 대통령 노무현을 그린 책이다. 퇴임 후의 노무현을 떠올리면 마음 한켠이 저리다. 그가 받은 고통은 헤아리기 힘들다. 기획된 사정수사와, 검찰의 정치, 언론의 보도가 휘두르는 칼날은 날카로웠다. 그를 바위 끝까지 몰고갔고, 끝내 그를 바위 밑으로 떨어뜨렸다.

도대체 왜, 어떻게 시작한 것인지, 후회하기엔 이미 늦어버린 이 서사를 <만화 노무현>은 한 편의 책으로 엮어냈다.

책을 덮었지만 무슨 말도 쓰기 힘들었다.

2009년 당시의 나를 돌아보게 만들다

(백무현 지음 / 이상 펴냄 / 2015.06 / 1만4500원)
▲ <만화 노무현 1- 그의 마지막 하루> (백무현 지음 / 이상 펴냄 / 2015.06 / 1만4500원)
ⓒ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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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의 그 때, 나는 학교 수업도 빼먹고 매일같이 서울 시청 앞을 서성였고, 난생 처음 혼자서 경남 봉하까지 다녀왔다. 그만큼 그를 좋아했다. 정책 때문은 아니었다. 실정도 많았다. 하지만 사람이 좋았고 그가 꿈꾸던 이상이 좋았다. 그 후임 대통령들이 보여주는 난맥상을 보면서 더 그랬다. 정책은 그 나물에 그 밥이었는데, 사람이 달랐다. 그래서 그가 그립기도 했다. 그렇지만 <만화 노무현>을 덮고나서 그가 그립다는 글을 쓰고 싶지 않았다.

2015년, 서거 6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노무현은 언론에 단골로 등장한다. 친노와 비노라는 이름이다. 새정치민주연합 계파 갈등의 한가운데 노무현이 있다. 계파 갈등이야 정당이라면 다 있는 거라지만, 지금 새정치민주연합의 계파 갈등은 심각하다. 제대로 걷지도 못할 수준이다. 노무현이 무슨 잘못이 있겠냐만 '노무현이 그립다'는 조심스러운 이유다.

계파를 이겨내지 못하는 문재인의 리더십은 분명 문제가 있다. 하지만 문재인으로서도 넘기 힘든 난관에 봉착했다. 노무현의 벽이다. 노무현을 감정적으로 마냥 그리워하면서, 사람들이 보는 노무현에게선 흠이 사라지고 있다. 변호사 시절의 인권주의자 노무현, 삼당합당에 당당하게 반대를 던졌던 노무현, 전시작전권 반환을 요구하는 자주적인 노무현, 그리고 여당의 정치 타살에 장렬하게 전사한 노무현까지. 완벽에 가까운 이미지만 남아있다. 거의 신격화 되어버린 커다란 난관이다.

결국 역설적으로 노무현이 신격화되면서 문재인은 노무현의 그림자를 벗어나기 더욱 힘들어졌다. 문재인이 온건하게 나오면, 강경한 노무현 같지 못해 아쉬워지고, 문재인이 강경하게 나온다면, 노무현처럼 포용력이 부족해 아쉬운 식이다.

친노에게 문재인은 노무현에 비해 한참 부족하다. 반면 비노는 문재인이 자꾸 노무현 아류로만 보여 불만이다. 그러다보니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해 리더십을 벼리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 되어간다. 결국 여전히 '친문'과 '비문' 대신 '친노'와 '비노'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싫든좋든, 계파갈등의 축은 노무현이다.

계파갈등의 축이 된 노무현, 그를 마음껏 추억하고 싶다

이렇게 나뉜 계파는 서로 당의 패권을 잡기 위해 신물나게 싸운다. 물론 전리품은 공천권이다. 비노는 '문재인 사퇴하라'가 존재의 최대 이유인양 문재인을 물어뜯는다. 선거를 앞두고 당을 도울것이냐 말것이냐를 논하던 모습은 가장 낯부끄러운 일이었다. 그것도 유훈으로 단결을 강조한 전직 대통령의 묘 앞에서였다. 그들이 매번 외치는 '정권 심판'이 국민을 위하는 길이라 생각했다면, 결과적으로 그들은 정권에 힘을 보태 국민을 버렸다.

친노라고 잘하는 것은 없다. 최고위원회의의 '막말'은 이들도 통합에는 관심이 없음을 보여줬다. 눈물을 머금고라도 여당이 제안하는 '오픈 프라이머리'를 제안해 계파갈등 논란을 없앨 수도 있지만, 여기엔 또 친노들이 머뭇거리고 있다. 정치 개혁의 주도권을 여당에 빼앗기지 않으려는 의도도 있겠지만, 지금 더 중요한 것은 야당의 정상화다. 그런데도 오픈 프라이머리를 막는데는 호남의 비노 세력들 견제하기 위한 셈법이 들어있다는 것이 눈에 보인다.

새누리당의 계파갈등의 모습은 다르다. 그들은 친이 친박으로 나뉘어 첨예하게 싸우다가도 당을 위해선 하나로 뭉친다. 거부권 정국으로 친박과 비박의 갈등이 표면 위로 드러났지만, 또 금새 잠잠해졌다. 추경 통과, 국정원 사태 대응 같은 큰 문제를 위해 그들은 다시 하나로 뭉쳤다. 친노비노 갈등이 당을 반파시키고 있는 것과는 다른 양상이다.

그러다보니 야당의 문제는 곧 사회의 문제로 이어졌다. 대통령이 제왕적 권력을 휘두르고, 국정원은 민간인을 해킹했다는 의혹까지 나오는데, 야당은 제동을 걸지 못하고 견제를 하지 못하고 있다. 딱 '말리는 시누이' 수준이다.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고, 지금 야당은 정부보다 더 밉다.

물론 노무현의 잘못은 아니다. 또 여기서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가 나오면 곤란하다. 야당이 잘못하고 있는 것을 노무현에게 책임을 돌린다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문재인의 리더십과 야당의 계파갈등에 '신격화된 노무현'이 조금이라도 걸림돌이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는 거두기 힘들다. 그래서 '노무현이 그립다'는 조심스럽다.

'노빠'로서, '노무현이 그립다'조차 조심스러워진 형국이 정말 안타깝다. 노무현을 다시 불러내기 위해선 야당의 정상화가 시급하다. 그리하여 야당에 '노무현의 정신'이 녹아나고 그가 간절히 꿈꾸었던 '사람 사는 세상'에 한걸음 더 다가서길 제발, 정말이지 제발 기원한다. 그래서 다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마음껏 그리워할 수 있기를.

덧붙이는 글 | <만화 노무현 1 - 그의 마지막 하루>(백무현 지음 / 이상 펴냄 / 2015.06 / 1만4500원)



만화 노무현 - 그의 마지막 하루

백무현 지음, 이상(2015)


태그:#만화노무현, #노무현, #계파갈등, #새정치민주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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