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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아시아프가 열린 문화역 서울284 전경
▲ 2015 아시아프 2015 아시아프가 열린 문화역 서울284 전경
ⓒ 2015 아시아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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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기사 : 2015 아시아프, 한국 청년작가의 오늘을 만나다)

지난 한 달 동안 한국 젊은 미술가의 작품을 대중에 널리 소개한 미술축제 '2015 아시아프(Asian Students Young Artists Art Festival)'가 지난 8월 2일을 끝으로 그 막을 내렸다. 이번 행사에는 한여름 무더위 속에서도 방문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청년작가 450명이 출품한 1000여 점의 작품이 전시돼 한국 미술계의 현재와 미래를 돌아볼 수 있는 의미 깊은 자리가 되었다.

이번 전시는 1~2부로 나뉘어 지난 7월 7일부터 25일 동안 열렸다. 30대 이상의 작가 100명의 작품도 '히든 아티스트 100'이라는 특별기획으로 마련돼 더욱 의미가 컸다. 그동안 30세 이하 작가의 작품만을 소개해온 탓에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한 30세 이상의 작가가 배제되는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이번 행사에선 2층에 '히든 아티스트 100' 전시장이 따로 마련됐고 방문객들은 20대와 30대 작가의 작품을 비교하며 감상해볼 기회를 얻게 되었다.

행사가 열린 '문화역 서울284'는 미술품 전시를 목적으로 지어지지 않아 동선이 복잡하다는 평을 들었다. 하지만 다수의 도우미가 친절하게 안내해 방문객의 불편이 크지 않았다는 점도 긍정적이다. 옛 서울역사를 뜯어고쳐 문화복합공간으로 재활용하고 있는 문화역 서울284. 부족한 내부공간에 간이벽면을 세워 수백 점의 작품을 한 번에 전시할 수 있는 공간으로 탈바꿈시킨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구서울역사는 르네상스 이후 유행한 다양한 기법을 혼합한 일제의 건축양식을 다시 한 번 개축했다. 오래된 건물이 많지 않은 서울 도심에서 기묘한 멋스러움을 풍기며 아시아프를 찾은 방문객을 맞았다.

입장료는 성인 6000원, 미성년자 포함 학생 4000원이다. 비슷한 수준의 전시와 비교해 특별히 저렴한 수준은 아니었지만, 방문객이 적잖이 눈에 띄었다. 유동인구가 많은 서울역 광장의 특성상 특별한 계획 없이 전시장을 찾은 듯했다. 애초 명성 있는 작가의 작품도 없을뿐더러 외국 작가의 작품도 충분히 들여오지 못한 탓에 흥행성이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적지 않은 방문객이 이곳을 찾는 모습에서 한국의 문화적 저변이 꾸준히 확장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올해 아시아프에선 1~2부에 전시된 작품 사이에 수준차가 상당해 눈길을 끌었다. 지난 1부는 국내외 유명 작가의 작품을 흉내 내는 수준에 머무르거나 기술적으로도 완성도가 낮은 작품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2부에선 기술적 완성도가 조금 떨어지더라도 선명한 의도, 참신한 구성과 표현력이 엿보이는 작품이 제법 있었다. 관람객이 아시아프와 같이 젊은 작가의 전시를 찾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미완의 대기가 빚어내는 작품을 만나기 위한 것이다. 이런 점을 생각해볼 때, 2부 만큼은 방문객을 실망하게 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다만 아쉬움 점은 기획의도에서 특별한 차이가 없었던 1~2부 사이에 이러한 수준차가 빚어진 것에 어떠한 의도가 있었는지 짐작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기획자가 작품의 전반적인 질적 차이를 발견하지 못했으리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운데 미리 작품의 분류 기준을 공지했다면 더 낫지 않았을까 한다. 혹여 우연히 2부에 좋은 작품이 몰린 것이라면 눈여겨볼 만한 작품이 드물었던 1부와의 균형이 아쉬웠음을 지적하고 싶다.

다섯 가지 조그마한 번뜩임

이진선, 'No Surprise'
▲ 2015 아시아프 이진선, 'No Surprise'
ⓒ 이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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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에선 다섯 개의 작품이 눈에 띄었다. 그림 세 점과 조형 두 점이었다. 그 가운데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작품은 이진선의 'No Surprise'였다. 작가는 건물이 통째로 들려 공중으로 떠오른 모습을 그렸는데 건물 아래에 온갖 종류의 배관과 파이프, 전선 등이 어지럽게 뜯어진 모습을 강조한 점이 인상적이다.

때가 타긴 했으나 흰색 타일로 정갈하게 지어진 건물이 아래에 이토록 난잡한 것들을 감추고 있음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그림이다. 명확한 의도와 구성이 돋보이는 작품이기에 이 그림 앞에 선 사람은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그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현대인의 평범한 삶이라는 게 실은 이토록 많은 물질을 필요로 한다는 걸 말이다.

김혜린, '영감'
▲ 2015 아시아프 김혜린, '영감'
ⓒ 김혜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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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눈에 띈 작품은 김혜린의 '영감'이었다. 캔버스에 물감으로 그린 이 작품은 제목 그대로 영감이 태어나는 순간을 독특하게 표현했다. 그림은 한 여성의 머리 위로 물줄기가 부어지는 모습과 함께 그녀의 얼굴에 꽃이 피고 머리 위에는 뿔처럼 가지가 돋으며 꽃봉오리가 피어나는 모습을 그렸다.

영감을 내재적으로 발생하는 게 아닌 외부로부터 주입되는 것으로 이해한 것이다. 영감이 찾아오는 순간에 어떠한 변화가 이뤄지는지를 단순하지만 선명하게 그려냈다고 하겠다.

안효찬, '발전'
▲ 2015 아시아프 안효찬, '발전'
ⓒ 안효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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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하고 싶은 세 번째 작품은 안효찬의 '발전'이다. 혼합매체 조형물(120cmx160cmx60cm 규격)인 이 작품은 뱃살이 늘어진 돼지 위에 여러 개의 건물이 세워지는 기묘한 모습을 하고 있다.

이 조형물은 의도가 매우 노골적으로 여겨지는 작품이기도 하다. 뱃살이 늘어진 흉측한 돼지와 '발전'이라는 제목, 그리고 짓고 있는 건물의 조화가 빚어내는 메시지가 전형적이라 할 만큼 단순하기 때문이다.

돼지가 상징하는 탐욕 위에 건물이 지어지는 모습을 작가는 발전이라 부른다. 노골적인 의도에도 불구하고 시의성이 상당하다는 걸 부인할 수 없었다.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부동산은 탐욕이자 희망이며 전리품이 아니던가. 그런 의미에서 '발전'이 사회의 일면을 영리하게 꿰어 명징하게 표현한 작품이라는 건 분명해 보인다.

황정혜, '여행의 기억 2'
▲ 2015 아시아프 황정혜, '여행의 기억 2'
ⓒ 황정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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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작품은 황정혜의 '여행의 기억' 연작이다. 무채색 스케치 가운데 특정 사물 만을 채색한 이 그림들에선 기억의 왜곡 가능성과 불완전성, 그리고 얼마쯤 그에 기인하고 있는 낭만을 읽을 수 있었다.

첫 작품에선 이국적인 도시의 풍경 가운데 주황색 이층 버스가 선명하게 그려졌다. 두 번째 그림에선 어느 방 소파 위에 놓인 세 개의 쿠션이 도드라지게 표현되어 있다. 가만히 그림을 보고 있자니 어쩌면 여행 뒤에 남겨지는 기억도 이와 같지 않을까 싶다. 때로 우리의 기억은 어느 도시를 내달리던 버스의 색상이나 쿠션의 무늬 같은 사소한 것들 위에 한참 동안 머물곤 하지 않던가.

서승현, '찌질이'
▲ 2015 아시아프 서승현, '찌질이'
ⓒ 서승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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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승현의 '찌질이' 역시 기억에 남는 작품이다. 이날 조용한 전시장에서 가장 큰 소리를 내는 게 바로 '찌질이'였는데 작품이 쉬지 않고 지잉지잉 하며 꼬리를 흔들었기 때문이다. 버려진 캐비닛을 조각내어 개 모형을 만들어 놓은 작품인데 꼬리엔 모터를 달아 쉼 없이 흔들게 했다. 몸통엔 서랍장을 달아 쭈욱 빼어놓은 모양이다. 작가가 버려진 캐비닛으로 개를 만들어 놓고는 찌질이라는 이름을 붙인 이유는 뭐였을까. 혹여 제 속을 죄다 내보이고 꼬리를 흔들며 살아가는 이 시대 어느 이름없는 월급쟁이의 모습은 아니었을까.

오늘 아시아프 2부에서 만나본 작품을 빼어난 수준이라 하기는 어렵다. 그런데도 발품을 팔아 찾아볼 만큼의 의미는 있었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한국 청년작가의 오늘을 돌아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서 내일을 열어갈 이들의 창의를 발견하며 수고를 마다치 않는 열정을 간접적으로나마 볼 수 있었다는 점도 상당한 수확이다. 이번 아시아프는 막을 내렸지만, 이들의 창작활동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그 앞길에 응원을 보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김성호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goldstarsky.blog.me)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태그:#2015 아시아프, #문화역 서울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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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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