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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니치(在日)' 김경득은 27살이던 1976년 10월 9일 '한국적'으로 일본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시험 비용을 준비하기 위해 한겨울 건설 현장에서 막일을 하고, 목욕탕 값 100엔을 아끼려고 찬물에 몸을 씻는 고생을 이겨냈다.

김경득은 10월 18일 최고재판소에 사법수습생 채용신청서를 제출했다. 귀화 신청 제출 조건으로 수리하겠다는 통보가 왔다. 사법수습생은 준공무원이므로 일본 국적이 필요하다는 근거에서였다. '귀화(歸化)'의 본뜻은 '왕의 어진 정치에 감화되어 그 백성이 되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김경득은 거부했다.

이즈미 도쿠지는 당시 일본 최고재판소 인사국 임용과장이었다. 김경득 이전 사법시험에 합격한 외국적자 13명은 모두 귀화했다. 이즈미는 김경득 역시 그러리라고 봤다. 그런데 김경득은 "저는 대한민국적 그대로, 김경득이라는 이름 그대로 연수소에 들어가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즈미는 최고재판관회의에 보고했다. 얼마 뒤 김경득에게 입소 결정이 내려졌다. 그 전에 법무성, 외무성 등에 의견을 묻는 등 적극적인 노력 덕분이었다. 미일 통상 문제와 관련하여 미국 변호사가 일본에서 일할 수 있게 해달라는 미국의 요구도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김경득은 변호사가 되었다.

30년 뒤인 2004년 12월 15일. 일본 도쿄도 치요다구 최고재판소 대법정. (중략) 김경득이 변론을 위해 일어섰다. 이즈미는 법대에서 그 모습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김경득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10초가 지나고, 20초가 지나고, 30초 지나고, 1분이 지나고, 2분이 지났다. 그는 울고 있었다. (168쪽)

김경득과 이즈미가 만난 2014년 대법정은 정향균-도쿄도 사건 심리가 있던 곳이었다. 1950년생인 자이니치 정향균은 1970년에 간호사가 된 뒤 1994년 도쿄도 보건소 관리직 시험에 응시했다. 보건소 부소장은 정향균에게 일본 국적이 없다는 이유로 원서접수를 거부했다.

정향균은 도쿄도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1심에서 승소하고 항소심에서 패소했다. 김경득은 정향균의 변호인이었고, 이즈미는 최종심이 열리는 최고재판소 재판관 중 하나였다. 정향균은 패소했다. 이즈미는 그때 반대의견을 낸 2명 중 하나였다. 이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자이니치' 이야기들 중 하나다.

일본제국 VS. 자이니치
 일본제국 VS. 자이니치
ⓒ 북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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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 논픽션 작가인 저자 이범준은 2015년 광복 70주년을 앞두고 3년에 걸쳐 이 책 <일본제국 VS. 자이니치>를 기획, 제작했다고 한다. 전 세계의 문서와 영상을 확보해 검토했고, 홋카이도에서 오키나와까지 일본 전국을 취재했다. 내셔널리즘의 바닥에서 고통받은 자이니치의 역사를 드러내고 싶어서였다.

이 책에 따르면 자이니치는 식민지 시절에 건너간 조선인과 그 후손을 가리킨다. 개념 범주가 명확해 보인다. 그런데 저자는 이들의 '본질'을 규정하기가 쉽지 않다고 보는 듯하다.

한국에서 태어나 교육받고 일본으로 건너간 사람과, 한국에는 가본 적도 없는 사람이 한국적이라는 이유만으로 같을 수 없습니다. 오히려 자이니치는 국적이 달라도 정체성이 같습니다. 체험과 역사가 국적보다 훨씬 많은 기억을 담습니다. 일본 이름을 쓰는 일본 국적자가 스스로를 자이니치라고 소개합니다. (중략) 자이니치의 정체성은 국적보다는 역사에 있습니다. (38쪽)

자이니치는 식민지 제국주의와 국가주의에 따른 차별과 배제의 문제 한가운데서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저자에 따르면 자이니치는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화했기 때문에 일본에 살게 되었다. 핏줄이 문제가 아니라 뿌리가 조선 반도에 있는 사람들, 역사를 체현한 사람들로 보는 것이다. 

그래서 국적이 조선이든 한국이든 일본이든 상관없습니다. 일본인과의 사이에 태어나 고민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자이니치의 우리말 공부는 조선·한국인이 되려는 시도가 아니라, 소수자·중간자로서의 존재를 찾으려는 도전입니다. 이는 내셔널리즘과 식민지주의에 대한 항의입니다. 그래서 한국어를 못한다는 이유로 자이니치를 무시하는 것은, 이들을 억압하는 일본 내셔널리즘과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128쪽)

저자가 들려주는 자이니치 이야기는 '국가', '국민', '민족' 등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의 기회를 준다. 내셔널리즘이 출발점이다. 한국과 일본은 혈통주의를 중시한다. 저자는 한국이 식민지를 거치면서 일본이 만든 내셔널리즘을 학습했다고 본다. 한국와 일본의 헌법 초안에서 주권자는 똑같이 '인민(people)'이었다가 '국민'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책에 따르면 내셔널리즘에 따른 상상의 공동체는 '국민국가', '민족국가' 등으로 번역되는 '네이션 스테이트(nation state)'다. 핵심은 '언어'다. '상상의 공동체(imagined community)'로서의 국가, 민족을 처음 주장한 베네딕트 앤더슨도 다양한 언어를 가진 인간의 '숙명'이 특정 언어의 인쇄물로 세계를 이해하는 과정을 겪으면서, 동일한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 스스로를 '네이션'으로 상상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저자의 말처럼 '한국인'은 증명된 것이 아니라 확신되는 것이다. 일본인 또는 한국인이라는 공동체가 강하게 작동하지만 테두리가 명확하지 않은 이유는 이것들이 정치적 목적으로 교육된 가상의 공동체이기 때문이라고 본다. 다음과 같은 저자의 지적은 '국가', '국민', '민족'에 알레르기적인 반응을 보이는 '한국인', '일본인'이 한 번쯤 새겨봐야 할 말이다.

올드커머인 자이니치는 일본국적 취득에 거부감이 있습니다. 역설적이지만 그렇게 되면 일본인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일본어밖에 못하고 한국에 가보지도 않았습니다. 일본이름을 쓰고 일본학교에 다녔습니다. 정서적으로, 문화적으로 일본인입니다. 그런데 완전한 일본 사람으로는 일본 사회가 받아주지 않는 것을 압니다. (중략)

결국 불편함을 버티다 못해 국적을 바꾸려 할 때 어느 쪽을 선택할까요? 한국일까요, 일본일까요. 조선적이 한국적을 받으려면 한국영사관에서 전향에 가까운 절차를 밟습니다. 먼저 한국적으로 바꾼 지인에게 들어 익히들 알고 있습니다. (중략) 그래서 '일본국적은 차마 신청하지 못하겠고, 한국적은 자존심이 상해 그대로 산다'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러분이라면 한국적과 일본적 가운데 무엇을 선택하시겠습니까? (373~374쪽)

중국은 자국의 언어 교과 이름을 '어문(語文)'으로 부른다. 미국은 '잉글리시(English)'를 쓴다. 한국과 일본은 똑같이 '국어(國語)'를 사용한다. 국어는 1800년대 후반에 생겨나 190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쓰였다. 민족주의, 국가주의, 식민주의가 대충돌하던 시기였다. 저자는 한국과 일본이 '국민'과 '국가'와 '국어'를 단단히 묶어 네이션 스테이트를 만들었다고 했다. 우리 안의 국가주의, 민족주의는 뿌리가 넓고 깊다. 위험할 정도로 뜨거워질 때가 많다. 차분한 성찰이 필요한 이유다. 이 책이 유용한 길잡이가 돼주리라 믿는다.

<일본제국 VS. 자이니치:대결의 역사 1945~2015>(이범준 지음 / 북, 콤마 / 2015.7.15. / 380쪽 / 1,8000원)

덧붙이는 글 | 제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hmynews.com/saesil)에도 싣습니다.



일본제국 vs. 자이니치 - 대결의 역사 1945~2015

이범준 지음, 북콤마(2015)


태그:#자이니치, #내셔널리즘, #한국적, #일본국적, #조선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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