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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오빠를 찾아서- 이란 야즈드
▲ [당신에게, 실크로드 35] 첫사랑 오빠를 찾아서- 이란 야즈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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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의 사막도시 야즈드. 나는 첫사랑을 찾으러 이곳에 왔다.

내 첫사랑은 나이가 많지 않았지만, 소년 같은 인상을 주지도 않았다. 자신감에 찬 확고한 목소리를 지니고 있었고, 뛰어나고 냉정했다. 한편 그의 얼굴에는 냉소를 머금은 슬픈 표정이 담겨있었다. 그리고 그는 언제나 어른, 우월한 자, 철저하게 꿰뚫어보는 자의 눈을 하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막스 데미안이었다."
- 헤르만 헤세, <데미안> 중

중학교 1학년 읽던 책 <데미안>이다. '중2병'이 미리 걸렸던 중1 시절, 학급문고에는 늘 저렴한 문고판 도서가 있었다. 지금과 달리 오락거리라곤 책 읽고 음악 듣는 것이 전부였던 때다. 그때 읽던 <데미안>의 역자 서문에 '배화교'라는 단어가 나왔다.

싱클레어가 데미안을 떠나 두 번째 멘토인 피스토리우스를 만나 바닥에 누워 벽난로 불빛을 바라보던 시절. 이것을 역자는 '배화교적 의식'이라 했고, 꽤 나중에 이 배화교가 조로아스터교를 뜻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 후 조로아스터는 데미안을 연상시키는 단어가 되었다.

야즈드는 조로아스터가 태어났다고 믿어지는 곳이다. '아테슈카다'라는 신전에 가면 서기 470년부터 꺼지지 않았다는 불이 있다. 조로아스터교의 성스러운 불이다. 건물 입구에는 조로아스터교의 상징인 날개 달린 사람(프라바하르)이 새겨져 있다.

AD 470년부터 지금까지 타고 있다.
▲ 꺼지지 않는 불 AD 470년부터 지금까지 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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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로아스터의 상징인 프라바하르(날개달린 사람)이 새겨져있다.
▲ 아테슈카다 신전 입구 조로아스터의 상징인 프라바하르(날개달린 사람)이 새겨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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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로아스터는 기원전 7세기에 생긴 종교다. 조로아스터교의 세계 속엔 초월신 '아후라 마즈다'가 있고, 또 선신과 악신이 있다. 악은 마즈다의 창조를 파괴하고, 선은 지키고자 투쟁한다고 한다. 사실 '배화교'라고 표현하긴 하지만, 불을 신으로 숭배하는 것이 아니다. 불의 밝음으로 악의 어둠을 몰아내기에 신성시한다고 보는 것이 옳을 듯하다.

조로아스터교는 선택의 종교였다. 조로아스터교에 따르면 인간은 생각이나 말·행동을 통해 자신의 의지로 선과 악을 선택할 수 있었고, 선택에 따라 그가 속한 세계는 달라졌다. 그래서 조로아스터는 항상 바른 생각, 바른 행동, 바른말이 인간을 구원한다고 가르쳤다.

중앙아시아에서도 조로아스터교의 흔적을 자주 발견할 수 있다. 부하라의 노디르 디반베기 메드레세에 새겨진 새도 조로아스터교의 밝은 영혼을 실어나르는 파란 새 세물(semurg)이다. 히바에 가면 볼 수 있는 리본 모양의 타일 무늬 또한 조로아스터교에서 유래된 문양이다. 위의 삼각형은 바른 생각, 아래 삼각형은 바른 행동, 그리고 중간의 매듭 같아 보이는 건 바른말을 뜻한다. "바른 생각, 바른말, 바른 행동이 모이면 바른 사람이 된다"는 뜻이다.

우즈베키스탄 히바의 리본무늬 타일. 중앙아시아에 남은 조로아스터의 흔적이다.
▲ "바른생각, 바른행동, 바른말이 모이면 바른 사람이 된다" 우즈베키스탄 히바의 리본무늬 타일. 중앙아시아에 남은 조로아스터의 흔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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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착착' 떨어져서, 착착 사원

7세기 아랍 군대가 이 땅에 도착하고부터, 조로아스터교는 점점 그 세가 줄어들었다. 전 세계에 20만 명 정도가 남아있다. 이란에는 2만5천 명 정도가 남아있다고 한다.

야즈드 시외의 '착착 사원'에서 그들의 슬픈 역사를 만날 수 있다. 풀 한 포기 나지 않는 누런 황무지를 달리다 보면 바위산이 나온다. 그 골짜기에 사원이 숨겨져 있다.

아랍군대에 밀려 이곳까지 쫓겨 왔던 사산 왕조의 둘째 공주가 이곳에서 기도를 올렸다고 한다. 그때 굉음이 들리며 동굴이 생겨 공주를 안전하게 보호해준 것이 착착 사원이다. 사원 내부에는 동굴꼭대기부터 물이 '착착' 떨어지는데 사람들은 이 물이 니크바노우 공주의 눈물이라고 여긴다.

중부 이란은 시내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황무지가 펼쳐진다.
▲ 착착사원이 있는 황무지 중부 이란은 시내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황무지가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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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에 꺼지지 않는 불이 있다.
▲ 착착사원 내부 중앙에 꺼지지 않는 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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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로아스터 교도들은 '죽은 후의 영혼은 천국 앞의 다리로 간다. 선한 영혼은 무사히 다리를 건너고 악한 영혼은 다리가 점점 좁아져 지옥으로 떨어진다'고 믿었다. 문제는 영혼이 떠난 육신이다.

그들은 시신을 땅에 묻지 않았다. 육신을 땅에 묻을 경우 신성한 땅을 오염시킨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체가 자연적으로 풍화되거나 새가 쪼아 먹도록 놔두었다.

야즈드 시내에서 남서쪽으로 15km 가면, 조로아스터교의 장례 터가 남아있다. 바로 침묵의 탑이다. 70m 높이의 탑은 남성용, 조금 낮은 50m 높이의 탑은 여성용으로 두 탑이 거리를 두고 나란히 서 있다. 가파른 탑 위엔 지름 5m 정도의 우물이 파여 있다. 우물 위에 시렁을 얹고 시체를 놔두면, 바람과 새에 의해 살점은 사라지고 뼈만 그 아래로 떨어지는 것이다.

저 위를 올라가면 깊은 구멍이 있고 그 곳에서 이들은 조장(鳥葬)을 했다.
▲ 침묵의 탑 저 위를 올라가면 깊은 구멍이 있고 그 곳에서 이들은 조장(鳥葬)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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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구멍위에 시렁을 걸쳐두고 그 위에 시신을 놓아두면, 뼈만 남은 시신이 아래로 떨어졌다 한다.
▲ 침묵의 탑 조장터 이 구멍위에 시렁을 걸쳐두고 그 위에 시신을 놓아두면, 뼈만 남은 시신이 아래로 떨어졌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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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구멍 아래 얼마나 많은 뼈가 모여 있을까. 뼈들은 높은 탑을 가득 채웠을까. 궁금하지만 지금 구멍은 시멘트로 메워져 있다. 한때 깊은 우물이었을 이곳을 내려다보면 기분이 묘하게 가라앉는다. 이곳은 '사람은 죽으면 어떻게 되는 걸까?'라는 질문에 너무나 간단히 대답한다. '육신은 하등 쓸모가 없으며, 영혼만이 영원하다.'

어렸을 때 보던 '전설의 고향'에는 묏자리를 잘 못 쓴 후손의 꿈에 조상신이 나타나서 괴롭히는 이야기가 있다. 여기선 최소한 묏자리 잘못 썼다고 괴롭힘당하는 후손은 없겠구나 싶다. 이 장례 풍습은 1970년대까지 계속되었으나 이후 이란 정부가 금지했다고 한다. 혹자는 종교 탄압이라고 하지만, 위생문제라고 보는 것이 옳을 듯하다.

지금도 조로아스터교들은 시신을 땅에 묻지 않고 땅 위에 콘크리트로 관을 만들어 매장하고 있다. 침묵의 탑에서 내려다보면 그들의 묘지가 보인다. 신분, 지위를 막론하고 모든 무덤의 크기와 모양은 똑같다. 그들은 신 앞에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 믿었다.

이 물은 페르시아공주의 눈물이라고 한다.
▲ 착착사원에서 떨어지는 물을 받고 있는 소녀 이 물은 페르시아공주의 눈물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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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마르고 으스스한 죽음의 터에서 첫사랑 오빠를 떠올렸다. 그는 '우리 마음속에는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우리 자신보다 더 좋게 만드는 뭔가가 있다'고 했다. 그리고 떠나면서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 다시 올 수 없지만 내가 필요할 땐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라'고.

야즈드에서 다시 만난 첫사랑. 나는 좀 두근거렸고 어른이 되었음에도 어릴 적 바라던 것만큼 현명해지지 못했다는 것에 기가 죽었다. 항상 이끌어줄 누군가를 원했지만, 늘 되돌아오는 목소리는 '답은 네게 있다'였다. 어쩌면 그 당연한 것을 난 이미 13살에 학급문고에서 배우고도 '모르겠다'고 우겨왔을지도 모른다.

바람 탑이 타는 내 마음도 식혀주길...

한여름의 실크로드 여행은 피부와의 전쟁이었다. 키르기스스탄에서는 정체 모를 벌레에 온몸을 물리고, 타지키스탄에서는 높은 해발고도 때문에 피부에 화상을 입었다. 우즈베키스탄에서는 땀이 비 오듯 나더니 피부에 발진이 생겨 고생했다. 그러더니 이란에 도착하자 눈에 명란젓 같은 다래끼가 났다. 투르크메니스탄에서 모래 폭풍을 만났을 때 눈에 생긴 상처가 덧난 듯하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알려준 병원은 구도심의 미로 같은 황토색 골목을 한참 헤매야 찾을 수 있었다. 의사를 한번 만나는데 드는 비용은 1만 토만, 약 3500원 정도다. 일주일 치 항생제값은 8천 토만이었다. 약은 꽤 독했다. 항생제를 먹는 동안은 이상하게 기운을 못 썼다.

이란은 편의시설 찾기가 힘든 편이다. 식당도 패스트푸드점 외에는 찾기가 힘들었다.
▲ 이란 구도심의 병원 이란은 편의시설 찾기가 힘든 편이다. 식당도 패스트푸드점 외에는 찾기가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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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즈베키스탄 못지않게 이란의 화폐 역시 복잡했다. 인플레이션 때문이다. 화폐단위는 리알(Rial)이지만, 이곳 사람들은 보통 0을 하나 떼고 토만(Toman)이라는 비공식 단위를 사용한다. 예를 들어 10달러는 약 30만 리알이지만, 3만 토만을 달라고 한다. 그럼 30만 리알을 주면 된다.

야즈드의 구도심은 고운 진흙을 개어 만든 쿠체스(Kuches)라 불리는 황토색 건물들로 가득하다. 집과 집 사이의 골목은 황토색 돔 지붕으로 이어져 있다. 납작납작한 건물들 사이에 이란에서 가장 높다는 자메모스크의 미나레트가 있다.

그 외에도 과거부터 내려온 바람 에어컨인 '바람 탑'(badgir)이 흥미롭다. 바람이 건물을 타고 내려와 지하 수조와 만나 차갑게 식은 후 온 집안에 퍼지는 것이다.

전통적인 황토색 건물로 가득하다.
▲ 메이보드성에서 내려다본 전경 전통적인 황토색 건물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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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르 차크마크 광장 옆의 주르하네 체육관이다. 주르하네는 이란 전통 신체단련 스포츠다.
▲ 바람탑(바드기르)이 있는 건물 아미르 차크마크 광장 옆의 주르하네 체육관이다. 주르하네는 이란 전통 신체단련 스포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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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시가에서 또 하나 흥미로운 것은 문고리다. 문고리가 두 종류다. 왼쪽은 길쭉하고 오른쪽은 동그랗다. 왼쪽이 남자용, 오른쪽이 여자용 문고리다. 두드리는 소리가 미묘하게 달라서 그걸 듣고 남자가 방문했는지, 여자가 방문했는지 알았다고 한다. 워낙에 남녀가 유별한 동네다 보니 그런 구분이 생겼다 한다.

좌우 문고리 모양이 다르다. 두드리는 소리 차이로 남녀를 구분한다.
▲ 전통적인 문고리 좌우 문고리 모양이 다르다. 두드리는 소리 차이로 남녀를 구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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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고 두꺼운 흙 벽 안에서 문고리가 울리는 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었을 여자들 생각을 해봤다. 이곳의 여성들은 높은 담 안, 그리고 베일 안에서만 움직일 수 있었다. 더운 집안의 열기는 '바람 탑'이 식혀 주었을 것이나 답답한 마음은 어떻게 식혔을까. 히잡을 쓰고 여행한 지 일주일. 나는 벌써 한계점에 다다르고 있었다.

어둠속에서 박쥐처럼 나타나는 검은 차도르의 여인들.
▲ 야즈드의 구시가 어둠속에서 박쥐처럼 나타나는 검은 차도르의 여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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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ㅣ김준수 기자

덧붙이는 글 | 2014년 4월부터 10월까지의 여행 중, 실크로드- 경주, 중국,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이란, 터키, 로마의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동쪽과 서쪽을 잇는 실크로드의 과거 이야기와 현재 진행형 이야기입니다. 더불어 히스테리가 극에 달한 노처녀의 한풀이이기도 합니다. 실크로드에서 건져낸 이야기를 점과 점으로 이어, 글을 읽는 당신의 마음에 또 하나의 실크로드가 그려졌으면 합니다.



태그:#실크로드, #이란 , #야즈드, #조로아스터, #침묵의 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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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작가, 여행작가. 저서 <당신에게 실크로드>, <남자찾아 산티아고>, 사진집 <다큐멘터리 新 실크로드 Ⅰ,Ⅱ> "달라도 괜찮아요. 서로의 마음만 이해할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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