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덕여 감독이 이끌고 있는 한국 여자축구대표팀이 지난 1일 오후 10시 중국 우한 스포츠센터에서 열린 2015 EAFF(동아시아축구연맹) 동아시안컵 축구 대회 여자부 중국과의 첫 경기에서 골잡이 정설빈의 결승골을 끝까지 잘 지켜내며 1-0으로 이겼다.

여자월드컵 첫 16강의 감격은 고스란히 자신감 넘치는 경기력으로 녹아들어 있었다. 그 덕분에 근래에 보기 드문 실력을 자랑하며 우승까지 노리고 있는 개최국 중국의 발목을 잡은 것이다. 정설빈의 슈퍼 골은 화룡 점정이었다.

간판 공격수 세 명의 빈자리

첫 경기 상대는 지난달 5일 캐나다에서 막을 내린 2015 FIFA(국제축구연맹) 여자월드컵에서 8강에 오르며 다시 세계 여자축구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는 중국이었다. 물론, 한국도 이번 월드컵에서 여자축구 사상 처음으로 16강에 오르는 감격의 역사를 만들었지만 여러모로 불리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었다.

더구나 한국은 최고의 공격진을 꾸릴 수 없었다. 우리 여자축구의 희망 지소연(첼시 레이디스)은 소속 팀의 잉글리시 FA(축구협회)컵 결승전을 준비해야 했기 때문에 발탁하지 못했고, 키다리 골잡이 박은선과 유영아까지 나란히 부상으로 제외됐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녀들의 빈자리를 탓할 겨를이 없었다. 우한의 고온다습한 기후 조건에서도 여자축구 최고의 팀들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뚜껑이 열리자 예상 밖의 경기 양상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개최국 중국은 캐나다 여자월드컵 8강에 오른 핵심 선수들이 고스란히 뛰었지만 한국의 압박에 제대로 된 슛 기회조차 만들어내지 못할 정도였다.

경기 시작 후 13분만에 한국은 특유의 압박 축구로 결정적인 선취골 기회를 잡았다. 중국 수비수들의 패스 미스를 틈타 공격형 미드필더 이민아가 공을 가로챈 다음 오른발 슛을 시도한 것이다. 하지만 슛 타이밍이 반 박자 느렸기에 중국 수비수 자오 롱의 발에 걸렸다.

정설빈의 슈퍼 골

윤덕여 감독은 간판 미드필더 지소연의 빈자리를 이민아에게 맡겼다. 이민아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끊임없이 뛰어다녔다. 유연한 몸놀림과 뛰어난 위치 선정 능력이 그녀의 장점이었다. 이 덕분에 중국 수비수들이 함부로 라인을 올리지 못했다.

이번 대회에 임하는 한국 여자축구의 변화가 또 있었다. 그동안 가운데 수비수 역할을 주로 맡았던 심서연이 이소담과 함께 나란히 수비형 미드필더로 기용된 것이다. 침착한 심서연의 경기 조율 덕분에 우리 선수들은 후반전 초반까지 경기 흐름을 뜻대로 틀어쥘 수 있었다. 심서연의 가로채기부터 한국의 공격이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경기였다.

선취골이자 결승골도 그렇게 가로채기로 만들어냈다. 오른쪽 측면 미드필더로 뛴 강유미가 기습적으로 가로챈 공이 그대로 골잡이 정설빈의 발 앞으로 굴러왔고 정설빈은 이 공을 잡지도 않고 회심의 왼발 중거리슛으로 연결했다. 그녀의 발끝을 떠난 공은 중국의 간판 골키퍼 왕 페이가 오른쪽으로 몸을 날렸지만 도저히 손을 쓸 수도 없는 왼쪽 톱 코너로 그림같이 빨려 들어갔다. 웬만해선 보기 드문 멋진 골이었다.

이에 중국의 하오 웨이 감독은 실점 직후에 팡 펑위에를 빼고 왕 슈앙을 들여보내며 동점골을 뽑아내기 위한 공격적 변화를 일찍 주문했다. 52분에 한국의 중심을 잡아주던 심서연이 무릎을 다쳐 실려나가는 바람에 중국은 반전 기회를 잡기 시작했다.

이번 여자월드컵에서 우승한 미국과의 8강 토너먼트 맞대결에서 0-1로 아쉽게 패하고 돌아온 중국은 77분에 골잡이 왕 샨샨의 오른발 슛으로 결정적인 동점골 기회를 잡았지만 한국의 노련한 골키퍼 김정미가 몸을 날려 쳐내는 바람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

후반전에 바꿔 들어온 공격형 미드필더 탕 지아리의 왼발 돌려차기가 추가 시간에 뻗어 갔지만 침착하게 각도를 잡은 김정미 골키퍼가 오른쪽으로 몸을 날려 잡아내는 활약을 끝까지 펼쳐줬다.

주심의 종료 휘슬이 울리자 태극 낭자들은 대부분 그라운드에 드러누웠다. 상대 공격수와 높은 공을 다투는 과정에서 갈비뼈 부위를 다친 골키퍼 김정미도, 수비수 임선주도 코칭 스태프의 부축을 받으며 겨우 걸어나와야 할 정도로 고통스러운 경기였다.

북한과 함께 나란히 1승을 올린 한국 선수들은 오는 4일 캐나다 월드컵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강팀 일본과 두 번째 경기를 펼치게 된다. 북한과의 개막전에서 2-4로 완패한 일본이 벼랑 끝 전술을 펼칠 것으로 보여 그 어느 때보다 박진감 넘치는 한일전이 될 것으로 보인다. 미드필더 심서연과 골키퍼 김정미의 부상 회복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덧붙이는 글 ※ 2015 EAFF 동아시안컵 축구대회 여자부 결과(1일 오후 10시, 우한 스포츠센터)

★ 한국 1-0 중국 [득점 : 정설빈(27분,도움-강유미)]

◎ 한국 선수들
FW : 정설빈
AMF : 이금민(61분↔김상은), 이민아, 강유미
DMF : 이소담, 심서연(56분↔손연희)
DF : 김수연, 황보람, 임선주, 김혜리(88분↔서현숙)
GK : 김정미

★ 북한 4-2 일본 [득점 : 리예경(36분), 리예경(66분), 라은심(79분), 라은심(81분) / 마스야 리카(49분), 수지타 아미(70분)]

◇ 여자부 현재 순위표
북한 3점 1승 4득점 2실점 +2
한국 3점 1승 1득점 0실점 +1
중국 0점 1패 0득점 1실점 -1
일본 0점 1패 2득점 4실점 -2
축구 여자축구 동아시안컵축구대회 윤덕여 정설빈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