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틸리케호가 동아시아 축구 정상 도전에 나선다.

한국과 중국, 일본, 북한 남녀 대표팀이 참가하는 2015 동아시안컵은 지난 1일부터 중국 우한에서 9일간 풀리그 방식으로 펼쳐진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이끄는 한국 남자 대표팀은 허정무 감독 시절인 2008년 대회 우승 이후 7년만에 정상 탈환에 나선다.

이번 동아시안컵 멤버는 지난해 9월 슈틸리케 감독 부임 후 가장 젊은 팀으로 꾸려졌다. 23명 중 1990년대 이후 태어난 선수가 18명으로 팀 평균 연령은 24.3세다. 월드컵 대표팀 사상 가장 평균 연령이 낮았던 2014 브라질월드컵(25.9세)과 지난 1월 호주 아시안컵 대표팀(26.7세)보다도 훨씬 어리다.

'젊은 피'를 중심으로 동아시안컵에 도전장을 내민 슈틸리케호의 첫 상대는 FIFA(국제축구연맹) 랭킹 77위 중국이다. 대표팀은 2일 오후 10시(아래 한국 시각) 중국 우한 스포츠 센터에서 중국과 한 판 승부를 펼친다.

달라진 중국 축구

 지난 10일 호주 캔버라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5 AFC 호주 아시안컵 A조 조별리그 1차전 한국 대 오만 경기. 슈틸리케 감독이 그라운드로 입장하는 선수들을 바라보고 있다.

지난 1월 10일 호주 캔버라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5 AFC 호주 아시안컵 A조 조별리그 1차전 한국 대 오만 경기. 슈틸리케 감독이 그라운드로 입장하는 선수들을 바라보고 있다. ⓒ 연합뉴스


이번 대회를 앞두고 자국 리그 출신으로만 엔트리 23명을 꾸린 중국은 2010년 대회 이후 5년만에 우승에 도전한다.

프랑스 출신의 알렝 페렝 감독이 이끄는 중국은 지난 호주 아시안컵에서 사우디아라비아, 우즈베키스탄, 북한 등 아시아의 강호들을 차례로 무너뜨리고 조별 리그 3전 전승으로 11년 만에 8강에 오르며 시선을 모았다.

그동안 월드컵, 아시안컵 등 국제 대회에서 잇따른 부진으로 '아시아의 2류'라는 혹평을 받아왔던 중국은 최근 '축구광'으로 알려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 힘입어 확실한 상승세를 타고 있다. 시진핑 주석이 '축구 굴기(蹴球崛起, 축구를 일으켜 세운다)' 정책을 내세운 이후 일부 중국 재벌들이 앞다퉈 자국의 축구팀에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붓고 있는 것이다.

상하이 선화와 광저우 에버란데, 베이징 궈안 같은 팀들은 재벌들의 '머니 파워'를 앞세워 유명 지도자와 스타 플레이어들을 영입하며 아시아의 정상급 클럽으로 성장하고 있다. 루이스 스콜라리 감독(광저우 에버그란데), 스벤 에릭손 감독(상하이 상강)을 비롯해 호비뉴, 파울리뉴(광저우), 뎀바 바, 아사모아 기얀(상하이) 등 세계적인 감독과 선수가 중국 리그로 몰려들며 중국 선수들의 수준도 덩달아 올라가고 있다는 분석이다.

최근 상승세와 함께 중국 홈팬의 뜨거운 성원을 등에 업을 중국과의 이번 맞대결은 한국으로선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한국 축구에게 이번 대결은 지난 2010년의 '악몽'을 설욕할 절호의 기회다.

지난 2010년 2월 10일은 한국 축구사에 있어 '치욕의 날'로 남아있다. 당시 중국과의 역대 전적에서 16승 11무의 절대 우세를 이어가던 한국 축구는 일본 도쿄에서 열린 동아시안컵 대회에서 중국에 처음으로 무릎을 꿇었다. 그것도 0대3 완패였다.

당시 '공한증(恐韓症, 중국이 한국 축구에 대해 느끼는 두려움)'이란 말이 무색할 만큼 무기력하게 무너졌던 한국은 지난 2013년 7월 경기도 화성에서 열린 동아시안컵에서 맞대결을 펼쳤지만 0-0으로 무승부를 거두며 설욕전을 미뤄야 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이번 동아시안컵의 강력한 우승 후보는 중국"이라며 경계심을 늦추지 않으면서도 "우리는 여기에 도전하러 왔고, 중국이라는 팀을 상대할 준비가 돼 있다"며 필승의 각오를 밝혔다.

이재성, '중국 바람' 휘젓는다

동아시안컵 대회는 FIFA가 정한 공식 A매치 일정에 해당하지 않아 유럽, 중동에서 뛰는 선수들은 대표팀에 차출되지 않았다.

때문에 이번 슈틸리케호에는 국내 축구팬에게 생소한 얼굴들이 많다. 골키퍼 구성윤(삿포로)을 비롯해 이찬동(광주), 이종호(전남), 임창우(울산), 김민혁(도스), 권창훈(수원) 등은 아직까지 A매치 경험이 전무한 선수들이다.

확 달라진 동아시안컵 대표팀에서 가장 변화의 바람이 크게 불 것으로 보이는 포지션은 원톱 공격수의 아래를 받쳐줄 2선 공격진 자리다. 한국 축구의 '에이스' 손흥민(레버쿠젠)을 비롯해 구자철(마인츠), 이청용(크리스탈 팰리스), 남태희(레퀴야) 등이 빠진 자리를 K리그와 일본 J리그, 중국 슈퍼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이 메워야 한다.

슈틸리케 대표팀 감독은 이번 동아시안컵을 앞두고 공격진 구상에 대해 "김승대(포항)와 이종호를 측면 공격수, 김신욱을 원톱으로 활용할 것"이라고 공언한 바 있다.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좋은 활약을 펼쳤던 김승대와 이종호는 아직 A매치 경험이 없고, 장신 공격수 김신욱(울산) 역시 슈틸리케호 출범 이래 처음으로 대표팀에 승선한 터라 이번 대회에서의 활약을 장담할 수 없다.

전체적으로 경험 부족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팀 공격의 중심을 잡아줄 선수로 이재성(23, 전북)이 꼽히고 있다. 지난 3월 우즈베키스탄전에서 A매치 데뷔전을 치른 이재성 역시 국가대표 경력은 그리 길지 않다. 하지만 최근 국가대표팀 경기에 빠짐 없이 출전하며 어느덧 슈틸리케호의 핵심 공격수가 됐다.

지난 3월 뉴질랜드와의 친선 경기에서 A매치 데뷔골을 터뜨리며 '슈틸리케호의 신데렐라'로 떠오른 이재성은 지난 6월 열린 미얀마와의 러시아월드컵 2차 예선 1차전에서도 결승골을 터트리며 슈틸리케 감독의 마음을 잡았다.  

이재성의 활약은 K리그 무대에서도 두드러진다. 올 시즌 전북 유니폼을 입고 4골 4도움의 맹활약을 펼치고 있는 그는 지난달 26일 '라이벌' 수원 삼성과의 경기서 천금 같은 결승골을 터뜨리며 소속팀의 리그 선두를 이끌고 있다.

어느덧 K리그와 대표팀의 중심으로 떠오른 이재성은 손흥민, 김진수(호펜하임)와 함께 '황금 세대'로 통하는 1992년생이다. 180cm, 70kg의 비교적 호리호리한 체격이지만 박지성의 활동량과 이청용의 축구 센스를 두루 갖췄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만큼 이번 경기에서의 활약이 주목된다.

'캡틴' 김영권, 수비를 부탁해

슈틸리케 감독은 지난달 28일 동아시안컵 대표팀 주장으로 김영권(25, 광저우 에버그란데)을 선임했다. 2012 런던올림픽, 2014 브라질월드컵, 2015 호주 아시안컵 등 큰 무대를 수차례 경험한 김영권은 이번 대회에서 처음으로 주장 완장을 차게 됐다.

그동안 팀의 중심을 잡아주던 노장 수비수 곽태휘(34, 알힐랄)가 중동에서 뛰는 탓에 이번 대회에 불참하게 되면서 김영권의 책임감은 더욱 막중해졌다.

지난 2012년 7월 광저우 에버그란데 유니폼을 입은 뒤 올해로 중국에서 네 번째 시즌을 보내고 있는 김영권은 2006 독일월드컵에서 이탈리아의 우승을 이끈 명장 마르셀로 리피 감독의 신임을 받으며 광저우의 주축 수비수로 활약했고, 지난 6월부터는 2002 한일월드컵에서 브라질을 정상에 올려놓았던 루이스 스콜라리 감독의 지휘를 받으며 거침없는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최근 김영권은 영국 축구 매체 스쿼카가 선정한 '중국 슈퍼리그 베스트11'에서 비(非)중국 아시아 선수로는 유일하게 이름을 올리며 실력을 인정받기도 했다.

중국 축구가 급부상하고 있는 상황에서 '지중파(知中派)' 수비수 김영권의 존재는 큰 힘이 된다. 특히, 자국 리그 출신들로만 엔트리 23명을 꾸린 중국 대표팀 가운데 스트라이커 가오린, 주장 정쯔 등 김영권과 광저우 에버그란데에서 한솥밥을 먹는 선수가 7명이나 되는 만큼 이번 대결에서 김영권의 활약이 기대된다.

이번 슈틸리케호의 수비진에는 김영권 이외에도 중국 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이 2명이나 더 포진돼 있다. 장현수(광저우R&F), 김주영(상하이 상강) 등 중국 슈퍼리그 무대에서 활약하는 수비수들이 이번 대결에 나서는 만큼 이들의 활약도 주목해 볼 만하다.  

중국전을 앞둔 김영권은 "중국 축구의 스타일은 거칠다"면서 "중국이 베스트 멤버로 나서는 만큼 쉽지 않겠지만 잘 이겨내겠다"고 경기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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