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두권 경쟁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시리즈다. 삼성과 두산 두 팀 모두 그런 면에서 시리즈 첫 경기를 잡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하지만 선발투수 싸움에서 경기 초반부터 차이가 벌어졌고 3회를 채우지 못한 채 두산 선발 진야곱이 마운드를 떠났다. 결국 삼성이 11-4, 7점 차 대승을 거뒀다.

7월 31일 패배한 두산은 2연패에 빠진 것은 물론이고 2위 자리를 넥센에게 내줬다. 7회부터 추격의 발판을 만들었지만 승부를 뒤집기엔 역부족이었다. 주축 선수들의 부상 및 피로누적이 라인업의 변화를 가져왔는데 국해성과 고영민 등 나름대로 김태형 감독이 고민하고 뽑은 선수들의 활약이 지지부진했다. 국해성은 마지막 타석에서 데뷔 첫 홈런포를 때렸으나 이전 타석까지 답답한 모습을 보여줘 아쉬움을 샀다.

무엇보다도 패배 뒤에 가려진, 진야곱의 바통을 이어받은 이현호의 95구는 왠지 모르게 짠하게 다가왔다. 6월 7일 넥센전 이후 두 달여 만에 1군 마운드를 밟은 니퍼트가 등판할 때 경기장을 가득 메웠던 박수는 오히려 이현호가 받았어야 할지도 모른다. 공교롭게도 이전 경기까지 이현호가 가장 많은 투구수를 기록한 경기는 이 날, 니퍼트의 부상이 발생한 6월 7일 넥센전이었다.

역투하는 이현호 31일 삼성전에서 역투를 펼친 이현호

▲ 역투하는 이현호 31일 삼성전에서 역투를 펼친 이현호 ⓒ 한호성


제구 난조, 그럼에도 꾸역꾸역 막은 이현호

결론부터 말하면 이현호의 이 날 컨디션은 평소보다 좋지 않았다. 구속은 140km대 중후반을 넘나들었지만 평소 같았으면 원하는 대로 들어갔을 변화구가 말을 듣지 않았다. 3회초 1사에서 마운드에 오른 이현호는 1사 2루에서 구자욱과 박해민 두 타자를 볼넷으로 내보내며 1사 만루 위기를 맞이했다. 특히 박해민을 상대로 볼카운트 0-2 유리한 상황에서 연거푸 볼을 던지는 장면은 평소답지 않았다.

다행히 이현호는 나바로를 삼진, 최형우를 뜬공으로 처리하며 추가 실점 없이 이닝을 마무리했다. 4회 1사에서 이승엽에게 안타를 허용한 뒤에도 무실점, 5회초 무사 1, 3루에서 삼진과 뜬공 두 개로 박해민, 나바로, 최형우 세 타자를 잡았다. 점수 차가 많이 나는 상황에서도 집중력을 잃지 않은 투구는 컨디션을 떠나서 칭찬 받아 마땅했다.

애석하게도 타선은 이현호의 호투에 응답하지 못했다. 6회까지 상대 선발 장원삼에게 이렇다 할 찬스를 잡지 못한 채 경기 내내 끌려다니기만 했다. 좌투수 선발을 대비한 우타자 위주의 파격적인 라인업은 실패에 가까웠고, 김현수와 오재원 등 잔부상을 가진 타자들이 태반이었다. 박건우와 국해성의 홈런포 두 방마저 나오지 않았다면 '굴욕'을 당할 수도 있었다.

6회초 이흥련의 1타점 적시타, 7회초 이승엽의 2타점 적시타가 나오며 승부의 추가 확실하게 삼성 쪽으로 기울었고 결국 이현호는 7회초 2사 1, 3루의 상황에서 니퍼트에게 마운드를 넘겨줬다. 4.1이닝 95구 소화, 100구 가까이 던진 것은 프로 데뷔 이후 처음이다. 말 그대로 꾸역꾸역 버틴 셈이다.

투구 준비중인 이현호 이현호의 95구는 왠지 모를 씁쓸함을 남겼다.

▲ 투구 준비중인 이현호 이현호의 95구는 왠지 모를 씁쓸함을 남겼다. ⓒ 한호성


두산 불펜의 현주소, 아직은 강팀이 아니다

이현호 이후 니퍼트가 1.2이닝, 이재우가 0.2이닝을 책임지며 불펜 소모를 최소화한 두산은 한편으로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이현호 혼자서 95개의 공을 던질 수밖에 없었던 것은 코칭스태프의 선택도 있었지만 결정적으로 마땅한 추격조가 없다. 최근 이재우와 이현호를 제외하면 대부분은 접전 상황에서 등판했다. 그렇다고 결과가 좋았던 것도 아니다.

윤명준만 봐도 그렇다. 시즌 초반까지만 해도 마당쇠 역할을 도맡으며 노경은의 공백을 메웠으나 시즌을 거듭할수록 제구 불안에 어려움을 겪으며 필승조에서 추격조로 보직을 이동했다. 보직을 이러저리 옮기다 보니 자기 자리를 잡지 못한 윤명준은 최근 두산 불펜의 골칫거리나 다름없다. 가뜩이나 상태가 좋지 않은 불펜인데 믿었던 마당쇠의 몰락에 탄식이 절로 나온다.

31일 경기 패배로 넥센에게 3위 자리를 내줬고 이젠 4위 추락도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1위 삼성과 승차는 4경기 차로 근래 들어 가장 크게 격차가 벌어졌다. 아직 잔여 경기가 많이 남은 것을 감안하면 분명 뒤집을 수 있는 격차다. 그러나 지금 상황에서 가능할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한다.

이현호가 95개의 공을 던짐으로써 주말 3연전 남은 경기 등판이 어려워졌다. 나머지 두 경기에서 나올 투수들의 어깨는 더욱 무거워졌다. 두 경기에서 만족스러운 성과를 거두지 못할 경우 자칫 선두권 경쟁에서도 멀어질 수 있어 사활을 걸어야 하는 두산이다.

아직 어린 투수에게 95개의 투구수는 좋은 경험이라고 포장하긴 어렵다. 시즌 초반부터 불펜에 대한 고민이 깊었는데 아직까지도 구심점 역할을 해줄 선수도 없고 그렇다고 전반적으로 안정감이 있는 것 또한 아니다. 이현호의 95구가 시사하는 바가 단순히 고생했다는 것에서 그쳐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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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네이버 블로그 유준상의 뚝심마니Baseball(blog.naver.com/dbwnstkd16)
프로야구 KBO리그 두산베어스 이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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