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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일, 서울시 성북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영철버거 창업자 이영철(48)씨. 이씨는 "영철 버거를 하면서 단 한 번도 후회해 본 적이 없다"라며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에, 이건 실패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 영철버거 창업자 이영철씨 지난 30일, 서울시 성북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영철버거 창업자 이영철(48)씨. 이씨는 "영철 버거를 하면서 단 한 번도 후회해 본 적이 없다"라며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에, 이건 실패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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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철버거 창업자 이영철씨(48)는 "영철 버거를 하면서 단 한 번도 후회해 본 적이 없다"라며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에, 이건 실패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며칠 전 언론보도를 통해 영철버거 본점의 폐업 소식이 전해진 후 그는 한동안 두문불출했다. 지난 30일에야 가까스로 연락이 닿은 이영철씨는 답답함 때문에 언론에 나섰다고 했다. '폐업 원인'에 대한 오해가 쌓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현재 SNS에서 퍼지고 있는 '고대 경영학과 학회 컨설팅을 잘못 받아 영철버거가 망했다'거나, '고급화 전략 때문에 영철버거가 망했다'는 소문이 잘못됐다고 말했다.

지난 2011년 학생마케팅동아리 MCL(Marketing & Creative Leaders)에게 컨설팅을 받은 사실에 관해 이씨는 "친구들의 조언과 컨설팅을 받았지만, 결국은 그건 나의 문제지 그들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실제, 영철버거의 리브랜딩을 MCL이 제안한 전략은 '스트리트 버거의 부활'이나 '프랜차이즈 메뉴 통일' 등이었다.

학생들과 함께 하고팠는데... 폐업 직접 원인은 "무리한 직영점 운영"

슬레이트가 내려가 있는 영철버거 본점. 영철버거 본점은 지난 7월 1일부터 문을 닫았고, 21일 최종적으로 폐업이 결정됐다.
▲ 굳게 닫힌 영철버거 본점 슬레이트가 내려가 있는 영철버거 본점. 영철버거 본점은 지난 7월 1일부터 문을 닫았고, 21일 최종적으로 폐업이 결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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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철버거의 원조인, 1000원짜리 '스트리트 버거'를 고집하던 이영철씨는 2004년 새로운 메뉴를 도입하고 영업을 확대했다. 또 2007년엔 프랜차이즈 사업을 본격화 하면서 가맹점이 80여 개로 늘어났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레 제품이 늘어나고, 가격이 올랐다.

지난 30일, 고려대 후문에서 만난 10여 명의 학생은 대부분 '영철버거가 비싸다'고 평했다. "햄버거는 어디까지나 '식사 대용'일 수밖에 없는데, 가격이 7000~8000원에 이르러 부담이 된다"는 것이다.

이영철씨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싸게 파는 것만이 최선의 방법은 아니다"라며 "1000원짜리 영철버거를 변화해서, 좋은 재료를 쓰고 청결한 방법을 사용하면서 발전해야 내가 학생들과 영원하리라 판단했다"라고 말했다. 이어서 "(영철버거가) 싸니까 사람들이 쉽게 생각했다, 그러나 고객들이 '아, 이건 가치 있는 음식이구나'하고 인정해주길 바랐다"라며 "또 나와 우리 직원이 햄버거를 만들 때 자부심이나 자긍심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이영철씨가 추구한 것은 '고급화'가 아니라 '장인 버거' 전략이라는 것이다. 그는 "좋은 재료로 사기 위해 그만한 비용 지불을 해야 하는데 왜 그게 고급화인지 알 수가 없다"며 답답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문을 닫은 영철버거 본점 앞에서 고려대 학생들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 영철버거 본점 문을 닫은 영철버거 본점 앞에서 고려대 학생들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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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이씨는 영철버거가 폐업하게 된 직접적인 원인을 "변화를 이겨보려고 무리하게 직영점을 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직영점이 잘 안 되다 보니 지인들의 돈을 빌렸던 것을 메꾸면서 이자에 이자가 불어났다"고 설명했다.

이영철씨는 지난 2000년 고려대 후문 리어카 노점에서 영철버거 장사를 시작했다. 당시 영철버거의 가격은 1000원이었고, 서비스로 주는 탄산음료는 무한리필이었다. 영철버거는 학생들의 입소문을 타고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노점을 시작한 지 2년 만인 지난 2002년, 길거리를 벗어나 안암동 매장에 영철버거 본점을 차렸다. 2005년에는 현 위치인 안암동 96번지로 매장을 옮겼다. 장사를 시작한 지 15년, 이제 안암동 매장의 문은 굳게 닫혀 있다.

그는 "그동안 수많은 학생에게 즐기라고 했다, 나는 돈을 벌려고 장사를 한 게 아니라고 말했다"라며 "지금은 내가 웃으면서 즐겁게 일할 수 없어 정리한 것이고, 내 가치관을 전하기 위해 꼭 재기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이영철씨와 나눈 인터뷰 내용이다.

"컨설팅 때문에 망해? 사실 아냐...많이 속상하다"

서울시 성북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영철버거 창업자 이영철(48)씨는 영철버거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이씨는 가게에 나갈 일은 없지만, 항상 영철버거 유니폼을 입는다고 했다.
▲ 영철버거 유니폼을 입고온 이영철씨 서울시 성북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영철버거 창업자 이영철(48)씨는 영철버거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이씨는 가게에 나갈 일은 없지만, 항상 영철버거 유니폼을 입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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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7일 영철버거가 폐업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중요한 건, 영철버거는 아직 망하지 않았다. (학생마케팅동아리가) 컨설팅을 잘못했다는 소문이 있는데, 고대 게시판(고려대학교 재학생 커뮤니티 '고파스')이나 트위터에 올라온 글들을 보면서 '왜 이 친구들이 이럴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 부분에 대해서 안이하다고 느꼈다. 고인 물은 썩는다. 중요한 건 변화를 해야 한다.

내가 '스트리트 버거'를 지금까지 했어도 후회했을 것이다. 물론 적응은 좀 늦었다. 그런데 인정을 받았던 부분도 있다. 내가 지금 이렇게 힘들어진 것은 지난 2009년 신설동과 경희대에 직영점이 잘 안 되면서, 부채 때문에 힘들어져서 그런 거다. 그래서 폐업이라는 결정을 한 거다. 나는 지금까지 영철버거를 하면서 단 한 번도 후회해본 적이 없다."

- 학생마케팅동아리에 컨설팅을 받았다는 것은 사실인가?
"나는 그 젊은 학생들의 창의력, 자신감 그런 걸 믿었다. 그리고 또 내가 추구하는 콘셉트가 20대와 30대를 잡아내는 것이었다. 그래야 영철버거가 끊임없이 변화하고 발전할 수 있다. 물론 그 친구들의 조언도 받고, 소위 '컨설팅'도 받았지만 결국은 그건 나의 문제지, 그들의 문제가 아니다. 나는 그들을 통해 정말 많은 걸 배웠다. 내가 만약에 영철버거를 다시 한다고 해도, 그들과 같이 수많은 고민을 해보고 싶다."

- 컨설팅 때문에 망했다는 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많이 속상하다. 그래서 인터뷰에 응한 것이다. 중요한 게 뭐냐면, 영철버거라는 이름 자체가 '싸다'는 점이다. 이미지를 바꾸다 보니까 '고급화'라고 하는 데 고급화가 아니다. 자본주의가 무엇이냐? 내가 그만큼 비용을 지불해야 좋은 물건을 살 수 있는 거다. 자본주의에서 좋은 재료를 사기 위해 그만한 값을 내야 하는데 왜 그게 고급화인지 알 수 없다. 납득하기 힘들다. 싼 건 싼 이유가 있고, 비싼 건 비싼 이유가 있다."

- 고급화 잘못 활용해서 망했다는 것도 아닌가?
"그것도 아니다."

"내가 원했던 삶, 실패는 아냐"

- 영철버거를 이전에 이용했던 학생들은, 질이 좋다는 건 아는데 비싸서 못 가게 되는 것 같다.
"그건 반감이다. 싸게 파는 것만이 최선의 방법은 아니다. 1000원짜리 영철버거를 변화시켜서, 좋은 재료를 쓰고 청결한 방법을 사용하면서 발전해야 내가 학생들과 영원하리라 판단했다. 변화를 추구한 것이지, 터무니없는 가격을 불렀으면 벌써 망했다. 고급화 때문에 망했다면, 영철버거는 5년 전에 문을 닫았어야 한다."

- 왜 변화를 추구해야만 한다고 본 건가. 
"싸니까 쉽게 생각하더라. 내가 햄버거 시장도 분석하고 맛도 분석했지만, 영철버거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하나의 가치가 있는 햄버거다. 건강을 생각하고, 최고의 재료로 만드는. 그런데 그걸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같더라. 그게 화가 났다. 그전에는 그런 노력을 인정해주니까 서로가 서로에게 감사하다고 했다. 그런데 어느샌가 그게 사라졌다.

또 중요한 것은, 일하는 사람도 자긍심이 없었다. 일본으로 시장조사를 간 적도 있는데, 일본은 붕어빵을 팔아도 너무 정갈했다. 일본은 모든 게 장인정신이었다. 나도 그런 걸 만들고 싶었다. 나와 우리 직원이 햄버거를 만들 때 자부심이나 자긍심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이걸 통해서 고객들이 '아, 이건 가치 있는 음식이구나', 그걸 인정해주길 바랐다.

그렇게 하려고 최고의 재료를 썼다. 양심에 부끄러운 게 없는, 청결함으로, 나는 그걸 지켜왔다. 그걸 몰라주더라. 영철버거가 너무 싼 이미지가 있으니까 그랬다. 학생들의 컨설팅 때문으로 몰아가면 나는 허수아비가 되는 거다. 나는 학생들 의견이 맞았다고 생각하고, 지금도 인정한다. 앞으로 어떻게 하든 영철버거를 다시 시작할 거다.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 '장인 버거'에 대한 생각은 여전한 것 같다.  
"그래야만 영철버거가 수익이 발생해 사회에 좋은 일을 할 수 있을 거라고 봤다. 니체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고 하더라. '만약에 내가 다시 태어난다고 하더라도 지금과 똑같은 길을 산다고 하면, 그건 훌륭한 인생'이라고. 내가 대학 강의를 다니면서 학생들한테 한 얘기가 있다. 그걸 실천하고 싶었다. 내가 뱉은 말에 내가 책임을 질 수 있고, 그걸 통해 힘들다고 하는 청춘들에 보여주고 싶었다."

- 영철버거의 계보와 사장님의 삶이 닮아있는 것 같다.
"내 삶이랑 똑같다. 나는 초등학교 4학년 때 학교를 중퇴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내가 고대 앞에 왔고, 학생들과 친해졌다. 이들이 한마디, 한마디 던지는 얘기들에 너무나 흥분됐다. 쉽게 얘기해서 햄버거 팔아서 장사하는 게 아니라 공부를 한 거다. 너무 '이상'의 삶을 살아버린 거다.

새내기들이 들어오면, '아 새로운 고객이 오는구나 수도 있지만, '나는 저 애들하고 똑같은 신입생이구나!'하며 나도 저들과 똑같이 배워서 뭔가 새로운 것을 생각하겠다고 다짐했다. 이게 매우 단순하지만, 행복이었던 거다. 나 자신한텐 굉장히 위대했다. 이를 통해서 내 자녀와 대화하고, 꿈을 갖고 희망을 품고 살 수 있었다.

나에겐 악착같이 버는 돈보다는, 사회에 환원하고 존경받는 그런 삶이 우선이었다. 내가 힘들었던 게 2년 전부터다. 그동안 오로지 장사를 위해서만 살았더라면, 극단적인 생각도 할 수 있었을 거다.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었기 때문에 자꾸 희망이 생기고, 당당함이 생겼다. 사업하면 실패를 할 수도 있고, 성공할 수도 있는 거다. 그리고 나는 이걸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왜?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에. 이건 실패가 아니다. 나는 나의 가치관을 전하기 위해서라도 꼭 재기할 것이다."

- 사람들이 영철버거 폐업을 많이 안타까워한다. 
"나도 깜짝 놀랐다. 우리 어머님이 어렸을 때 그런 얘기를 많이 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 남기고 사람은 이름 남겨야 한다'고. 내가 엊그저께 신문 가져다 드렸다. 가까이 계신데도 내가 마음이 힘드니까, 요즘 어머님을 보지 못한다. (내 인터뷰가 나온) 신문을 보여주면서, '가게가 망해도 신문에 나온다, 그럼 죽으면 이름을 남기지 않겠느냐고, 그럼 효도한 거 아니냐'고 말했다."

"하나의 터닝 포인트, 고대 영철버거 영원할 것"

슬레이트가 내려가 있는 영철버거 본점. 영철버거 본점은 지난 7월 1일부터 문을 닫았고, 21일 최종적으로 폐업이 결정됐다.
▲ 굳게 닫힌 영철버거 슬레이트가 내려가 있는 영철버거 본점. 영철버거 본점은 지난 7월 1일부터 문을 닫았고, 21일 최종적으로 폐업이 결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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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래를 낙관하는 편인가?
"그동안 수많은 학생에게 즐기라고 했다. 나는 돈을 벌려고 장사를 한 게 아니라고 말했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걸 찾았으니, 끊임없이 파고들 거라고 말했다. 단,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는 나도 장담하지 못한다. 1년이 걸릴지, 2년이 걸릴지. 사실 어떤 방법이든 내가 가게를 지킬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웃으면서 즐겁게 일할 수 없어 정리한 것이다. 잠깐 쉬었다 가는 거다.

내가 또 다른 삶을 살아도 갈등, 번뇌, 고민이 계속 생길 것이다. 어차피 내 인생은 턱걸이 인생이었다. 물론 지금까지 15년 동안 내 인생에 누리지 못한 행복, 수많은 꿈, 자신감을 가졌지만, 앞으로도 그 이상의 것을 이룰 수 있을 거로 생각한다. 이번 경험이 '터닝포인트'가 되지 않을까. 영철버거를 하기 전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후회 없는 삶을 살았다고 자부한다."

- 사장님에게 '빚을 졌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한 편으로는 기분이 좋다. 자영업자가 몇십 억 원 까먹고 실패해도 이렇게 관심 갖지 않을 거다. 그래도 내가 학생들을 믿는 만큼, 여러분도 나를 믿어주었으면 좋겠다. 잘못됐다는 말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유명 햄버거 가게와 비교해도 부끄럽지 않은 제품을 만들어 왔다. 그리고 나 역시도 이걸 추억으로 끝내고 싶지 않다. 믿어 달라. 고대 영철버거는 영원할 것이다."

'영철버거를 돕자' 일부 고대생들 구체적 움직임


지난 27일 언론보도를 통해 영철버거의 폐업 소식이 전해지자, 많은 고대생이 안타까움을 내비쳤다.

영철버거 페이스북 페이지에는 "죄송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며 그간의 소회를 전하는 글이 올라왔다. 해당 게시물에는 "가정 형편이 어려워 과외를 할 때 영철버거로 끼니를 때우곤 했다", "청소년 공부방 아이들에게 저녁 식사를 후원해주셨다", "학창시절 아저씨의 신세를 많이 졌다"는 등 이영철씨에게 감사를 전하는 댓글이 이어졌다.

싼 가격으로 영철버거를 판매해 고대생들의 배를 채워줬던 이영철씨는 고대에 직접 장학금을 기부하기도 했다. 2004년부터 2008년까지, 총 1억200만 원의 장학금이 고대생들에게 전달됐다. 그의 장학금을 받은 학생이 51명이나 된다.

현재 학생들 사이에선 영철버거 창업주인 이영철씨를 돕기 위한 구체적인 움직임이 나오고 있다. 고려대학교 경제학과에 재학 중인 이승주(22)씨는 뜻이 맞는 학생들과 함께 이씨를 도울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8월 1일에 모여 첫 회의를 시작하고, 구체적인 계획을 만들어나갈 생각이다. '크라우드 펀딩' 등의 방식이 논의되고 있다.

이씨는 <오마이뉴스>와 전화 통화에서 "이영철 사장님에게 빚을 졌다는 마음이 크다"고 했다. 그는 "학생들이 사장님에게 장학금과 같은 직접적인 도움을 받지 않았어도, 사장님이 어떤 마음으로 지난 십 수 년간 베풀어주셨는지 안다"라며 "이제 우리가 그 마음을 되돌려 주어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밝혔다.

안타까움은 비단 학생들만의 몫은 아니었다.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김한겸(59) 교수는 전화통화에서 "영철버거 폐업에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그는 "이영철씨가 학생들의 이름을 다 외울 정도였다"며 "2010년에 학교 입학식과 졸업식 때 학생과 학부형에게 나눠줄 영철버거 1만 개를 주문했는데, 졸업생들이 자진해서 휴가를 내고 자원봉사를 하러 왔다"고 전했다.

이어 김 교수는 "고대 정신에 '공선사후 신의일관'이라는 게 있다"라며 "이영철씨가 우리에게 해준 게 있는데, 우리가 갚아야 한다는 고대 정신과 맞물렸다"고 설명했다.



○ 편집ㅣ곽우신 기자

덧붙이는 글 | 김예지 기자는 오마이뉴스 22기 대학생 인턴기자입니다.



태그:#영철버거, #이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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