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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평균 인구 15만 명당 1개꼴인 대형마트, 하지만 4만5000명당 1개꼴로 포화상태인 지역에서 또다시 대형마트 허가 신청이 들어온다면 지자체장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대형마트가 골목상권을 잠식한다'는 아우성이 전국적으로 울릴 때인 지난 2010년, 울산 북구에서의 일이다. 그해 8월 지주와 자본가 등은 울산 북구청장에게 미국계 대형마트인 코스트코 설립 신청을 했다. 하지만 구청장은 중소상인들의 하소연을 듣고 이를 수차례 반려했다.

대법원은 지난 30일 진장유통단지조합(코스트코를 유치한 지주와 자본가들)이 윤종오 전 북구청장과 북구청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민사소송에서 윤 전 청장 측의 상고를 기각하고 배상판결을 내렸다. 이에 따라 윤 전 구청장과 북구청이 조합 측에 물어야 할 배상금은 5억 원에 달한다.

더 한 문제는,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보수성향의 구청장으로 바뀐 울산 북구청이 배상금 연대 등을 우려해 윤 구청장에게 이 금액을 청구할 뜻을 밝힌 것. 북구청은 "이번 소송은 윤 전 구청장의 개인적인 결정에 의해 촉발된 것으로 판단된다"며 "북구청에 배상금이 청구되면 검토 후 윤 전 청장에게 구상권을 청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결국, 중소상인 등 약자를 지키기 위해 소신 행정을 펼쳤던 진보구청장은 거액의 배상금을 물어야 하는데 더해 자신이 진두지휘해 지역 중소상인 살리기에 함께 했던 북구청으로부터도 배척당할 처지에 놓였다.

중소상인 살리려 대형마트 허가 반려한 구청장

2013년 9월 9일 오전 11시 당시 윤종오 울산 북구청장(단상)과 '구청장 구명과 지역상권살리기 대책위원회'가 북구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법원의 손해 배상 판결에 항소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 하지만 항소심과 대법원은 모두 기각됐다
 2013년 9월 9일 오전 11시 당시 윤종오 울산 북구청장(단상)과 '구청장 구명과 지역상권살리기 대책위원회'가 북구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법원의 손해 배상 판결에 항소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 하지만 항소심과 대법원은 모두 기각됐다
ⓒ 박석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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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오 전 구청장은 민사소송 외에도 조합 측으로부터 형사 고소를 당했고, 검찰은 그를 기소해 징역 1년을 구형한 바 있다. 울산지방법원은 지난 2013년 1월 윤 구청장에게 벌금 1000만 원을 선고했고, 윤 구청장은 항소를 포기했다. 이 무렵 그는 인터뷰에서 "중소상인을 지키기가 너무 힘이 든다"고 토로한 바 있다. (관련 기사 : 구청장의 울분 "중소상인 지키기 너무 힘들다")

윤종오 전 구청장은 현대자동차 현장노동자 출신으로 민주노동당 소속 시의원을 지낸 뒤 2010년 구청장이 됐다. 그러나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거세게 몰아닥친 진보당에 대한 종북몰이 등으로 재선에 실패했다.

그에게 시련이 시작된 건 2010년 6·2 지방선거가 선거가 끝난 후 불과 두 달 뒤였다. 지주 등으로 구성된 조합 측은 코스트코를 유치키로 하고 그해 8월 북구청에 건축허가를 신청했지만, 구청장은 3차례 이를 거부했다.

그러자 조합 측은 보수성향의 광역시장이 있는 울산시 행정심판위원회에 행정심판을 청구했고 행심위는 2011년 5월과 7월 잇따라 코스트코 건축을 허가했다. 하지만 윤 구청장이 행심위 결정에도 코스트코 허가를 반려하자 조합 측은 2011년 9월 윤 구청장과 북구청을 상대로 10억 원 상당의 손배소를 제기하는 한편 형사 고소도 제기했다. 이 무렵 코스트코는 허가를 받아 지난 2012년 8월 개점했다.

"공익상 이유로 손해배상 책임 단정할 수 없지만... 독선"

민사소송 1심 재판부인 울산지법은 지난 2013년 9월 "중소상인 보호라는 공익상 이유로 건축허가를 반려한 것을 두고 손해배상의 책임이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울산시) 행심위의 판정을 어기고 다시 반려한 것은 이유가 합당하지 않다"고 밝혔다.

또 "구청장은 정치적 고려에 앞서 법률 테두리 안에서 행정을 결정해야 한다"며 "구청장이 중소상인 보호가 우선이라는 의견을 가질 수 있지만, 법률을 어기며 강행한 것은 독선에 불과하다"며 조합 측의 손을 들어줬다. 이어 2심인 부산고법은 올해 2월 윤 구청장 측 항소를 기각했고, 결국 대법원 제1부(재판장 김용덕 대법관)도 "원심의 판결은 정당하다"며 상고를 기각한 것.

이번 판결을 두고 지역에서는 "지자체장이 과연 앞으로 어떤 행정을 펼쳐야 하나"는 자조 섞인 이야기가 나온다.

당시 윤 구청장이 기소된 후 지역에서는 진보와 보수를 망라해 180여 개 단체나 개인이 대책위를 구성해 서명운동을 벌이는 등 구명 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특히 이 소식을 들은 박원순 서울시장을 비롯한 전국 28개 지방자치단체장과 여야 의원 116명이 탄원서에 서명했다. 하지만 모두 수포가 되었다.

윤 전 구청장은 1심 판결 5일 뒤인 지난 2013년 9월 9일, 중소상인 등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지자체장은 단순히 행정처리만 해주는 기관장이 아니라, 주민의 복리증진과 지역사회 균형발전을 위해 업무를 성실히 수행하기 위한 책무가 주어져 있다"면서 "지역 상권을 활성화해 균형적 삶이 유지되도록 하는 것은 단체장의 의무이기도 하다"며 손해 배상 판결에 의문을 보인 바 있다.

또한, 중소상인 등으로 구성된 대책위는 "윤 구청장은 대형마트가 추가로 들어설 때 유발되는 지역경제의 불균형과 소규모 점포와 재래시장 등 골목상권이 몰락하는 지역 상권을 보호하기 위해 그 대안이 마련될 때까지 건축허가신청을 반려한 것"이라며 "지금도 정당한 행정행위였다고 생각한다"고 호소했었다.

특히 이들은 손해배상금액에 대해 "진장유통단지조합 측은 '만약 건축허가를 일찍 받았다면 임대료와 이자의 수입을 얻을 것'으로 추측한 것"이라며 "건축물 준공과 사용 여부에 관계없이 토지임대차계약서에는 임대료 지급 산정에 대한 기준일이 명확하게 제시되어 있지 않다"고 지적한 바 있다.

하지만 법원은 거액의 배상금을 결정하면서 '주민의 복리'를 내세운 윤 전 구청장과, '정당한 행위'라고 주장한 중소상인들의 호소를 일축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시사울산>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울산 코스트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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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지역 일간지 노조위원장을 지냄. 2005년 인터넷신문 <시사울산> 창간과 동시에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활동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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