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의 축구강국들이 모여 자웅을 겨루는 2015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선수권대회가 올해도 6회째를 맞이했다.  1일 중국 우한에서 열전에 돌입하는 동아시안컵에는 한국을 비롯하여 개최국 중국과 영원한 라이벌 일본, 다크호스 북한 등 4개 팀이 참가해 풀리그로 우승팀을 가린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이끄는 한국 대표팀은 2008년 이후 7년 만의 우승과 함께 세대교체 실험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쫓고 있다.

2003년부터 시작한 동아시안컵은 비록 월드컵이나 아시안컵같은 메이저대회는 아니다. 하지만, 참가국들이 서로 극동 축구를 대표하는 라이벌들이자 역사적으로 특수한 관계에 있다 보니 항상 치열한 경쟁의식이 발휘될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축구팬들을 웃고 울린 에피소드도 많았다.

초대 대회는 일본 사이타마에서 열렸다. 2002 한일월드컵 4강 신화의 여운이 아직 남아 있던 한국축구는 포르투갈 출신의 움베르투 쿠엘류 감독이 새롭게 지휘봉을 잡고 첫 대회였던 동아시안컵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당시는 홍콩(3-1)과 중국(1-0), 일본(0-0)을 상대로 무패행진을 이어갔다. 한국은 승점에서 일본과 동률을 이뤘으나 다득점에서 앞서 우승을 차지했다.

정작 초대 대회에서 가장 화제가 되었던 것은 성적보다 오히려 '을용타' 사건이었다. 중국과의 대회 2차전에서 이을용(현 청주대 코치)은 후반 15분 등뒤에서 거친 플레이를 연발하던 중국 공격수 리이의 행동에 발끈하여 뒤통수를 손바닥으로 내리쳤다.

리플레이 화면을 보면 사실 제대로 맞은 것은 아니었지만, 리이가 잠시 황당해하다가 심판의 눈치를 보며 그라운드에 쓰러지는 모습을 볼수 있다. 그렇지 않아도 감정적으로 격해 있던 양팀 선수들이 주변으로 몰려들면서 그라운드 분위기는 삽시간에 험악해졌다. 이을용은 결국 레드 카드를 받고 퇴장 당했지만, 한국은 수적 열세에 흔들리지 않고 여유있게 승리를 지켜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사건은 당시보다 경기 후에 더 유명세를 탔다. 해외 토픽으로까지 알려질 정도였고 국내에서는 이을용의 행동에 대한 비판보다는 찬사가 압도적으로 더 많았다. 국제무대에서 거친 '소림축구'로 악명이 따라다니던 중국축구에 대한 반감에서 비롯된 현상이었다. 또한 당시 쓰러진 리이를 노려보던 이을용의 터프한 모습은, 인터넷에서 다양한 합성물과 패러디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지금도 이을용하면 2002 한일월드컵보다 '을용타'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더 많을 정도다.

2005년 한국에서 열린 제 2회 대회는 당시 사령탑이던 요하네스 본프레레 감독의 경질을 불러온 것으로 유명하다. 홈에서 처음 열린 대회였음에도 단 1승도 거두지 못하며 2무 1패, 최하위라는 망신스러운 성적표를 받아들어야 했다.

한국은 1차전에서 무려 2명이 퇴장 당한 중국을 상대로 1-1, 최약체로 꼽힌 북한에게 0-0으로 비겼고 일본과의 최종전마저 0-1로 패하는 졸전을 이어갔다. 당시 네덜란드 출신 본프레레 감독은 월드컵 본선행을 확정한 상황이었지만 실망스러운 경기 내용과 언론의 압박으로 이미 사면초가에 몰려 있던 상황이었다. 결국 축구협회는 동아시안컵이 끝난 후 얼마 지나지않아 본프레레를 경질하고 말았다. 본프레레 감독은 이후에서 해외무대를 전전하며 틈날 때마다 한국축구계에 대한 앙금을 드러내기도 했다.

허정무 감독은 유일하게 두 번의 동아시안컵을 겪은 대표팀 사령탑이다. 허정무호 출범 초기이던 2008년 중국 충칭에서 열린 3회 대회 때는 2승 1무로 역대 두 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첫 경기에서 박주영과 곽태휘의 연속골로 홈팀 중국과 접전 끝에 3-2 재역전승을 거뒀고, 북한-일본과는 모두 염기훈의 연속골에 힘입어 1-1로 비겼다.이후 허정무호는 월드컵 예선까지 A매치 27경기 연속 무패행진을 이어가게 된다.

이 대회는 '인민 루니' 정대세의 존재를 국제무대에 처음 알린 순간이기도 했다. 당시 J리그 가와사키 프론탈레 소속의 정대세는 재일동포이면서 한국 국적을 지닌 북한 대표선수라는 독특한 정체성, 웨인 루니를 연상시키는 공격적이고 투지넘치는 플레이 스타일로 국내에서 큰 화제를 일으켰다. 정대세는 일본과의 1차전에 이어, 한국과의 2차전에서도 연속골을 기록하며 향후 한국축구와의 깊은 인연을 예고했다.

이때부터 시작된 허정무호와 북한의 충돌은 이후 한국과 남아공월드컵 3차예선과 최종예선까지 한 조에 편성되며 최종예선 6차전에서 0-1로 패배하기까지 무려 4연속 무승부를 기록하는 악연으로 이어졌다. 북한은 결국 한국에 이어 조 2위로 44년만에 남아공 월드컵 본선 진출에 성공하며 함께 웃을 수 있었다.

허정무호의 두 번째 도전이던 4회 일본 동아시안컵은 천당과 지옥을 오간 대회로 기억된다. 당시 남아공월드컵 본선을 불과 4개월 앞둔 시점에서 허정무 감독은 동아시안컵을 국내파와 J리거의 마지막 옥석 가리기를 위한 실험무대로 활용하려고 했으나 홍콩전 완승(5-0) 이후 뜻하지 않은 중국전(0-3) 참패로 위기에 직면했다. '공한증'에 시달리던 중국에게 32년, 28경기(16승11무)만에 당한 첫 패배이자, 허정무호 출범 이후 아시아팀에게 당한 유일한 패배이기도 했다. 허정무 감독에게 호의적이지 않던 국내 여론은 들끓었다.

하지만 허정무호는 마지막 경기였던 일본전에서 짜릿한 역전승으로 기사회생했다. 공교롭게도 경기 당일은 설날이었는데 한국은 엔도 야스히토에게 선제골을 내줬지만 이동국의 페널티킥 동점골과 이승렬의 역전골, 김재성의 쐐기골까지 터지면서 3-1로 승리했다.

중국전 참패의 후유증에서 벗어난 허정무호는 다시 순항을 이후 다시 상승세를 이어갔고 5월 열린 일본과의 원정 리턴매치에서도 다시 2-0 완승을 거두며 사상 최초의 원정 16강을 향한 청신호를 밝혔다. 참고로 허정무 감독은 재임 기간 동안 동아시안컵을 포함하여 일본과의 대결(2승 1무)에서 한 번도 지지 않았다.

2013년 한국에서 두 번째로 열린 5회 대회는 2회 대회의 재탕으로 불린다. 한국은 이번에도 2무 1패로 단 1승도 거두지 못하고 홈에서 열린 대회에서 오히려 부진한 징크스를 반복했다.

5회 동아시안컵은 훗날 역사상 최악의 대표팀 감독으로 남게 될 홍명보 감독의 데뷔무대였다. 한국은 중국-호주와 잇달아 0-0으로 비겼고, 최종전에서는 일본에 1-2로 패하며 3위로 대회를 마감했다. 홍명보 감독은 이후 역대 대표팀 최장기간 무승 기록을 비롯하여, 역대 A대표팀 최저승률(26.3%, 5승 4무 10패), 브라질월드컵 조별리그 탈락 등 각종 불명예 기록을 양산하며 사퇴했다. 동아시안컵 부진은 '제 2의 본프레레' 홍명보호의 어두운 미래를 예고하는 신호탄이었던 셈이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은 한국대표팀 감독으로서는 쿠엘류-본프레레 이후 10년 만에 동아시안컵에 나서는 외국인 사령탑이다. 슈틸리케 감독은 해외파가 나서지 못하는 이번 동아시안컵을 국내파 점검과 세대교체를 위한 절호의 기회로 판단하고 젊은 선수들 위주로 팀을 꾸렸다. 평균 연령이 24.3세에 불과하고 A매치 경험이 없는 선수들도 7명이나 포진했다.

승패보다는 과정에 초점이 맞춰진 동아시안컵이지만, 한국과 특수한 인연으로 얽혀 있는 중국-일본-북한과의 대결은 역시 관심이 쏠린다. 한국을 역대전적에서 모두 우위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일본을 상대로는 2010년 5월 평가전 승리 이후 5년간 4경기 연속 무승(2무 2패)에 그치고 있고, 중국에게도 2008년 2월 동아시안컵 승리 이후 6년간 2번 대결하여 1무 1패에 머물고 있어서 승리를 맛본 지는 꽤 오래됐다.

아시아 축구시장의 새로운 큰 손으로 떠오른 중국은 K리거와 국가대표 출신들까지 대거 자국리그에 흡수하며 수준을 끌어올렸고, 더 이상 공한증을 의식하지 않을 만큼 성장했다. 순수한 국내파 위주로 구성된 이번 동아시안컵 대결은 K리그와 중국 슈퍼리그의 자존심이 걸린 승부이기도 하다. 일본은 전통적인 라이벌구도에 한국과는 지난해 월드컵 악연이 있는 바히드 할릴로지치 감독의 부임으로 더 뜨거운 관심을 모으고 있다.

합리적인 리더십과 실용축구로 팬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슈틸리케 감독이 젊은 선수들을 이끌고 동아시안컵에서는 또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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