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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 일해공원에서 열리고 있는 합천문인협회의 <시가 있는 산책- 공원 시화전>의 시를 감상하고 있는 나그네들
 합천 일해공원에서 열리고 있는 합천문인협회의 <시가 있는 산책- 공원 시화전>의 시를 감상하고 있는 나그네들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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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합천에 서려 있는 대표적인 역사는 642년(선덕여왕 11)의 대야성 전투이다. 이때 김춘추의 딸 고타소와 사위 김품석이 백제 윤충 부대의 칼날 아래 목숨을 잃는다. 원수를 갚겠다는 일념에 사로잡힌 김춘추는 원병을 요청하기 위해 고구려로 들어간다. 하지만 보장왕과 연개소문은 죽령 이북의 땅을 돌려주면 협조하겠다며 김춘추를 연금한다. 김춘추는 뒷날 소설로 발전하는 근원설화 <구토지설>로 그들을 속이고 탈출한다.

하지만 2015년 지금의 합천은 전쟁이 아니라 평화로 가득하다. 해마다 농한기를 맞아 열리는 '합천 예술제' 열한 번째 축제가 시내 일원에서 열리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7월 26일 전야제를 시작으로, 27일 개막식 및 축하공연과 댄스 페스티벌, 28일 음악협회의 '한여름밤! 행복을 노래하라', 29일 경남국악 순회 공연, 30일 합천문인협회의 '강희근 시인과 함께하는 명사 초청 시 낭송회'가 열렸다.

31일에는 신명나는 마당놀이 한마당으로 '배 비장 뱃놀이 나가신다'가 열린다. 전문예술법인 문화두레 어처구니가 공연한다. 지난 27일부터 합천문화예술회관 전시실에서 열려온 합천미술협회와 합천사진작가협회 회원 작품전도 31일까지 열린다. 그런가 하면 18일부터 일해공원 일원에서 손님을 맞고 있는 합천문인협회의 '시가 있는 산책- 공원 시화전'은 오는 8월 8일까지 계속된다. 다음은 김숙희 시인의 <아랫목> 전문.

1.

한 놈 두 놈...... 일곱 놈
상머리 둘러 앉아
한 술씩 줄어가는
하얀 쌀밥 눈요기하면
잡수시다 내려놓는 내리사랑에
텃밭 무처럼 응아는
쑤욱쑤욱 커 가고

2.

사방 벽에 뿌려놓은
동짓달 액땜
아랫목 아이들 발 시릴라
이불 당겨주시던
밤 깊은 포근함
싸락싸락 눈발로 오네

합천 일해공원에서 열리고 있는 합천문인협회의 <시가 있는 산책- 공원 시화전>의 정경
 합천 일해공원에서 열리고 있는 합천문인협회의 <시가 있는 산책- 공원 시화전>의 정경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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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 극복 방법'이 인터넷 검색어 1위를 달리고 있는 7월 30일, 지인의 합천 방문길에 동행했다. 온도계는 무려 36도를 뛰어넘었고, 땡볕은 말 그대로 땅이 펄펄 달아오르도록 쏟아졌다. 그렇잖아도 때때로 전국 최고의 무더위를 뽐내는 합천 아닌가. 합천은 강이름조차도 뜨거운 햇볕 아래 모래밭이 뜨겁다는 뜻에서 황강인 곳이다. 그래서인지 대야성 아래 황강에서 물놀이를 즐기는 아이들의 환호성은 일해공원까지 들려왔다.

아이들의 하늘을 가르는 외침에 문득 시원한 기분을 맛보며 합천문인협회가 마련한 '시가 있는 산책- 공원 시화전'의 시들을 감상했다. 깔끔한 그림과 함께 액자 속에 든 채 나무에 걸려 있는 시들은 잠시나마 폭염을 잊게 해주었다. 다음은 김상완 시인의 <다반사(茶飯事)> 전문.

네가 떠난 발자국에
수수꽃다리 진한 내음이 고여 있다
네가 떠난 뒤에도 네 말들이
꽃비 되어 풀풀풀 날리고 있다

흔한 일이다
내 너를 그리는 것은
세 끼 밥으로 목숨 잇듯
널 그리는 일로 내 삶을 잇는다

시인은 "흔한 일이다"하고 말하고 있다. 하루 밥 세 끼를 먹으며 생명을 부지하고 있는 만큼이나 일상적으로 시의 화자는 떠나간 사람을 그리며 살아가고 있다. '널 그리는 일로 내 삶을 잇는다'며 낮게 읊조리는 까닭에 자못 어조가 애잔하지만, 그러나 시의 화자가 지금 슬픔에 겨운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움이 다반사가 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그리움이 삶의 근간으로 자리를 잡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내 삶을 지탱해주는 중요한 일이 되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떠난 그를 만약 잊었다면, 그야말로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인 것이다.  

시의 여운을 즐기며 우리 일행은 다음 행선지를 이야기했다. 물론 대야성에 가보아야 할 것이다. 대야성 입구에 세워져 있는 죽죽 기념비를 둘러보고, 황강 물가에 바짝 붙어 있는 황홀한 정자 함벽루에도 올라보아야 하리라. 그리고 나면 합천에 거주하는 지인이 강력히 추천한 '숨어 있는 명소' 호연정을 찾으리. 대야성, 죽죽 기념비, 함벽루는 예전에 이미 서너 차례 둘러본 곳이지만, 호연정을 찾는 일은 '흔하지 아니한 일'이라 그런지 공연히 가슴이 두근거린다.

함벽루에서 바라본 황강 물놀이 장면
 함벽루에서 바라본 황강 물놀이 장면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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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합천예술제, #합천문인협회, #함벽루, #대야성, #황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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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한인애국단><의열단><대한광복회><딸아, 울지 마라><백령도> 등과 역사기행서 <전국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 총서(전 10권)>,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2019 대구시 선정 '올해의 책')>, <삼국사기로 떠나는 경주여행>,<김유신과 떠나는 삼국여행> 등을 저술했고, 대구시 교육위원, 중고교 교사와 대학강사로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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