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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7월 29일, 거여동재개발지구의 골목길을 걷다. 폭염찜통더위에 골목길에선 뜨거운 기운이 가득했다.
▲ 거여동재개발지구 2015년 7월 29일, 거여동재개발지구의 골목길을 걷다. 폭염찜통더위에 골목길에선 뜨거운 기운이 가득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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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재개발지구로 선정된 거여동재개발지구(거여 2-1지구 거여동 '개미마을')는 지난 10년 동안 폐허가 되어갔다. 결국, 지난 5월에는 주택재개발사업이 '관리처분인가'를 받고 아파트촌으로의 재개발을 시작했다. 계획대로라면 마을 철거는 올해 10월에 완료되고, 늦어도 11월경에는 착공을 목표로 진행한다고 하니 어쩌면 이번 여름이 이곳의 마지막 여름이 될는지도 모를 일이다.

지난 5월부터 아직도 그곳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는 세대들이 본격적인 이주를 시작한다고 했지만, 골목마다 재개발을 반대하는 현수막과 붉은 깃발이 나부낀다. 어쩌면 시공사 롯데건설의 계획대로 재개발사업을 추진한다면, 강제철거와 철거에 반대하는 주민 사이에 큰 싸움이 전개될지도 모를 일이다.

개미마을로 불리던 그곳은 어릴 적 친구들이 살던 곳이며, 개인적으로 이런저런 추억이 있는 곳이다. 재개발지구로 선정된 이후 급속도로 슬럼화가 진행되면서 이제는 사람이 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남은 사람들보다 떠난 사람들이 더 많다. 철거가 시작되면 길고양이의 숫자가 그곳에 사는 사람들 숫자보다도 더 많을지도 모를 일이다.

집이 '찜질방' 같으니 밖으로 나올 수밖에

지난 몇 년간 시간이 될 때마다 그곳을 기록했다. 사계절 그곳을 돌아보았지만, 대체로 사람들을 구경하기가 쉽지 않았다. 열악한 환경을 보여주기 싫어하는 분 중에는 다소 공격적인 언행으로 대하는 분도 있었다. 그래서 그곳은 내게 고향 같은 곳이면서도 사진을 찍을 때마다 늘 부담되는 곳이기도 했다.

겨울에는 추워서 문을 꽁꽁 걸어 닫은 채로 살았을 것이며, 그래도 봄이나 가을에는 집안에서 생활할 만했을 것이다. 그러나 요즘같이 찜통더위와 열대야가 이어지면 가히 찜질방 같은 집에서 견딜 수가 없을 것이다. 그냥 그럴 것이라 상상만 하던 차에 거여동재개발지구를 지난 29일 걸었다.

골목 여기저기 재개발을 반대하는 현수막과 붉은 깃발들은 이제 곧 임박한 재개발사업의 전조인듯했다. 지금껏 이곳에 남아 재개발을 반대하는 분들의 심기가 불편할 것은 분명한 일이고, 무더운 더위에 불쾌지수까지 더해졌을 터이므로 이런 날은 마을을 사진으로 담기에 좋은 날이 아니다. 그래도 기왕에 나선 길이고 몇 걸음만 걸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날, 이곳을 둘러보고자 30분을 넘게 돌아돌아 걸어왔는데 그냥 가기는 섭섭했다.

골목 어귀 그늘진 곳마다 동네 어르신들이 많이 보인다. 그동안 재개발지구를 걸으면서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 저렇게 많은 분이 비가 새고, 찬 바람과 연탄가스가 비집고 들어오는 허름한 곳에서 살고 있었던 것이다.

재개발과 관련한 이야기들이 오가고 있었다. 낯선 이방인의 출현에 하던 이야기를 멈추고 경계를 한다.

"안녕하세요. 어렸을 적에 이곳에 친구들이 살아서 자주 왔었어요. 그런데 너무 많이 변해서 어디가 어딘지 잘 모르겠네요. 저기 쌀집 따님이 제 아내와 친구래요. 저는 지금은 없어진 국숫집 아들하고 친구였어요."

마을 분 중에서 내 말에 맞장구를 치는 분이 금방 나왔고, 이내 경계의 눈초리는 거둬졌다.

"더워서 집에 있을 수가 있어야지. 그래서 나와 있어. 그리고 재개발 말이야, 엄한 놈들만 돈 벌고 튀고, 평당 공사비도 얼만지 알려주지도 않고, 얼마를 내야 아파트에 들어가는지 알 수도 없고... 그냥 또 변두리로 쫓겨가는 건데. 이게 무슨 지랄들이여. 그냥 살게 놔뒀으면 지금처럼 이 모양 이 꼴은 아닐 거 아녀. "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 개미 마을에 들르기 전, 마천동 산 5번지를 걸었을 때도 제법 어르신들이 골목길에 많이 나와 있었다. 그나마 마천동 산 5번지는 연립주택들이기라도 하지만, 거여동재개발지구는 그야말로 찜질방이 따로 없을 것이다. 찜통더위에 복사열과 열대야까지... 평범한 집에서도 에어컨 없이는 견딜 수 없는데, 그곳의 더위는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가난한 이들을 외면하는 사회

거여동재개발지구는 곧 본격적인 개발을 앞두고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힘 있는 자들, 돈 있는 자들은 조금이라도 자신들의 이익을 더 챙기기 위해 전력을 다할 것이다. 그런 와중에 힘없고 가난한 이들은 속절없이 자본의 폭력 앞에서 자신들의 무기력함을 보게 될 것이다.

이런 일들을 지혜롭게 해결하는 일을 하라고 정치인과 대통령을 뽑아주었건만 서민들의 삶에는 관심도 없고 잿밥에만 관심이 있는 정치권, 힘없고 가난한 이들이야 어찌 되든 말든 돈만 벌면 그만이라는 토건세력들, 이 와중에 한 푼이라도 더 챙기려는 조합들, 그동안 지역을 위해서 한 일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으면서 종교부지 달라고 떼쓰는 종교시설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골목길에는 주인을 잃은듯한 번호판도 없는 오토바이 한 대가 먼지를 뒤집어쓰고 기대어 있었다. 그리고 할머니 한 분이 뒷짐을 지고 폐허 같은 골목길로 걸어 들어간다. 골목길 위에는 잘린 전선들과 아직도 이어진 전선들이 엉켜있고, 골목길 바닥엔 흙이 드러나 있는 것으로 보아 그 골목길에는 몇 사람 살지 않을 것이다. 저곳이 이 무더위에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집이란 말인가? 왜 그들은 그런 고통을 감내하며 살아가야 하는가? 그들이 못 배워서, 게을러서, 약삭빠르지 못해서라고 말하지는 말자.

1970년대 수출주도형 정책의 희생양은 농민이었다. 2000년대 토건세력의 이익을 위한 재개발 사업의 희생양은 과거부터 달동네와 재개발 촌을 전전하던 도시민들이었다. 가난한 자들은 21세기에도 두 번, 세 번 죽임을 당하고 있다.


태그:#거여동재개발지구, #골목길풍경, #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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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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