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Ulaanbaatar)를 떠난 우리의 차는 몽골 초원의 서쪽을 향해 계속 달리고 있었다. 우리는 몽골의 반사막 지대인 엘승타사르하이(элсэн тасархай)를 향해 가고 있었다. 엘승타사르하이는 외국인들에게는 발음이 어려워서인지 엘승타사르하이 지역에 있는 게르 캠프인 바양고비(Bayan Gobi)라는 이름으로 더 자주 불리고 있다.

바양고비의 '바양(bayan)'은 풍부하다는 뜻이고, '고비(gobi)'는 사막처럼 식물이 살기 어려운 지역을 말한다. 이 지역에 가축들을 방목할 목초지도 풍부하게 많이 있고, 식물이 살기 어려운 사막지대도 이 지역의 평원지대를 가로지르고 있어서 붙은 이름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작은 사막'으로 불리지만 정확히 말하면 평원지대 내에서 길게 이어진 사막 지형을 볼 수 있는 곳이다.

몽골의 초원지대 안에 길게 띠를 이룬 사막지형이 지나간다.
▲ 엘승타사르하이. 몽골의 초원지대 안에 길게 띠를 이룬 사막지형이 지나간다.
ⓒ 노시경

관련사진보기


바양고비는 울란바토르에서 서쪽으로 약 300km 떨어져 있다. 승용차로 중간에서 2번 쉬고 약 4시간 40분이 걸렸다. 포장도로는 가끔 파인 부분이 있지만 듣던 것만큼 도로 상태가 심각하지는 않고 충분히 차를 이용해 다닐 만했다. 울란바토르에서 바양고비까지 가는 길은 말 그대로 끝이 없는 대초원의 길이다. 4시간 40분이 언제 지나갔을까 싶을 정도로 가는 길은 이국적 풍광에 대한 감탄의 연속이다.

초원지대 안에서 사막을 바라보며 외롭게 지어져 있는 게르 캠프이다.
▲ 바양고비 캠프. 초원지대 안에서 사막을 바라보며 외롭게 지어져 있는 게르 캠프이다.
ⓒ 노시경

관련사진보기


도로 저편 멀리에 하얀 모래 산이 보이기 시작한다. 푸른 덤불이 드문드문 보이던 초원 지대에 나타나는 사막 풍경이 그렇게 장관일 수가 없다. 사막 앞의 초원 지대에는 수많은 가축이 방목되어 무리를 이루어 움직이고 있다. 그리고 그 앞의 게르에서 나온 유목민들은 자신의 가축들을 정성껏 돌보고 있다. 모래언덕 주변으로는 여행자들의 숙박시설인 게르(Ger) 캠프가 드문드문 들어서서 여행자들을 맞고 있다.

전통복장을 입은 몽골 여인의 족두리와 둥근 얼굴이 잘 어울린다.
▲ 몽골의 여인. 전통복장을 입은 몽골 여인의 족두리와 둥근 얼굴이 잘 어울린다.
ⓒ 노시경

관련사진보기


게르 캠프에 도착하자 몽골 여인의 전통복장을 입은 젊은 여인이 여행자들을 맞는다. 몽골 여인이 쓴 검은색과 파란색의 족두리 모자는 아주 단정하다. 이 여인의 붉은색 옷과 족두리, 그리고 둥그런 얼굴이 잘 어울린다.

그녀는 사막과 게르를 경험하러 온 외국의 여행자들에게 밝게 웃고 있었다. 우리나라 여인들이 전통결혼식 때에 머리에 쓰는 족두리도 원나라 때에 몽골에서 고려로 전해 내려온 풍습이다. 우리나라가 정복 당했을 당시에 전래한 우리나라 족두리의 원형을 보니 느낌이 복잡하다.

쾌적한 샤워시설, 소똥을 연로로 쓴다고?

우리가 묵게 된 게르 안에서 우리는 몽골의 실생활을 느껴보기로 했다.
▲ 몽골의 게르 우리가 묵게 된 게르 안에서 우리는 몽골의 실생활을 느껴보기로 했다.
ⓒ 노시경

관련사진보기


바양고비 캠프에 내린 우리는 먼저 게르 한 동을 배정받았다. 몽골에서 처음 묵게 되는 게르인데, 나와 아내 2명이 묵는 숙박용 게르여서인지 게르 내부는 생각보다 좁다. 길고 얇은 목재를 격자로 비스듬히 짜서 골격을 만들고 이 골격 위에 양가죽으로 만든 천막으로 지붕과 벽을 덮었다.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격자 목재와 양가죽 덮개는 이동하면서 쉽게 분해하고 조립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다. 게르 내부에는 침대 3개와 1개의 탁자, 작은 의자 2개, 그리고 여름 새벽의 추위를 잠재울 난로가 놓여 있다.

격자 모양의 목재와 양털로 만든 천이 게르를 감싸고 내부에는 난로가 있다.
▲ 게르 내부. 격자 모양의 목재와 양털로 만든 천이 게르를 감싸고 내부에는 난로가 있다.
ⓒ 노시경

관련사진보기


우리가 게르에 도착한 시간이 낮 12시 무렵이고 주변에 사막지형이 있기 때문인지 게르 주변의 날씨는 꽤 덥다. 우리나라보다 한참 위도가 높은 지역에 있는 몽골이라서 여름도 조금 선선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우리나라 서울보다 기온은 1~2℃ 낮기는 하지만 여름은 여름이었다. 단지 우리나라와 다른 점은 대륙성 기후이기 때문에 그늘로만 들어서면 시원했다. 여름의 더위로 인해 한낮의 게르 내부는 찜질방같이 더웠다.

천장의 난로 배기 연통 주변에는 하늘이 보이는 자연채광용 비닐이 덮여 있는데 이 비닐이 더운 한낮에 온실효과를 만들고 있었다. 게르 안 침대에 잠시 누워 있는데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힌다. 게르 밖으로 잠시 나왔더니 밖이 더 시원하다.

옆의 게르들을 자세히 보니 몇 게르들은 게르 밑의 양가죽 천을 돌돌 말아 올려서 외부와 공기를 통하게 하고 있었다. 나와 아내는 해가 지면 게르 안이 추워진다고 해서 우리 게르의 천막을 손대지 않기로 했다.

초원의 우물에서 길어 온 귀한 물을 사용하는 샤워장이다.
▲ 게르 샤워장. 초원의 우물에서 길어 온 귀한 물을 사용하는 샤워장이다.
ⓒ 노시경

관련사진보기


초원 한복판에 있는 외진 게르의 특성상 게르 내부에는 당연히 수도시설이 없고 게르 남쪽에 기와지붕 형식으로 지은 목조건물의 샤워장이 있었다. 샤워장과 연결된 호스를 따라가 보니 몇백m 떨어진 곳의 우물과 연결되어 있었다. 이 귀한 물이 식수도 되고 샤워용으로도 사용되는 것이다. 초원과 사막지대에 있는 우물에서 나온 물이니 아주 귀하고 귀한 물이다. 몽골인들이 귀하게 생각하는 이 물을 외국의 여행자라고 해서 헤프게 쓸 수는 없는 일이다.

가장 큰 관심사였던 샤워시설은 생각보다 깨끗하고 따뜻한 물도 잘 나온다. 몇 년 전에 몽골여행을 왔던 딸이 샤워 도중에 물이 끊겨서 고생했다는 이야기를 해서 캠프의 샤워시설이 은근히 걱정되었었기 때문이다.

단지 게르 내에 세면시설이 없어서 세면장과 샤워장을 다른 여행자와 함께 사용하는 것이 불편하지만, 이 또한 몽골의 생활을 깊숙이 체험하는 재미다. 캠프 주변의 유목민 게르들을 보면 이렇게 샤워시설이 있는 숙소는 행복한 숙소라는 생각이 든다.

식당 게르 난로는 화력 좋고 냄새도 없는 소똥을 연료로 사용한다.
▲ 식당 게르의 난로. 식당 게르 난로는 화력 좋고 냄새도 없는 소똥을 연료로 사용한다.
ⓒ 노시경

관련사진보기


식당으로 쓰이는 큰 게르 안은 수십 명이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넓다. 그 넓은 게르 안을 덥혀야 하니 난로와 연통도 큼지막하다. 난로 앞에는 여행객 게르의 장작과 달리 널찍한 소똥을 연료로 가져다 놓았다.

이 소똥은 난방용뿐만 아니라 음식을 할 때의 연료로도 사용된다. 이 게르 안의 소똥들은 캠프의 종업원들이 바로 주변에서 방목하던 소들이 배설한 소똥들을 힘들이지 않고 주워온 것들이다. 소들이 풀만 먹고 싼 똥이기 때문에 냄새는 전혀 나지 않는다. 화력도 좋다고 하니 초원에서 이보다 더 좋은 연료는 없을 것이다.

숙소에서 만난 박제 곰과 늑대

곰과 늑대는 유목민들이 기르는 가축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다.
▲ 곰과 늑대 가죽. 곰과 늑대는 유목민들이 기르는 가축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다.
ⓒ 노시경

관련사진보기


이 대형 게르의 벽면에는 곰과 늑대의 모피 박제가 걸려 있다. 캠프 종업원에게 이 곰이 몽골에 살던 곰이냐고 물으니 맞는다고 한다. 아시아 갈색 곰인 몽골 곰, 마자라이(mazaalai)는 거의 멸종 위기에 몰려있는데 이 캠프에서 이렇게 거대한 몽골 곰의 모피 박제를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몽골 곰은 사막기후에 적응하여 사막 주변의 오아시스에 사는 곰인데 이 근처의 사막이나 몽골 남쪽의 고비사막에서 잡힌 것 같다. 실제로 몽골 곰의 두상을 보니 머리 크기가 상상보다 훨씬 커서 야생에서 보면 공포의 대상일 것 같다.

늑대 모피 박제의 털은 몽골의 추운 겨울을 버티는 야생동물답게 털이 아주 두껍고 복스럽게 생겼다. 이 늑대는 몽골 유목민들이 기르는 가축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다. 염소와 양 같은 가축들이 유목민 주인 주변에서 떨어지지 않고 따라다니는 큰 이유 중의 하나가 이 늑대 때문이다.

가축들을 돌보기 위해 늑대와 실전을 치르는 용감한 개다.
▲ 몽골의 개. 가축들을 돌보기 위해 늑대와 실전을 치르는 용감한 개다.
ⓒ 노시경

관련사진보기


게르에 사는 유목민마다 개를 기르고 있는 것도 늑대로부터 가축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몽골 개들은 주인의 가축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늑대와 실제로 전투를 치를 만큼 전투력이 강하다. 실제로 내가 있는 게르 옆에서 만난 몽골의 개는 실제로 늑대와도 크게 구분되지 않는 외모를 가지고 있어서 나를 깜짝 놀라게 했다. 사실 몽골 개는 몽골의 늑대에서 진화하였을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에 외모가 비슷한 것은 당연할 것이다. 나는 앞으로 몽골의 초원을 여행하면서 실제로 늑대를 만날 것이라는 희망을 품어보았다.

게르 주변에 점점 해가 지면서 석양의 붉은 빛이 게르에 내려앉고 있었다. 우리 게르 옆에는 오스트리아에서 온 한 부부가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해가 지는 게르 앞에서 오스트리아의 아저씨는 작은 탁자를 가지고 나와 앉아서 무언가를 열심히 적고 있다. 아주 차분해 보이는 그는 오늘 몽골의 초원에서 느낀 점들을 여행기에 남기고 있는 것 같다. 몽골의 사막과 초원을 바라보면서 펜으로 종이에 무언가를 적는 모습에서 여행과 삶의 여유가 느껴진다.

오스트리아 여행객이 게르 앞에서 몽골 여행일기를 쓰고 있다.
▲ 석양의 여행기. 오스트리아 여행객이 게르 앞에서 몽골 여행일기를 쓰고 있다.
ⓒ 노시경

관련사진보기


찜질방 같던 게르 내부는 놀랍게도 저녁이 되자 서늘해지고 밤에는 추워지기 시작했다. 과연 필요할까 싶었던 담요 속으로 내 몸이 자꾸 파고들고 있다. 몽골의 여름에는 24시간 동안 사계절을 경험한다는 말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게르 캠프의 직원이 놓고 간 장작을 가지고 난로의 불을 피우자마자 게르 안은 후끈해지기 시작했다. 게르 안이 너무 더워서 우리는 게르의 문을 활짝 열고 초원의 시원한 바람을 함께 느꼈다. 해가 지고 하늘에 별들이 쏟아지는데 어두운 게르 내부에서는 난롯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초등학교 때 겨울의 교실마다 설치되어 있었던 난로를 떠올리며 나는 어린 시절의 추억 속에 빠져들었다.

몽골의 초원여행을 함께 와준 아내는 몽골의 게르 안에서, 어둠 속에서 잠이 들어있었다. 난로의 장작 타는 소리 속에서 몽골의 밤은 행복하게 깊어갔다. 인생을 같이하는 아내가 더 정겹게 느껴졌다.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에만 송고합니다. 제 블로그인 http://blog.naver.com/prowriter에 지금까지의 추억이 담긴 여행기 약 500 편이 있습니다.



태그:#몽골, #몽골여행, #엘승타사르하이, #바양고비, #게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