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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추적이던 지난 24일 오전, 여섯 명의 연출가들이 땀을 비처럼 흘렸다. 그들은 20년이 넘어 오래된 소극장 '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아래 혜화동1번지)의 바닥에 페인트를 칠하고 분장실을 수리했다. 이들이 분주하게 극장을 새단장하는 이유가 있다. 세월호가 오기 때문이다.

이 여섯 연출가는 혜화동1번지 6기 동인이다. 이들은 오는 8월 5일부터 30일까지 '세월호'라는 주제로 기획초청공연을 한다. '세월호'는 여덟 편의 연극과 하나의 단편영화로 구성됐다. 왜 하필 정신없는 휴가철에 '세월호'를 기획했을까? 6기 동인 송경화 연출은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세월호'를 언제 공연하느냐는 중요하지 않아요. 해결된 것이 여태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이죠. 1주년을 기념하든, 2주년을 기념하든 달라지는 게 없잖아요. 그런 점에서 휴가철에 세월호를 기억하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무더운 여름, 모두가 바캉스를 떠날 때 이 후미진 소극장에 모여 세월호를 기억한다면 상당히 의미 있지 않을까요?"

"곪은 사회" 해결 위해 연극인 대규모 참여

새단장 중인 혜화동1번지 6기 동인은 20년이 넘어 오래된 소극장의 바닥에 페인트를 칠하고 분장실을 수리했다. 이들이 분주하게 극장을 새단장하는 이유가 있다. 세월호가 오기 때문이다.
▲ 새단장 중인 혜화동1번지 6기 동인은 20년이 넘어 오래된 소극장의 바닥에 페인트를 칠하고 분장실을 수리했다. 이들이 분주하게 극장을 새단장하는 이유가 있다. 세월호가 오기 때문이다.
ⓒ 임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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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가 주제인 만큼 이들에겐 깊은 고민이 필요했다. 이들은 '세월호'를 위한 워크숍을 네 차례 열었다. 작가, 변호사, 유가족을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들었다. 416기억저장소, 단원고, 합동분향소를 찾아가 아픔을 공유하기도 했다. 송경화 연출은 "유가족들이 후대가 기억할 기록을 남기는 것을 강조하셨다"라며 "기억을 지우고, 아픔을 덮으려고만 하는 것은 이 사회를 곪게 만든다"라고 털어놓았다.

송 연출을 비롯한 6기 동인은 2015년이 되면서부터 혜화동1번지를 이어 받았다. 송경화, 신재훈, 구자혜, 백석현, 김수정, 전윤환. 이 젊은 연출가들은 선배들의 실험 정신을 이어갈 기획초청공연의 첫 주제를 두고 고민했다. 역사적으로 기획초청공연은 시대의 문제를 담은 사회참여적인 작품들이 주를 이뤘다. 6기 동인 사이에선 환경, 노동, 소수자 인권 등 여러 후보 주제가 나왔다. 결국 세월호가 선택됐다.

'혜화동1번지'는 국내 유일 연출가 동인, 그리고 그들이 운영하는 극장을 뜻한다. 예술의 상업성을 벗어나 실험 정신을 추구하겠다는 의지는 어느덧 22년째 이어지고 있다. 그동안 이윤택, 채승훈, 박근형 등 혜화동1번지 출신은 한국 연극계의 거목으로 자랐다. 자존심으로 버텨오던 가난한 소극장은 이제 젊은 연극인들이 가장 선망하는 장소가 되었다.

그런 혜화동1번지가 '세월호'를 한다는 소식에 100여 명의 연극인이 모였다. 이들은 아홉 팀을 구성했다. 6기 동인 중엔 송경화, 구자혜, 신재훈 연출의 세 팀이 참여한다. 나머지 여섯 팀은 초청받은 사람들이다. 제작비 지원은 없다. 이들은 "세월호를 기억하기 위한 의지만을 갖고 모였다"고 전했다.

"'세월호' 다시 하지 않는 것이 소망"

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 '혜화동1번지'는 국내 유일 연출가 동인, 그리고 그들이 운영하는 극장을 뜻한다. 예술의 상업성을 벗어나 실험 정신을 추구하겠다는 의지는 어느덧 22년째 이어진다.
▲ 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 '혜화동1번지'는 국내 유일 연출가 동인, 그리고 그들이 운영하는 극장을 뜻한다. 예술의 상업성을 벗어나 실험 정신을 추구하겠다는 의지는 어느덧 22년째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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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에 참여하는 이유도 갖가지다. 세월호 참사가 벌어졌을 때 임신부였던 송경화 연출은 "내 아이가 잘 자랄 수 있는 사회를 만들려면 세월호를 계속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송 연출은 "4월 16일 우리는 모두 방관자였다"며 "더 이상 방관자로 살면 안 된다"고 밝혔다. 예술이 세월호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송경화 연출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예술은 다양한 이야기를 발굴해요. 사람들은 그걸 보면서 위로받고, 분개하면서 속이 시원해지죠. 이런 예술의 정화작용을 통해 사회가 변할 수 있거든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예술을 상당히 천대해요. 많은 사람들이 치유하고 공감할 수 있는 곳이 없어요."

이에 구자혜 연출은 "사회를 향해 발언할 때 예술의 힘은 다른 어떤 것보다도 강력하다"라고 덧붙였다. 세월호 참사 이후 구 연출은 분노와 짜증이 많아졌다고 한다. 무기력해서다. 그는 "'세월호'가 예술적으로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라며 "우리 작품을 본 관객이 세월호를 가슴에 품고, 돌아가서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면 좋겠다"고 밝혔다.

신재훈 연출은 이번 연극을 준비하기 전까진 세월호의 아픔에 무덤덤했다고 한다. 그는 "아직도 세월호의 아픔을 깊이 직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그럼에도 신 연출이 세월호를 무대에 올리는 이유는 바로 양심 때문이다. 그는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양심이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힘"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세월호'에 참여하는 혜화동1번지 6기 동인 연출가 세 명. 왼쪽부터 신재훈, 구자혜, 송경화 연출.
 이번 '세월호'에 참여하는 혜화동1번지 6기 동인 연출가 세 명. 왼쪽부터 신재훈, 구자혜, 송경화 연출.
ⓒ 임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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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에 얽힌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내년과 후년, 그 이후에도 세월호에 관한 공연을 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가 6기 동인 사이에 오갔다. 그럼에도 이들은 "모든 문제가 해결 돼 '세월호'를 다시 하지 않는 것이 우리 소망"이라고 토로했다.

혜화동1번지 6기 동인은 "무거운 걸음을 내딛는 100여 명의 연극인에게 최소한의 제작비를 마련할 수 있도록 후원자가 되어달라"고 호소했다. 이들은 "무엇보다도 많은 분들이 휴가철에 극장으로 와서 함께 세월호를 기억했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주관: 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 6기 동인
문의: 070-8276-0917/ culturebus@hanmail.net

 혜화동1번지 6기 동인 기획초청공연 '세월호'
 혜화동1번지 6기 동인 기획초청공연 '세월호'
ⓒ 혜화동1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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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트롤 타워' 없이 다양하게
'세월호'에는 컨트롤 타워가 없다. 주제만 통일했을 뿐, 이야기를 어떤 식으로 풀어가든 상관 없다. 각자의 아픔과 기억이 다르기 때문이다.

8월5일부터 9일까지 공연하는 <별망엄마>는 안산시의 '별망설화'를 각색하여 세월호로 인한 안산의 아픔을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풀어낸다. <별망엄마>와 같은 시기에 올려지는 '무브먼트 당당'의 <그날, 당신도 말할 수 있나요?>는 이와 대조적이다. 드라마가 아닌 배우와 관객이 '함께 말하는' 퍼포먼스다.

'여기는 당연히, 극장'의 <오늘의 4월 16일, 2015.8>은12일부터 16일까지 공연한다. 과거, 현재, 미래의 세월호를 이야기로 풀어낸다. 함께 공연하는 '극단 해인'의 <하이웨이>는 사고로 아들을 잃은 엄마, 같은 사고에서 생존한 친구의 이야기를 세월호와 연결짓는다.

19일부터 23일까지 관객과 마주하는 '전화벨이 울린다'의 <삼풍 백화점>은 세월호를 삼풍 백화점 사건의 재연으로 해석했다. 같은 시기에 '극단 작은방'의 <세상이 발칵>은 세월호를 블랙코미디로 승화시켰다. 말그대로 '세상이 발칵' 뒤집힌 상황이 극의 배경이다. 이 주에는 '낭만유랑단'이 만든 <짧은 하루>도 상영된다. 희생된 친구를 위한 하루를 사는 생존자의 모습을 담은 단편영화다.

다양한 형식과 이야기의 변주인 '세월호'는 묵직한 연극 두 편으로 마무리한다. 26일부터 30일까지 올려지는 '토모즈 팩토리'의 <공중의 방>은 한진중공업 노동자의 죽음과 세월호를 연결짓는다. 한국사회에서 벌어진 약자의 비극이라는 점에서 두 사건이 상통하기 때문이다. '극단 동'의 <게공선>은 동명의 일본 계급주의 소설이 원작이다. 게공선에 올라탄 극중 인물들이 공포 속에서 "우리에게는 우리 말고는 내 편이 없다!"고 외치는 모습을 통해 우리 사회의 자화상을 보여준다.

아홉 작품은 하나의 주제를 강요하지 않는다. '세월호'의 초청자인 6기 동인은 "우리는 질문을 던질 뿐"이라고 입을 모았다. 그들이 던지는 질문은 다음 세 가지이다.

"우리는 왜 세월호를 이야기해야 하는가?"
"세월호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우리는 세월호를 통해 무엇을 볼 것인가?"


덧붙이는 글 | 임성현 기자는 <오마이뉴스> 22기 대학생 인턴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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