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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포털과의 대담에 나선 박근령씨.
 일본 포털과의 대담에 나선 박근령씨.
ⓒ 신동욱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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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월, 일본 유일의 공영방송 채널인 NHK의 NHK BS 프리미엄은 <그래서 황야>라는 8부작 드라마를 방영했다. 붕괴된 가족을 뒤로 하고 가출을 감행한 46세 주부가 원폭 피해의 본거지인 나가사키에서 희망을 발견한다는 이야기다. 1951년 생인 일본의 추리 소설가 키리노 나츠오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삼은 이 드라마는 나가사키에서 전쟁의 참상을 이야기 강연으로 알리는 할아버지를 주요 인물로 등장시킨다.

그는 어린 소년이었던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에 여동생을 잃은 죄책감을 안고 살아가는 인물이다. 갈수록 전쟁의 참상과 끔찍함을 잃어가는 젊은 세대에 경종을 울리는 동시에 현재의 일본을 돌아보고 인간성을 회복하자는 작품의 주제를 대변하는 인물인 셈이다. 공영방송 NHK를 통해 전파를 탄 이 드라마는 이 인물을 묘사하며 끊임없이 전쟁의 아픔만을 호소하고 환기시키며 일본(의 민초들)을 피해자의 자리에 위치시킨다. 흑백의 자료화면 위로 고통을 호소하는 목소리와 당시 상황을 설명하는 자막이 깔리는 것은 예사다.

이 작품은 그래서 이 노인에게 주인공의 휴머니티에 감읍을 받은 한 주부의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 아들이 긍정적으로 변화하는 과정까지 담아낸다. 원폭 피해자와 소년의 교감. 우리의 상황으로 치환하자면, 종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의 아픔에 공감을 보내는 우리 학생들의 모습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일본은 공영방송을 통해 이러한 '역사 세탁' 혹은 '미디어를 통한 변명'을 그럴싸 하게 포장하고 있다는 점이리라. 유려한 반전(反戰) 드라마를 통해서.

일본 역시 전쟁 피해자들이 존재한다. 그들의 슬픔과 아픔은 인류애적인 관점에서 공감을 보낼 수 있다. 그러나 착각을 해선 안 된다. (피해자의 입장에서) 일본인 개인의 아픔을 해원하는 것과 (가해자의 입장에서) 국가 차원의 사과와 보상으로 역사적인 맺음을 짓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다.

더욱이 '반전'을 호소하는 이면으로 역사적 면죄부를 받으려는 행위는 졸렬하기 그지없다. 아니, 용납될 수 없다. 버젓이 타국의 피해자들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는 더더욱. 이번 군함도 유네스코 등재를 둘러싼 일본 정부의 양면적인 태도를 보고 있노라면, 일본정부의 미디어 활용에 혀를 내두르게 한다.

일본 드라마 이야기를 꽤나 길게 한 이유는 일본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는 듯한 '착각'을 공공연히 떠벌린 '한국인'이 출현했기 때문이다. 최근 일본의 '아프리카TV'로 알려진, 일본 포털 니코니코의 방송 대담 프로그램에 출연해 "천황까지 합해서 네 번이나 공식적으로 사과를 했다"라면서 "일본에 과거사 이야기를 꺼내는 게 부당하다"라고 말했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동생 박근령씨가 그 주인공이다.

신사참배가 내정간섭도 모자라 '패륜'이라고?

역사인식의 부재를 만천하에 떠들어도 되는 걸까. 한국의 방송에서는 도저히 꺼내지도 못할 망언을 일본까지 건너가 떠벌리는 건 도대체 무슨 의도일까. 평소 불편하고 소원한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는 박근혜 대통령을 의식한, 가족끼리의 '디스'일까.

29일 TV조선은 "박근령 '일, 위안부 문제 사과 계속 요구하는 것은 부당'이라는 리포트를 내보냈다. 이 매체는 "일본을 방문 중인 박근혜 대통령의 동생 근령씨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사과를 계속 요구하는 건 부당하다고 말했습니다"라면서 "일본 정치인의 신사 참배도 이해할 수 있다는 의미의 말을 했는데 논란이 일 것 같습니다"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박근령 총재의 육성을 그대로 방송했다. 

"(대담에서 일본에) 사과에 대해서 자꾸 얘기하는 것은 우회적으로 부당하다는 생각으로 얘기를 했어요. 천황까지 합해서 네 번이나 공식적으로 사과를 했는데…."
"(군 위안부 할머니를) 우리가 모시고 아픈 것을 위로해드리는 나라 형편이 되지 않았느냐…."
"(신사참배 문제는) 내정간섭이라고 이야기했고요. '나쁜 사람이니까 묘소에 안 찾아갈거야' 그게 패륜이라는 거죠."

일본 정치인이나 총리의 신사참배 문제를 비판하는 것이 패륜이라는 박근령씨. 한국 외에도 태평양전쟁의 피해를 입은 미국과 중국은 물론 아시아 각국에서 반대하는 신사참배 문제를 내정간섭으로 규정하는 것도 모자라 한 발 더 나아가 패륜이라니.

이 정도면 착각이 아니라 뼛속까지 박힌 역사인식과 신념의 발로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그리고 30일 박근령씨의 남편인 신동욱 공화당 총재가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하면서 박근령씨의 발언은 일파만파 파장이 커지고 있다. 그런데, 신동욱 총재의 변명 혹은 해명도 부창부수 격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 할 바 없기 때문이다.

'박근혜 안티'라도 절대 봐줄 수 없는 박근령 망언 

박정희 전 대통령의 둘째 딸 박근령씨와 남편 신동욱씨. 사진은 지난 2013년 10월 25일 오후 서울시 강남 도곡동 서울나들목교회에서 열린 '제1회 박정희 대통령 추모예배'에 당시 모습.
 박정희 전 대통령의 둘째 딸 박근령씨와 남편 신동욱씨. 사진은 지난 2013년 10월 25일 오후 서울시 강남 도곡동 서울나들목교회에서 열린 '제1회 박정희 대통령 추모예배'에 당시 모습.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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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욱 총재는 29일 오후 자신의 트위터에 "일본 NicoNico 다큐멘터리 방송에 박근령 공화당 상임고문이 출연하여 '한국과 일본의 역사문제'와 관련하여 90분간 라이브로 특별대담을 했다, 본 방송은 8월 초 방영 예정이고 예고편은 30일부터 나간다"라고 적었다.  

30일부터는 자신의 누리집과 트위터, 페이스북을 통해 박근령씨의 발언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나섰다. 방송 녹화 사진도 게재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신동욱 총재는 "한국에서 논란이 있을 걸 예상했고, 99명이 찬성하는데 한 명이 반대하는 것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것"이라면서 "대한민국의 정치권이든 국민이든 다 침묵하고 있는데, 뜻을 같이하면서도 침묵하는 다수가 훨씬 더 많다고 믿기 때문에 용기를 낸 것으로 봐달라"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한일 관계는 시대적 상황에 맞춰서 가야 한다는 게 발언의 요지였다"라며 "(한국이) 시대상황에 뒤떨어진 걸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라고도 말했다. 신동욱 총재는 공화당 소개글에 "공화당은 박정희 대통령 각하의 정치철학과 사상을 유지 발전시키고, 5.16혁명정신을 계승하여 통일시대를 준비하기 위하여 창당되었습니다"라고 적은 인물이다. 비난이 쏟아지는 30일 오후에도 그는 "공화당 신동욱 총재, 배용준(욘사마) '일본 명예대사' 추천"이라는 자신의 홍보 기사를 퍼나르고 있다.

이러한 남편의 해명에도 박근령씨의 '일탈'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일본의 유력 매체도 아니다. 주로 젊은 층이 이용한다는 포털 사이트의 한 동영상 방송에 출연해 저런 국적 불명의 발언을 늘어놓았다는 점은 더욱 의아하다. '대통령의 친동생'이라는 위치가 갖는 발언의 파급력을 인지 못했을 리 없다.

박씨와 일본의 접점도 크게 알려진 게 없다. 지난 2011년 1년간 활동한 한국재난구호 총재 자격으로 일본을 방문, 강진과 쓰나미 피해현장을 찾아 구호활동에 동참한 게 고작이다. 여러 매체들이 '박근혜 안티설'을 제기하는 것도 수긍이 할 수밖에 없을 정도다.

허나, 아무리 박근혜 정부가 별 성과 없이 아베 정부와의 화해 제스처를 보이며 일본과의 관계 회복에 나섰다고 한들, 박근혜 대통령의 대일 외교 행보에 재를 뿌리기 위한 노이즈 마케팅으로 이런 초강수까지 둬야 했을까. 국민들의 정서나 발언이 알려진 뒤 받을 분노와 피로감은 안중에도 없었던 걸까. 그도 아니면, 작년 12월 <여성조선>과 가졌던 인터뷰의 발언처럼 어머니 고 육영수씨에게 배운 관용과 연민의 정신을 엉뚱한 데서 발휘한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어렸을 때 엄마에게 파리채로 맞고 살았습니다. 맞고 나서 시간이 조금 지나면 풀어주세요. 저는 그게 관용이고 연민의 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꾸짖을 것은 꾸짖고, 풀어줄 것은 풀어줘야 해요. 야단을 치고, 더 떠들자고 해서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았으면 좋겠어요. 요즘 우리 사회가 굉장히 시끄러운데, 그런 관용과 연민이 필요한 시기인 것 같습니다."(<여성조선> 인터뷰 중)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 사라지지 않는 박정희 망령

박근령씨는 '1960년대 한일 국교정상화로 경제재건을 이룬 만큼 일본에 대한 보상 요구도 부적절하다'는 취지의 발언도 덧붙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 한일 국교를 이끈 장본인이 바로 박정희 대통령이다. 그 반쪽짜리 국교정상화가 올해로 50주년을 맞았다. 두고두고 한일관계의 발목을 잡아온 그 한일 국교정상화 말이다.

그 50주년에, 박근혜 대통령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독도 방문 이후 악화된 한일 관계를 풀어보기 위해 무리수를 뒀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아베 정권과의 화해 제스처와 군함도 유네스코 등재와 맞바꾼 게 대표적인 사례다. 이를 두고, 지난달 6일 근로정신대 피해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은 "일본의 조선인 강제징용시설 유네스코 산업문화유산 등재는 역사 빈곤이 부른 박근혜 정권의 외교적 야합이자 수치"라고 규탄한 바 있다.

그리고 그의 동생은 두 달이 채 걸리지도 않아 그 일본으로 건너가 망언을 날렸다. 1965년의 한일 국교 정상화와 2015년의 박근혜·박근령 두 자매의 갈 지(之)자 행보에 국민들만 피해를 입고 있다.

더욱이 유체이탈 화법을 비롯해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것 같은 행동은 두 자매가 꼭 닮았다. <여성조선>과의 인터뷰에서 박근령씨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했던 직언은 박씨 본인에게도 해당된다. 한껏 비판한 뒤, '공인의 의지'라며 물타기를 하는 대답이 딱 그렇다. 두 세대의 걸친 박정희 일가의 통치에 국민들만 이래저래 죽을 맛인 2015년이다.  

"임기가 3년 남았습니다. 할 일이 많은데, 황금 시간을 다 흘려버리고 있습니다. 황금 시기라는 것이 대통령에게만 황금 시기가 아니라, 국민의 명운이 달린 기간이에요. 그런 걸 생각하면 대통령께서 단호하게 말씀하시는 것도 국민만 바라본다는 공인의 의지로 짚을 수 있습니다."(<여성조선> 인터뷰 중)


태그:#박근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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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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