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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필씨가 8년 전 반해 무작정 제주로 내려오게 만든 곳. 이곳 가장 좋은 위치에 '키친애월'이 있었다
▲ 애월 한담해안산책로 송영필씨가 8년 전 반해 무작정 제주로 내려오게 만든 곳. 이곳 가장 좋은 위치에 '키친애월'이 있었다
ⓒ 송영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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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애월읍 애월리에는 해변 끝 절벽 아래 '한담해안산책로'라는 산책길이 숨어 있다. 동쪽으로는 애월항, 서쪽으로는 곽지과물 해변까지 이어지는 이곳은 제주의 현무암과 무성한 수풀과 작지만 아름다운 모래해변까지 모두 볼 수 있는 아름다운 길이다.

오래 전에는 신혼여행 온 부부들이 차에서 잠깐 내려 사진을 찍는 '뷰가 좋은 곳'으로 이름을 알렸다. 지금은 드라마와 영화에 자주 등장해서 제주에 오는 여행객들이 반드시 들러야  할 관광 명소가 되었다.

이 주변의 카페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가 촬영된 후 이곳 카페는 관광 명소가 되었다.
▲ 한담해안산책로 이 주변의 카페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가 촬영된 후 이곳 카페는 관광 명소가 되었다.
ⓒ 송영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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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예쁜 바다를 보며 커피 한 잔 마시려면 무려 번호표를 받고 대기해야 할 정도로 사람들이 많지만, 수년 전만 해도 여름 휴가철 빼고는 사람을 찾아볼 수 없었다. 풍광이 좋아서 돈 많은 타지 사람들이 별장으로 사논 집들이 대부분이고, 원주민들은 두 가구밖에 남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곳에서 '장사'를 하는 것은, 당시엔 그냥 굶어죽겠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그때만 해도 제주는 지금처럼 '핫 플레이스'가 아니었다. 그런 곳을 무려 8년 전에 알아보고 장사를 시작한 사람이 있었다. '삼성경제연구소'라는 좋은 직장을 버리고 제주로 내려온 송영필씨가 그다.

"업무 차 이곳 한담을 들렀다가 한눈에 반했죠. 한담이 예쁜 동네란 건 누구나 알았지만 돈 벌기엔 아주 글러먹은 곳이었어요. 다들 1년을 못 버티고 망했으니까요. 제가 들어오기 직전에 이 건물에서 장사하던 분도 세를 못 내고 있었죠. 대신 제가 그 세를 인계하는 조건으로 가게를 시작하게 되었어요. 1년 세가 당시에 천만 원 정도 되었던 것 같아요."

꿈꾸듯 시작한 제주의 삶

삼성경제연구소에서 일할 때 퇴근 후에 틈틈이 배워 딴 조리사 자격증과 '한 달에 100만 원 못 벌겠어!'하는 '근자감'만 가지고 무작정 가게를 시작했다. 주변 음식점들이 바다와 관련된 서정적인 이름들뿐이기에 당시엔 파격적인 '키친애월'이라는 이름의 식당을 연 것이다.

"처음 1, 2년은 말도 못하게 고생했죠. '키친애월'을 '치킨애월'로 잘못 읽고 치킨 주문하는 전화만 엄청 왔어요. 들어와서도 메뉴판에 없는 통닭 주문하는 사람도 있었고."

조금씩 자리잡힐 즈음 건물주가 바뀌며 이전해야 했던 키친애월. 지금은 이 자리에 건물주가 운영하는 프랜차이즈 카페가 들어섰다.
▲ 키친애월 조금씩 자리잡힐 즈음 건물주가 바뀌며 이전해야 했던 키친애월. 지금은 이 자리에 건물주가 운영하는 프랜차이즈 카페가 들어섰다.
ⓒ 송영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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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가 좀 된다 싶었던 건, 키친애월을 시작한 지 3년이 훌쩍 지났을 때쯤이다. 올레길과 저가항공 등으로 제주를 찾는 사람들이 많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단체관광이 아니라 가족여행이라는 개념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그리고 블로그를 통해 입소문이 점차 나기 시작하면서 '키친애월'을 검색해서 일부러 찾는 사람들이 늘기 시작한 것이다. 그때부터 키친애월은 제주에서 음식점을 하려는 사람들에게 '롤모델'이 되었고, 혼자 여행 오거나 제주의 삶을 시작하려는 이들에게는 많은 정보를 제공하는 안내소가 되었다.

"여행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제주에 사는 현지인들도 주말에 가족과 여행하는 일이 불과 얼마 되지 않아요. 키친애월은 그런 여행객과 제주 원주민들이 모두 찾는 곳이 되었지요.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 매일 한담의 일출과 한담의 일몰을 보는 것, 모든 것이 행복하고 즐거웠어요."

제주 역시 세입자가 살긴 힘든 곳

장사가 되면서부터는 키친애월을 보수하고 리모델링하는 데 많은 돈을 썼다. 하지만 '남의 건물에 돈 들이면 안 된다'는 교훈을 몸소 체험하는 결과를 낳았다. 당시 키친애월의 건물주가 바뀌면서 그는 더 이상 그곳에서 장사를 할 수 없게 되었다.

"어떻게든 이곳을 이어가보려고 세를 내면서 계속 장사를 할 수 없는지 물어보았죠. 제가 그때 냈던 세의 딱 다섯 배를 달라고 하더군요. 그건 그냥 나가줬음 한다는 뜻 아니겠어요? 더 애쓰지 않기로 했고, 저는 애월항 근처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지금 그곳엔 프랜차이즈 카페가 들어섰지요. 건물주가 이 프랜차이즈 카페를 여러 개 갖고 있다고만 들었습니다."

애월항으로 자리를 옮겨 '키친애월'이라는 이름의 식당을 2년 정도 더 운영했지만, 장사는 예전 같지 못했다. 제주로 이주하는 연령대가 점차 낮아지고, 톡톡 튀는 메뉴와 콘셉트로 등장하는 경쟁 업체들이 생기면서 경쟁력이 약화된 것도 한몫했다. 결국 그는 제주 이주 8년 만에 '키친애월'을 폐업하기로 결정했다.

다섯 배가 오른 월세로 이전한 키친애월은 이곳에서 2년을 버티다 끝내 폐업했다.
▲ 애월항으로 이전한 키친애월 다섯 배가 오른 월세로 이전한 키친애월은 이곳에서 2년을 버티다 끝내 폐업했다.
ⓒ 송영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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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몇 년 만에 제주는 서울과 다름없는 곳이 되었다. 숨 막히는 경쟁이 시작되고, 돈 없으면 언제나 내쫓길 각오를 해야 했다. 하지만 여전히 한담을 사랑하고, 한담에 상처도 받은 그는 오히려 그런 것에서 해탈한 듯 보였다.

"8년 전이면 제주 땅 값도 쌀 때였는데, 땅 하나, 건물 하나 안 사놓고 뭐했느냐는 잔소리도 깨나 들었었죠. 사실 저도 뭐 후회가 안 되는 것은 아닙니다만. 하하. 하지만 그것에 집착하고 속쓰려 하면 제 속만 더 상하지 않겠습니까? 사실 한담을 떠날 때 저는 많은 미련을 내려놓았어요. 반드시 여기! 반드시 이곳! 반드시 이 직업! 반드시 성공! 이런 마음들은 다 사라진 것 같아요."

꿈이 아닌 삶으로 살아야 할 제주

그의 대답에 이미 모든 것이 들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인터뷰의 마무리를 위해서라도 끝내 마지막 질문을 던지고야 말았다.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뭘 하며 사실 계획이세요?"
"별 계획 없습니다. 제주는 몸으로 하는 노동에 대한 가치를 인정해 주는 곳이라 찾아보면 여러 일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파치'라고 팔지 못하는 농산물도 얻어먹을 수 있지요. 계획이 생길 때까진 아무 계획 없이 살려고 합니다."

그렇다. 계획을 세워놓아도 뜻대로 되는 게 어디 인생인가. 한 치 앞도 알지 못하는 게 인간인데, 계획은 무슨 얼어죽을 계획인가. 그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나는 이 인터뷰 기사에서 기승전결의 '결'을 무엇으로 해야 하나 여전히 고민이 되었다.

제주 정착 8년째인 송영필의 삶을 성공이라고도, 그렇다고 실패라고도 할 수 없다. 사업에야 실패했을지 몰라도, 그는 여전히 제주에서 살고 있고, 삶에 만족하고 있으며, 여전히 좋은 사람들과 함께 지내고 있기 때문이다.

꿈같은 제주가 아닌 현실같은 제주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
▲ 송영필 꿈같은 제주가 아닌 현실같은 제주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
ⓒ 박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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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 입도해 처음으로 한 인터뷰 대상이 송영필씨라는 것은 여러모로 내게도 의미가 크다. 제주로 입도하는 이주민들의 수는 월 1000명을 넘어선 이 시점에, (그중에서도 큰 숫자를 차지할) 음식점이나 카페로 생계를 유지하려고 하는 이들에게, 제2의 키친애월, 제3의 키친애월을 시작하는 이들에게, 나는 가장 먼저 송영필씨가 걸어간 길을 보여주고 싶었다. '꿈속 같은 제주'의 삶이 아니라, 어느 곳에서의 삶과 다를 바 없는 '한 사람의 삶'을 보여주고 싶었다.

8년만에 폐업을 선언하고, 마지막을 기념하기 위해 사진전을 열었다.
▲ 폐업기념 사진전 8년만에 폐업을 선언하고, 마지막을 기념하기 위해 사진전을 열었다.
ⓒ 송영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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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업 기념(?)으로 애월항 키친애월에서 그는 사진전을 열었다. 지난 8년 동안 그가 얼마나 한담을 사랑했는지, 찍은 사진을 통해, 또 그곳을 다녀간 수많은 사람들을 통해 알 수 있는 시간이었다. '특별함'을 꿈꾸지 않고 '그냥의' 삶을 살 그가,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도 애월항 부근 동네 아저씨로 있기를 개인적으로 소망해본다.

○ 편집ㅣ장지혜 기자

덧붙이는 글 | 기자의 블로그 http://askdream.com에도 게재할 예정입니다.



태그:#제주이주, #키친애월, #박진희박, #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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