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근 한화 감독의 트레이드 마크는 흔히 '벌떼야구'로 통한다. 보통 한 경기에서 많은 투수들을 투입할 때 쓰이는 표현이지만, 자세히 보면 단순히 마운드 운용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김 감독은 공수에 걸쳐 최대한 많은 선수들을 활용하면서 때로는 정석을 벗어난 변칙이나 파격적인 용병술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 중심에는 감독이 전체적인 시스템의 중심에 서서 모든 상황과 변수를 일일이 통제하려고 하는 '관리야구'의 철학이 있다. "야구는 (선수가 하는 게 아니라) 감독이 한다"라는 김 감독의 야구에 대한 오랜 소신이기도 하다.

김 감독은 이러한 벌떼야구를 바탕으로 약팀을 강팀으로 만드는데 탁월한 능력을 지닌 지도자로 꼽힌다. 만년 약체이던 쌍방울을 포스트시즌으로, 평범한 팀이던 SK를 리그의 왕조로 만든 바 있고, 올시즌에는 6년간 5번이나 꼴찌를 차지했던 한화를 단숨에 5강권까지 끌어올리며 다시 한 번 김성근 매직을 선보이고 있다. 한정된 전력안에서 최대치를 끌어낸다는 것은, 말로는 쉽지만 실제로는 결코 녹록지 않다.

하지만 김 감독의 야구는 뛰어난 성적 못지않게 항상 뜨거운 찬반양론도 몰고 다닌다. 그것은 감독 1인의 리더십과 주관적 판단에 시스템 전체가 좌우되는 관리야구의 부작용 때문이다. 철저하게 효율성과 결과중심주의에 기반한 관리야구는, 리더가 현명할때는 최상의 효과를 낼 수도 있지만, 리더가 잘못된 판단을 하거나 그 역할을 다하지 못할 때는 시스템 전체가 붕괴될 수도 있는 약점을 안고 있다.

김성근 감독이 이끄는 팀을 보면 거의 예외가 없을만큼 '잘해도 감독 탓, 못해도 감독 탓'이 되는 경우가 많다. 어떤 선수들보다도 '감독이 그 팀의 최고 스타가 되는 현상'도 김성근 감독이 이끄는 팀이 특징이다. 철자하게 감독 중심의 경기운영을 하는 김성근표 야구에서 선수들은 시스템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김성근 감독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높아서였는지, 김 감독이 떠난 팀들은 이후에 성적이 한동안 좋지 못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김 감독이 이끄는 한화는 후반기에 다소 힘겨운 행보를 보이고 있다. 전반기가 만년 꼴찌였던 한화에게 비상의 시간이었다면, 후반기는 포스트시즌 티켓을 사수하기 위한 수성의 기간이라고 할 수 있다. 한화는 현재 6위 SK를 비롯하여 중하위권 팀들의 추격 속에서 가을잔치 티켓을 위한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사정이 좋지 않다. 쉐인 유먼과 안영명의 이탈로 가뜩이나 약하던 선발진은 구멍이 뜷린 상태다. 설상가상으로 전반기 한화의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던 불펜진도 흔들리고 있다. 전반기에 이미 많은 이닝을 소화한 권혁, 박정진, 윤규진 등 필승조는 7월들어 모두 자책점과 피안타율이 큰 폭으로 상승하며 고전하고 있다.

최근 경기에서는 승패를 떠나 김 감독의 계산이 어긋나는 경우도 속출하고 있다. 선발투수의 조기 강판-불펜진의 조기 투입-마운드의 과부하라는 악순환이 이어지면서 선발진도 불펜진도 함께 침체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일부에서는 한화의 불안요소가 드러나기 시작했다는 분석도 있다.

29일 잠실 두산전에서 한화 선발투수 배영수는 5회 투아웃까지 노히트로 호투했으나 백투백 홈런으로 역전을 허용하고 다시 볼넷까지 내주자 가차 없이 교체 결정을 내렸다. 배영수가 다소 흔들리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투구수는 68구에 불과했고 피홈런 전까지 투구내용은 올시즌들어 가장 좋았다.

실패로 끝난 김 감독의 투수교체

무엇보다 5월 이후 승수를 추가하지 못하며 위축되어있던 배영수로서는 자신감을 되찾을수있는 기회였다. 가뜩이나 선발진의 난조로 고전하고 있던 한화로서는 장기적으로 봤을때 눈앞의 경기 못지않게 배영수를 어떻게든 살리는 것도 중요했던 시점이었다. 이날 한화는 송창식을 구원등판시켰음에도 2사후에만 두산 타선에 집중적으로 난타를 당하며 점수차가 더 벌어지는 최악의 시나리오로 흘러 갔다. 결과적으로 김 감독의 투수교체는 참혹한 실패로 끝난 셈이다.

또한 배영수의 강판은 25일 삼성전에서 선발등판했던 신인 김민우의 모습을 연상시켰다. 김민우 역시 4회 2사까지 노히트 행진을 이어갔고 아웃카운트 하나만 더 잡으면 승리투수 요건까지 갖추는 상황에서 삼성 구자욱 타석이 되자 김성근 감독은 상대 전적에서 강했던 박정진으로 투수를 교체해버렸다. 결과적으로 그날 경기는 2-1로 한화가 이기기는 했지만, 정작 박정진은 나오자마자 구자욱에게 적시타를 얻어맞으며 김 감독을 머쓱하게 했다.

한화는 올시즌 선발진의 퀵후크(5이닝 이전 조기강판)가 52회로 리그에서 가장 많은 팀이다. 그만큼 믿을만한 선발투수가 부족하다는 것도 이유지만, 한편으로 김성근 감독의 선발 투수에 대한 믿음 부족도 원인이다.

선발진에 대한 신뢰는 떨어지는 반면, 구원투수들에 대한 애착은 너무 각별하다. 특히 김성근 감독의 '아바타'로까지 불리우는 권혁은 올시즌 벌써 81.2이닝을 소화하며 자신이 기록한 개인 최다이닝(종전 2004년 81이닝, 삼성) 기록을 갈아치웠다. 당시에는 권혁이 종종 선발로도 등판하던 시절이었다. 이번에는 순수하게 구원등판으로만 올린 기록이다. 53경기를 남겨둔 현재 권혁은 구원투수로서 100이닝 이상을 넘길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권혁은 현재 올시즌 구원투수 최다이닝을 소화하고 있다.

권혁의 등판이 논란이 되는 것은 워낙 자주 나오는 것도 있지만, 일관성없는 기용 때문이다. 박정진, 윤규진 등 다른 필승조 투수들과 비교해도 권혁은 유독 2이닝 이상 투구와 3연투도 빈번하다. 크게 이기고 있을때나 심지어 지고 있을때도 마운드에 오른다.

28일 두산전에서는 무려 8점차나 앞선 9회에 등판하여 마무리를 맡겼다. 보통 이 정도로 승부가 기운 상황에서는 주력 투수를 아끼는 것이 대부분이다. 마운드 전력이 부족한 한화로서는 다른 투수들을 점검해볼 수도 있는 기회였다. 그런데 굳이 팀내에서 가장 많은 이닝을 소화한 투수를 승패나 세이브와 무관한 상황에서 또다시 등판시킨 것은 혹사 논란을 불러오기 충분했다.

권혁은 지난 7월 2일 KIA전에서는 7점차로 앞선 8회 등판하여 2점 홈런을 맞기도 했다. 26일 삼성전에서는 0-3으로 뒤진 7회 2사 등판했다가 시즌 최다인 4실점을 허용하기도 했다. 이쯤되면 한마디로 출근도장을 찍으러 마운드에 올라오는 것이나 다름없다. 호투하던 권혁은 7월들어 11경기에 나와 17이닝 동안 평균자책점 6.88로 부진한 모습이다.

한화에서 부상 선수들이 속출하고 있다. 김성근 감독 특유의 강훈련에 익숙하지 않은 선수들은 체력적으로 지칠만한 시점이다. 하지만 김성근 감독은 여전히 과도한 불펜 의존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경기가 끝난 후 선수들을 붙잡고 시키는 야간 훈련이나 특타도 여전하다. 지난 두산전에서는 이용규가 어지러움증을 호소하며 경기중 교체되기도 했다. 주력 선수들중에서 부상 선수가 더 나온다면 한화의 가을잔치 진출은 어려워진다.

그동안 성적에 굶주렸던 한화 팬들은 여전히 김성근 감독이 보여주는 '이기는 야구'에 열광하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김 감독이 올시즌 성적에 대한 조급증으로 지나친 무리수를 두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는 시각도 많다.

김 감독의 현재 팀운영은 그야말로 매 경기에 올인하는 극단적인 소모전에 가깝다. 당장 활용가능한 선수들을 데리고 최대치를 끌어내는 것은 분명하지만, 선발투수를 육성하거나 불펜진에서 새로운 얼굴을 찾아내는 등의 실험정신이나 인내는 부족하다. 

김성근 감독이 건재할때는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지금의 전력이 2~3년 뒤에도 유지되거나 더 강해질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당장 후반기만 하더라도 한화의 벌떼야구 부작용이 노출되고 있으니 말이다. 김성근 감독 1인에 의존하는 야구가 언제든 양날의 검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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