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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4시 잠에서 깼다. 전날 밤 다친 마음에 술을 의지해서 잠을 청했다. 일어나자마자 함께 술잔을 기울인 대학생 최성락씨와 삼계탕 국물로 끓인 라면과 컵라면 하나를 나누고, 아내와 네팔화가 람 타다에게 줄 국물을 따로 준비했다. 준비하는 시간은 15분, 그리고 곧 람 타다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우리가 지프차를 탈 곳까지 가기 위해 오고 있다는 것이다.

4시 25분 람 타다가 집에 도착했다. 집에 오자마자 준비한 국물을 전하고 어서 마시라고 했다. 속전속결이다. 이후 빵을 작은 택시 짐칸과 지붕 위에 실었다. 최성락씨와 람 타다가 키가 큰 덕분에 수월하게 옮겨 실을 수 있었다. 새벽 시간 거리는 한산했다. 마치 우리를 위해 준비된 길을 달리듯 수월하게 크리쉬나 극장이 있는 자벨까지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지프차 매표사무실과 통화를 하고 직원을 만났다. 곧 지프차 정류장으로 안내를 받아 여행용 가방에 가득 담긴 빵을 지붕 위에 두 개, 이민용 가방에 가득 담긴 빵은 내부의 뒷좌석에 실었다.

행운이라고 할 수 있는 일은 지프차 정원이 9명인데 이날 일행은 우리 네명과 운전기사를 포함해 6명이었다. 다행히 이민용 가방을 뒷자석에 싣는 게 가능했고 마음도 한결 가벼웠다. 트리뷰반 공항 뒤편을 거슬러 올라가는 머우다 방면에 멀리 히말라야가 보인다. 그리고 다시 평지에 다다르자 무지개 꽃이 피었다. 마음이 호강하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빵을 실은 지프, 그리고 아름다운 히말라야 풍경

참으로 보기 드문 무지개와 히말라야를 보면서 출발했다. 멀고 먼 오컬둥가까지 집에서 출발한 시간부터 11시간 만에 도착했다. 과거보다 4시간이 빨라진 것이다.
▲ 무지개와 히말라야를 보며 가다. 참으로 보기 드문 무지개와 히말라야를 보면서 출발했다. 멀고 먼 오컬둥가까지 집에서 출발한 시간부터 11시간 만에 도착했다. 과거보다 4시간이 빨라진 것이다.
ⓒ 김형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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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 흐릿한 날씨에 카트만두의 아침 풍경은 적요로운 아름다운을 보여준다. 마치 산사에 깊은 적막과도 같은 카트만두의 붉은 회상을 안고 지상과 천상이 소통하는 영혼의 시간같다. 적어도 비가 갠 맑은 아침 카트만두는 몽환적이 신세계를 보여준다. 나그네의 시점으로 본다면 더 없이 정겨워서 떠나기 싫어지는 아름다움이다. 

이럴 때 까비르의 명상시를 읽는다며 정말 황홀한 아침 커피 타임이 될 것 같은 생각이다. 그렇게 생각이 맑아지는 아침을 달리는 지프차가 막 카트만두 시내를 벗어나 둘리켈을 지났을 때 또 다른 환상이 펼쳐진다. 산과 산, 깊은 계곡이 어우러져 깊은 계곡에 구름을 퍼 올리는 아침이다. 구름 위에 산, 산 위에 구름 그리고 멀리 히말라야가 멋지게 어우러졌다.

감탄과 탄성을 지르며 지프차 안에서 어려운 셔터 놀음을 한다. 흔들거리는 차 지붕에 머리를 박으면서도 멋진 장면을 담아보겠다는 일념을 드러낸다. 뒤에 실은 빵은 잠시 잊었다. 굽이굽이 길을 내고 가다가 네팔톡이라는 곳에 멈춰 섰다. 아침 카자(Khaja, 간식)시간이다. 아내와 나는 삶은 계란과 쩌나라는 콩을 먹고 람 타다와 최성락씨는 쩌나와 셀로띠라는 쌀로 만든 링도너츠를 먹었다. 앞으로 두 세 시간 후면 점심을 먹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 사람에게는 점심을 먹기 전 아침 간식만으로는 매우 배고픈 아침 시간이다.

가고 가고 또 가도 끝이 없는 길이다. 마치 길을 내며 달리는 듯 공사중인 도로와 포장된 도로 그리고 새로난 다리를 건너 멀고 먼 길을 달렸다.순코시에 새로난 다리가 나그네를 반긴다.
▲ 길에서 보내 긴 시간 가고 가고 또 가도 끝이 없는 길이다. 마치 길을 내며 달리는 듯 공사중인 도로와 포장된 도로 그리고 새로난 다리를 건너 멀고 먼 길을 달렸다.순코시에 새로난 다리가 나그네를 반긴다.
ⓒ 김형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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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 벗은 집들, 험난한 산길이 오지를 실감나게 한다.
▲ 헐 벗은 집들, 험난한 산길 헐 벗은 집들, 험난한 산길이 오지를 실감나게 한다.
ⓒ 김형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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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라만상을 호령하듯 하늘로 솟구치기만 하는 길을 달려 깊은 계곡을 가르고 흐르는 순코시(SUN KOSHI)를 따라 달리던 차가 곧 순코시를 가로지른 다리를 건넜다. 그리고 그곳에서 점심 식사를 했다. 대학생 최성락씨는 이제 네팔사람이 다 된 듯 손으로 점심식사를 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마치 내가 2004년 네팔에 처음 와서 그랬던 것처럼. 달밧에 닭고기 스프를 곁들인 식사를 마치고 잠시의 휴식도 없이 곧 출발이다. 사실 그곳에서 휴식을 취한다는 것 자체가 고통스러울 정도로 무덥다. 

아내는 네팔 남부의 무더위 같다는 푸념을 한다. 다시 길을 달리는 지프차는 연신 하늘로 하늘로를 외치며 달리는 것처럼 고지를 향해서 달린다. 그렇게 달린 지프차는 룸자타에 오후 3시경 도착했다. 도착하고 막 짐을 부리려는 순간 장대비가 쏟아졌다. 곧 룸자타에 살고 계시는 장인어른과 아내의 또 다른 어머니인 장모님께서 찌아를 내주신다. 거친 비를 바라보며 오지에서 마시는 차 맛이 일품이다.

아내는 룸자타를 떠난 지 20여년 만에 그곳을 다시 찾았다. 당초 우리 부부는 지난 번 찾았던 신둘리를 가려고 했다. 그러다가 룸자타와 오컬둥가 지역에도 지진피해지역이 있다는 소식에 장인어름도 뵙고 오지의 학교와 지원이 닿지 않는 오지에 주민들을 찾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방향을 바꾸었다. 다행히 그칠 것 같지 않은 비는 약한 빗줄기로 바뀌었다.우리는 그 틈에 지진 피해주민들을 찾아 길을 나섰다. 

현지에 길잡이는 아내의 또 다른 어머니가 낳은 딸과 결혼한 동서가 맡았다. 사전에 알려 주민들을 한 장소에 모이게 하려 했으나, 주민들이 없었다. 모두 비를 피해 자신의 집 근처 텐트나 천막 속에 있었던 것이다.

아내와 최성락 씨가 마을 사람들에게 빵을 전하고 있다.
▲ 오지마을 사람들에게 비를 맞으며 전한 빵 아내와 최성락 씨가 마을 사람들에게 빵을 전하고 있다.
ⓒ 김형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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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집마다 전하는 빵 그리고 나마스떼. 사진 아래는 병원 환자와 의료진이다.
▲ 집집마다 전하는 빵 그리고 나마스떼. 집집마다 전하는 빵 그리고 나마스떼. 사진 아래는 병원 환자와 의료진이다.
ⓒ 김형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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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산림조합이 쓰는 임시 대기소에서 빵을 나누어주기 시작했다. 이웃한 주민들은 빵을 받고 곧 다른 주민에게 알려달라고 전했다. 곧 이집 저집 사람들이 나타나 주었다. 우리들의 빵 배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150봉지를 준비해서 갔는데 조금 여분이 남았다. 우리는 인근에 있는 병원을 찾았다. 병원에는 몇 명에 환자와 의료진 그리고 당직간호사 둘이 있었다. 우리는 환자 몇 분과 모든 종사자들에게도 우리의 뜻을 전하고 빵을 전달했다.

다시 집으로 돌아와 봉투에 빵을 챙겨 메고 인근 지역 집집을 찾아다녔다. 다행스럽게도 비는 멈춰주었다. 거침없이 달려온 지프차 그리고 도착하자마자 쏟아진 장대비와 잠깐에 휴식, 다시 빵을 배달하는 시간이 지나자 어느덧 어둠이 깊이 내렸다.

태어난 마을에서 결혼하여 사는 막내 처제가 저녁식사를 준비했다며 우리 일행을 초대했다. 처제의 남편을 나는 아직 만나본 적이 없다. 그는 지금 영국에서 일하고 있다고 한다. 저녁 식사에 곁들여 로컬 럭시를 한잔씩 마셨다. 독하지만 뒤끝이 없는 네팔의 명주다. 그렇게 저녁을 마치고 곧 졸음이 몰려와 장인 집으로 가서 숙면을 취했다.

다음날 새벽 4시 다시 일어나 람 타다와 최성락 일행을 배웅했다. 일행은 전날 아침 4시부터 움직여 다음날 4시에 다시 돌아갔다. 나와 아내는 남은 빵을 마저 배급하고 가기 위해 하루 더 머물기로 했다. 


태그:#오컬둥가 룸자타, #빵을 전하는 아내의 나마스떼, #먼주 구릉, 최성락, #김형효, 람타다, #오지마을에 지진 피해자들에게 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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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사람의 사막에서" 이후 세권의 시집, 2007년<히말라야,안나푸르나를 걷다>, 네팔어린이동화<무나마단의 하늘>, <길 위의 순례자>출간, 전도서출판 문화발전소대표, 격월간시와혁명발행인, 대자보편집위원 현민족문학작가회의 회원. 홈페이지sisarang.com, nekonews.com운영자, 전우크라이나 예빠토리야한글학교교사, 현재 네팔한국문화센타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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