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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감사관들이 활동을 시작한 지 벌써 두 달, 잘하고 있을까?

시민감사관제도는 경기도교육청(교육감 이재정)이 청렴·투명성 강화를 위해 도입했다. 전문 감사요원이 아닌 일반 시민을 감사현장에 직접 투입하는 무척 획기적인 제도다.

이 때문에 시작할 때부터 기대만큼이나 걱정도 컸다. 완장 의식으로 인한 부작용이 있지 않을까 하는 걱정과 공무원 신분이 아니어서 공무원을 봐주는 일 없이 철저하게 감사할 것이라는 기대가 교차했다. 

"감사하는 거 감사받는 건가?" 농담도

시민감사관들이 감사하는 모습.
 시민감사관들이 감사하는 모습.
ⓒ 이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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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오전 시민감사관들 감사현장인 안산 A 고등학교를 찾았다. 노트북 화면에 빼곡히 차 있는 숫자를 들여다보던 시민감사관들, 고개를 들어 기자를 반갑게 맞았다. "오늘 우리 감사하는 거 기자한테 감사당하는 건가?"라는 농담도 잊지 않았다.

이날 감사는 배외숙·황인성·안태원 시민감사관과 최종원 경기도교육청 감사관이 함께 진행했다. 이들은 한 학교에 3일씩 3주째 급식 감사를 하고 있다. 지금까지 6개 학교를 감사했다. 급식 감사는 9월 말에 끝난다. 총 9개 학교를 감사 할 계획이다.

감사장 한편에 두꺼운 서류철이 죽 늘어서 있고, 시민감사관들 책상에도 서류가 잔뜩 놓여있다. 이렇게 많은데도 부족한 지 감사관들은 수시로 학교 행정실 직원에게 추가 서류를 요구했다. 서류를 들고 오는 행정실 직원의 굳은 표정에서 감사현장에 깔린 긴장감을 느낄 수 있었다.

"불편? 그런 건 없다. 굉장한 전문성을 가지고 있는 분도 있다. 물론 처음 해보는 분도 있지만. 그보다는 이분들의 넘치는 의욕에 좀 놀라웠다. 대부분의 위촉직이 그동안은 회의만 하고 가버리는 식인데, 이분들은 다르다. 또, 내가 보지 못하는 부분을 보는 경우도 있고, 어떤 사안에 대해 새로운 시각에서 의견을 주기도 한다."

최종원 감사관 말이다. '시민감사관들과 함께 일하면서 불편한 점은 없느냐?'는 물음에 최 감사관은 이렇게 대답했다.

최 감사관이 말한 '전문성 있는 이'는 안태원 시민감사관이다. 안 시민감사관은 시민감사관 7명 중 유일한 상시 근무자다. 시민감사관은 상시 근무자 1명과 비상시 근무자 6명으로 구성됐다. 안 시민감사관은 한국 투명성 기구 이사를 역임했다. 국민권익위원회에서 5년간 일한 경험도 있다.

"국민권익위원회 일하고 경기도 교육청 시민감사관 일하고 다르지 않다. 권익위 있을 때도 제도개선에 관한 일을 했다. 비리 등의 실태를 조사하고, 어떤 제도에 문제가 있어 비리 등이 발생하는지 파악해서 개선방법을 만드는 일이다. 그 과정에서 비리 사실이 밝혀지는 일도 왕왕 있었는데, 그럴 때는 고발 조치했다. 시민 감사관도 이와 마찬가지로 비리 같은 거 잡아서 징계하자, 이런 게 아니라 비리 원인을 파악하고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제도개선을 권고하는 게 주 업무다. 물론 그 과정에서 비리 사실 드러나면 당연히 징계도 요구하겠지만."

"시민감사관이라고 하자 피해자가 안심하고 진술"

점심은 학교 식당에서 학생들이 먹는 것과 같은 식단으로. 왼쪽 배외숙 시민감사관, 오른쪽 안태원 시민감사관, 최종원 감사관(머리 짧은)
 점심은 학교 식당에서 학생들이 먹는 것과 같은 식단으로. 왼쪽 배외숙 시민감사관, 오른쪽 안태원 시민감사관, 최종원 감사관(머리 짧은)
ⓒ 이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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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시민감사관과 달리 배외숙 시민감사관은 감사현장이 좀 낯설다. 배 감사관은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안양지회장을 맡은 시민단체 활동가다.

"현장에 나오기 전에 여러 차례 감사교육을 받았지만, 역시 어렵다. 이 엄청난 서류를 일일이 살펴서 잘못된 점을 끄집어내는 일이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 굉장한 노력이 필요하다. 오늘도 문제점 하나 발견했다. 분명 재료가 들어오기는 했는데 식단표에는 그 재료가 없다. 아무래도 해명 자료를 받아야 할 것 같다."

배 시민 감사관과 안 시민감사관 모두 OO교육 지원청에서 성희롱 사건을 쉬쉬하며 덮으려 했던 일을 밝혀내, 강하게 문제를 제기한 것을 가장 보람 있는 일로 꼽았다.

"OO 교육지원청에 갔을 때 우리가 굉장히 중요한 걸 집어냈다. 회계문란과 직장 구성원 간 성추행이 복합된 사건이었는데, 피해자와 가해자 진술서를 확인하다가 피해자에 대한 보호가 전혀 안 됐고, 사건을 쉬쉬하며 덮으려 한 사실을 밝혀내 강한 징계를 요구한 적이 있다. 공무원이 아닌 시민감사관이라고 하자 안심이 됐는지 피해자가 적극적으로 솔직하게 진술해서 밝혀낼 수 있었다.

성추행을 당했다는 민원이 들어오니까 교육 지원청에서 그 학교 교장과 가해자를 불러서 '조심해라, 빨리 막아라' 이런 것이다. 또 성추행 피해자 두 명 중 한 명한테는 '상황이 이러이러하니 네가 잘 대답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고. 이건 피해자한테는 협박으로 들릴 수 있어 절대 해서는 안 될 말이다. 쉬쉬하고 덮으려는 분위기가 팽배해서 그런 것 같은데, 우리가 볼 때는 민원처리의 기본을 무시한 행위다."

급식 재료 납품업자 제보한다고 찾아오기도

감사 서류
 감사 서류
ⓒ 이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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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급식 감사니 만큼 시민 감사관들은 음식 맛도 볼 겸, 점심을 학교 식당에서 했다. 아이들이 먹는 것과 같은 식단이다. 밥값은 경기도 교육청 감사실에서 냈다. 밥과 국, 김치, 나물 등 1식 4찬의 깔끔한 식단이었다. 밥을 먹는 도중 전화 한 통을 받은 안 시민감사관 표정이 갑자기 심각해졌다.

잠시 후 안 시민감사관은 "급식 재료 납품업자가 제보하기 위해 인근에 있는 B 고등학교급식 감사장에 찾아오기로 했다"며 "지원 요청이 왔으니 빨리 밥 먹고 가자"고 말했다. 덕분에(?) 시민감사관들 식사 속도가 두 배로 빨라졌다.

이날 제보는, 영양사들이 시장가보다 터무니없이 낮은 가격을 제시하고, 이미 납품받을 업체를 정한 다음 공개 입찰을 하는 경우가 많다는 제보였다고 한다. 제보자 보호를 위해 감사관 이외에는 제보 현장에 있을 수 없다는 원칙이 있어, 기자는 제보 내용을 직접 들을 수 없었다. 이날 감사는 오후 4시 40분께 끝이 났다.


태그:#시민감사관, #경기도교육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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