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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천군 보건의료원에서 '자녀에게 편지쓰기' 공모를 시행했다.
 화천군 보건의료원에서 '자녀에게 편지쓰기' 공모를 시행했다.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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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태어나던 날, 엄마, 아빠는 무척 기뻤단다. 유치원을 거쳐 초등학교, 중학교에 진학할 때까지 넌 말썽 한번 부리지 않았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내 아들..."

지난 7월, 강원도 화천군 보건의료원에서 '자녀에게 편지쓰기 공모전'을 열었다. 2013년부터 3년째 추진해 오고 있다. 가족의 중요성과 유대강화, 출산장려가 목적이다. 상금도 준다. 금상 50만 원, 은상 40만 원, 동상은 30만 원이다.

전국적으로 '자녀에게 편지쓰기' 제도가 많아졌다. 스마트폰과 인터넷 발달은 가족 간 대화 단절 원인이 된다는 지적도 있다. 편지형식으로 자녀에게 남긴 글엔 정감이 묻어 있다. 부모의 사랑이 글자마다 깊게 배어 있다.

난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심사를 맡았다. 30여 편의 편지, 구구절절 자녀 사랑 일색이다. 묘하게 공통적인 부분이 눈에 띈다. 아이가 태어나 성장한 과정을 순서대로 쓴 글이 참 많다. 따끔한 훈계성 내용이라도 있을 만한데, 한 건도 없었다. 모두 예쁘고 사랑스러워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는 표현이다.

편지는 글쓰기의 기본이라 할 수 있다. 격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쓸 수 있다. 그러나 응모를 위한 편지는 어느 정도 형식을 갖추는 것이 좋다. 따라서 이번 '편지쓰기' 심사를 통해 느낀 점을 말하고자 한다. 글쓰기 초보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ABCDE... 단순한 나열은 피하라

먼저 순서 나열식은 지양하는 게 좋다. 즉, '네가 태어났고, 유치원에 들어갔고, 초등학교를 마쳤고...' 식의 글은 아무리 잘 쓴 글이라도 평평하게 보인다. 특징을 찾기 어렵다.

글쓰기 강의 중 '1. ABCDEF... 2. CDABEF...' 를 말한 적이 있다. 글쓰기 공식이 아니다. 거창한 것 같지만, 단순히 글의 전개순서 설명이다. 1의 경우 사건 발생 순서대로 열거한 것이고, 2는 중요한 사건을 하나 앞으로 끄집어내 배경설명과 맺는말로 마무리하는 기법이다.

아들! 네가 어렸을 때 빵점 받아온 거 완벽하게 속인 줄 알았지? 엄마와 아빠는 다 알고 있었단다. 공부 좀 못하면 어때. 대신 넌 발표를 잘하잖니. 공부 잘하는 것보다 그게 백배는 멋지다고 생각해.

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 때 빵점을 받아왔다. 선생님을 통해서 들었다. 아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모른척하기로 했다.

아이는 공부를 썩 잘하지 못했다. 돌이켜보면 아이가 어렸을 때 직장일 때문에 신경을 쓰지 못했던 게 원인인 듯하다. 그게 응어리로 가슴 한편에 남아있다.

이런 형식의 글에선 잔잔한 감동이 느껴진다. 이것을 사건 발생 순서대로 나열했다면 감동은 다소 떨어진다. 영화 <식스센스> 예를 들어보자. 정확한 기억일진 모르겠으나 내용은 이렇다. '주인공인 배우, 브루스 윌리스는 의사다. 화장실에서 인기척을 느끼고 그곳으로 향한 그는 괴한으로부터 총격을 받았다.'

이후 그의 평범한 일상이 전개된다. 관객들은 순간 그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의문을 갖기 시작하다 이내 잊어버린다. 정상적인 그의 생활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마지막 장면, 그의 죽음을 안 관객들은 경악한다. ACDEB 형식이다. B부분이 생략된 채 내용이 전개되다 마지막에 B를 보여준다.

두 번째, 부분적으로 대화체를 살리는 것이 좋다. 편지글 대부분이 부모의 주관적 글이다. 주장에 가깝다. 대화체 형식은 현장 상황을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효과가 있다. 아이가 당시 상황을 회상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대화체 글은 말투 그대로 쓰는 것이 좋다. 아이가 사투리나 은어를 사용했다면 그대로 글로 옮겨라. 글이 살아 움직인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세 번째, 아이가 잘한 것만 쓰지 마라. 식상함이 느껴진다. 완벽한 사람은 없다. 심사한 대부분의 편지글에 등장한 아이는 모두 성인군자였다. 아이가 잘못한 부분에 대한 훈계나 재미있었던 사건 묘사도 필요하다.

네 번째, 상대방이 그림을 그리게 하여라. 심사위원이나 독자들이 글을 보고 상상을 하게 만들라는 말이다. 글을 보면 장면이 그려지는 글이 있고, 그렇지 않은 글이 있다. 불필요한 잡다한 상황설명은 글이 조잡해지는 원인이 될 수 있지만, 때론 큰 테두리에서 그림을 그리듯 글을 쓰는 연습도 필요하다.

마지막, 짧게 써라. 심사한 글 중 한 문장이 4줄은 보통이고, 무려 6줄까지 이어지는 글도 있었다. 두 번 읽어도 대체 뭔 소린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글을 예쁘게 화장한다는 것이 조잡해진 경우다. 사람과 비슷하다. 기본적인 로션만 바른 얼굴이 건강해 보인다. 수식어를 덕지덕지 붙이지 않은 글이 좋은 이유다.

'자녀에게 편지쓰기'를 통해 글 쓰는 방법을 익히는 계기가 되었길 바란다. <오마이뉴스>는 '사는 이야기'도 기사로 채택한다. 지금까지 내가 쓴 350여 편의 기사 대부분이 사는 이야기다. 아내가 주인공인 글이 다수다. 가족이야기, 직장에서 겪은 에피소드, 이웃 간의 훈훈한 이야기, 모두 훌륭한 기사가 될 수 있다. <오마이뉴스> 시민기자의 문을 두드리는 것도 용기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신광태 기자는 강원도 화천군청 기획담당입니다.



태그:#자녀에게 편지쓰기, #화천군 보건의료원, #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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