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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제 ‘전태일 문학상’ 수상자.
 이근제 ‘전태일 문학상’ 수상자.
ⓒ 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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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살아온 이야기를 쓰고 싶었습니다. 초등학교를 겨우 졸업한 저는 글쓰기 공부를 한 적도 없습니다. 혼자 썼다 지웠다 반복하다 포기하기도 여러 번이었습니다. 어느 해인가 회사가 어렵다고 여름 휴가비를 주지 않았습니다. 휴가가는 것을 포기하고 지금까지 살아온 이야기를 쓰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밥 먹는 시간 빼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썼어요. 초등학생 글만도 못하지만 일주일 만에 쓰고 싶었던 것을 거의 다 썼지요. A4 용지로 스물다섯 장이 되데요."

이근제(60)씨는 당시 강순옥 월간 <작은책> 편집장에게 자신이 쓴 글을 보여줬다. 교정교열을 봐달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강 편집장이 <작은책>에 싣자고 해, 1999년 11월호부터 '바보처럼 살아온 지난날'이라는 제목으로 총13회 연재했다.

이씨는 이 글을 다듬어 '살아온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2001년 10회 전태일 문학상 생활글 부문에 응모해 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충북 음성에서 태어나 1985년 인천 동구 송현동으로 이사 온 이씨는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한 곳에서 살고 있다. 지난 19일,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할 무렵 동인천역 북광장에서 그를 만났다. 수줍은 듯 작은 목소리로 질문에 대답했지만, 글만큼이나 짜임새와 조리가 있었다.

나를 돌아보게 한 글쓰기

1956년 2남 2녀의 셋째로 태어난 그는 아버지가 너무 무서웠다. '네가 네살 때 물동이를 이고 가는 나한테 업어달라고 조르는 모습을 본 아버지가 너를 집어던졌다'고 어머니가 얘기해줬단다. 한 번은 열 살 무렵 학교를 '땡땡이' 친 그를 뒷동산까지 쫓아온 아버지가 가방을 내던지기도 했단다.

"말도 못 붙일 정도로 아버지가 엄해서 억눌려 지냈어요. 지금 생각하면 그걸 풀어내고자 글을 쓰고 싶었나 봐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부모를 따라 서울로 와 그때부터 철공소, 전파사, 고무신 공장을 거쳐 건설현장에서 막노동을 시작했습니다. 1980년에 결혼했고, 1985년 인천으로 이사 와 대우자동차(현 한국지엠)에 다니고 있습니다."

열 살 때부터 인천으로 이사 온 서른 살까지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글로 쓴 이씨는 "다 쓰고 보니 제 얘기보다는 아내를 미워하고 탓한 게 많아 놀랐습니다"라고 했다. 스스로 자신을 보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그해 생일에 자녀들에게 '아버지의 단점'을 글로 써 선물로 달라고 했다.

"글쓰기는 나를 성찰하게 하는 것 같아요. 글을 쓰다 보니 화살이 아내한테 향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어요. 그리고 당시에는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글을 쓰면서 생각하니 내가 잘못한 게 많더라고요."

무조건 써라

'세상을 바꾸는 따뜻한 이야기'라는 부제를 갖고 있는 월간 <작은책>은 1995년에 창간했다. 노동자들의 이야기가 담긴 이 책을 이씨는 사업장에서 처음 봤다.

"창간하기 전 준비호가 현장에 돌아다니더라고요. 책이 마음에 들어 창간호부터 지금까지 구독하고 있습니다."

그 후 이씨는 집회장에서 <작은책>을 홍보하는 가판대가 있으면 찾아갔고, <작은책> 관계자로부터 글쓰기 모임에 나오라는 제안을 받았다. 왠지 어색해 거리를 두다가 자신의 글이 <작은책>에 실린 후 모임에 나가기 시작했다. 재작년까지 10년간 회장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글이 쓰고 싶지만 자신 없어 하는 노동자들에게 한마디 해달라고 하니, 무조건 쓰라고 했다. 쓰고 나서 소리 내어 읽고 사람들과 나누라고 강조했다.

"글을 쓰고 사람들에게 보여줘야 해요. 지적을 많이 받을수록 글 솜씨가 늘어요. 저도 처음엔 창피했는데, 혼자만 갖고 있으면 발전이 없습니다. 처음에 보여줄 때가 두려워요. 하지만 서너 번 보여주면 얼굴이 좀 두꺼워집니다. 그것만 이겨내면 발전할 수 있습니다. 또, 소리를 내어 읽어보면 틀린 것을 스스로 발견하기도 하고 더 좋은 단어를 찾기도 합니다."

이씨는 말 잘하는 사람도 처음부터 잘한 게 아닌 것처럼 글도 마찬가지로 훈련이 필요하다고 했다. 자꾸 쓰고 고치다보면 잘못된 곳이 보이고, 글 쓰는 수준도 는다고 했다.

정년퇴임 맞춰 단행본 발간 계획

올해 3월에 돌아가신 이씨의 어머니는 67세부터 가계부에 일기를 썼다.
 올해 3월에 돌아가신 이씨의 어머니는 67세부터 가계부에 일기를 썼다.
ⓒ 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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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는 내년에 정년퇴직을 한다. 회사 동료가 퇴임식에 맞춰 책을 한 권 내라고 권유했다.

"지금까지 회사 이야기 쓴 것을 묶으면 한 권 분량이 되는데, 내년에 책으로 만들까 합니다. 주로는 2001년 대우자동차 노동자 1750명이 정리해고 됐을 때 이야기입니다."

당시 이씨는 해고자가 아니었다. 하지만 정리해고 반대 집회에 열심히 참여했다. 그는 지금까지 평조합원으로 있지만, 노동조합 간부들도 하기 어려운 말을 과감히 한다고 했다. 이씨가 처음부터 이렇게 용기가 있었던 건 아니란다. 예전에는 일하다가 다치면 공상처리가 아닌 월차휴가를 내고 치료를 받을 정도로 현실을 몰랐다고 했다.

"1998년에 풍물을 배웠어요. 인하대 운동권 학생이 가르쳐줬는데, 풍물 외에도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많이 가르쳐줬어요. 노동자 의식을 심어준 거죠. 그러면서 직장 관리자들한테 할 소리 하는 사람으로 바뀌었습니다. 노조 간부를 하라는 제의도 받았는데 평조합원으로 현장에서 내 목소리 내는 게 더 올바르다고 생각했어요."

일하는 노동자가 글을 써야 한다고 거듭 강조한 이씨는 그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작가나 글을 전업으로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머리로 글을 쓴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꾸미지 않고 자신이 겪은 것을 그대로 써요. 지금 당장은 우리가 쓰는 글이 힘이 없고 별게 아닐 수도 있지만, 나중에는 살아있는 역사가 될 겁니다."

마음을 움직이는 글쓰기의 힘

이씨는 <작은책>에 본인의 이야기가 연재된 이후에 글쓰기 모임에서 발표한 자신의 생활글도 가끔 <작은책>에 실렸다고 했다. 10년 전엔 딸과의 사연을 써서 사람들을 울린 적도 있다고 했다.

"딸이 대학 3학년 때였어요. 싸운 건 아니고 내 말 한마디에 딸이 삐쳐 1년간 말을 하지 않았어요. 잘잘못을 따지지 않고, 내 서운한 감정을 편지 형식으로 써서 딸 방에 놓았죠. 일주일 뒤가 내 생일이었는데, 딸이 답장과 선물을 주더라고요. 아침에 미역국도 끓여놓고요. 전 글의 힘이라고 생각해요. 잘못을 지적했다면 갈등이 더 깊어졌겠지만, 내가 왜 서운했는지를 솔직히 쓰니 딸도 자신의 고충을 얘기하면서 힘들었던 관계가 풀어졌어요. 사람들이 제 사연을 읽으면서 울었다고 하더라고요."

인터뷰 도중 그는 뭔가를 꺼내 보여줬다. 가계부였는데 열어 보니 이씨의 어머니가 써놓은 일기장이었다. 67세부터 89세인 재작년까지 꾸준히 써놓으셨는데, 이씨는 일기장을 버리지 않았을뿐만 아니라 그 내용을 컴퓨터로 입력해 보관하고 있다. 올해 3월, 어머니는 1년간 치매를 앓다 돌아가셨다. 치매를 앓기 전까지 꼬박꼬박 일기를 썼는데, 글씨체가 정성스러웠다. 농사 이야기, 대통령 선거 이야기, 집안 식구 이야기 등, 다양했다.

"이건 어떤 글보다 큰 이야기예요. 하찮은 내용이지만 역사라고 생각해요. 어머님이 존경스러워 자랑하려고 가지고 나왔습니다."

충북 음성에 계신 어머니를 모시고 와 이씨 부부와 형제자매가 모셨는데, 그 1년의 이야기도 책 한 권 분량으로 써 놓았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출판할 수 있게 시간 나는 대로 교정을 하고 내용에 따라 분리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꽃'이라는 도종환 시인의 말처럼 이씨는 '누구나 글을 쓸 수 있다'고 오늘도 목소리를 높인다.

"나 같은 사람도 쓰잖아요."

○ 편집ㅣ박순옥 기자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시사인천>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이근제, #전태일 문학상, #지엠대우, #작은책, #노동자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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