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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강제징용 노동자 김한수(97)씨. 그는 1944년 강제징용을 당해 일본 나가사키에 있는 미쓰비시 조선소에서 강제노역을 하다가 미군의 원자폭탄투하로 인해 원폭피해를 입었다.
 조선인 강제징용 노동자 김한수(97)씨. 그는 1944년 강제징용을 당해 일본 나가사키에 있는 미쓰비시 조선소에서 강제노역을 하다가 미군의 원자폭탄투하로 인해 원폭피해를 입었다.
ⓒ 오마이뉴스 장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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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일본 미쓰비시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과 중국, 영국 등 전쟁포로들에게 강제노역을 시킨 것에 대해 사과하고 보상금을 지급하겠다고 하면서도 한국인 강제징용피해자들에게는 '법적 상황이 다르다'며 사과를 거부한 것에 대해 강제징용피해 당사자인 김한수(97)씨는 '천벌을 받을 놈들'이라며 격노했다.

김씨는 1944년 8월 황해도 연백군 해성면 전매지구 현장에서 노무직으로 일하다가 무조건 트럭에 타라는 지시를 받고 강제 동원됐다. 그는 일본 나가사키에 있는 미쓰비시중공업(주) 조선소에 배치되어 온갖 중노동에 시달려야 했다(관련기사 : "우리는 인간 이하의 노예생활을 해야 했다"   "65년 전 나는 지옥을 봤다"  "지옥의 섬을 자랑거리 삼다니.. 기가 막힐 일").

콩기름을 짜고 남은 깻묵에다 쌀을 조금 넣어 밥을 지어 먹었고, 고구마 넝쿨을 바닷물에 끓여서 국으로 먹었다. 그나마도 남기는 사람이 없었을 만큼 늘 배고픔에 시달렸다. 일본인들은 이들에게 '돈을 벌게 해 주겠다, 너희들의 월급은 집으로 부쳐주고 있다'고 거짓말을 했고, 실제 끌려온 조선인들에게 주어진 것은 1달에 100전(현재 돈으로 약 1만 원 추정, 당시 우뭇가사리 국수 3그릇 값)이 전부였다.

그러던 어느 날 나가사키에 인류 최악의 재앙인 원자폭탄이 떨어졌다. 공장 안에서 일본인의 시계를 고쳐주고 있던 김씨는 창문으로 들어오는 푸른 섬광을 목격했다. 그리고는 '적군이다'라고 외치며 뛰쳐나가는 일본인을 따라 공장 밖으로 나가려다가 거대한 공장문에 깔렸다. 원자폭탄이 폭발하면서 생긴 폭풍에 대형 철문이 떨어져 나가면서 김씨가 깔린 것이다.

온몸이 피투성이가 됐지만, 어쩌면 그것은 행운이었다. 김씨가 밖으로 나가니 새까맣게 타버린 시체가 나뒹굴고 있었고, 눈이 빠진 사람, 다리가 잘려나간 사람, 팔이 없는 사람 등 그야말로 '지옥'이었다는 게 김씨의 기억이다.

자신도 심각한 부상을 입었지만 그는 그 후 약 한 달 보름 동안 그 곳에 머물면서 조선인 부상자들을 돌봤다. 죽어나가는 사람이 수도 없었고, 시체는 썩어서 냄새를 맡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나가사키 시내는 온통 잿더미로 변했다.

집으로 돌아와야 했던 김씨는 오징어를 팔아서 여비를 마련해 일본인 목선에 몸을 실었다. 대마도를 거쳐 부산항에 도착하자 할머니들이 주먹밥을 뭉쳐서 '수고했다'며 주는데 '이게 동포애라는 거구나' 하는 생각에 눈물을 흘리며 허기진 배를 채웠다고 한다.

6·25전쟁 당시 남한으로 피난 온 김씨는 충남 홍성과 공주 등을 돌면서 살았고, 아내 박기순(83)씨를 만나 4명의 딸을 낳았다. 현재는 대전 대덕구 와동에서 살고 있다.

28일 오전 김씨의 자택에서 만난 그는 최근 오카모토 유키오 일본 미쓰비시 머티리얼 사외이사가 산케이신문 기고를 "한국이 주장하는 징용공 문제는 전쟁포로 문제와는 상당히 성격이 다르다"며 한국인 강제징용노동자에 대한 사과와 배상을 거부한 것에 대해 매우 분노했다.

김씨는 "이런 천벌을 받을 놈들, 내가 당장 쫓아가서 벼락을 내리고 싶다"며 "지들이 멀쩡한 나라를 강제로 식민지로 삼고, 또 그 백성들을 강제로 끌어다가 노예로 부려먹고서는 이제 와서 그게 할 말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정말 양심 없는 것들이다, 천벌을 받아야 한다"며 "그런 놈들이 지금도 떳떳하게 살고 있다니 기가 막힐 일이다"라고 말했다.

조선인 강제징용 노동자 김한수(97)씨. 그는 1944년 강제징용을 당해 일본 나가사키에 있는 미쓰비시 조선소에서 강제노역을 하다가 미군의 원자폭탄투하로 인해 원폭피해를 입었다.
 조선인 강제징용 노동자 김한수(97)씨. 그는 1944년 강제징용을 당해 일본 나가사키에 있는 미쓰비시 조선소에서 강제노역을 하다가 미군의 원자폭탄투하로 인해 원폭피해를 입었다.
ⓒ 오마이뉴스 장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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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는 또 일본에 사과와 배상요구를 하지 못하는 한국정부에 대해서도 답답함을 토로했다. 그는 "대한민국 정부도 잘못됐다, 왜 말을 못하느냐"며 "내가 박근혜 대통령 앞에서 할복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돈은 다 자기들이 받아서 쳐먹고, 죽도록 고생한 우리들만 억울하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끝으로 후세들에게 "똑바로 기억하고 기록하라"고 말한 뒤 "목숨을 내놓을 각오로 나서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한편, 이러한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징용노동자의 생생한 '증언'을 듣는 시간이 대전에서 마련됐다. 지난 3월 1일 '대전평화의 소녀상'을 세웠던 '평화나비대전행동'은 광복 70돌을 맞아 오는 8월 14일 오후 7시 대전시청 북문 앞 보라매근린공원에서 '8·15광복 70돌 대전시민 통일한마당 해방에서 통일로'를 개최한다.

이날 행사에서는 김씨를 비롯한 지옥의 섬 하시마에 끌려가 석탄을 캐는 강제노동을 했던 최장섭(88)씨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 마련될 예정이다.

○ 편집ㅣ최은경 기자



태그:#강제징용노동자, #강제징용, #김한수, #미쓰비시, #나가사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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