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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가 탈 차를 마련하여 호송 후 격리하고, 그 차에 소독약을 뿌려 지나가는 길에 더러운 기운이 퍼지지 않게 한다." 1895년 유길준 선생이 쓴 <서유견문>의 내용이다. 120여 년 전부터 통용돼 왔던 전염병 대처 방법이 2015년에는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단군 이래 최고의 전성기라는 현재 대한민국이 메르스 발병국 2위라는 오명을 뒤집어 쓴 까닭은 정부의 '방심'에 있다. 정부 당국이 '최초 유포자의 신속한 격리와 방역'이라는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이 이번 메르스 사태가 발생한 근본 원인이었다.

이러한 정부의 방심은 이번 사태뿐만이 아니다. 이번 정부가 들어선 이래로 세월호 참사를 비롯해 크고 작은 사고들이 빈번히 발생했다. 잇따른 사고에 대한 언론의 평가는 '골든타임을 놓쳤다'였다. 사고 초기 재빠른 수습이 이뤄지지 못했다. 결국 쉽게 마무리될 사고들은 국가적 재난이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정부 당국은 잠재적 사고 발생에 대해 낙관적인 견해를 가지거나 사고의 위험성을 축소시켜 받아들였다. 세월호 사고 당시 미흡한 대처와 선박에 대한 안일한 관리가 국가적 재난으로 번지게 한 주요 원인이었다. 위험한 사고가 발생하지 않을 거라는 정부의 무사안일적인 태도가 그 화를 키웠다. 재난대응시스템과 구체적 대처 매뉴얼의 부재는 정부의 방심의 산물이었다.

사고의 위험 가능성을 축소시키는 정부의 태도 또한 문제다. 메르스 사태는 이러한 정부 당국의 문제점을 여실히 보여줬다. 사태가 터지기 2년 전 정부는 보건당국을 필두로 메르스 대책회의를 진행했다. 그러나 회의의 결과는 1차적 대처 정도에 머물렀다. 질병 유입에 대한 구체적 매뉴얼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회의안에는 중동을 다녀온 사람들의 지속적 감시 및 의료진을 상대로 한 메르스 사전 홍보 및 교육이 핵심 방안이었다. 질병 유입에 대한 방안은 메르스 진단 기술 마련뿐이었다.

결국 정부는 자신들의 사전 차단 가능성을 굳게 믿고, 메르스 사태의 위험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 결과 국내 메르스 확산에 영향을 끼친 가족 병문안 문화, 응급실 내 환자간의 거리, 의료 쇼핑 등의 변수를 예측하지 못했다.

세월호 사고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들을 향해 '재난 대응 컨트롤 타워를 확립 하겠다'고 거듭 약속했다. 그러나 1년 전의 약속은 이번 메르스 사태에서도 지켜지지 않았다. 메르스 감염 사태는 '세월호 전염병 버전'이라는 딱지가 붙었다. 또 다시 정부는 '국가재난안전관리체계를 전반적으로 재정비하겠다'고 말했다. 그보다 자신들의 '안전방심체계'를 재정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재난안전관리체계나 컨트롤타워는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

"메르스가 국내에 상륙할 것을 예상하고 필요한 준비를 해왔다."

독일에 이어 메르스를 사전에 차단한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관계자의 말이다. 이번 사태를 통해 국민들은 우리나라 정부의 무능함을 목격했다. 무엇이 잘못됐는지에 대한 꼼꼼한 분석과 반성이 없으면 국가적 재난은 또다시 발병할 수 있다. 안전사고는 예기치 못한 곳에 도사리고 있다. 사고 예방에 대한 가장 큰 적은 바로 '방심'이다. 현 정부는 이 사실을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다.


태그:#메르스, #국가적재난, #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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