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을 일주일 따라 다녀보면 어떨까', 이 질문으로부터 '팔로우'는 시작됐습니다. 이왕이면 평소 관심 있게 지켜보던 남자 연예인을 뒤쫓고 싶은 바람이 개인적으로 없지 않지만, 코너 이름이 '스토커'로 변질되는 일이 없도록 사람, 사물, 현상을 가리지 않고 '팔로우'하겠습니다. [편집자말]

* 1편 "러시아도 반푸틴 방송 있는데, 한국 왜 그래요?"에서 이어집니다.

 일리야 벨라코프

JTBC <비정상회담> 하차 이 후 첫 생방송에 출연 하는 일리야 벨랴코프가 17일 오후 서울 마포구 상암동 YTN 스튜디오에서 긴장한 모습으로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 이희훈


지난 6월 말, JTBC <비정상회담>에서 하차한 러시아인 일리야 벨랴코프(33)는 모델에이전시 비앤비엔터테인먼트와 계약을 맺었다. 소속사가 생긴 셈이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극동국립대학(FENU)에서 한국학을 전공, 2003년 한국으로 와 연세대학교에서 국어국문학 석사과정을 마친 후, 미국 사우스 캐롤라이나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잠시 쉬기까지 꾸준히 공부해왔던 그가 학생이 아닌 방송인의 길로 들어선 것은 조금 의외였다. 지난 17일 YTN 생방송 <국민신문고> 패널로 첫 출연하는 출근길을 동행하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일리야는 "방송활동은 꿈을 향한 길"이라고 답했다. "아직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그는 "박사학위를 딴 후 누군가를 가르치고 책을 쓰는 교수가 되는 것이 목표"라면서 "밥 먹고 살려면 돈을 벌어야 하는데, 방송은 재미도 있다"라고 이 일을 계속 해보기로 한 이유를 설명했다.

실제로 일리야는 <비정상회담>을 시작으로 다양한 방송에 출연하게 되고, 팬이라는 존재가 생긴 삶의 변화를 즐기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사진이 찍혀서 SNS에 올라와 있다"라고 놀라면서도 "사생활의 범위가 줄어들긴 했지만, 아직까지 스트레스 받을 정도는 아니다"라며, 오히려 "날 알아보는 사람이 더 많아지길 바란다"고 했다.

틈틈이 인스타그램과 페리스코프 등 SNS로 팬들과 소통하는 그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에게 많은 사랑을 보내준 그분들에게 절을 하고 싶다"라고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삼성맨'이었던 일리야 "돈 잘 벌었지만..."

 일리야 벨라코프

일리야는 방송을 시작하며 거울을 보는 시간이 많아 졌다고 했다. 이날도 거울을 보며 분장실을 들어서기 전 자신의 모습을 확인했다. ⓒ 이희훈


 일리야 벨라코프

생방송에 출연하기 위해 방송사를 찾은 일리야. ⓒ 이희훈


일리야는 한때 '삼성맨'이었다. 대학원 졸업 후 삼성전자에 입사, DMC연구소 인사과에서 외국인 채용 관련 업무를 맡아 2년 3개월간 일하다가 2012년 3월 퇴사했다. 한국에서의 첫 사회생활, 게다가 업무량이 높은 걸로 유명한 대기업은 '돈이 곧 꿈'이었던 일리야에게 '돈이 전부가 아니다'라는 큰 깨달음을 줬다.

- 우리나라에서는 삼성 들어갔다고 하면 취업에 성공했다고 한다. 왜 그렇게 빨리 그만뒀나?
"'무조건 돈을 벌기보다 일이 재밌어야 한다'는 게 내 철학이다. 삼성에 2년 넘게 다니며 자아실현 할 방법이 없었다. 어느 날 대리님이 '일리야씨, 하루 중 언제가 제일 행복해요?'라고 물었는데, 갑작스러웠다.

내가 행복한 순간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일어날 때부터 잠들 때까지 고문이었다. 친구들이 '올해는 너무 더워, 장마가 장난 아니야' 같은 얘기를 하는데, 무서워졌다. 사무실에만 있어서 올해가 어떤 여름이었는지, 겨울이었는지, 더웠는지, 추웠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때 그만둬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삼성전자, 연봉도 높고 혜택도 좋았다. 그런데 돈이 다가 아니다. 이 세상에 있는 돈을 내가 다 벌 수 없으니 벌만큼 벌고 즐기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퇴사하자마자 미국으로 한 달 여행을 떠났다. LA에서 차를 빌려 캘리포니아를 3주 동안 계획 없이 다녔다. 모든 스트레스가 풀렸고, 새로운 몸으로 한국에 돌아왔다."

- 이후 프리랜서로 일하다가 <비정상회담>에 출연하게 된 건가?
"미국 여행에서 돌아와 바로, 2012년 6월부터 학원에서 강의를 시작했다. 이후 주한러시아대사관에서 일했고, 미국 대학교에 입학하게 돼서 넘어갔다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1년 정도 한국에 머문 후 다시 미국으로 가려고 비행기표를 살 시점에 <비정상회담>에서 연락이 왔다. 조금만 늦었다면, 지금쯤 미국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겠지."

쉽지 않은 한국생활 중에 만난 <비정상회담> "고마워"

 일리야 벨라코프

일리야가 의상실에서 옷을 갈아 입는 모습을 의상코디들이 스마트 폰으로 촬영하고 있다. ⓒ 이희훈


 일리야 벨라코프

일리야 벨라코프 ⓒ 이희훈


 일리야 벨라코프

일리야 벨라코프 ⓒ 이희훈


일리야는 삼성에 근무하며 한국 거주권을 획득했다. 나이, 학력, 소득, 한국어능력 등을 평가해 일정 점수 이상이면 거주 자격을 주는 제도를 통해서다. 하지만 "정권이 바뀌면서 법도 달라졌다"고 전한 그는 "새로운 우수 외국인들이 거주권을 쉽게 받을 수 있도록 만들어,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외국인들은 비자를 갱신하기가 너무 어려워졌다"라고 토로했다.

"계좌 개설도, 은행 대출도 불가능하다"고 덧붙인 일리야는 "휴대폰 개통은 내 명의로 할 수 있었는데, 이게 가능했던 이유는 대리점 직원들이 내가 <비정상회담> 출연자라는 걸 알아봤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여러모로 녹록지 않은 한국 생활을 이어가는 와중에 만난 <비정상회담>은 일리야에게 "다양한 기회를 열어준 고마운 방송"이다. 그렇게 얻은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면 현재에 충실해야 한다.

오후 7시께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들어선 우리는 전 직장 JTBC를 등지고 바로 앞의 YTN 건물로 들어갔다. 1층에는 벌써 일리야의 팬이 카메라를 들고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 왔어?"라고 맞으며 덤덤하게 '브이'를 그려주는 모습에서 스타의 포스가 풍겼다. 이후 대기실로 들어간 그는 메이크업을 하고 의상을 갈아입은 뒤, 이태원 주민에서 '연예인' 일리야가 돼 나타났다. 

 일리야 벨라코프

일리야 벨라코프 ⓒ 이희훈


 일리야 벨라코프

일리야 벨라코프 ⓒ 이희훈


 일리야 벨라코프

일리야 벨라코프 ⓒ 이희훈


오후 10시 생방송을 앞둔 <국민신문고>는 하나의 주제를 놓고 취재기자와 일일 MC, 외국인인 글로벌 평가단이 이야기를 나누는 프로그램. 이날은 'LPG 승용차 일반인 구매 제한'에 대해 다뤘다.

MC 박수홍, 한동오 기자와 대본 리딩에 들어간 일리야는 조금 긴장한 것 같았지만, "<비정상회담> 첫 방송 때 옷이 땀으로 흠뻑 졌었던 거에 비하면 오늘은 괜찮다"라며 웃었다. 무엇보다 "정치나 사회적인 이슈에 대해 토론하는 걸 좋아한다"는 그에게 맞춤옷 같은 프로그램이라 더 신이 난 듯했다.

생방송이 끝난 후, '업무의 연장'이라는 회식까지 마친 일리야는 자정이 넘은 시각에도 오히려 낮에 만났을 때보다 생기 있어 보였다. 카카오톡으로 메시지 하나가 도착하자, 얼굴이 더 환해졌다. <비정상회담>에 함께 출연했던 네팔인 수잔이다. '형, 오늘 생방송 너무 잘했다'는 살가운 응원에 일리야는 하트 이모티콘으로 화답했다.

- 지금은 그 대리님의 질문에 답을 할 수 있나? 하루 중 언제가 가장 행복한가.
"오늘은 방송 촬영하는 시간이 가장 좋았다. 일이 끝나고 차에 앉아 올림픽대로를 타고 서울의 야경을 보며 집으로 돌아갈 때,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매일 행복을 느끼며 살아야 한다. 그게 내 인생철학이다."

 일리야 벨라코프

일리야 벨라코프 ⓒ 이희훈


 일리야 벨라코프

일리야 벨라코프 ⓒ 이희훈


 일리야 벨랴코프

하루 일과를 마치고 방에 누워 생방송을 모니터한 친구들이 보낸 메세지를 읽으며 하루를 마무리하고 있다. ⓒ 이희훈


 일리야 벨라코프

하루 일과를 마치고 불꺼진 방으로 홀로 들어가는 자취생 방송인 일리야. ⓒ 이희훈



일리야 비정상회담 러시아 외국인 국민신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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